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홍준사(採紅駿使)
지은이 지웅이네 · 2026-10-28
다음 날 지웅은 돌석과 함께 돈화문(敦化門) 앞에서 권열(權烈)을 만나고 북촌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먼 친척인 겸사복 대장 신위대(申威大)는 도성 밖 금표 작업 관리에 차출되어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두 녀석 모두 건강히 잘 있으니 다행이었다. 지웅의 말에 펄쩍 뛰던 권열의 얼굴이 떠올라 지웅은 미소지었다.
“아니 형님, 혼인이라니요. 일가친척 하나 없이 혈혈단신입니다. 뉘라서 좋아하겠습니까?”
“그건 걱정할 것 없다. 품계만 높으면 뭐 하느냐. 사내란 모름지기 뒷배가 있어야 하는 법이다. 장인 되실 분이 재력이 있으니 충분히 너의 뒷배가 되어 줄 것이다. 잔말 말고 이참에 진짜 상투를 틀어라.”
닷새 굶은 두꺼비상을 해서는 얼굴이 붉어지며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권열에게 양주로 내려 올 것을 신신당부 한 후에야 걸음을 옮긴 지웅이었다. 바람은 향그럽고 공기는 상쾌했다. 어느새 날리던 벚꽃이 다 지고 곳곳이 초록이었다. 겨우내 몸을 움츠렸던 도성 사람들의 어깨도 활짝 펴져 있었다. 연산군의 폭정만 아니라면 태평성대의 모습이었다.
손에는 짚을 촘촘하게 엮어 만든 작은 망태기 속에 소고기가 들어 있었다. 소고기는 일반 백성이 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법적 금기를 뚫고 암거래를 해야만 구할 수 있어 소고기를 구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 나라에서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 하여 사대부 다음으로 농민을 중요시 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농업을 최고로 삼는 농본주의(農本主義)의 나라였다. 그러한 농경국가에서 도축을 엄하게 금하는 우금령(牛禁令)을 시행하는 건 당연했다. 그럼에도 수요(需要)가 많아 암암리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합법적으로 구하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소가 병들어 죽었다고 거짓 신고를 하여 도축 허가가 떨어지면 몰래 평민들이 쌀과 면포로 바꾸어 거래하곤 했었다. 더 확실한 방법은 현방(懸房)이라는 곳에 가서 구하는 방법이었다. 현방은 성균관에 고기를 공급하기 위해 나라에서 허락한 도축장 겸 정육점이었다. 제사용이나 유생들의 식사용으로 쓰는 것으로 한양 성균관 근처 반촌(泮村)에서 구할 수 있었다. 지웅은 소고기국을 먹으며 행복해 할 해란을 떠올리며 말 위에서 느긋하게 따각 따각 말발굽 소리의 장단을 느꼈다. 갑자기 말고삐를 쥐고 걷던 돌석이 물었다.
“대감마님, 아까 내금위 별장께서 동생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요?”
“그렇다. 왜 그러느냐?”
돌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세상 천지에 형님보다 먼저 장가가는 동생이 어디 있습니까요? 법도에도 어긋나고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요.”
“하하하. 그래 돌석 네가 나보다 열 살이 더 많으니 세상 이치를 알겠구나. 그렇다면 세상이치를 통달한 너에게 나도 하나 묻자꾸나.”
“하문하십시오 대감마님.”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뜨는 자식이 있다면 그건 어떤 이치로 그러한 것이냐?”
“그, 그건,,,,,”
돌석이 쉽게 답을 못하자 지웅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법도에 맞지 않는 걸 따진다면 나는 양반이고 너는 천민이요, 이치에 맞지 않는 걸 따진다면 나는 하대(下對)하고 너는 존대(尊待)하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모두가 고루 평등한 세상이 반드시 올 것이다.”
돌석은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지웅은 말하면서도 뒤에서 누군가 따라 온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속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지만 지나가는 도성 백성들만 보일 뿐이었다. 어차피 살기(殺氣)만 느껴지지 않으면 그리 예민할 필요가 없다고 늘 자신을 되뇌였다. 저 앞에 북교가 보였다. 저기만 넘으면 해란의 집은 금방이었다. 북교를 넘어가기 전에 주막(酒幕)이 있었다. ‘취선루(醉仙樓)’라는 제법 그럴듯한 이름까지 있는 주막으로 장악원에서 내 보낸 은퇴 기녀 두 명이서 국밥과 탁주를 파는 곳이었다.
