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살고 싶으냐
지은이 음악의 신 · 2026-08-31
두 번째로 눈을 떴을 때, 통증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등을 찢던 칼자국도, 숨 쉴 때마다 갈비뼈를 쑤시던 아픔도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대신 온몸이 뜨거운 물에 오래 담갔다 꺼낸 것처럼 나른했다.
곁에 노파가 앉아 있었다.
머리는 하얗게 셌지만 얼굴은 여전히 20대의 처녀같은 그 노파였다. 손끝에서 청백색 기운이 실처럼 흘러나와 무현의 가슴께로 스며들고 있었다. 약탕물 한 방울 쓰지 않았다. 그저 손끝만으로 부서진 뼈를 맞추고 터진 기혈을 이어 붙이고 있는 것이다.
편안한 치료는 아니었다. 기운이 뼈마디를 지날 때마다 차라리 다시 칼을 맞는 편이 낫겠다 싶은 통증이 치솟았고, 그러다가도 어느 순간 몸 구석구석이 봄볕에 언 땅 녹듯 풀어졌다. 며칠이 지났는지 몇 달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이곳에는 낮과 밤이 없었다.
노파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아이야."
조금 전 신선들과 언성을 높이던 때와는 딴판으로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무현입니다. 진무현."
"진무현."
노파는 고개를 끄덕였다.
"듣거라. 여긴 저승이 아니니라. 선계의 변두리, 천계와 인간계 사이의 틈이다. 원래 너 같은 인간이 올 곳은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여기로 흘러들어 왔다."
무현은 멍하니 노파를 바라보았다. 선계. 신선. 틈. 어느 것 하나 제 삶과 이어질 리 없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그 말들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피에 젖어 무너지던 진곤의 무릎이었다.
노파가 물었다.
"살고 싶으냐."
그 물음이 이상하리만치 깊은 곳을 찔렀다.
살고 싶으냐.
전장에 내몰리고, 맞고, 굶고, 도망치고, 끝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도 살고 싶었다. 볼품없고 초라한 삶이었지만 죽고 싶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는 살아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저를 밀어내고 죽은 사람에게, 살아 돌아오겠다는 약조를 아직 갚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노파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그러나 그 웃음은 정자 쪽을 한번 돌아보고는 이내 지워졌다.
"허나 지금은 아니다. 몸이나 마저 추슬러라."
그 말을 끝으로, 아무도 무현에게 무엇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치료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이어졌다. 노모의 손끝이 지나갈 때마다 무현은 앓았다. 부러진 뼈가 도로 맞춰지는 밤에는 이가 갈리도록 앓았고, 끊어진 기혈이 이어지는 날에는 정신을 놓았다 되찾기를 거듭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아픈 데가 하나도 없는 아침을 맞았다. 아침이라 부를 만한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몸을 일으켜 처음으로 제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안개의 바다였다. 흰빛과 푸른빛이 섞인 안개가 발아래에도 머리 위에도 흘렀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바위산들이 뿌리 없이 떠 있었다. 폭포 하나가 아래에서 위로 거꾸로 솟았고, 별은 낮게 내려앉아 손을 뻗으면 닿을 듯했다. 허공에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빛의 선들이 얽혀 거대한 바둑판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오래된 정자가 떠 있었다.
이상한 나날이 시작되었다.
몸이 성해진 뒤에도 신선들은 무현을 없는 사람처럼 대했다. 흰옷 노인과 도포 사내는 정자에서 바둑을 두었고, 거구의 노인은 구름 위에 드러누워 잤으며, 노파는 이따금 다가와 맥만 짚고 갔다. 말을 걸어오는 이가 없었다.
무현은 그것이 견디기 어려웠다. 심심해서가 아니었다. 밥값 때문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화산에서 밥을 먹으면 화산의 문을 지켰고, 할머니의 죽을 얻어먹으면 물이라도 길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선계의 샘물을 얻어 마시고 구름 위에서 잠을 자면서 하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게 가시방석이었다.
그래서 일을 찾았다.
정자 마루를 쓸었다. 먼지 한 톨 없는 마루였지만 쓸었다. 샘에서 물을 길어 정자 곁에 두었다. 신선이 물을 마시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길었다. 바둑이 끝난 자리의 돌을 색깔대로 나누어 통에 담았고, 거구의 노인이 아무 데나 벗어 던진 신을 주워 가지런히 놓았다.
"저놈이 지금 뭘 하는 게냐."
어느 날 도포 사내가 물었다. 무현은 빗자루를 쥔 채 답했다.
"놀고먹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여긴 먼지가 없다."
"예. 그래도 쓸면, 쓴 자리가 있습니다."
도포 사내는 잠시 무현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바둑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문지기 노릇은 어디서든 같았다. 서 있으라면 서 있고, 쓸라면 쓸고, 나르라면 나른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여기서는 아무도 시키지 않는데 제가 알아서 한다는 것뿐이었다.
