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걸 왜 적습니까
지은이 장지호 · 2026-10-26
D+52 · 15:40
"서다인 증인."
의원이 서류를 들었다. 다인의 발급 대장을 확대 복사한 것이었다. 오른쪽 여백에 적힌 시각들과 동그라미가 화면에 크게 떴다.
"사건 전날 조회 지연을 세 차례 기록하셨죠. 왜 증인만 기록했습니까? 전국 등기소 어디에도 이 기록이 없어요."
"기록 항목이 아니었으니까요. 지연 시간은 원래 아무도 안 적습니다."
"그런데 왜 적으셨어요?"
"기록이 없으면 없던 일이 되니까요."
"이 기록이 뭘 의미하는지 그날은 아셨습니까?"
"몰랐습니다."
"모르는 걸 왜 적습니까?"
다인은 잠깐 마이크 앞에서 숨을 골랐다. 삼 년 동안 아무도 묻지 않던 것을, 나라에서 제일 큰 회의장이 묻고 있었다.
"창구에서는요, 의원님. 모르는 일이 매일 옵니다. 아는 것만 적으면 적을 게 없습니다."
방청석 어디선가 짧게 웃음이 났고, 웃음소리는 아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다른 의원이 마이크를 당겼다. 오전 내내 말이 없던 사람이었다.
"증인은 그날 지연을 세 번 감지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동그라미까지 쳤어요. 그런데 어디에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증인 옆자리에 전산 겸직 선배가 있었다면서요. 왜 말하지 않았습니까."
질문의 방향을 다인은 알아들었다. 생중계 자막에 떴을 문장도 짐작이 갔다. 말단이 낌새를 알고도 묵인했다는 그림. 그 그림이 완성되면 위쪽 증인석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답들이 전부 그 아래로 흘러내려 고일 자리를 얻는다.
"보고할 데가 없었습니다."
"없다니요. 본원 전산실이 있고 상급자가 있잖아요."
"본원 전산실은 전화를 안 받았습니다. 그날도, 그전에도요."
"상급자는요."
다인은 잠깐 멈췄다. 임태섭의 얼굴이 떠올랐다. 삼십 년을 무사히 다닌 사람을 이 자리에서 한 문장으로 지워버릴 수 있다는 것도 같이 떠올랐다. 지우는 문장은 이미 입안에 있었다. 그날 선배가 겸직 십 년이면서 아무것도 안 짚어줬습니다, 라고 하면 됐다. 사실이기도 했다.
"제가 느린 걸 어디다 알리냐고 물었을 때, 선배는 전화해봐야 접수 몰렸다는 답만 돌아올 거라고 했습니다. 그 말이 맞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장에 적는 걸로 대신했어요. 보고가 위로 닿지 않는 걸 아니까, 옆에 남기기라도 하려고요."
"그게 보고를 안 한 변명이 됩니까."
"변명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창구에서 위로 올라가는 말은," 다인은 마이크에 자기 숨이 섞여 드는 걸 들으며 말했다. "대개 도착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걸 삼 년 배웠습니다. 그래서 위로 올리는 대신 옆에 적었어요. 그렇게 옆에 적어둔 종이가 지금 의원님 손에 있는 겁니다."
의원은 확대 복사된 발급 대장을 내려다봤다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D+52 · 16:10
질의가 복구 방안으로 넘어갔다.
"증인. 전체 복구가 됩니까, 안 됩니까. 예, 아니오로만."
"예, 아니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입니다."
"증인!"
"의원님." 다인은 준비해온 종이를 폈다. 펴놓고 보지는 않았다. 볼 필요가 없을 만큼 오래 들여다본 숫자들이었다. "재작년에 복구 훈련을 했습니다. 세 시간 반 걸렸다고 보고서에 있습니다. 그 보고서로 다들 복구가 된다고 믿고 계신데, 그날 복구한 건 전체가 아니라 표본이었습니다. 만 건입니다. 전체는 사천만 건입니다."
두 달 전 백반집에서 끊긴 문장이었다. 어어, 됐어, 밥 먹어. 그 뒤로 이어졌어야 할 말들을 다인은 지금 이어 말했다.
"그리고 복구는 시점 단위로 합니다. 지워진 것만 골라 되살리는 기능은 없습니다. 매뉴얼 첫 장에 있고 승진시험에도 나오는 문장입니다. 저희는 그걸 외워서 시험을 봤지, 무슨 뜻인지는 물어본 적이 없습니다. 두 달 전에 그 뜻을 알았습니다."
