닫기

애국 부인전

지은이 장지연 · 2026-08-25

아리안 성은 프랑스의 목숨줄과도 같은 땅이었다.

그 성을 한 번 잃으면 나라의 종사가 무너질 뿐 아니라, 백성 모두가 남의 종이 되고 소와 말이 될 처지였다.

영국 군대는 그 성을 철통같이 둘러싸고 밤낮으로 몰아쳤다.

대포 소리가 멀고 가까운 곳을 가리지 않고 울렸다.

성 북쪽에는 또 하나의 성이 있었다.

보고유 성이라 불리는 곳으로, 프랑스 장군 포다리고가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아래에는 이렇다 할 장수가 없고 군사도 적었다.

아리안 성이 위태로운 것을 뻔히 보면서도 구하러 갈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영국군이 이쪽 성마저 칠까 두려워, 손을 묶어 둔 채 밤낮으로 애만 태웠다.

어느 날이었다.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장군은 성벽 위에 올라 턱을 괴고 앉았다.

‘우리 프랑스가 망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나에게 아무리 충의로운 마음과 용맹한 재주가 있은들 무슨 소용인가.’

‘나라의 큰 난리 하나 구하지 못하니, 살아 있는 것이 죽느니만 못하구나.’

그는 긴 한숨을 몇 번 내쉬고는 난간을 서성였다.

그러다 문득 벌떡 일어나 크게 소리쳤다.

“모진 바람이 불어야 굳센 풀을 알고, 나라가 뒤집혀야 충신을 안다 하였다!”

“묻노니, 오늘날 프랑스에 굳센 풀과 충신이 대체 어디 있는가!”

그렇게 탄식하던 참이었다.

성 아래 길로 한 여인이 사뿐사뿐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상한 일이다. 이런 난리 통에 웬 여자가 홀로 온단 말인가.’

‘필시 아리안 성이 무너져 달아나는 사람이겠지.’

그렇게 의심하는 사이 여인은 점점 가까워졌다.

자세히 보니 얼굴은 옥을 깎은 듯하고 기개가 넘쳤다.

옷은 남루했으나 늠름한 몸가짐은 영락없는 여장부의 풍채였다.

여인은 곧장 장군 앞에 들어와 절하고 아뢰었다.

“저는 시골 마을의 한낱 여자로, 이름은 약안아이격이라 합니다.”

“프랑스의 난을 구하러 왔습니다.”

장군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필시 정신이 나간 여자로구나. 내 한번 시험해 보리라.’

그리하여 앞뒤 사정을 하나하나 캐물었다.

여인이 답했다.

“저는 하늘의 뜻을 받들어 프랑스의 위급함을 구하고자 합니다.”

“부디 장군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장군은 그 행동거지를 살피고 말을 주고받아 보았다.

단정한 여자였고, 결코 정신이 나간 사람이 아니었다.

그제야 마음을 놓고 나라를 구할 방도를 물었다.

약안이 결연히 대답했다.

“저는 몇 해 전에 하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프랑스에 큰 난리가 있을 것이니 네가 마땅히 구하라 하시기에, 그날부터 뜻을 정하고 무예를 익혀 왔습니다.”

“이제 나라가 위태롭고 백성이 종이 될 지경에 이르렀기에, 죽기를 무릅쓰고 장군을 뵈러 왔습니다.”

“다른 뜻은 없습니다. 부디 굽어살피시어 군사를 조금만 빌려주십시오.”

“제가 비록 재주와 지략은 없으나, 충성을 다하여 아리안 성의 포위를 풀고 적을 쓸어내겠습니다.”

“고국을 되찾고 제 뜻을 이룰 수만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말하는 동안 뜨거운 피가 얼굴에 올랐고, 정신은 형형하게 빛났다.

그 열사의 기개는 넉넉히 사람을 움직였다.

장군과 좌우의 장수들은 그 말을 듣고 모두 깊이 감복했다.

자리를 내어 앉히고, 감히 한낱 여자로 대접하지 못했다.

장군이 마침내 나랏일을 의논하며 물었다.

“낭자가 비록 담력과 식견이 뛰어나나, 본디 양을 치던 농가의 사람이오.”

“전장에 한 번도 서 본 적이 없는데 어찌 영국군과 싸우겠소?”

“하물며 영국 군사는 하나같이 날래고 억세어, 우리가 몇 번이나 대군을 내어 싸웠으나 그때마다 전멸했소.”

“낭자에게 무슨 계책이 있소?”

약안이 대답했다.

“제게 무슨 기이한 계책이 있겠습니까.”

“다만 하늘의 뜻이라면 저절로 도우심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늘만 믿을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한 점 뜨거운 마음을 믿고, 국민 된 자의 의무를 다하여 프랑스 사람인 것이 부끄럽지 않게 할 따름입니다.”

“설령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것은 하늘에 맡길 일입니다.”

“어찌 이기고 지는 것을 미리 헤아리겠습니까.”

“게다가 군사를 부리는 법이란 본디 형편을 따라 그때그때 바꾸는 것이니, 미리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장군은 고개를 끄덕였다.

“낭자의 말이 옳소.”

“우리 백성이 하나같이 낭자처럼 국민의 도리를 알았더라면, 어찌 오늘 이 지경에 이르렀겠소.”

“다만 내 수하에는 군사가 얼마 되지 않고, 이곳 또한 요충지라 성을 비울 수는 없소.”

“우선 몇백 명만 내어 줄 터이니 그들을 거느리고 여기서 수십 리를 가시오.”

“시룡촌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그곳에 우리 국왕 샤를 칠세 폐하께서 머물고 계시오.”

“내 공문을 가지고 가 뵈오면 군사를 얻을 길이 있을 것이오.”

장군은 곧 성안의 군사 한 중대를 점검하여 빌려주었다.

약안은 백 번 절하여 사례하고, 공문을 받아 품에 간직했다.

그리고 장군에게 하직한 뒤 군졸을 거느리고 시룡촌을 향해 떠났다.

장군에게는 한낱 성을 지킬 꾀밖에 없었으나,

이 여인은 온 나라를 구할 공을 세우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