“돌석아, 너는 저 주막집에서 탁주 한 잔 하고 기다리거라. 나 혼자 다녀오마.”
지웅은 고삐를 빼앗아 말의 박차를 가했다. 천천히 졸면서 걷던 말이 ‘히히힝’ 소리를 내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따가닥’ 거리는 말의 발굽소리가 청명했다. 돌석은 이게 웬 횡재냐며 입이 귀까지 걸렸다. 안 그래도 목이 마르던 차에 저 주막집을 보면서 한 잔만 걸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감마님이 가끔씩 이런 호강을 시켜주니 매번 안 따라 나올 재간이 없었다. 대감의 마패만 보여주면 어디서든 술은 부족하지 않게 마실 수 있었다. 돌석이 주막집 마당으로 들어갈 때 왠 사내가 빠른 속도로 돌석 옆을 스쳐 지나갔다. 체구는 작지만 엄청 빠른 달음박질이었다. 근데 지나갈 때 풍기던 향내와 뒷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기억력 하나는 좋다고 자부하는 돌석이었다. 기억하려면 못할 것도 없겠지만 지금은 탁주 냄새가 코를 찔러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 ‘에이’ 하면서 돌석은 멍석위에 깔린 개다리 소반 앞에 앉아 주모(酒母)를 불렀다.
지웅은 심장이 터질 듯한 설레임에 호흡을 가다듬었다. 이상하게도 해란만 생각하면 가슴이 뛰었다. 이제 겨우 토끼 꼬리만큼 자란 수염을 가다듬고 해란의 집 문 앞에 섰다. ‘이리 오너라’ 라고 호문하자 잠시 후에 얼굴이 얽은 여종이 나타났다. 이제 그 얼굴도 반가웠다. 여종이 예전과는 딴판인 지웅의 겉모습을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 잠시만 기다리시오.”
유모 단심은 방에 들어가 복숭아를 먹고 있던 해란과 수련에게 밖에 누가 왔는지 아느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멍 하니 앉아서 단심을 보고 있는 해란을 보고 유모 단심이 천정을 쳐다보며 황홀한 표정을 지은 채 입을 열었다.
“구름무늬 수놓은 옥색 도포 자락에 고운 명주로 만든 행사관(行事冠)을 쓰고, 마노와 호박으로 엮은 주립(珠笠) 끈이 가슴팍 아래까지 찰랑이며, 값비싼 백항라(白亢羅)로 만든 바지저고리에 허리춤엔 당상관의 상징인 붉은 색 세조대(細絛帶)를 맵시 있게 묶고, 얼굴은 부처님 같이,,,”
“유모!”
해란이 유모 단심의 말을 끊고 입에 복숭아를 우겨 넣었다. 단심이 복숭아 조각에 말을 못하고 버벅 거리다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러니까 누구냐고?”
해란의 앙칼진 물음에 유모 단심이 복숭아 조각을 씹어 삼키면서 말했다.
“아기씨 신랑 왔구만유. 정혼자. 소 말이우, 빈집에 들어오는 소,,”
해란은 지웅이 왔다는 소식에 유모의 농담에도 반응하지 못하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란의 어미 수련이 면경(面鏡)을 내밀었다.
“얼른 머리를 손질하고 나가 보거라. 손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면 못쓴다.”
“아이구, 우리 마님께서도 백년 손님인줄은 아시는 구만유.”
잠시 후 여종의 안내로 지웅은 해란의 방으로 들어갔다. 불견지례(不見之禮)의 예법에 따라 혼인 전이어서 해란의 어머니는 뵐 수 없었다. 보통 혼인날 기러기 한 쌍을 신부 어머니에게 바치는 전안례(奠雁禮)를 올릴 때 뵐 수 있었다. 방에 들어오자 마자 지웅은 해란을 껴안았다. 해란도 손을 뻗어 지웅의 허리를 감았다. 둘은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서로 눈을 보면서 입을 맞췄다. 해란이 눈을 감았다. 자꾸만 수줍게 고개를 숙이는 해란의 입술을 좆아 밀어 올리곤 했다. 겨우 입을 뗀 해란이 고개를 돌린 채 속삭였다.
