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재는 도구 · 끝에서 시작하라
지은이 나츠하나 · 2026-10-27
모래시계 · 잔량 127시간 00분 · 여행 2일차
오후 세 시의 골목은 아침과 다른 냄새가 났다. 돌이 데워지는 냄새와 어느 집 창에서 흘러나오는 토마토 졸이는 냄새 사이로 성하가 들뜬 걸음으로 걸어왔다. 성하는 가게 앞에서 기다리던 도윤의 소매를 잡더니 인사도 없이 진열장 앞으로 끌고 갔다.
"이거야."
성하의 손가락이 유리 너머의 놋쇠 원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별 재는 도구래. 아까 당신 커피 마실 때 몰래 물어봤거든. 옛날 사람들은 이걸로 별의 높이를 재고, 시간을 알고, 자기가 어디 있는지를 알았대."
도윤은 삼 초를 세고 나서 놀랐다. 놀라는 데에도 기술이 필요했다. 너무 빠르면 준비한 티가 나고 너무 느리면 심드렁한 티가 난다. 그는 눈을 조금 크게 뜨고 상체를 유리 쪽으로 기울이며 낮게 말했다. "이거." 도윤은 그 연기 속에 진심을 섞었다. "굉장한 물건이야."
아스트롤라베는 오후의 빛 속에서 아침과 또 다른 색을 내고 있었다. 놋쇠는 각도마다 오랜 결을 다르게 보여 주었고, 그걸 들여다보는 자기 눈빛이 지금 어떨지 도윤은 알 만했다. 옆에서 성하가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줄 알았어. 당신 그 눈 할 줄 알았어."
가격표는 뒤집혀 있었다. 성하가 값을 묻자 테레사는 숫자를 말했는데, 작은 가게 진열장에도 여행자의 지갑에도 어울리지 않는 숫자였다. 도윤은 성하의 얼굴에서 망설임을 찾았지만 거기 보이는 것은 결심뿐이었다.
"살게요."
그게 전부였다. 값을 깎지도 않고 하루만 생각해 보겠다고 하지도 않았다. 도윤에게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선물은 오래 고르지 않는다. 처음에 '그 사람이다' 싶은 물건이 맞다. 성하가 만든 규칙들의 목록 어딘가에 있는 조항이었다. 도윤이 코트 안주머니로 손을 가져가자 성하의 손바닥이 그 손등을 막았다.
"뭐 하는 거야."
"비싸잖아. 반이라도…"
"당신 선물이야." 성하는 손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미리 주는 건 아니고. 언제 주는지는 비밀이고, 왜 주는지도 비밀이야. 그러니까 지갑 넣어."
값은 현금으로 치러졌다. 성하가 지폐를 세다가 각인은 얼마냐고 묻자 테레사는 고개를 저으며 새기는 값은 받지 않는다고 했다. 성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건값은 한 푼도 안 깎아 주면서 각인은 공짜라니, 이상한 셈법이네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성하의 얼굴은 밝았다. 이 가게의 셈법이 이상한 것은 하루에 벌써 두 번째였고, 두 번 다 사람을 안심시켰다. 도윤은 낮의 방값을, 지폐 한 장만 뽑아 가던 손을 생각했다.
선물 받을 사람을 옆에 세워 두고 값 치르는 것까지 보여 주면서 이유만은 비밀이라니 이상한 방식이었지만, 성하에게는 그게 차선이었다. 몰래 사려던 계획이 아침에 도윤이 나타나면서 무너지자, 성하는 그 위에 삼십 분 만에 새 규칙을 세운 것이다.
각인 이야기가 나온 것은 테레사가 포장지를 꺼낼 때였다. 성하가 여기에 글자를 새길 수 있느냐고 묻자 테레사는 무엇을 새기려느냐고 되물었다. 성하는 대답 대신 도윤을 돌아보며 손가락으로 원을 그렸다.
"뒤돌아 있어."
"뭐?"
"뒤돌아 있으라고. 보면 안 돼. 듣지도 마." 성하는 진지한 얼굴로 규칙을 공표했다. "이건 각인 내용 비밀 유지 조항이야. 위반하면 선물 몰수."