"표본 복구는 필지를 하나씩 되돌리는 겁니다. 전체 복구는 다릅니다. 필지끼리 얽혀 있어서요. 경기 남부에 지분권자가 만 사천 명인 임야가 있습니다. 그 명부가 백업 시점마다 다릅니다. 어느 시점을 골라도 다른 시점의 권리자 천이백 명이 지워집니다. 어느 시점이 맞느냐는 질문에는 정답이 없고," 다인은 거기서 처음으로 방청석을 봤다. 날짜 팻말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선택만 있습니다."
다인은 그 팻말들을 한 번 더 봤다. 이월. 오월. 팔월. 날짜가 적힌 종이 뒤로 얼굴들이 있었다.
"저기 이월이라고 적힌 팻말과 오월이라고 적힌 팻말이 있습니다. 저는 저 두 날짜가 같은 집 하나를 두고 서 있는 경우를 압니다. 제가 맡은 필지 중에 있어요. 이월 시점으로 복원하면 한 분의 소유가 돌아오고 다른 한 분이 그 집에 넣은 돈이 지워집니다. 오월로 하면 반대가 되고요. 두 분 다 서류를 갖췄고 두 분 다 잘못한 게 없습니다. 시점을 고른다는 건 저 두 분 중에 누구를 지울지 고르는 겁니다."
다인은 물잔을 봤지만 들지 않았다. 손이 떨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이걸 기술 회의에서 정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서버 앞에서 정할 일이 아니라서요. 저 두 분을 서버는 구분하지 못합니다. 날짜만 보거든요."
회의장보다 방청석이 먼저 조용해졌다. 팻말 몇 개가 천천히 내려갔다. 이월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과 오월이라고 적힌 종이 한 장이 같은 열에 나란히 있었는데, 두 사람은 서로를 보지 않았다.
"그러니까 증인 말은, 어느 시점을 고르든 누군가는 지워진다는 겁니까."
"네. 그리고 의원님, 이건 이번에 처음 생긴 일이 아닙니다. 이 나라 등기는 원래 하루에 한 번씩 그랬습니다. 전입신고를 한 사람의 효력은 다음 날 0시에 생기고 근저당은 당일에 생깁니다. 그 하룻밤 사이에 순위를 잃은 세입자들이 매년 있었습니다. 시점 때문에 사람이 지워지는 일을, 우리는 제도로 갖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게 나라 전체에 일어났을 뿐입니다."
"그걸 누가 정합니까."
"그걸 정하시라고 이 자리가 있는 걸로 압니다."
회의장이 조용해졌다. 의원은 다음 질문지를 넘기지 못했다.
D+52 · 16:40
질의가 끝나가고 있었다. 위원장이 다음 증인으로 넘어가겠다고 했다.
다인은 손을 들었다.
"서다인 증인, 추가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여기서 그만두면 됐다. 물은 것에만 답했고, 답한 것은 전부 사실이었고,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황인선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공무원이 그런 말을 할 기회는 평생 한두 번이라던.
다인은 차복순의 공책을 생각했다. 사십 년치 진실이 적힌, 서랍 안에 있어서 아무 힘도 없던 공책.
"두 가지를 기록에 남기고 싶습니다."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화가 날 때 나오는 목소리였다.
"첫째. 삭제된 목록이 무작위가 아니라는 것은 사건 열흘째에 본부 안에서 확인됐습니다. 그때 그 사실을 본부 밖으로 내보내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실은 소문이 된다는 것이 사유였습니다. 저는 그 지시에 따랐습니다. 따른 것도 제 책임입니다. 덧붙이자면 본부 회의록에는 번호만 있고 내용이 없는 안건이 있습니다. 첫 회의부터 그랬습니다."
"둘째. 부분 복원을 강행하기 전에 저는 정합성 검증이 먼저라고 말했습니다. 회의록에는 검토 후 진행키로 함으로 적혔습니다. 제 발언 원문은 그것이 아니라, 검증 없이 강행하면 소유가 뒤섞인다는 것이었습니다. 뒤섞인다는 건 한 집에 주인이 둘 적힌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두 사람이 각자 자기 등기부를 들고 창구에 옵니다. 저희는 둘 다 맞다고 발급해드리게 됩니다. 서면으로 정정을 요청했고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회의장이 술렁였다. 어디선가 자료 넘기는 소리가 크게 났다.
"증거가 있습니까."
"그날그날 적어둔 노트가 있습니다. 창구에 있을 때부터 쓰던 겁니다. 그리고 정정 요청서 사본이 있습니다."