시험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은 한참 뒤였다.
한번은 도포 사내가 바둑알 주머니를 마루에 둔 채 자리를 비웠다. 검은 비단 주머니 속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새어 나왔다.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신선의 물건이었다. 한 알만 쥐어도 뭔가 달라질 것 같은.
무현은 주머니를 집어 정자 기둥 아래, 눈에 잘 띄는 자리에 옮겨 두고 물러났다. 비를 맞을까 해서였다. 이곳에 비가 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돌아온 도포 사내가 주머니와 무현을 번갈아 보았다.
"왜 열어 보지 않았느냐."
"제 것이 아니니까요."
"탐이 나지 않더냐."
"났습니다."
솔직하게 답했다. 도포 사내의 눈썹이 미미하게 움직였다.
"그런데 어찌."
"탐나는 대로 다 집으면, 손이 두 개로는 모자랍니다. 저는 손이 느려서, 제 것 하나 쥐는 데도 오래 걸립니다."
도포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주머니를 소매에 넣으며 중얼거렸다.
"느린 손이라."
그 뒤로 도포 사내는 이따금 무현을 정자 마루 끝에 앉혀 두고 바둑을 두었다. 가르쳐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두는 것을 보게만 했다. 흰옷 노인과의 대국이 한나절을 넘긴 어느 날, 사내가 판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누가 이기고 있느냐."
"…모르겠습니다. 바둑을 둘 줄 몰라서."
"모르는 눈에는 무엇이 보이느냐."
무현은 한참 판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돌과 흰 돌이 뒤엉킨 모양은 알 수 없는 그림이었다. 다만.
"흰 쪽이… 급해 보입니다."
"어째서."
"모르겠습니다. 그냥, 흰 돌들이 숨을 몰아쉬는 것 같습니다."
흰옷 노인의 미간이 꿈틀했다. 도포 사내는 소리 내지 않고 웃었다. 그 판은 결국 흰 쪽이 던졌다.
거구의 노인은 다른 것을 물었다. 구름 위에 드러누운 채, 지나가는 무현을 발끝으로 불러 세우고는 대뜸 이랬다.
"힘을 원하느냐."
"…예?"
"원한다면 얻는 법을 알려 주지. 너 같은 놈도 산 하나쯤은 주먹으로 부수게 해 줄 수 있다."
무현은 잠시 생각했다. 산을 부수는 저를 떠올려 보았는데,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려진 것은 다른 장면이었다.
"힘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살아서 돌아가고 싶습니다."
"살아서."
"예. 빚을 갚아야 할 집이 하나 있습니다. 화산 아래 마을에."
거구의 노인은 반쯤 감긴 눈으로 무현을 올려다보다가, 씨익 웃고는 도로 눈을 감았다.
"산보다 무거운 걸 지려는 놈이군."
무슨 뜻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한번은 옥허노모에게 조심스레 물은 적이 있었다.
"여기가 하늘과 인간 세상 사이라 하셨는데."
"그랬지."
"그럼… 죽은 사람이 가는 길도, 여기서 보입니까."
노모는 맥을 짚던 손을 멈추고 무현을 보았다.
"보고 싶은 이가 있느냐."
"저 대신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가는 길이라도 배웅을 했으면 해서."
"여긴 죽은 자의 길이 아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오지 않는, 그 사이의 틈일 뿐이야."
"…그렇습니까."
"허나 아이야."
노모의 목소리가 한결 낮아졌다.
"배웅은 길목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서 그자의 몫까지 걸어 주는 것도 배웅이니라."
무현은 그날, 안개 끝을 향해 오래도록 절을 올렸다. 진곤이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 없어, 사방을 향해 한 번씩 했다.
한번은 정자 근처에서 물을 긷다가, 신선들의 언성을 들은 적도 있었다.
"법도가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지켜보자 한 것과 거두는 것은 다른 일이다."
"다르긴 무엇이 달라. 이미 밥을 먹이고 잠을 재우고 있잖느냐."
"…나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목소리는 흰옷 노인의 것이었다. 낮고, 서리 같았다. 무현은 길어 올리던 두레박을 소리 나지 않게 내려놓고 물러났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저 때문에 다투고 있다는 것, 그리고 흰옷 노인의 그 서리가 저를 향한 것만은 아닌 듯하다는 것. 그 정도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었다.
흰옷 노인만은 끝까지 차가웠다.
마루를 쓸다 눈이 마주쳐도 외면했고, 물을 떠다 놓아도 손대지 않았다. 말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는 냉기가 그 주변에만 서리처럼 깔려 있었다.
그런데 그 노인은 밤마다, 낮과 밤이 없는 이곳에서 무현이 밤이라고 부르기로 한 시간마다, 홀로 허공에 검을 그렸다.