“방금 전, 황도(黃桃)를 먹은지라 입 안이 청결치 못하여 송구하여이다.”
“무슨 상관이오. 낭자의 입에 복숭아가 들어갔으니 은은한 도화 꽃잎 향이 나는구려. 이마에 앉은 먼지도 나에겐 천상의 꽃가루요, 옷에 묻은 티끌도 보석일 뿐이오.”
“며칠 전에 구고(舅姑-시부모)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행차가 갑작스러워 대접에 소홀함이 없었을까 마음이 쓰이옵니다.”
해란은 안긴 채 조잘조잘 작은 입으로 소근거렸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지웅의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졌다.
“그 또한 무슨 상관이오. 한 번 웃음에 성벽이 허물어지고 두 번 웃음에 나라가 기울었다는 은나라 달기(妲己)보다 아름다고, 찡그린 얼굴조차 한 떨기 꽃 같았다는 오나라 서시(西施)보다 청초하니 그대의 허물 또한 나에게 선물과 다름없소.”
해란은 살짝 눈을 흘기며 지웅의 가슴을 작은 주먹으로 톡톡 쳤다. 얄밉다는 표정이었다. 지웅은 해란을 다시 꼬옥 안아주었다.
“조만간 사람을 보낼 것이오. 아버님께서 보내시는 사주단자를 받으면 빠른 택일(擇日)을 해 주시오. 그럼 최대한 서둘러 혼수를 납폐(納幣)를 할 테니 이 달 안에 혼인을 하고 양주로 내려갑시다.”
해란은 지웅의 눈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살며시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지웅의 튼튼한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떨리는 해란의 맥박소리가 충분히 묻혀 질 만큼 크고 단단했다.
패랭이를 쓰고 평민 복장으로 남장(男裝)한 아란카는 느티나무 뒤에서 지웅이 들어간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의 대궐 같은 집에 비해 작고 아담했지만 집을 둘러싼 담장은 사괴석(四塊石)을 높이 쌓고 붉은 벽돌을 중간 중간 넣어 지붕을 얹은 와담(瓦橝)으로 여인이 사는 집을 주변의 시선에서 보호하려는 듯 했고, 곱게 뻗어 내려 온 색 바랜 기와만큼은 오랜 터주임을 나타내고 있었다. 반 시진이 지나자 지웅이 대문을 열고 나오는 게 보였다. 그 뒤로 한 여인이 따라 나왔다. 멀리서 보아도 한 눈에 아리따운 여인임을 알 수가 있었다. 여인은 백련(白蓮)처럼 희고 투명하여 햇빛 보다 눈부셨고 어깨 위로 흘러내린 칠흑 같은 머릿결은 폭포수처럼 윤이 났으며 옥색 저고리 너머로 비치는 가녀린 목선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저미게 할 만큼 아름다웠다. 은은핸 매화향이 바람에 실려 여기까지 날아오는 듯 했다. 아란카와 전혀 반대였다. 아란카는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따로 없구나, 저리 아리따우니 내가 초원에 밟히는 말똥으로 보일 수 밖에,,’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아란카가 아니었다. 아란카는 저 여인에게 당당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대가 연모하는 이는 아란카도 연모하고 있으니 쉽게 물러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싶었다. 이게 바로 북방 여인들의 사랑이었다. 밤을 틈타 담장을 넘은 후에 저 여인의 방으로 들어가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란카는 느티나무 위로 올라갔다. 가지가 제법 두꺼워 해가 지기 전까지 누워 있을 수 있었다. 지웅이 여인과 작별한 후 말을 타고 사라지는 게 보였다. 아란카도 다음에는 양반으로 위장하여 말을 타리라 마음먹었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신분의 굴레가 참으로 복잡한 나라였다. 평민이 되면 양반의 행차에 물러서야 했고 양반이 되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하긴 배를 하루 종일 굶고도 이를 쑤시는 양반네가 아니던가. 명(明)을 천자의 나라라며 사대(士大)하는 조선의 허약한 조정(朝廷)이 오래 못 갈 거라는 확신이 섰다. 