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촌경(映畵寸景)
지은이 이명선
### 영화촌경
**연필 깎는 학생**
학생은 연필을 깎고 있었다. 끝이 삐죽하게 깎였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필 끝을 뺨에 살짝 대어 보았다.
**전차 속의 좌석**
순정한 학생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노인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소갈머리 없는 신사가 그 자리에 생큼 앉아버렸다.
**길에 떨어진 권연**
권연을 피우며 걷던 신사가 피우던 동가리를 내던지며 불을 발로 밟아 끄려 할 때, 기다리고 있던 거지가 다가와 신사의 발을 떠밀었다.
“여보시오. 왜 남의 권연을 짓밟으려 하십니까?”
“이 놈아, 그게 네 권연이냐? 내 권연이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길에 떨어진 것은 제 권연입니다. 떨어지기 전 당신의 것인지도 몰랐습니다만…”
**비와 신혼부부**
신부가 우산을 들고 회사에서 돌아오는 남편을 전차 정류소에서 맞이했다. 둘은 한 우산을 같이 쓰고 집으로 걸어가며 꿀같은 사랑을 속삭였다. 비는 조용히 그치고 해가 빛났다. 그들은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사랑의 순간을 만끽했다.
**임시 룩삭크**
십여 명의 동우들은 모두 룩삭크를 둘러메고 있었지만, 엉터리 중등학교생 하나는 룩삭크가 없어 학교에 가는 대신 커다란 책가방을 룩삭크처럼 메고 친구들 사이에 섞여 천연스럽게 걸어갔다.
**대문과 자전거**
향학의 열기를 참지 못하고 먼 시골에서 상경한 학생은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하고, 새벽과 저녁에는 신문 배달을 하게 되었다. 오늘 저녁에도 신문을 가득 메고 자전거를 타고 배달을 하던 중, 어느 집 대문에 다가가려 할 때, 장난치는 아이들이 와르르 쏟아져 나와 자전거가 넘어졌다.
**장작과 주인**
“어떻게 그렇게 못 쪼개니? 인내해, 나 쪼개는 걸 좀 보고 쪼개봐.” 주인이 이렇게 말하며 나무를 쪼개려 했다. 마음속으로는 단번에 쪼개고 싶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데로 찍히기만 했다. 그래도 입으로는 “이거, 나무가 잘못 놓였구나. 어쩌구…”라고 중얼거렸다.
**나무 도적질**
무성한 숲 속에서 한 사내가 날카로운 낫으로 나무를 베고 있었다. 그로부터 2정쯤 떨어진 곳에서 작은 아이가 연을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이때 나무 주인이 그 사내를 보고 화가 나서 산 밑에서부터 쫓아갔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연을 들고 일어섰다.
“너 이 놈, 어디 가니?”
“연 띄우러 가요.”
“그런 연이 뜨겠냐?”
“왜 안 뜨겠어요. 띄워봐요.”
아이들은 뜨지 않는 연을 띄우려 애쓰는 척하며 산꼭대기로 도망갔다. 그리고 나무 주인에게 귀속말로,
“아버지, 나무 주인이 왔어요. 얼른 숨으세요.”
나무 주인은 나무를 질머지고 내뺀다. 얼마 후, 나무 주인이 허겁지겁 다가와서,
“너 여기 나무 주인 못 봤니?”
“아니요.”
**음악과 아이**
형과 함께 과자를 나눠 먹다가 엄마에게 꾸지람을 듣고 울며 쫓겨나온 한 남자아이가 발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름답고 슬픈 바이올린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곡조가 끝날 때까지 정신없이 듣고 있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먼저 울었었나, 안 울었었나?”
**삼남이와 울음**
삼남이는 울음으로는 근처에서 제일이었다. 한 번 울기 시작하면 한나절이 지나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삼남이가 울기 시작하면 집안 사람들은 벌써 겁에 질려 밤이나 대추를 주느라 바빴다. 그런데 서울에서 학교 다니는 그의 아버지가 왔는데, 삼남이는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집안 사람들은 여느 때처럼 밤과 대추를 꺼내려 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것은 하나도 주지 못하게 하고, 또 대접도 못하게 했다. 삼남이는 더욱 화가 나서 점점 더 크게 울었지만,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한참 울다가 결국,
“이제 그만 울어야겠다.”고 말했다.
