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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이 없으면 없던 일이 되니까요

지은이 장지호 · 2026-10-26

23:50

집에 돌아와 다인은 씻고 나서 휴대폰을 열었다.

인터넷등기소 앱을 켰다. 점검 중이라는 화면이 떴다. 자기 아파트 주소를 넣어볼 수도 없었다. 조회가 안 되는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고 낮에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차이를 확인할 방법 자체가 없었다.

내 집은 무사한가.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것은 이 나라에 등기부 하나뿐이었고, 등기부는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인은 화면을 껐다. 라디오를 켰다가 다시 껐다. 이 시간에는 사람 목소리가 나오는 채널이 없었다.

창밖 아파트 단지에 불 켜진 집이 절반쯤 됐다. 저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 모른다. 자기 집이 자기 것이라고 적힌 종이가 오늘 하루 종일 열리지 않았다는 걸. 저 불빛 중 몇 개가 내일 아침 창구로 걸어 들어올지, 다인은 세어보다 그만두었다.

[속보] 대법원 "등기 전산망 복구에 시일 소요"... 부동산 거래 사실상 전면 중단

댓글 2,847개

└ 이번 주 이사인데 어떡하라고

└ 우리나라가 이 정도로 허술했나

└ 어차피 집 없는 사람은 상관없는 얘기 ㅋㅋ

└ ㄴ 님 전세면 님 얘기임. 보증금이 등기에 걸려 있음

└ 은행 다니는데 오늘 대출 실행 전부 멈췄습니다. 전부요.

D+2 · 09:20

이틀째 아침, 등기소 앞에 줄이 생겼다.

업무가 안 된다는 걸 다들 알면서도 왔다. 어제 뉴스를 못 본 사람, 뉴스를 봤지만 자기 일은 예외라고 믿는 사람, 그리고 어디 가서 물을 데가 여기밖에 없는 사람. 세 번째가 제일 많았다.

다인은 안내문 옆에 서서 같은 말을 했다. 언제 될지 모릅니다. 죄송합니다. 확인서는 떼어드릴 수 있습니다.

효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그 확인서가 이제 등기소의 유일한 발급 업무였다. 이틀 동안 마흔 장을 찍었다. 인주가 얕아져서 도장을 두 번 눌러야 붉은색이 제대로 앉았다. 어제까지는 한 번이면 됐다.

줄의 네 번째쯤에 젊은 여자가 있었다. 차례가 되자 여자는 앉지도 않고 물었다.

"저 다음 달에 전세 만기거든요. 새 집 계약을 해야 되는데, 지금 등기부를 못 보면 그 집에 뭐가 걸려 있는지 어떻게 알아요?"

"지금은 확인해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등기부도 안 보고 계약했다가 잘못되면요? 그건 누구 책임이에요?"

다인은 그 질문에 답이 있다는 걸 알았다. 등기부를 보고 계약해도 잘못되면 본인 책임인 나라였다. 다만 그 답을 지금 이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안내인지 잔인인지 알 수 없어서, 다인은 반만 말했다.

"계약을 미루실 수 있으면 미루세요."

"만기가 미뤄지나요, 그럼?"

여자는 답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섰다.

D+2 · 14:00

권상호가 왔다.

투명 파일은 그대로였는데 안의 서류가 몇 장 늘어 있었다. 그는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자기 차례에 앉았다.

"열람 신청한 거요. 그거 어떻게 됐나 해서요."

지난주에 접수한 신청서 사본 열람. 보통 삼 일에서 오 일. 오늘이 그 닷새째였다.

"신청하신 건 접수가 되어 있는데요, 지금 전산이 멈춰 있어서 처리가 안 나가고 있어요."

"그것도 멈춰요?"

"네. 전부 같이 멈췄어요."

권상호는 파일을 열더니 볼펜을 꺼내 서류 뒷면에 뭔가를 적었다. 날짜를 적고, 다인의 말을 적는 것 같았다. 사 년째 해온 동작일 것이다. 다 적고 나서 그가 물었다.

"내 껀 사 년을 기다렸는데, 이제 나라 전체가 나랑 같은 처지가 된 거네요."

D+3 · 12:30

백반집 TV는 하루 종일 등기 얘기였다. 볼륨이 꺼진 채로 전문가라는 자막을 단 사람들이 번갈아 입을 움직였다.

"저 사람들은 뭘 알고 나온대?"