다인은 가방에서 노트를 꺼냈다. 표지가 닳은 대학노트였고, 안쪽에 접어 넣어둔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그날 복사기에서 두 장을 뽑아 하나만 낸 것이었다. 발급 대장의 확대 복사본이 이미 의원 손에 있었고, 그 대장 여백을 채우던 것과 같은 손이 서울에 온 뒤로 이 노트를 채웠다.
"제출하겠습니다."
내미는 동안 다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이 방을 나가면 본부에도, 지금까지의 자리에도 그대로 돌아갈 수 없다. 노트는 다시 가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노트는 접수됐다. 접수 번호가 붙었다. 그 번호를 받아 적을 수첩이 이제 자기한테 없었다.
D+52 · 17:30
마지막 증인은 황인선이었다.
"본부장. 정부가 검토 중인 복원 기준 시점이 뭡니까."
"두 가지 안이 있습니다. 삭제 직전 시점 복원안과, 실태조사 문건 작성 시점 복원안입니다."
"차이가 뭡니까."
"삭제 직전으로 돌리면 지난 몇 년간의 거래가 전부 보존됩니다. 대신 문건의 피해 필지 4,012건도 피해가 그대로인 상태로 돌아갑니다. 위조 근저당은 위조 근저당대로, 사기 등기는 사기 등기대로요. 문건 시점으로 돌리면 그 피해의 상당수가 발생 전으로 돌아가는 대신, 그 이후의 정상 거래 수십만 건이 무효가 됩니다."
"어느 쪽을 골라도 누군가는 등기를 잃는다는 얘기로 들리는데요. 그런 전례가 있습니까."
"있습니다."
의원이 서류에서 눈을 들었다. 그런 답을 기대한 질문이 아니었다.
"오래된 사건입니다. 광복 직후에 일본인 재산으로 파악해서 국가에 귀속시킨 땅이 있었어요. 나중에 국가가 그 땅을 민간에 팔았습니다. 사신 분은 나라에서 산 거니까 안심했겠죠. 그런데 그 땅이 원래 우리 국민 땅이었습니다. 잘못 귀속시킨 거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습니까."
"진짜 주인의 후손이 나타나서 소송을 걸었고, 나라에서 산 분이 졌습니다. 등기를 믿었지만 등기는 그분을 지켜주지 않으니까요." 황인선은 잠깐 멈췄다. "수십 년 소송하셨고, 마지막에 돌려받은 건 그때 나라에 낸 매매대금이었습니다. 이자는 안 붙었고요."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의원님, 제가 이 얘기를 왜 꺼내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고민은 새로운 게 아닙니다. 국가가 자기 장부를 잘못 적어서 국민이 집을 잃은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때 국가가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가 기록에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돈으로 갚았어요. 원금만요."
"본부장은 어느 안입니까."
황인선은 바로 답하지 않았다. 답하기 전에 물잔을 한 번 들었다 놓았다.
"의원님. 저는 두 안 중에 고르는 게 제 일인 줄 알고 이 자리에 왔습니다. 몇 달 해보고 알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르는 건 백업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어느 쪽을 골라도 골라지지 않은 쪽이 생기고, 그 사람들은 오늘 방청석에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고르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해달라고 이 자리에서 요청드리려고 합니다."
"뭡니까."
"무엇을 골랐고 무엇을 버렸는지, 전부 기록으로 남기고 영구히 공개하는 것입니다. 그것만이," 황인선은 잠깐 멈췄다. "지워지는 쪽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다인은 그 말이 홍길동의 세 번째 요구와 같은 문장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다.
D+52 · 21:00
청문회가 끝나고 복도에서 황인선이 다인을 불러 세웠다.
"오늘 답변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서 주무관 집이 유보 목록에 있죠."
다인은 멈췄다. 황인선은 다인을 보고 있지 않았다. 복도 끝 창밖을 보고 있었다.
"명단 검토하다 봤어요. 오늘 증언 전에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잠깐 고민했는데, 안 했습니다. 증인의 이해관계가 알려지면 증언이 통째로 죽으니까. 근데 이제 청문회 끝났으니 말합니다. 서 주무관."
"네."
"시점이 정해지는 날, 그쪽 집도 정해집니다. 그날 회의에 서 주무관이 있는 게 맞는지, 나는 아직 판단 못 했어요. 본인이 먼저 판단해서 알려주세요."
황인선은 그 말만 하고 걸어갔다. 다인은 복도에 서서, 방금 자신이 청문회장에서 한 말이 돌아와 자기 목에 닿는 것을 느꼈다.
어느 시점을 고르든 누군가는 지워진다. 그 누군가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