아란카는 가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팔베개를 했다. 간만에 들리는 새소리가 정겨웠다. 아란카의 고향에도 이런 새소리가 주야로 들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잘 있는지, 동생들은 잘 지내는지 궁금했다. 넓게 확 트인 광활한 초원이 그리웠다. 이곳 조선은 산이 첩첩이 앞을 가로막고, 담장은 어찌나 높은지 하늘조차 네모난 틀에 가두어 사람들은 그 좁은 담장 안에서 예법이나 따지며 서로를 가두고 있었다. 고삐도 없이 젖은 말갈기 냄새를 맡아가며 초원을 달리던 기억이 떠올랐다. 배고프면 사냥하고 추우면 가죽을 뒤집어쓰며 적을 만나면 칼을 뽑을 뿐이었다. 등 뒤를 내어 줄 수 있는 형제와 가족과 독주(毒酒) 한 잔이면 충분했다. 하지만 이곳 조선은 밥 한 그릇을 먹어도 수저의 위치를 따지고 물을 한 잔 마셔도 고개를 돌려야 했다. 말 한마디를 할 때도 속내를 감추고 빙빙 돌려 말하니 듣는 귀가 피곤했다. 가끔 이곳에 왜 왔을까 후회되던 적도 있었다. 아란카가 상념에 잠겨 있을 때 갑자기 떠들썩한 취타대(吹打隊)를 앞세운 한 무리가 몰려오고 있었다. 북과 징소리, 피리소리에 잠을 자던 새들이 놀라 달아났다.
취타대(吹打隊)를 앞세운 무리들 뒤에는 임금의 전권을 위임받았음을 뜻하는 황룡기(黃龍旗)와 사신의 임무를 상징하는 푸른색 사절기(使節旗)가 하늘을 찌르고 있어 이 깃발이 보이면 정승 판서라 할지라도 밑에서 내려 머리를 조아려야 했다. 그 뒤에는 채홍채준사(採紅採駿使)라고 쓰인 붉은 색 깃발이 보였고, 한 사내가 말을 타고 있었다. 임금의 명을 공경히 받들라는 흠봉왕명(歆奉王命)과 명을 받들지 않는 자는 베겠다는 항명자참(抗命者斬)이 쓰인 깃발이 나란히 그 뒤를 따랐고, 그 뒤로 삼십 여명의 군졸들이 창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엔 눈으로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을 장면이 보였는데,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한 여인들이 포승줄에 묶인 채 굴비 엮듯 엮여 끌려오고 있었으며 그 옆에는 붉은 휘장을 두른 가마가 몇 개 보였고 그 문에는 왕의 것임을 뜻하는 봉인띠를 붙여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오빠인 구왈기야 이룸에게 듣기로 조선의 왕이 여인들을 닥치는 대로 징집하여 성 노리개로 삼는다더니 저 여인들이 다 그렇게 될 운명으로 보였다. 무리들이 멈춘 곳은 바로 지웅이 나온 그 여인의 집이었다. 아란카는 긴장을 한 채 숨을 죽이고 벌어지는 사태를 주시했다.
“이 집이 퇴기(退妓) 오수련이란 계집이 사는 곳이렸다. 안에 과년한 여식이 있다 하니 대문을 열어라.”
채홍사 이계남(李系南)이 말하자 군졸 한 명이 대문을 강제로 열어젖혔다. 대마(大馬)에 탄 채홍사 이계남이 앞세운 취타대의 요란한 소리가 해란의 집 앞마당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대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붉은 관복을 입은 채홍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안마당까지 말을 몰고 들어왔다.
“식솔들은 나와서 왕명을 받들라!”
버선발로 뛰어 내려온 수련과 해란, 유모 단심은 땅에 엎드렸으나, 채홍사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채찍 끝으로 처마 밑을 가리켰다.
"내 듣자하니 이 집에 혼기가 찼으나 머리 올리지 않은 여식이 있다더군, 전하께서 밤마다 적막함에 잠을 이루지 못하시니, 마땅히 백성이라면 그 근심을 덜어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수련의 안색이 흙빛이 되었다.
"대감, 제 여식은 이미 정혼을 하여 사주단자까지 받은 몸이옵니다. 제발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이계남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허리춤에서 붉은 비단에 싸인 채홍칙사(採紅勅使)의 패를 꺼내 보였다.
