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백 년의 침묵
지은이 나츠하나 · 2026-10-27
모래시계 · 잔량 38시간 00분 · 여행 6일차
아침 빛 속에서 눈을 떴을 때 잡고 잠들었던 손은 그대로 잡혀 있었다. 도윤이 먼저 깨고 곧 성하가 깼는데, 오늘이 무슨 날인지는 둘 다 알고 있었다. 팔 년 전 오늘, 유성이 떨어지던 언덕에서 한 여자가 처음 보는 것이나 다름없는 남자에게 소원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알아." 성하가 도윤의 눈을 읽고 먼저 말했다. "나도 알아. 그런데 오늘 얘기는 저녁에 해. 지금은 순서가 있어."
성하는 그 순서대로 세수를 하고 옷을 고른 다음 초록 리본 상자를 들었다. 공동 대표의 첫 출근 준비는 간결했다. 문을 나서기 전에 성하는 방을 한 번 돌아보았다. 어제까지 떠나느냐 마느냐를 두고 싸우던 그 방이 오늘부터는 돌아올 곳이었다.
가게까지 가는 아침 거리는 어이없을 만큼 평화로웠다. 빵집 앞에는 줄이 서 있었고 하늘은 맑았다. 도윤은 걸으면서 서른여덟 시간, 하루 반 남짓이라고 셈을 했다. 팔 년 전의 오늘과 내일 밤이 함께 걸린 아침을, 그는 성하의 걸음에 보폭을 맞추며 걸었다.
가게 문이 아직 열리기 전, 카운터 뒤에서 장부를 펴고 있던 테레사는 안경 너머로 두 사람의 얼굴을 보고 손을 멈췄다. 아침 인사를 하러 온 얼굴들이 아니었다.
말은 도윤이 시작하고 성하가 보탰다. 두 사람은 어제 서로에게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는 나누어 들고 왔다. 일 년 뒤의 부고에서부터 느린 편지와 사진, 이 가게의 뒷방에서 감은 눈과 일 년 전 여름에서 뜬 눈, 등 뒤에 붙은 걸음들과 내일 밤까지였다. 도윤이 사실을 말하면 성하가 순서를 잡았고, 편지와 사진의 실물이 카운터 위에 놓였을 때만 이야기가 잠깐 멈췄다. 테레사는 편지에 손을 대지 않은 채 눈으로만 한참 읽었고 사진은 그보다 더 오래 보았다. 무엇을 확인하는 눈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도윤은 묻지 않았다.
테레사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었고, 놀라는 대신 오래 기다린 손님을 맞는 사람처럼 고쳐 앉았다. 이야기가 끝나자 테레사는 두 가지만 물었다.
"언제로 돌아왔니."
"일 년 전 여름의, 여행 이틀째 아침입니다."
"모래는 언제부터 떨어졌고."
"그날 아침부터요."
테레사는 눈을 감고 도윤만 기억하는 그날처럼 길게 성호를 그었다. 그러고는 카운터를 돌아 나와 셔터를 내리고 팻말을 뒤집었다. 나흘 전 아침에는 반쯤 열어 두었던 그 문이 오늘은 대낮에 닫혔다. 노인이 말했다. "앉으렴. 오래 걸릴 테니까."
테레사는 뒷방에서 물건을 하나씩 가지고 나왔다. 첫 번째는 손바닥만 한 놋쇠 도장, 닳아서 문양이 반쯤 뭉개진 인장이었다. "루치." 테레사가 말했다. "빛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키는 집안이기 전에 만드는 집안이었어. 별을 재는 기구, 시간을 재는 기구. 피렌체에서 사백 년 전에 이 인장이 찍힌 물건이면 값을 두 번 물어봤지." 도윤이 아는 문양이었다. 열세 달 전 마흔두 장의 종이 귀퉁이마다 찍혀 있던, 그때는 무심히 넘겼던 그 문양이 이제 주인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두 번째는 도윤이 사본으로 읽었던 그 장부의 원본으로, 가죽 등이 갈라지고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다. 테레사가 편 것은 마지막으로 기재된 페이지였고, 거기에 잉크가 갈색으로 바랜 한 줄이 있었다. "마지막 주문. 한 쌍." 노인의 손가락이 그 단어를 짚었다. "별을 재는 아이 하나와, 시간을 재는 아이 하나. 따로 팔지 말 것. 따로 두지 말 것. 이 주문을 끝으로 공방은 문을 닫았다. 만드는 집안이 지키는 집안이 된 날이지." 일 년 전 새벽 형광등 아래에서 도윤이 '품목명 긁힘, 판독 불가'라고 적었던 그 줄이었다. 그 줄을 긁은 것은 세월이 아니라 이 집안의 손이었다. 도윤은 감정사로 산 십수 년 동안 수천 장의 종이를 원본과 대조해 왔지만, 사본을 먼저 읽고 원본을 나중에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세 번째는 편지 상자였는데, 밀랍 봉인은 부서진 지 오래여도 종이는 잘 간수되어 있었다. "주문한 사람은 그분의 마지막 제자였다. 스승이 남긴 것을 지키려던 사람. 어디에 두었는지는 별에 새기고, 별을 여는 값으로 모래를 맡겼지." 테레사는 편지를 꺼내지도 읽어 주지도 않고 상자 위에 손만 얹었다. "유지는 한 줄이다. 물건이 주인을 찾을 때까지 지켜라. 누가 주인인지는 적어 두지 않았어. 물건이 고른다는 뜻이지."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도윤이 물었다. "어디까지 아십니까."
