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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의 발자국

지은이 일곱날의빛 · 2026-10-28

서리가 창유리에 고사리 모양의 무늬를 그려 놓은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 코끝이 먼저 시렸다. 난로가 새벽에 사그라든 방은 이불 밖의 공기가 얼음물 같았다.

입김이 천장 쪽으로 올라가 흩어지는 것을 눈으로 따라갔다. 숨이 이렇게 하얗게 보이는 날에는 늘 어머니가 먼저 손을 비벼 내 뺨에 대 주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한참 동안 천장의 나뭇결을 세었다.

나뭇결은 마흔일곱 번째 줄에서 늘 갈라졌다. 열흘 동안 세어서 알게 된 것이었다. 이 방에서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정확한 것이 천장이라니.

창밖 처마 끝에는 고드름이 한 뼘쯤 자라 있었다. 첫눈 소식은 아직 없었지만, 하늘은 눈을 품은 잿빛이었다.

어머니가 갇힌 지하에는 하늘이 보이는 창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 몫까지 오래 하늘을 보았다.

잿빛 구름이 천천히 서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저 구름 아래 어딘가의 지붕 밑에 어머니가 있다고 생각하니, 구름까지 무겁게 느껴졌다.

이 방에서 눈을 뜬 지 열흘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침마다 맨 먼저 확인하는 것은 똑같았다. 문의 위치, 창문의 빗장, 그리고 베개 밑의 총.

“내일부터는 걸어 다녀도 돼요.”

어젯밤 마지막 진찰을 마친 호박색 눈의 여자는 내 손바닥의 딱지를 살펴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녀는 약초 향이 나는 연고를 두고 갔다. 병 뚜껑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침저녁 두 번, 아프면 세 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열흘 동안 나는 그 병을 한 번도 세 번째로 열지 않았다. 아프다고 말하는 법을 잊은 지 오래라서.

연고에서는 박하와 삼나무 향이 났다. 그 냄새를 맡을 때마다 아버지의 작업복 소매가 떠올랐다.

아버지는 쇠를 만지고 온 날이면 늘 이런 냄새를 풍겼다. 그 냄새 속에서 안겨 자던 밤들이 이제는 다른 사람의 일처럼 멀었다.

걸어 다녀도 된다는 말이 이 방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말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나는 탁자 앞에 앉아 붕대를 하나씩 풀었다. 팔, 어깨, 옆구리.

천에서 약초와 오래된 피 냄새가 났다. 마지막은 오른손이었다.

레이너가 감아 준 붕대의 매듭은 열흘 동안 한 번도 풀리지 않았다. 손톱 끝으로 당겨 보았다.

풀리지 않는 매듭은 정말로 풀리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철문이 열리던 순간이 떠올랐다. 무릎이 꺾였고, 쓰러지기 전에 누군가의 팔이 먼저 나를 받아 냈다. 외투에서는 비와 가죽 냄새가 났고, 이상할 만큼 익숙한 온기가 났다.

그 팔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는 이제 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해야 한다는 것도.

모르는 척하는 일은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아는 것을 숨기는 일과 모르는 것을 지어내는 일은 전혀 다른 근육을 쓰는 일이었다.

나는 한참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가위를 가져와, 매듭에서 한 뼘 떨어진 곳을 잘랐다. 손에서 벗겨 낸 천이 매듭을 가운데 둔 고리 모양으로 탁자 위에 떨어졌다.

버릴 수 없었다. 왜 그런지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나는 그 고리를 곱게 접어 서랍 맨 안쪽에 넣고 닫았다.

서랍을 닫는 소리가 방 안에 작게 울렸다. 닫은 것은 서랍인데, 이상하게 가슴 한쪽이 같이 닫히는 것 같았다.

열쇠 구멍이 없는 서랍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손잡이를 한 번 더 당겨 확인했다. 잃어버릴까 봐 두려운 것이 생겼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탁자 한쪽에는 아침 쟁반이 식어 가고 있었다. 열흘 내내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 놓이던 쟁반이었다. 귀리죽과 갓 구운 빵, 그리고 비어 있는 찻잔 받침.