"사주단자? 하하, 전하의 명보다 앞서는 예법이 천하에 어디 있단 말이냐. 오늘 이후로 이 아이는 집안의 여식이 아니라, 나라의 꽃인 운평(運平)이 될 몸이다. 여봐라! 어서 안채로 들어 선녀(仙女)를 모셔 오너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덩치 큰 군졸들이 아녀자들의 비명 소리를 무시한 채 해란의 양 팔을 들었다. 잠시 후, 옥색 저고리에 때 묻지 않은 청초한 자태의 해란이 군졸들에게 팔을 붙잡힌 채 끌려 나왔다. 해란의 눈망울에는 공포가 서려 있었으나, 그 처연한 모습은 오히려 채홍사의 탐욕을 자극할 뿐이었다.
이계남이 말 위에서 몸을 숙여 여인의 턱을 채찍 끝으로 슬쩍 들어 올렸다.
"과연... 저잣거리의 소문이 헛되지 않았구나. 진토(塵土) 속에 묻혀 있기엔 그 향기가 너무 아까운 꽃이야.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오늘부터 네년의 발길이 닿는 곳은 이 좁은 흙마당이 아니라 구중궁궐의 화려한 전각이 될 터이니."
얼굴이 얽은 늙은 여인이 군졸들의 앞길을 막아섰으나, 이계남이 그녀의 앞가슴을 발로 찼다. 수련 또한 이계남의 옷자락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이계남은 그러한 수련마저 발로 차고는 그 광경을 비웃듯 바라보며 가마를 대령시켰다.
“어머니!”
해란이 울먹이며 소리쳤지만 무리들의 무도한 행패는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어서 보에 싸서 가마에 태워라! 해가 지기 전에 궁으로 출발해야 한다. 전하의 성은을 입는 날, 그대의 가문은 역적에서 충신으로 바뀔 것이니 고마워하도록 해라!"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채홍사의 행렬이 멀어지는 뒤로, 찢겨나간 옥색 고름만이 마당 구석에 쓸쓸히 굴러다녔다. 집 안에서 여인들의 절규가 들려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아란카는 무언가 일이 단단히 꼬였음을 직감했다. 정혼자를 잡아가다니, 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법도를 중시하고 여진을 미개한 오랑캐라고 무시하면서 정작 법도를 깨뜨리고 상식을 파괴하는 건 조정 대신들이었다. 아란카는 고민이 되었다. 이 사실을 지웅에게 먼저 알려야 할지, 저 채홍의 무리들에게서 여인을 구출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아란카는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하기로 결정했다. 아란카의 가슴은 여인을 먼저 구하라는 소리를 자꾸 내 보내고 있었다. 아란카는 나무에서 내려 와 무리들을 뒤따라갔다. 아란카는 평범한 백성으로 남장을 하였기에 칼과 활을 가져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그 무렵, 지웅은 콧등이 벌개진 돌석이와 함께 양주를 항하여 천천히 말을 타고 북동 방향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돌석에게 지웅이 말했다.
“탁주가 그리 좋더냐?”
“탁주도 좋지만, 탁주 마시게 해주신 대감마님이 더 좋습니다요. 헤헤”
“그리 좋다면 어디 노래라도 불러 보려무나. 사실 나도 기분이 굉장히 좋다만 보는 눈이 있으니 내가 부를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그럼 흥청가(興淸歌) 한 곡조 올리겠습니다요.”
-흥청(興淸)이라 불러주니 맑은 흥이 솟느냐, 망청(亡淸)이라 비웃으니 나라가 망하느냐. 양주 고개 굽이굽이 눈물 고개뿐이로다. 우리 아기 어디 가고 가마 바퀴만 구르는가.-
“듣기는 좋다만 내용이 이상하구나. 이건 채홍사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냐? 누가 들으면 경을 칠 수 있으니 삼가거라. 다른 노래는 없느냐? 노래가 좋으면 가는 길에 누원(樓院) 주막거리에서 한 잔 걸치고 자고 가겠다.”
“정말이십니까요? 그러면 다른 노래 불러 드리겠습니다요.”
돌석은 신이 났는지 다른 노래를 불렀다.