**광인과 칼**
광인은 벨벨 지랄을 다하고 발광을 했다. 그러나 이 광인을 꼼짝 못하게 하거나 도망가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칼을 빼들고 그를 쫓아가면 그는 그만 벌벌 떨며 모서리로 도망가게 되는 것이었다. 이는 그가 이십삼, 사세 때 어떤 유부녀와 관계를 맺다가 현장에서 발각되어 본남이 칼을 빼들고 죽이려 할 때, 그가 재빨리 도망쳤던 일에서 비롯되었다. 그 이후로 그는 광인이 되었고, 칼만 보면 대단히 무서워하게 되었다.
**전차 차장과 쫓아오는 승객**
용남이가 전차 정류소로 달려갔을 때, 얄미운 차장이 달그랑 줄을 당겨 전차가 떠났다. 용남이는 이에 화가 나서 전차를 쫓아 달려갔다. 앞의 운전수가 이를 보고 정차하였다. 용남이는 뛰어올라 차장을 끌어내리며 ‘배피투’로 보기 좋게 밀쳤다. 그리고 올라서서 달그랑 줄을 당겼다. 차장도 먼지를 털고 일어나 전차에 올라탔다.
**허리 꼬불어진 노인과 절**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절을 하게 된 아이는 상대방이 허리 꼬불어진 노인임을 이용해 배 앞에 달려들어 절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그의 머리가 노인의 턱에 부딪혔다.
“앗, 이놈. 절 두 번만 하면 늙은이 턱에 하나도 남지 않겠다.”
**살수차**
처음으로 서울 구경 온 용길은 살수차를 끌고 가는 인부를 보며,
“여보, 물은 길거리에 다 쏟아버리고 집에는 뭘 가져갈 작정이요?”라고 물었다.
**기독교 신도와 뺨**
용길이 길거리에서 전도하는 기독교 신자를 만났다.
“그렇게 열심히 권고하시니 당신 자신은 반드시 굉장한 신도이시겠지요?”
“네, 물론 신도입니다.”
“정말입니까?”
“기독교 신도에는 거짓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한 번 시험해 보겠습니다. 오른쪽 뺨을 지금 제가 때릴 테니, 어서 왼쪽 뺨을 내미세요.” 하고 덜컥.
**전차 좌석과 여인**
전차 좌석에 앉아 여자들이 들어오나 하고 입구만 바라보고 있던 대학생. 허리 꼬불어진 노인이 앞에 와서,
“여기 좀 앉읍시다.”라고 하여도 그는 듣지 않고, 맨 마지막에 탄 젊은 여자가 다가오자 얼른 일어나,
“여기 앉으십시오.”라고 말했다.
**소와 지게 꼬리**
농촌에서 최동과 김동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가는 길이다. 앞에 서 있는 최동은 지게 꼬리가 끌리는 것도 모르고 여전히 ‘방아타령’을 부르며 간다. 뒤에서 달려오는 김동이 최동의 지게 꼬리를 잡아 흔들며,
“이러, 이러.”라고 했다.
**학교 공부와 소**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생일을 맞이한 한 남자아이가 밭을 갈고 있었는데, 소가 말을 듣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학교 공부는 쓸모가 없구나. 소도 하나 못 부리겠네.”라고 꾸짖었다. 그러자 남자아이는 태연하게,
“이 소가 학교 공부를 안 해서 일본 말을 못 알아들어서 이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용길이와 고기종드람이**
아버지와 함께 따뜻한 날 강변으로 고기 잡으러 간 용길. 고기를 잡는 데 열중하다가 한참 고기를 쫓아 강변을 뛰어다니다가, 바로 앞에 있던 고기종드람이를 걷어찼다. 한 박휘 두 박휘, 그 여하튼 물속으로 텀무덩.
**하품과 주먹**
하품하는 어머니의 입에 삼남이가 주먹을 풀숙 디밀며,
“이것이 하품에는 약이라나.”
**바람과 모자**
바람에 모자가 훌쩍 날아가려 할 때, 신사는 흔들리던 단장을 받으며,
“어떻습니까?”