처음 눈을 뜬 날 아침에만 그 받침 위에 각설탕이 하나 얹혀 있었다. 나는 그것을 입에 넣지 못하고 베개 밑의 총 곁에 넣어 두었다. 그 뒤로 받침은 계속 비어 있었다. 빈 받침을 볼 때마다 이유 모를 서운함이 목 끝에 걸렸다.

누가 두고 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문을 열어 보면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고, 발소리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죽 위에는 계피 가루가 흩뿌려져 있었다. 한 숟갈 떠 넣자 목구멍이 데워졌다. 4년 동안 나는 끼니를 때웠을 뿐, 아침을 먹은 적은 없었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숟가락을 내려놓고 한참을 앉아 있었다. 따뜻한 음식이 목을 넘어가는 일이 이렇게 미안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빵 껍질을 뜯어 죽에 적시면서 어머니가 먹던 굳은 빵의 모서리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늘 부드러운 쪽을 내 몫으로 떼어 주고 단단한 끝만 남겨 먹었다.

방 끝의 욕실은 타일이 차가웠다. 구리 수도꼭지를 돌리자 파이프가 낮게 울더니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김이 거울을 하얗게 덮었다.

4년 동안 나는 양동이에 받아 둔 찬물로 걸레를 빠는 아이였다. 따뜻한 물이 이렇게 많이 나와도 되는 건가 싶어서, 한참 손을 대고 서 있었다.

뜨거운 물속으로 몸을 넣자 상처마다 쓰라림이 먼저 왔다가 물러갔다. 물이 분홍빛으로 흐려졌다가 다시 맑아졌다.

물이 맑아지는 것을 보고 있자니, 지난 4년 동안 몸에 눌어붙어 있던 것이 조금씩 벗겨져 나가는 것 같았다. 전부 씻기려면 한참 더 걸리겠지만.

문득 낯선 생각이 스쳤다. 이 물은 누가 데워 놓았을까.

나중에 지크에게 들었다. 보일러실의 불은 그날 새벽 네 시부터 타고 있었다고. 아이 하나가 씻을 물을 위해 누군가 밤새 석탄을 날랐다는 뜻이었다.

삼나무 향 비누 거품이 팔뚝의 멍을 타고 내려갔다.

숨을 길게 내쉬자 어깨가 내려갔다. 내려가고 나서야, 그 어깨가 4년 내내 귀 옆까지 올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김이 걷힌 거울 속에는 낯선 아이가 서 있었다.

칼로 잘라 들쭉날쭉한 은금발 단발머리, 뼈가 도드라진 어깨, 열네 살치고는 너무 오래 깨어 있었던 흑청색 눈동자. 나는 젖은 머리칼을 털고 시선을 돌렸다.

거울 속의 아이는 어머니를 닮지도 아버지를 닮지도 않았다. 닮았다면 그건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나를 바라보던 눈이었다.

욕실을 나오자 방문 앞에 옷이 접혀 있었다.

무광 블랙의 제복이었다. 깃과 소매에 매의 눈과 엇갈린 총 두 자루가 은실로 수놓여 있었다.

거친 양모 안쪽으로 보드라운 안감이 덧대어져 있었고, 팔을 꿰자 어디 한 군데 끼지도 남지도 않고 몸에 맞았다.

누가 내 치수를 쟀을까 생각하다가, 줄리앙의 눈대중이라면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소매 끝을 걷어 보니 안쪽 솔기에 아주 작은 글씨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어젯밤, 새벽 두 시.

누군가 밤을 새워 이 옷을 내 몸에 맞게 줄였다는 뜻이었다. 그 사람은 생색 한 줄 남기지 않았다.