-가시리 가시리잇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잡사와 두어리 마난 션하면 아니올세라. 셜온님 보내압노니 가시난닷 도셔오셔서-
지웅은 돌석의 노래 가락을 들으며 눈을 감았다. 돌석의 노래는 요즘 장안에 화제였다. 연산군의 폭압적인 여인 징집으로 인해 양반 가문이고 천민이고 가릴 것 없이 채홍사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었다. 요란한 피리소리가 들리면 채홍 행렬이었다. 어린아이고 유부녀고 간에 집안에 여인만 있다면 숨기기 바빴고 아예 좋다는 사내가 있으면 혼인을 시켜 멀리 도망 보내는 집도 있었다. 권세가의 외동딸을 대신하여 노비가 쓰개치마를 입고 채홍사의 눈을 속이는가 하면 이름난 기생집 일패기생도 여지없이 끌려 나왔다. 지아비와 자식을 둔 젊은 여인은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의 효경(孝經)도 무시한 채 얼굴을 칼로 그어 채홍에서 빠지는가 하면 소문난 미모의 젊은 과부는 오히려 자청하여 가마에 오르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원치 않는 상황에서 강제로 징집을 당하는 실정이었다. 지웅은 조용히 시(詩)를 한 수 읆조렸다.
- 남산에 꽃 피어도 내 마음은 한 겨울이라
붉은 가마 지나가니 내 자식은 어디 갔나
채홍사 채찍 소리에 강물도 숨 죽이네-
날씨는 이제 등에서 땀이 흐를 만큼 더워 부채를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웅은 해동촌(海東村) 시장통에 들러 부채와 해란에게 줄 노리개 몇 개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석에게 방향을 잡으라 지시했다. 해가 중천에 있었다.
아란카는 날렵한 발걸음으로 채홍사의 행렬을 뒤따랐다. 적당한 곳에 당도하면 그 여인을 구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칼과 활이 없어 쉽게 접근하기 어려웠다.
‘아구만 있었다면 쉬웠을 텐데,,,’
채홍 행렬은 한참을 가다가 도성 북동쪽 일반 가옥보다 화려한 단청이 칠해진 위엄이 느껴지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성균관(成均館)이라는 현판이 걸려있었다. 옆에는 바로 창경궁이 있었다. 주위엔 은행나무가 팔을 벌려 건물을 보듬고 있는 느낌이었다. 아란카는 채홍 행렬이 성균관 안으로 사라진 걸 확인하고 돌아섰다. 밤에 달이 구름에 숨으면 몰래 들어가서 구출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란카는 바삐 걸음을 옮겨 창경궁 담장을 따라 종경방(鐘慶坊)을 지나 운종가(雲從街)로 들어섰다. 보신각(普信閣)을 우회하여 광화문을 향해 올라가니 육조거리가 나왔다. 구름처럼 사람이 모인다고 해서 운종가(雲從街)였다. 여기엔 시전 상인들뿐만 아니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품꾼들이 일거리를 기다리며 늘 서성이는 곳이었다. 도성 안의 3대 시장 중 하나인 베오개는 이현(梨峴)이라 불리는 곳으로 배나무가 많이 있고 서민들의 상행위가 활발한 곳으로 얼마든지 품꾼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란카는 육조거리와 운종가 큰길 바로 뒤편에 형성된 피맛골로 향했다. 이곳은 고관대작들의 말을 피해 백성들이 다니던 좁은 길목이었지만 목을 축이는 주막과 저렴한 국박집이 널려 있어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밝은 심부름꾼이나 마부(馬夫)들이 상주하다시피 하는 곳이었다. 아란카가 조선에 처음 왔을 때 박원종과 변복을 하고 세상 물정을 살펴보던 적이 있어 이곳 지리에 익숙했다.
아란카는 비교적 오래되어 보이는 주막에 들러 작은 평상에 앉았다. 마땅한 사람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노인들이었고 그나마 젊은 축에 속하는 사내들은 들개의 젖은 꼬리 같은 수염에 술로 찌들고 눈동자가 노랬다. 어쩌다 한두 명 정신이 있는 자들은 다리를 절룩거리거나 팔 하나가 없이 여기저기 눈치만 살피는 거렁뱅이의 모습이었다. 아란카는 낙담했다. 쓸만한 자들은 근처 명륜궁(明倫宮) 성곽 보수 작업에 몰려간 모양이었다. 자리를 옮기려던 그때, 처마 밑에서 돌치기 놀이를 하던 어린 아이들이 보였다. 그중에 제법 덩치가 있고 말뽐새가 나는 아이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아란카는 아이들에게 걸어갔다. 덩치 큰 아이가 아란카를 경계하며 쳐다보았다.