빛으로 된 검이었다. 실체가 없는 검이 허공에 피었다가, 매화 잎 지듯 흩어졌다가, 다시 피었다. 무현은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다만 눈을 뗄 수 없었다. 왕철산의 찌르기를 처음 보던 날과 같았다. 군더더기가 없고, 망설임이 없었다.
멀리서 훔쳐보던 어느 날, 흰옷 노인이 검을 거두지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말했다.
"보지 마라."
짧고 차가웠다. 무현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그 뒤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소리로만 들었다. 빛의 검이 안개를 가르는 소리는 폭포 소리와 조금 닮아 있었다.
그리고 무현에게는 무현대로, 거르지 않는 일과가 하나 있었다.
찌르기였다.
일을 마치고 나면 정자에서 가장 먼 구름 끝으로 갔다. 검은 없었다. 절벽에서 떨어질 때 어디로 갔는지 빈손이었다. 그래서 맨손으로 했다. 왼발 반 보. 어깨 힘 빼고. 허리는 곧게. 손목 꺾지 말고. 그리고 앞으로.
백 번을 채우면 진곤의 얼굴이 떠올랐고, 이백 번을 채우면 주명수의 장대가 떠올랐고, 삼백 번을 넘기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게 좋아서 계속했다.
살아남기 위한 한 번의 동작. 배운 것이 그것뿐이니, 붙들 것도 그것뿐이었다.
그날도 수백 번째 허공을 찌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지팡이 짚는 소리가 났다.
노파였다. 그리고 그 뒤로 셋이 다 있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이야. 너는 어찌 가르쳐 달라 조르지 않느냐."
노파가 물었다.
"여기 있는 넷 중 아무나 붙들고 늘어져도, 인간 세상에서는 나라 하나와도 바꾸지 못할 것을 배울 텐데."
무현은 숨을 고르며 답을 찾았다. 조르지 않은 이유는 별것이 아니었다.
"가르쳐 주신다 하신 적이 없는데, 어찌 조르겠습니까."
"…"
"거두어 주시고, 고쳐 주시고, 재워 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갚을 길이 없습니다. 거기다 신선의 것까지 넘봐서야, 사람의 염치가 아닙니다."
정적이 흘렀다.
노파가 홱 몸을 돌려 정자 쪽을 향해 소리쳤다.
"이만하면 되었잖느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포 사내가 부채로 제 손바닥을 툭툭 두드렸고, 거구의 노인은 하품을 씹었다. 흰옷 노인은 안개 저편을 보고 있었다.
"지켜보자 한 것은 너희다. 나는 지켜보았고, 정했다."
노파는 무현에게로 돌아섰다. 삐죽한 눈매가 처음으로 온전히 부드러워져 있었다.
"좋다. 그럼 배워라."
그날부터 수련이 시작되었다.
옥허노모. 그것이 노파의 이름이었다. 옛날 공동파의 한 갈래를 일으켰다가 득도하여 선계에 올랐다는 여선. 세간에는 전설로만 남은 이름이라 했는데, 무현은 공동파도 잘 몰랐으므로 그저 고개만 조아렸다. 그 무지가 오히려 마음에 들었는지 노모는 코웃음을 치고는 첫 가르침을 시작했다.
가르침은 자애롭지 않았다.
노모는 차분한 목소리로 경맥의 흐름과 기의 성질을 설명했지만, 무현이 한 글자라도 놓치면 지팡이가 정수리로 떨어졌다.
"기는 막아 두는 것이 아니라 흘리는 것이다."
딱.
"숨은 들이마시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이다."
딱.
"하단전은 비우는 곳이지 쟁여 두는 항아리가 아니란 말이다."
딱.
처음에는 맞을 때마다 눈물이 찔끔 났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지팡이가 떨어지기 전에 먼저 틀린 데를 깨닫게 되었고, 나중에는 지팡이가 올라가는 기척만으로 숨이 저절로 고쳐졌다.
노모가 그 꼴을 보고 처음으로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 이제야 사람 꼴이 나는구나."
첫 호흡이 하단전을 제대로 돌아 나간 날을, 무현은 오래 기억하게 된다. 들이마신 것도 아닌데 무언가 들어왔고, 내쉰 것도 아닌데 무언가 흘러나갔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몸속이 환해졌다. 저잣거리에서 무당 제자의 몸놀림을 보며 사람의 상식 밖이라 여겼던 그 세계에, 이제 제 발끝이 걸쳐진 것이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이르다."
노모는 지팡이 끝으로 구름 저편, 거구의 노인이 자는 쪽을 가리켰다.
"내일부터는 저 곰 같은 것이 널 데려갈 게다."
"…예?"
"오늘은 푹 자 두어라. 아마 당분간, 잠이 세상에서 제일 그리워질 테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무현은 다음 날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