솔기 하나하나가 촘촘했다. 바늘귀를 몇 번이나 다시 꿰었는지 알 수 있을 만큼. 손으로 쓸어 보니 어느 한 곳 거슬리는 데가 없었다.

소매 안쪽 단춧구멍에 회색 실로 작게 별 하나가 수놓여 있었다. 처음 입는 옷에 내 이름 대신 별이 있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탁자에는 마도총과 목걸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누가 닦아 두었는지 은빛이 맑았다.

나는 목걸이를 집어 목에 걸었다.

오각 별이 가슴뼈 위에 얹혔다. 차가운 은이 살갗보다 먼저 따뜻해졌다.

그리고 아주 가늘게, 별이 울었다.

그 울림에 맞춰 몸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조그맣게 대답했다.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한 어떤 것이.

‘엄마.’

나는 별을 옷깃 안으로 밀어 넣고 총을 허리에 꽂았다. 어머니가 내게 남긴 것은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따뜻한 물과 죽과 새 옷. 그 모든 것이 처음으로 죄처럼 느껴졌다. 내가 이 방에서 열흘을 보내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그 집에 있었다.

머리칼을 말리다 창가에 섰다. 김 서린 유리를 손바닥으로 닦자, 안뜰의 하얀 서리 위로 발자국이 하나, 담 쪽에서 내 방 창 아래까지 와서는 돌아 나가 있었다. 누가 밤새 이 창 아래를 서성였는지 알 수 없었다.

문 너머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레이너 님이 데려왔다는 그 애 있잖아. 진짜 살아 있긴 한 거야? 열흘째 방에서 꼼짝도 안 하던데.”

“온몸이 핏덩이였다던데 숨이나 제대로 쉬는지 모르겠구먼. 레이너 님이 직접 받아 안으셨다니 말 다 했지.”

앳된 목소리와 굵은 목소리. 이어 차분한 여자의 목소리가 얹혔다.

“마력에 익숙하지 않은 몸으로 버텼다는 게 기적이에요. 그런데 대체 무슨 속성이길래 레이너 님이 저렇게까지 감추시는 걸까요?”

“속성이야 뭐든.”

어둠에서 건져 올린 듯한 낮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바깥은 맘몬의 사냥개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어. 그 아이가 약점이 될지 무기가 될지는, 내 눈으로 보기 전엔 못 믿어.”

나는 숨을 죽이고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마지막 목소리는 경계가 아니라 계산이었다.

나를 쓸 수 있는지 없는지 재고 있는 목소리. 오히려 편했다.

지난 4년 동안 나를 대한 사람들 중에 계산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으니까.

계산은 정직했다. 값을 매기는 눈은 적어도 거짓 다정함을 입지 않으니까.

그 목소리들 속에 레이너의 것은 없었다. 그날 이후 그는 한 번도 내 방을 찾지 않았다. 그게 마음에 걸리는 내가 이상했다.

별이 가슴뼈 위에서 한 번 더 작게 울었다. 나는 그것을 용기라고 부르기로 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었다. 총을 쥘 때는 이렇게 떨리지 않았는데, 문고리 하나 앞에서 이렇게 다리가 무거운 것이 우스웠다.

열흘 만에 문 앞에 서자 문 한 장이 이렇게 두꺼운 것이었나 싶었다. 저 너머에 사람들이 있다. 나를 보고 계산하고, 어쩌면 웃을 사람들이.

놋쇠 문고리를 돌렸다.

문이 열리자 복도 맞은편 모퉁이에서 누군가 급히 몸을 숨기는 기척이 났다.

석벽 너머로 사라지는 검은 외투 자락이 눈 끝에 걸렸다. 쫓아가기엔 늦었고, 못 본 척하기엔 이미 보았다.

복도 바닥에는 바깥 서리가 녹은 물이 찍은 발자국이 두 개, 아직 마르지 않은 채 남아 있었다.

발자국은 내 방 쪽을 향했다가 돌아서 있었다. 문 앞까지 왔다가 노크하지 못하고 간 사람의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