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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지은이 한용운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순영은 한참 망설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숙자는 담배를 손끝에 든 채 순영을 바라봤다.

“응, 무슨 말이냐?”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오히려 친어머니처럼 다정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순영은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말하기가 좀 어려운 일이에요…”

“어려운 일은 또 뭐냐.”

숙자가 웃었다.

“무슨 일이든 말해 봐라.”

순영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여기 온 게… 삼 년 작정하고 온 거잖아요.”

“그렇지.”

숙자의 눈빛이 조금 달라졌다.

“삼 년은 채워야지. 왜 그러니?”

순영은 손끝을 꼭 움켜쥐었다.

“그걸… 다 채우지 않고.”

“……”

“남은 기간 값을 돈으로 드리면 안 될까요?”

숙자는 담배를 입에서 떼었다.

“무슨 돈을 말하는 거냐?”

“송씨 어머니가 저를 팔고 받은 돈이 칠백 원이었잖아요.”

순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제가 여기 있었던 기간 계산하고… 남은 값만큼 다시 드리면…”

그녀는 괜히 목이 메었다.

“안 될까요?”

숙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천천히 물었다.

“왜?”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이미 많은 의심이 담겨 있었다.

“여기 있기 싫어서 그러니?”

“아니에요.”

순영은 곧장 고개를 저었다.

“그럼 다른 데 가려고?”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럼 왜?”

숙자의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순영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냥…”

그녀는 숨을 삼켰다.

“술잔 들고 사람들한테 시달리는 게 싫어요.”

“그것뿐이냐?”

숙자는 놓치지 않고 다시 물었다.

“다른 이유는 없니?”

순영은 차마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숙자는 그런 순영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네 속에 있는 말 다 해라.”

그리고 천천히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나도 대강 짐작은 하고 있으니까.”

순영 얼굴이 붉어졌다.

“다른 건 별로 없어요…”

“너 시집가려고 그러니?”

순간 순영은 아무 말도 못 했다.

귀끝까지 새빨개졌다.

숙자는 그런 반응만으로 이미 모든 걸 알아버린 얼굴이었다.

“내가 괜히 묻는 줄 아느냐.”

그녀는 부드럽게 웃었다.

“자세히 말해 봐라. 어쩐 일이냐?”

순영은 한참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대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털어놓았다.

원산 바다에서 목숨을 구해 준 일.

그 뒤로 이어진 인연.

대철이 두 번이나 이 집에 찾아왔던 일.

결혼 이야기까지.

순영은 하나도 숨기지 않았다.

숙자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물었다.

“그 사람이…”

그녀는 기억을 더듬듯 말했다.

“양복 입고 키 호리호리한 젊은 사람 맞지?”

“네.”

“저녁에 두 번 왔던.”

“네.”

숙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리고 순영을 바라봤다.

“너 정말 그 사람이 마음에 드니?”

순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조용히 웃었다.

“첫째는 은혜를 갚고 싶은 거예요.”

그녀는 대철 얼굴을 떠올리는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순영의 목소리가 작게 흔들렸다.

“사람이 정말 마음에 안 드는데 그런 생각이 나겠어요?”

숙자는 가만히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다 천천히 말했다.

“은혜는 은혜고…”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또 다른 문제란다.”

방 안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결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야.”

숙자의 목소리는 어느새 진지해져 있었다.

“평생 같이 웃고 울고,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가는 건데…”

그녀는 순영 눈을 바라봤다.

“쉽겠니?”

순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녀는 낮게 말했다.

“한번 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요.”

숙자는 그런 순영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말이다.”

그녀는 담배를 새로 붙이며 말했다.

“그 사람을 딱 두 번 봤는데도 영 마음이 탐탁지는 않더라.”

순영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왜요?”

“사람은 남녀 할 것 없이 첫째 코가 좋아야 한다.”

숙자는 아주 진지한 얼굴이었다.

“근데 그 사람은 코가 조금 비뚤어졌고…”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

“어쩐지 간사한 상이 있더라.”

순영 얼굴이 굳었다.

숙자는 계속 말했다.

“나는 육십 평생 사람 겪어 본 사람이다.”

그녀는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뿜었다.

“관상을 제대로 보는 건 아니어도, 사람 얼굴 한번 보면 대강 느낌은 틀리지 않더라.”

순영은 아무 말 없이 듣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점점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다.

대철을 그렇게 말하는 게 싫었다.

숙자는 그런 순영 속을 모르는 듯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는 피곤한 웃음을 지었다.

“나도 너를 언제까지고 술 따르게 하며 부려먹을 생각은 아니었다.”

순영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네가 온 뒤로 손님도 많이 늘었고.”

숙자는 계산하듯 말했다.

“네 몸값은 이미 뽑고도 남았어. 예전 빚까지 꽤 갚았다.”

그리고 문득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자식이 있니, 남편이 있니.”

그녀는 담배를 내려놓았다.

“돈 많이 모아 봐야 결국 혼자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숙자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이다…”

그녀는 순영을 바라봤다.

“적당한 사람 생기면 성혼시켜서 아들 겸 딸 겸 같이 데리고 살 생각도 했었다.”

순영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숙자는 피식 웃었다.

“근데 이런 일이 먼저 생겨 버렸구나.”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내 욕심 때문에 네 인생 막을 수는 없지.”

그녀는 한숨처럼 말했다.

“네가 좋아 죽겠다는 사람인데 내가 어쩌겠니.”

순영은 마음 한편이 조금 뭉클해졌다.

하지만 동시에—

숙자가 자꾸 대철을 탐탁지 않게 말하는 건 여전히 불편했다.

마치 자기 욕심 때문에 일부러 흠을 잡는 것 같기도 했다.

순영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잘되고 못되고야…”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제 팔자대로 되는 거겠죠.”

그리고 숙자를 바라봤다.

“그건 사람 힘으로 다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숙자는 말없이 그녀를 바라봤다.

순영은 천천히 본론을 다시 꺼냈다.

“그래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혼인을 하게 되면 아까 말씀드린 건 그렇게 해주실 수 있는 거죠?”

숙자는 눈을 가늘게 떴다.

“남은 기간 돈으로 계산하자는 말?”

“네.”

숙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만약 네가 다른 집 가려고 그러는 거였으면…”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돈 아니라 은을 갖다 줘도 안 놔준다.”

순영은 숨을 삼켰다.

“하지만 시집가는 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숙자는 손을 저었다.

“내가 그렇게까지 매정한 사람은 아니다.”

순영 눈빛이 흔들렸다.

“그러니까 그건 걱정 말고…”

숙자는 담배를 다시 물었다.

“네 할 준비나 해라.”

그리고 마지막까지 덧붙였다.

“그래도 난 그 사람이 영 마음에 안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