임 주사가 김치를 집으며 말했다. 물어보는 말이 아니어서 다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선배는 안 무서우세요?"

"뭐가."

"저희는 맨날 만지던 거잖아요, 등기부. 그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는 게, 저는 좀."

임 주사는 국물을 떠먹고 나서 말했다.

"삼십 년 만졌으면 알아. 종이는 원래 약해. 다들 그걸 모르고 사는 거지, 종이가 갑자기 약해진 게 아니야."

백반집 주인아주머니가 반찬을 더 놓고 가면서 끼어들었다.

"우리 아들네도 지금 이사를 못 간대. 등기가 안 돼서. 공무원 양반들, 이거 언제 고쳐져?"

"저희도 몰라요, 어머니."

"몰라? 등기소가 모르면 누가 알아?"

"저기 나오는 사람들이 알겠죠." 임 주사가 TV를 턱으로 가리켰다.

"저 사람들이 알면 왜 저기 나와. 아는 사람은 고치고 있지."

아주머니는 그러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임 주사가 젓가락을 든 채로 다인을 봤다.

"저분이 우리보다 낫다."

D+3 · 20:15

뉴스가 단어를 바꿨다.

장애가 아니라 외부 침입. 아홉 시 뉴스 첫 꼭지였다. 대법원 관계자가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자막에 사이버 공격이라는 말이 떴다. 삭제된 등기 기록이 있다는 것, 규모를 파악 중이라는 것, 백업으로 복구가 가능하다는 것.

다인은 집에서 그 뉴스를 봤다. 가능하다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재작년 복구 훈련은 세 시간 반이 걸렸고, 그건 표본이었다. 전체를 되돌려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얘기는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훈련 매뉴얼 첫 장의 문장도 나오지 않았다. 복구는 시점 단위로 한다, 지정한 시점의 상태 전체가 적용되며 개별 기록의 선택 복구는 지원하지 않는다. 승진시험에 나오는 문장이라 다인은 외우고 있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임 주사였다. 임 주사가 퇴근 후에 전화를 건 것은 삼 년 동안 처음이었다.

"뉴스 봤나."

"보고 있어요."

"내일 아침에 좀 일찍 나와."

"왜요?"

"본원에서 사람이 온대. 우리 소에."

"우리 소에 왜요?"

전화 너머가 잠깐 조용했다.

"몰라. 근데 서 주무관 이름을 대더라."

D+4 · 08:10

온 사람은 둘이었다. 정장 차림에 노트북 가방. 명함을 두 장 받았는데 소속이 서로 달랐다. 하나는 법원행정처, 하나는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였다. 뒤엣것에 백진우라고 적혀 있었다.

대장을 원한 쪽은 경찰이었다.

"사건 전날 조회 지연이 있었다는 보고가 올라와서요. 그런데 전국에서 시각 기록이 남아 있는 데가 여기뿐입니다."

다인은 대장을 내줬다. 오른쪽 여백에 09:47 12초 소요, 그 아래 을구 근저당 2억 4천 확인서면, 11:47 조회 불가 지번 1건, 15:02 48초 소요, 그리고 17:38 옆의 동그라미.

백진우가 앞 장을 넘겨봤다. 그 앞 장도, 그 앞 장도 같은 식이었다. 여백이 좁아서 글씨가 옆으로 눕거나 줄 사이로 비집고 들어간 데가 많았다. 삼 년치가 그랬다.

두 사람은 그 페이지들을 사진으로 찍고 원본을 봉투에 넣었다. 봉투 입구를 접는 소리가 났을 때 다인은 자기 손이 책상 밑에서 주먹을 쥐고 있는 걸 알았다. 삼 년 동안 매일 만지던 물건이었다. 인수증을 써주면서 백진우가 물었다.

"이건 왜 적으셨어요?"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뭐에 필요할 것 같으셨는데요?"

다인은 대답을 골랐다. 경위서 때문이라고 하면 정확했지만 작아 보였고, 사실 그날 세 번째 지연에 동그라미를 칠 때는 경위서 생각을 한 것도 아니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기록이 없으면 없던 일이 되니까요."

백진우는 그 말을 자기 수첩에 적었다. 적고 나서 봉투를 덮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봤다. 법원행정처 쪽이 말했다.

"복구 대책본부에 창구 출신을 한 명 넣으라는 지시가 있습니다. 서다인 주무관님, 다음 주부터 서울로 출근하실 수 있습니까."