“얘야, 너 이게 뭔지 아니?”
아란카는 말린 소고기 육포를 꺼냈다. 이마에 커다란 점이 박힌 아이가 반응했다. 그리고 아란카는 품 안에서 커다란 발톱을 하나 꺼냈다. 고향에서 잡았던 호랑이 발톱이었다. 제일 키가 큰 아이가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너희들, 뜀박질 잘하니?”
이미 육포와 발톱에 정신이 나간 아이 둘이 대답했다.
“점복이가 일등이고 제가 이등이에요. 일장산성(日長山城-남한산성)까지 반나절에 다녀온 적도 있어요.”
키 큰 아이가 대답하자 아란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단하구나. 그럼 너희 둘이 내 심부름 좀 해주겠니? 한 명은 북촌 박원종 대감댁에 다녀오고 한 명은 양주 방향으로 가야 한단다. 심부름을 다녀오면 이걸 주마. 난 여기 주막에 머무를 테니까 다녀오면 날 찾도록 하거라.”
뜀박질 일등인 점복이가 양주쪽으로 가고 키 큰 아이는 박원종 대감댁으로 달려갔다. 아란카는 다시 평상에 앉아 허리가 굽은 할머니에게 국밥을 주문했다. 맞은 편엔 승복(僧服)을 걸친 스님 한 분이 손때가 묻은 지팡이를 내려놓더니 역시 국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개다리 소반 앞에 앉아 아란카와 마주보는 자세였다. 나이는 70을 훌쩍 넘은 고령으로 보였다. 하얀 눈썹 밑에 서슬 퍼렇게 비치는 안광(眼光)이 예사롭지 않았다. 힐끔거리며 스님을 훔쳐보는 아란카에게 스님이 말을 걸었다.
“평생 산을 타며 수많은 짐승을 보았으나, 도성 코 앞에서 북방의 굶주린 호랑이를 마주할 줄 몰랐구나.”
아란카는 자신을 두고 하는 말임을 깨달았다. 비록 남장을 했으나 자세히 얼굴을 보지도 않았을진대 어찌 북방에서 온 줄 알았는지 신기했다. 아란카는 시험을 해 보기로 했다.
“스님, 사람 잘못 보신 거 같습니다. 무엇을 보고 제가 북방에서 왔다고 단언하시는지요?”
“조선 사람과 북방에서 온 야인들은 골격부터가 다르다네, 우선 광대뼈부터 다르지, 조선 사람은 복숭아 씨처럼 거칠게 튀어 나오지만 북방은 완만하지. 자넨 허벅지가 튼튼하고 곧게 펴진 등으로 보아 말안장 위에서 잔뼈가 굵은 기마 민족의 피가 흐르고 있네, 그뿐인가. 조선 사람들은 윗사람을 보면 눈을 내리깔거나 조심스러워하지만 자네 눈은 사냥감을 노리는 매처럼 당당했네, 더구나 조선의 저고리를 입었다지만 조선 사람은 옷고름을 장식처럼 부드럽게 여미는데 반해 자넨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야인들의 기질처럼 단단하게 매듭하지 않았나. 더구나 푸른 눈에 여인의 몸으로 목덜미에 검은 문신(文身)을 새겼으니 어디에 조선 사람으로 보인다는 건가.”
아란카는 기겁했다. 패랭이을 쓰고 남장했어도 여인임을 단박에 알아본 스님이 대단해 보였다. 아란카는 고개를 숙이며 늦은 인사를 했다.
“대사님, 소인이 대사님을 몰라 뵙고 실수를 했습니다. 용서하시지요.”
스님이 껄껄 웃으시더니 손을 내저었다.
“일 없네. 실수는 무슨, 밥 한 그릇 먹자고 들른 길에 좋은 인연을 만났으니 이 모두 부처님의 뜻일세.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님이 합장하자 아란카도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아란카의 고향에서도 불교를 매우 숭상했기에 스님이 낯설지 않았다. 요(遼)나라를 정복한 금(金)나라는 요나라의 불교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흩어진 부족들을 하나로 묶고 정복한 한족(漢族)이나 고려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불교라는 공통된 가치관이 필요했다. 불교의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산스크리트어 '만주슈리(Mañjuśrī)'를 음역(音譯)한 것으로 '묘한 덕', '훌륭한 지혜' 등을 뜻하며 이 음역으로 인해 여진을 또 다른 이름인 만주(滿州)라고 부르고도 있었다.