뒤돌아선 도윤은 선반 위의 유리 문진들과 마주 섰다. 문진 속에 굳어 있는 작은 별자리들을 보며 그는 등 뒤의 소리를 들었다. 연필이 종이를 긁는 소리에 이어, 성하가 손바닥으로 종이를 가리는, 들릴 리 없는데 들리는 것 같은 기척이 났다. 지금 적히고 있는 날짜가 팔 년 전 팔월 십이 일이라는 것을 도윤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일이 오늘 몇 번째인지는 세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 연기만은 아프지 않았다.
"됐어. 돌아도 돼."
돌아섰을 때 접힌 종이는 이미 테레사의 손에 있었다. 노파가 종이를 펴서 읽는 동안 그 얼굴 위로 무언가가 지나가는 것을, 도윤은 이번에는 정면에서 보았다. 아침에 모래시계를 보던 그 표정, 성하의 말버릇으로밖에 부를 수 없는 그 표정이 이제 종이 위의 날짜를 향해 있었다. 노파의 시선은 종이에서 성하에게로, 성하에게서 아주 잠깐 도윤에게로 건너왔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공책으로 내려갔다.
"엿새 걸린다." 테레사가 말했다. "손으로 새기는 일이니까. 여드레째 되는 날 아침에 찾으러 오렴."
여드레째 아침이라는 말을 도윤은 입안에서 굴렸다. 성하는 손가락을 꼽아 보더니 좋다고, 떠나기 전날이니 딱 맞다고 웃었다. 맞다, 딱 맞는 날짜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 얼굴을 지켰다. 그 아침을 그는 어느 달력에서도 본 적이 없었지만 이번에는 보게 될 것이다. 그러려고 왔다.
포장 전에 도윤이 물건을 한번 들어 봐도 되겠느냐고 묻자 테레사가 벨벳째 내주었다. 손에 앉는 무게가 좋았다. 도윤은 직업이 시키는 대로 가장자리를 받치고 손끝으로 돌리다가 빛에 비스듬히 기울였다. 레테의 투각이 오후 빛을 통과시키며 눈금판 위에 별자리 모양의 그림자를 흘렸다. 세공과 눈금에서 사백 년 전 장인의 자부심이 보이는 아름다운 물건이었고, 도윤이 오늘 이 물건을 두고 내린 결론은 딱 거기까지였다.
"만지는 거 봐." 성하가 테레사에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눈빛 바뀐 거 봐요. 저 사람 원래 저래요. 물건 앞에서만 저래."
"좋은 손이구나." 테레사가 말했다. "물건이 무서워하지 않는 손이야."
성하도 한번 들어 보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도윤이 건네주자 성하는 두 손으로 받아 들고는 무겁다고, 생각보다 훨씬 무겁다고, 별을 재는 일이 이렇게 무거운 일인 줄 몰랐다고 했다. 들고 있는 자세가 어설퍼서 도윤의 손이 저절로 아래를 받쳤고, 몇 초 동안 두 사람이 그 놋쇠를 함께 들고 있었다.
물건이 무서워하지 않는 손이라니, 평생 들은 어떤 감정 평가보다 이상하면서도 정확한 말이었다. 두 여자가 자기를 두고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도윤은 원반을 벨벳에 도로 눕혔다.
포장은 두 겹으로 해달라고 성하가 말했다. 어차피 완성되면 다시 쌀 텐데, 라고 테레사가 말하자 성하는 그래도요, 라고 했다. 물건은 각인을 위해 가게에 남았다. 벨벳에 눕혀진 채 작업대 옆 선반으로 옮겨지는 놋쇠 원반을 도윤은 눈으로 따라갔다.
물건은 엿새 동안, 그 밤을 넘기고 이튿날 아침까지 이 가게에 있을 것이다. 찾아가지 못한 물건이 주인 없이 가게에 남는 그림이 어디선가 서늘하게 스쳤고, 도윤은 그게 어디서 온 생각인지 따져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런 일이 요즘 자꾸 늘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번에는 여드레째 아침이 올 것이고, 상자는 열릴 것이다.
가게를 나서자 초저녁의 빛이 골목의 위쪽 창들부터 물들이고 있었다. 성하는 어제 봐 둔 트라토리아, 아니면 시장 안의 화덕집, 아니면 그냥 와인이랑 빵이랑 강가, 하며 저녁 메뉴를 세 개째 후보에 올리는 중이었다. 살아 있는 사람과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이 얼마나 귀한지 이 골목에서 혼자 아는 도윤은 세 후보 모두에 찬성했다. 다 좋았고, 진심이었다.