"봉인하는 자들." 테레사는 그 말을 기도문 외듯 발음했다. "우리가 아는 이름은 그게 전부다. 얼굴도, 이름도, 어느 집 문패인지도 몰라. 그쪽도 마찬가지일 거다. 사백 년 동안 서로 반쪽씩만 알고 마주 서 있었지. 그들은 종이가 있다는 것만 알고, 우리는 종이를 열 열쇠만 가지고 있고." 노인은 안경을 고쳐 썼다. "이 가게는 대대로 몇 번 뒤져졌다. 가져갈 것을 찾은 적은 없지. 숨기는 것도 가업이니까."
읽어 볼 생각은 없으셨느냐고 성하가 묻자 테레사는 처음으로 희미하게 웃었다.
"읽는 법을 배우지 않는 것이 우리 집 공부였다. 읽지 않는 것이 지키는 법이었으니까. 열쇠를 가진 집이 자물쇠까지 열어 보기 시작하면, 그 집은 지키는 집이 아니라 갖는 집이 되지." 노인의 눈이 도윤과 성하를 차례로 지났다. "안에 뭐가 적혔는지는 우리 집 누구도 모른다. 다만 무엇이 있어야 열리는지는 물려받았지. 지키려면 그건 알아야 하니까." 노인은 잠깐 쉬었다. "그리고 열 수도 없었을 거다. 판을 여는 손, 죽은 말과 죽은 사람의 연대기를 읽는 머리, 창의 크기를 별의 밝기로 재는 눈. 그 셋이 한 방에 모여야 열리는 물건이야. 사백 년을 기다렸는데… 함께 온 것은 너희가 처음이다."
네 번째 물건은 없었다.
"이 이야기를 소리 내어 하는 건 육십 년 만에 처음이다." 테레사는 빈손을 무릎에 내려놓고 말했다. "내 아이한테도 안 했어. 가게는 물려줘도 이 이야기는 물려주지 않기로, 그건 내가 정했다. 사백 년짜리 짐을 사랑하는 사람 등에 올릴 수는 없더구나. 그 애는 지금 제 몫의 삶을 살고, 가끔 전화를 하고, 나를 그냥 가게 지키는 늙은이로 알아. 그거면 됐지." 테레사는 식은 찻잔을 만졌다. "사람들이 나를 혼자 산다고 하는데, 틀렸어. 가족이 없는 게 아니야. 말할 수 없었을 뿐이지. 그런데 오늘…" 노인은 말을 끝내지 않고 두 사람을 보았다.
"그때 왜 저한테 모래시계를 주셨습니까." 도윤이 물었다.
"그 밤의 내가 한 말 그대로다. 모래는… 간절한 쪽으로 떨어진단다." 자구 하나 다르지 않았다. "그건 위로가 아니었다. 사용법이었어."
성하가 물었다. "저희가 오는 걸, 아셨어요?"
"아는 것과 기다리는 것은 다르지. 나는 기다리는 쪽이었다. 뭘 기다리는지도 모르고 기다리는 게 이 집 여자들 일이었으니까."
테레사는 마지막으로 묻지 않은 것에도 답했다. "요즘 골목에 낯선 발이 다닌다. 알고 있었다. 어제까지는 하나였는데, 오늘 아침 셔터를 내리기 전에 세어 보니 셋이더구나. 말하지 않았지. 지키는 집은 먼저 움직이지 않는 법이라서. 그런데 너희가 오늘 먼저 말했으니, 이제 나도 같은 편에서 듣고 말하마." 노인은 셔터 내려진 문을 건너다보았다. "저 문 밖의 일은 오후에 이야기하자. 늙은이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러다 성하가 수첩을 폈다. 연필이 두 줄을 적고 멈추자 성하가 낮게 읽었다. "아이는 산꼭대기에서 별을 지키는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사백 년 동안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인사를 아이에게 했다." 테레사가 그 소리를 들었는지, 찻잔을 든 손이 잠깐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7시 40분, 신규 인원 도착 확인. 다리오는 역 앞에서 세 사람을 세었고 정오 전에 두 사람을 더 세었다. 짐이 가볍고 눈이 무거우며 서로 인사하지 않는, 낯익은 부류였다. 관광객처럼 입었지만 관광객처럼 걷지는 않았다. 오전 중에 끝난 배치는 강가에 둘, 가게 골목 어귀에 하나, 호텔 방향에 둘이었다. 다리오의 초소는 그대로였고, 그물에 매듭이 늘어난 것뿐이었다.
새 인원들은 기록하지 않고 서 있거나 걸으며 기다릴 뿐이었다. 기록은 여전히 다리오의 일이었고, 다리오는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10시 20분, 대상 가게 셔터 폐쇄. 영업일 낮 폐쇄는 관측 개시 이래 처음. 다리오는 그 줄을 적고 잠시 연필을 멈췄다. 닫힌 셔터가 무엇을 뜻하는지 판단하는 것은 그의 일이 아니어서 그는 다음 줄로 넘어갔다. 12시 5분, 변동 없음. 그물은 자리를 잡았고, 도시는 그 위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정오를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