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지은이 허균
마침내 약속한 날이 다가왔다.
길동은 산채로 돌아오자마자 도적들을 불러 모았다.
수백 명의 녹림 군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장수를 바라봤다.
길동은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해인사를 칠 것이다.”
순간 여기저기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길동은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오늘 밤.”
그는 손으로 지도를 가리켰다.
“너희는 절 근처에 매복해 있다가 내 신호와 함께 한꺼번에 들이닥친다.”
도적들 눈빛이 번뜩였다.
“절 안 재물은 모조리 쓸어 담아라.”
길동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내 명령 없이 움직이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수백 명이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길동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절대 군령을 어기지 마라.”
그날 밤.
길동은 장대한 체구의 부하 십여 명만 거느린 채 다시 해인사로 향했다.
절 입구에는 이미 승려들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공자님께서 오십니다!”
“어서 모셔라!”
승려들은 길동을 극진히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자기들이 지금 직접 재앙을 맞아들이고 있다는 걸.
길동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절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곧바로 승려들에게 명령했다.
“절 안 승려들은 늙은이든 어린아이든 한 사람도 빠지지 말고 모두 절 뒤 벽계로 모여라.”
승려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봤다.
길동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은 너희와 함께 종일 즐기며 놀 생각이다.”
그 말에 승려들 얼굴이 환해졌다.
귀한 양반 자제가 큰 시주까지 하고 직접 술자리까지 베푼다니—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혹시라도 명을 거역했다가 노여움을 사면 큰일이었다.
결국 수천 명의 승려들이 하나둘 절 뒤 계곡가로 모여들었다.
그 사이—
거대한 해인사 내부는 텅 비어 버렸다.
길동은 상좌에 앉아 승려들을 차례로 자리에 앉혔다.
술상이 이어졌다.
음식도 넘쳐났다.
승려들은 정신없이 먹고 마셨다.
웃음소리가 계곡을 가득 메웠다.
길동 역시 겉으로는 태연하게 술잔을 기울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단 한순간도 풀리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길동은 갑자기 소매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모래를 한 움큼 꺼내 입안에 털어 넣었다.
우드득.
순간 돌 씹히는 듯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승려들이 동시에 놀라 길동을 바라봤다.
길동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이놈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히 음식에 돌을 섞어 내게 먹이다니!”
순간 승려들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길동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뒤에 서 있던 부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 승놈들을 모조리 결박하라!”
그 목소리는 천둥처럼 터졌다.
기다렸다는 듯 장대한 부하들이 일제히 뛰쳐나왔다.
그리고—
수천 명 승려들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