저녁은 결국 와인 한 병과 빵과 치즈를 사 들고 강가에 앉는 세 번째 후보가 이겼다. 식당은 내일도 모레도 갈 수 있지만 오늘 저녁의 강물 색은 오늘뿐이라는 것이 성하의 논리였고, 도윤은 그 논리에 이길 생각이 없었다. 오늘뿐인 것들의 목록을 그는 성하보다 길게 알고 있었다.
강가의 저녁은 성하 말대로였다. 강물이 금색에서 장미색으로, 다시 잉크색으로 바뀌는 초저녁 삼십 분 내내 성하는 빵을 뜯는 것도 잊고 물빛을 보았다. 저 색은 그림으로 어떻게 옮기느냐고 도윤이 묻자 성하는 못 옮긴다고, 못 옮기니까 보러 오는 거라고 대답했다. 와인은 반 병에서 멈췄고 이야기는 계속됐다. 내일은 우피치에 줄을 서고 모레는 두오모 꼭대기에 오른다고 성하가 어둠 속에서 일정을 늘어놓는 동안, 도윤은 전부 좋다고 하면서 속으로 한 줄을 더 얹었다. 내일 아침, 저 가게의 작업대 위에서 시작될 일들 곁에 있을 것.
내일 아침부터 각인이 시작된다고 했다. 노파의 작업대 위에서 끌과 바늘이 놋쇠 위에 팔 년 전의 하늘을 새겨 나가리라는 생각을, 도윤은 저녁 내내 주머니 속 동전처럼 만지작거렸다. 무언가가 시작되는 감촉이 또 있었다. 이번에는 무엇이 시작되는지, 그는 내일이 되기 전까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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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끝에서 시작하라
모래시계 · 잔량 110시간 00분 · 여행 3일차
사흘째 아침의 루틴은 벌써 몸에 붙어 있었다. 눈을 뜨면 탁자의 모래시계부터 보고, 위쪽 유리구의 모래를 눈대중으로 재어 어제 아침의 기억과 대조한 다음 줄어든 양을 남은 날수로 나눈다. 그러고 나서 회중시계의 태엽을 세 바퀴 반 감는다. 가지 않는 시계인데도 그는 날마다 태엽을 감았다. 이틀 만에 이런 규칙이 생긴 걸 성하가 알면 자기 제자가 다 됐다며 웃을 것이다.
성하는 가게 문이 열리기도 전에 왔는데, 손에는 호텔 조식에서 슬쩍해 온 크루아상 두 개가 냅킨에 싸여 들려 있었다. 하나를 도윤의 손에 쥐여 주며 성하는 장물이 아니라 배급이라고 주장했다. 크루아상을 받아 든 도윤은 여덟 해 전 어느 밤하늘 아래에서 들었던 첫 번째 소원을 생각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꺼내면 설명을 해야 하는데 설명할 수가 없는 기억이라 그냥 먹기만 했다.
"우피치 줄은 오후에도 있어." 성하는 어제의 일정을 스스로 뒤집으며 선언했다. "근데 내 선물 만들어지는 건 오늘 아침에만 시작하잖아. 첫 획은 봐야지. 그게 예의야."
각인의 첫 획을 지켜보는 것이 어느 나라의 예의인지 도윤은 묻지 않았다. 성하의 예의는 성하가 만든다. 이틀 만에 성하는 노파를 할머니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노파는 그 호칭을 한 번도 정정하지 않았다. 손님과 주인 사이가 하루가 다르게 가까워지는 것을 도윤은 커피잔 너머로 지켜보았다. 물려받은 가족이 없는 사람은 가족도 직접 만드는데, 그 일이 벌써 시작된 것 같았다. 테레사는 반대하지 않고 작업대 위에 도구들을 펼쳤다. 가죽 두루마리 속의 끌들과 바늘들에 나무 망치, 돋보기 램프까지 자리를 잡자 놋쇠 원반이 벨벳에서 작업대 위로 옮겨 왔고, 세 사람이 그 둘레에 모였다.
그러나 첫 획은 새겨지지 않았다. 테레사는 판을 고정틀에 앉히기 전에 이리저리 돌려 보다가 뒤집는 순간 손을 멈췄다. 노파가 검지로 판의 뒷면을 한 번, 두 번 두드린 다음 같은 힘으로 앞면을 두드렸는데, 두 소리가 같은 물건의 소리 같지 않았다. 노파는 안경 너머로 도윤을 보며 판을 내밀었다.