“대사님, 대사님의 법명은 어찌 되시는지요?”
“사람들이 나를 학조(學祖)라고 부른다네.”
아란카는 학조라는 이름을 속으로 되뇌였다. 언젠가 다시 인연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소녀, 구왈기야 아란카 라고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대사님.”
아란카가 공손히 두 손을 모으자 학조대사가 근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자넨 미간에 일장산을 뚫을 만큼 살기(殺氣)가 맺혀있으나, 좋은 짝을 만나면 사라질 것이네, 눈동자는 얼어붙은 흑룡강의 칼바람이 부는 듯 방황하고 있지만, 그 또한 좋은 인연을 만나면 사라지겠지. 다만 누군가를 죽이는 것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 할 운명이네. 이걸 받게.”
학조대사는 아란카에게 작은 글자가 적힌 염주 알 하나를 건네주었다. 붉은색 염주 알에는 아(阿) 자가 적혀있었다. 아(阿)는 불교에서 모든 것의 시작과 진리를 뜻하는 글자였다.
“대사님, 이건,,,,”
“성균관 대성전(大成殿) 뒷담장 아래 반수(半水) 물길에 이것을 내보이면 길을 아는 자가 나타날 것이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할머니가 국밥을 가져왔다. 학조대사는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이 앉아서 국밥을 후루룩 말아 먹고는 금방 자리를 떴다. 아란카는 아(阿) 자가 새겨진 염주 알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균관 대성전 뒷담장 아래 반수 물길에 이 염주 알을 보여주라?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어 포기하고 아란카도 국밥을 먹기 시작했다. 언제 먹어도 이 맛은 잊지 못할 만큼 맛이 좋았다. 고향으로 돌아가도 이 맛을 못 잊어서 다시 와야 할 것만 같았다. 온통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인왕산(仁王山) 꼭대기에 해가 걸려 잠시 쉬고 있었다. 밤이면 하얗게 빛나는 저 산도 고향에 가면 생각날 것 같았다. 인왕산엔 호랑이도 많다고 들었다. 인왕산 호랑이, 아란카는 지웅이 인왕산 호랑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아이들이 잘 찾아가고 있을지 걱정이었다.
박원종 대감의 집에서 무술 수련을 하고 있던 구왈기야 이룸은 선선한 바람에 잠시 멈추고 물을 마셨다. 해가 백악산(白岳山) 끝자락에 걸려 있었다. 섬돌에 앉아 땀을 식히던 중, 대문 밖에서 시끌벅쩍 소란이 일었다. 무슨일인가 싶어 나가보니 왠 꼬마가 나이 든 집사에게 바득바득 대들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왠 아이가 와서 일두 어른을 찾는다며 떼를 씁니다요. 그런 사람이 없다며 말을 하는데도 통 듣지를 않으니,,,”
집사는 두 손을 내저으며 아이를 쫒아내려고 밀쳤다. 집사의 답답한 표정을 뒤로 하고 이룸이 아이에게 물었다.
“그래, 누가 보냈느냐? 일두 어른을 찾으라고,,”
“사사가 보냈다고 하면 알거라고 했어요. 피맛골 할매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아저씨가 일두 어른이 맞아요? 생김새가 아저씨처럼 커다란 곰 같다고 했어요.”
‘사사’라면 고향에서 작고 귀여운 새를 뜻하는 말이자 아란카의 애칭이었다. ‘일두’는 이룸의 어릴 적 이름이었다. 아란카가 보낸 아이가 틀림없었다. 피맛골 할매집으로 오라고 했다면 무슨 일이 생긴 거였다.
“알았다. 아이야. 돌아가거라. 이보시오 집사, 아이에게 과일이라도 주시오.”
아이는 자신이 만나 전갈을 받은 사람이 일두라는 사람이 맞는지 증좌를 달라고 하여 이룸의 허리춤에 달려있던 화살촉 하나를 건네주었다. 아이가 숲속의 다람쥐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구왈기야 이룸은 방으로 들어가 조선인 옷으로 갈아입고 칼만 챙긴 채 즉시 집을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백악산 언저리가 붉게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