**우차와 아이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가에 실려 있는 두 남자아이는 같은 두 녀석들과 한 꾀를 내었다. 두 놈은 마차 뒤에 타고, 한 놈은 앞에서 마차 군과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 박구워 하여 마차만 타고 집에까지 갔다.
**풀매질과 장두간**
삼남이가 동무들과 한참 정신없이 풀매질을 하다가 잘못하여 이웃집 장두간 뚜껑에 돌이 떨어졌다. 장을 보러 오던 여인이 깜짝 놀라 주춤하다가 씩씩하게 담 넘어로,
“우리 장뚜간 뚜껑 깬 애가 누구냐?”고 야단을 쳤다. 삼남이는 태연하게,
“우리는 몰라요. 풀매질밖에 안 했는데요.”
“풀매질 했으니 너희가 깬 거지.”
“제길할 거. 돌맹이가 깼지, 우리가 깠나. 야단칠 거면 돌맹이한테나 쳐요.”
**싸움과 우정**
삼남이가 이웃집 애와 싸워 한참 두들겨 패는 판에 그 애의 아버지가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삼남이는 슬쩍 그 애 머리를 쓰다듬으며,
“건너 땀 개동이가 뚜들겨 울리고 나뺏대요. 우지 말어라.”
그러자 그 애는 제 아버지를 보고,
“아니래요. 얘가 팻대요.”
삼남이는 태연하게,
“개똥이라는 녀석, 어떻게 팻는지, 얘는 정신을 잃은 모양이요. 우지 말어.”라고 말했다.
**기차와 소**
한 남자아이가 기차 선로 옆에 있는 자기네 밭을 갈고 있을 때, 기차가 ‘빡’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소가 놀라서 극젱이를 끌고 어기뚱한 데로 달아갔다. 남자아이가 질질 끌려가는 모습은 딱할 만큼 비참했다. 겨우 쇠목에 댄 나무를 뽑아내고 밭 겨우 한 골 반을 갈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다.
**여자와 비**
전차 정류소에서 난데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산을 가진 도시 남자가 비를 맞고 서 있는 여자의 옆으로 가서 어떻게 하면 말을 걸어 우산 속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여보! 우산 좀 잘 받으세요. 우산 끝에서 물 떨어지는 것을 못 보세요?”라고 말했다. 여자가 냇다 핑자를 주었다. 그러나 도시 남자는 오히려 이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네!? 몰랐습니다. 왼쪽, 난데없이 비가 와서… 옷이 젖으시겠네요. 이리 들어오세요.”
“싫어요. 누가 그 따위 우산 속에…”라고 여자는 다시 한 번 쏴붗었다. 그것도 물리적으로는 아니다. 도시 남자의 우산은 구멍이 뻥뻥 뚫려 있는 형편없는 우산이었기 때문이다.
**상투와 잠**
예전 시골 글방에서 선생님은 외출하고 제자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박돌이 책을 앞에 펴놓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리면서도 여전히 앞뒤로 끄덕거렸다. 윤출이 종이를 접어 건을 만들어 박돌이의 상투 위에 올려놓았다. 건이 박돌이가 꾸벅꾸벅하는 대로 앞뒤로 덜그덜그. 글방의 아이들이 모두 둘러서서 아이구아이구. 이 소리에 박돌이가 깜짝 놀라 영문을 몰라 머리를 두리번거렸다.
“선생님의 말씀을 며라구…”
하고 윤출이 앞에 나가 천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다른 애들도 하나씩 나가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이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이제 돌아오셨군요.”
모두 늘어서서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아이들을 한 번 쳐다보고, 박돌이의 상투 위에 건을 보고,
“너는 머리 위에 그게 뭐냐?”
박돌이는 손으로 상투를 만지며 건을 날려버리고, 그제서야 아이들의 장난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태연하게,
“꿈에 효경을 읽고, 아버지의 나날이 늙어가시는 것을 슬퍼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 너는 낮잠을 자고 있었구나!” 하고 선생님이 뺨을 때렸다. 그러나 또 태연하게,
“아닙니다. 책을 정신 없이 읽다 보니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