"이 소리를, 들어 보렴."
도윤은 판을 받아 손끝으로 두드렸다. 가장자리는 짱짱한 쇳소리를 냈지만 중심부로 갈수록 소리가 반음씩 낮아졌다. 속이 찬 놋쇠라면 날 수 없는, 어딘가에 공기의 층이 있는 소리였다. 도윤의 심장이 빨라졌다. 그는 돋보기 램프 아래에서 판의 옆면을 훑다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이음매, 세공 무늬 속에 숨어 한 바퀴를 도는 머리카락 굵기의 선을 찾아냈다. 제일 얇은 것을 달라는 도윤의 말에 노파는 도구 두루마리에서 대나무를 깎아 만든 얇은 헤라를 꺼내 주었는데, 금속으로 금속을 열지 않는 것은 두 사람의 직업이 다 지키는 규칙이었다. 헤라 끝을 선에 댄 도윤이 숨을 반쯤 뱉은 채 멈추자 성하가 저도 모르게 숨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눌러 보니 미동이 있었다. 반대 방향으로 비틀어 보았다. 딸깍, 하고 오래 묵은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났다.
판이 둘이었다.
겉판이 시계 방향으로 반 바퀴 돌아 들리며 그 아래에 숨어 있던 안쪽 판이 아침 빛 속으로 올라왔다. 겉판과 같은 놋쇠인데도 한 번도 빛을 본 적 없는 색을 띤, 마모도 지문도 없이 사백 년 동안 밀봉되어 있던 면이었다. 잠시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고, 성하가 제일 먼저 숨을 들이켰다. 안쪽 판의 중앙에 한 줄이 새겨져 있었다.
INCIPE AB EXITU.
도윤은 그 글자들을 소리 내어 읽었다. 경매 도록과 고문서를 보며 밥벌이로 익힌 라틴어였다.
"끝에서 시작하라."
번역을 듣자 성하의 눈이 커졌는데, 겁이 나서가 아니었다. 그림책 작가의 눈이 켜진 것이다. 중앙의 문장 둘레로는 작은 글자들이 흩어져 있었는데, 별의 자리마다 하나씩 놓인 낱개의 알파벳들이 아무 순서 없이, 적어도 아무 순서 없어 보이게 새겨져 있었다. 도윤은 글자들을 이어 읽어 보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읽어도 말이 되지 않았다. 실마리는 중앙의 한 줄뿐이었다. 끝에서 시작하라.
도윤은 그 와중에도 감정사답게 물건을 살폈다. 안쪽 판의 보존 상태는 밀봉된 물건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고 새김의 서체는 겉판의 공방 각인과 같은 손이었으니, 만든 자가 숨긴 것이다. 나중에 누가 끼워 넣은 판이 아니라 처음부터 비밀을 품도록 만든 물건이었다. 도윤이 그 관찰을 입 밖에 내기도 전에 성하는 이미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낱글자들을 옮겨 적고 있었다. 별의 자리까지 점으로 찍어 가는 그림책 작가의 손은 빠르고 정확했다. "증거 보전." 성하가 말했다. "보물찾기의 기본이야."
"이거 보물찾기잖아." 성하가 속삭였다. "사백 년짜리 보물찾기. 옛날에 비밀을 가진 장인이 있었어. 아무한테도 말할 수 없어서 판 속에 숨겼어. 언젠가 열어 볼 사람한테 첫 힌트만 남기고… 잠깐, 나 소름 돋았어. 만져 봐."
성하는 진심으로 팔을 내밀었고 도윤은 진심으로 그 팔을 만졌다. 두 사람 다 소름은 진짜였지만 까닭이 달랐다. 성하의 것은 이야기가 시작될 때의 서늘함이었고, 도윤은 자기 소름이 어디서 왔는지 알았다. 이 물건은 성하가 고른 물건이고, 그 속에서 그토록 오래된 비밀이 나왔다. 이 여행에서는 우연이라고 넘길 수 있는 일이 빠르게 줄고 있었다.
테레사는 말없이 끌을 내려놓은 채 안쪽 판을 아주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아침의 그 표정이 이번에는 겁 쪽으로 기울어 있었는데, 도윤이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자 노파는 컵을 치우러 일어났다. 컵은 비어 있지 않았다. 도윤은 그 일을 머릿속 공책의 '모르는 것' 목록에 적어 두었다. 그 페이지에는 이미 이 노파의 항목이 여럿이었다. 침입자에게 커피를 내주는 사람, 방을 내주는 사람 아래에 이제 사백 년 만에 열린 비밀 앞에서 놀라기보다 먼저 다른 무언가를 앓는 사람이 더해졌다.
끝에서 시작하라. 무엇의 끝인가를 두고 테이블 위에 후보들이 오르내렸다. 성하는 이야기의 끝, 지도의 끝을 거쳐 무지개의 끝까지 갔다가 스스로 기각하면서도 내내 즐거워 보였다. 성하에게는 여행 중에 만난 최고의 놀이였다. 몇 세기 묵은 수수께끼에 비밀의 판과 라틴어 열쇠까지, 그림책 한 권이 통째로 굴러들어 온 것이다. 도윤은 성하의 들뜬 목소리에 자기 목소리를 맞췄다. 성하에게는 재미였지만 도윤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이 걸려 있었다. 그 생각을 더 이어 가고 싶지 않아서 도윤은 물건이 말하게 하라는 원칙대로, 감정사의 순서로 좁혀 들어갔다. 이 물건은 십칠 세기 전반의 피렌체에서 만들어진, 별을 재는 도구다. 그렇다면 이 물건의 세계에서 '끝'은 무엇이었나. 그 시대, 이 도시에서 별을 재던 일의 끝.
십칠 세기 전반이라는 연대가 중요했다. 제작 시점과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 만든 자는 '끝'이 무엇인지 여는 자가 알아볼 것이라 확신하며 이 한 줄을 새겼다. 시대를 건너서도 통하는 끝이자 배운 자라면 누구나 같은 답에 도착하는 끝, 그 조합이 가리키는 이름은 하나뿐이었다. 이 도시에서 별을 재다가 재는 것을 금지당하고, 눈이 멀고, 유폐되어 죽은 사람의 이름을 도윤은 감정 의뢰서와 경매 도록에서 평생 수십 번은 썼다. 그 이름의 끝인 죽음에는 날짜가 있었다. 1642년 1월 8일. 도윤이 날짜까지 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죽음 가운데 하나였다.
"갈릴레오야." 도윤이 말했다. "이 물건의 세계에서 끝은 하나뿐이야. 갈릴레오의 죽음. 1642년 1월 8일."
성하는 갈릴레오라는 이름 앞에서 잠깐 조용해졌다가 물었다. 별을 재는 게 금지였다고? 도윤은 짧게 답했다. 그 시대에는 하늘의 어떤 진실이 죄가 되어서, 그는 재판을 받았고 자기 입으로 부인해야 했으며 눈이 먼 채로 갇혀 죽었다고. 성하는 안쪽 판의 흩어진 글자들을 내려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그런 사람의 시대에 만들어진 물건이 비밀을 품고 있으면, 그건 장난으로 숨긴 게 아니겠네. 그림책 작가의 직관은 가끔 계산보다 빨랐고, 도윤은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성하가 도윤을 보고, 안쪽 판을 보고, 다시 도윤을 보았다.
"그럼 맞춰 보면 되잖아. 이거, 별 재는 도구라며. 그 날짜의 하늘에."
말해 놓고 성하는 제 말에 제가 신이 나서 빨리, 빨리 해 보자며 도윤의 소매를 잡아 흔들었다. 사백 년을 기다린 물건 앞에서 오 분을 못 기다리는 사람의 손이 소매 끝에서 재촉하고 있었다. 도윤은 그 재촉이 좋으면서도 서늘했다. 그녀가 지금 흔들고 있는 것이 무엇의 소매인지, 그녀는 모른다.
성하가 잠잠해지자 가게 안이 조용해졌고, 테레사가 카운터 쪽에서 돌아보는 기척이 났다. 도윤은 안쪽 판 위의 흩어진 글자들과, 그 위에 겹쳐질 겉판의 투각, 곧 별들의 자리를 오려 낸 창들을 번갈아 보았다. 날짜를 맞추면 창이 글자를 고른다. 고른 글자를 무슨 순서로 읽는지는 그다음 문제지만 순서는 있을 것이다. 만든 자가 열쇠를 남겼다면 읽는 순서도 정해 두었을 것이다.
도윤의 손가락이 레테의 가장자리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