D+4 · 12:30

백반집에서 임 주사는 평소보다 말이 없었다. 다인이 먼저 물었다.

"저 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야지. 지시인데."

"선배가 가는 게 맞잖아요. 전산 담당이고, 연차도 있고."

임 주사는 국그릇을 내려놨다.

"나는 아는 게 없어."

"겸직이라도 십 년을 하셨는데요."

"십 년 동안 아무것도 안 물어봤으니까 아는 게 없지."

그 말을 하는 임 주사의 얼굴을 다인은 잠깐 봤다.

"가서," 임 주사가 덧붙였다. "적던 대로 적어."

"그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요."

"몰라. 나는 안 적어봐서."

D+6 · 화요일 · 10:40

조은결과 박세미가 함께 왔다. 잔금일이었다.

전산은 복구되지 않았다. 접수는 열리지 않았다. 두 사람도 그걸 알고 왔다. 알면서도 온 것은, 오늘이 그날이었기 때문이다. 칠 년을 기다려 받은 날짜였다.

조은결은 투명 클리어파일을 가슴에 안고 있었다. 청약통장 사본부터 계약서까지 순서대로 끼우고 색색의 인덱스를 붙인 파일이었다. 모서리가 아직 하나도 닳지 않았다.

"미뤄졌어요." 박세미가 말했다. "매도인분이 일주일 기다려주기로 했어요. 일주일 뒤에도 안 되면 그때 다시 얘기하자고."

"다행이네요."

"다행이죠." 박세미는 그렇게 말하고 웃었는데, 웃음이 얼굴에 오래 붙어 있지 못했다. "근데 은행이 문제예요. 대출 승인이 이번 달까지거든요. 다음 달로 넘어가면 심사를 다시 받아야 한대요. 금리도 다시 정해지고요."

조은결이 옆에서 말을 받았다.

"저희 특공이라서요. 이 계약이 깨지면 그냥 다른 집 알아보면 되는 게 아니라."

거기까지 말하고 멈췄다. 뒷말은 다인도 알았다. 특별공급은 평생 한 번이다. 당첨된 계약이 무너지면 두 번은 없다. 칠 년의 통장과 열 번 넘는 낙첨과 어느 날의 당첨이, 남의 서버에서 벌어진 일 때문에 처음부터 없던 것이 될 수 있었다.

"저희가 칠 년을 기다린 게," 박세미가 말했다. "돈을 모은 게 아니라 순서를 기다린 거예요. 통장에 넣은 건 매달 십만 원이었어요."

"저기, 이상한 질문인데요." 박세미가 물었다. "이게 누구 잘못이에요?"

"네?"

"잘못한 사람이 있을 거 아니에요. 해킹이면 해킹한 사람이 있고, 뚫렸으면 뚫린 데가 있고. 저희가 나중에 어디 가서 따지면 되는지 알고 싶어서요. 미리요."

다인은 권상호를 생각했다. 저축은행에서 등기소로, 등기소에서 법원으로, 법원에서 다시 등기소로 사 년을 돈 사람. 그 순환의 입구가 지금 눈앞에서 하나 더 열리고 있었다.

"그건," 다인은 천천히 말했다. "저도 알고 싶어요."

박세미는 그 대답을 잠깐 들여다보는 얼굴을 했다. 공무원이 모른다고 하는 것과 알고 싶다고 하는 것의 차이를 재는 얼굴이었다. 그러고는 조은결의 소매를 잡고 일어났다.

"다음 주에 또 올게요. 접수되는 날까지 계속 올 거예요."

"네. 오세요."

"저희 이름 기억하시죠."

"조은결님, 박세미님. 기억해요."

"까먹지 마세요. 저희는," 박세미는 문 앞에서 돌아보며 말했다. "번호표 말고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어서요."

문이 닫히고 나서 다인은 그 말을 발급 대장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노트가 된 종이에 적었다. 번호표 말고 이름으로.

D+6 · 23:30

다인은 짐을 쌌다. 서울까지는 다닐 수 있는 거리였지만 당분간 늦은 밤 퇴근이 이어질 거라고 했다.

가방에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넣고, 마지막에 볼펜 두 자루와 새 노트를 한 권 넣었다. 대장은 본원이 가져갔다. 적던 대로 적으라던 임 주사의 말이 남아 있었다.

베란다에 나가 화분에 물을 줬다. 살아 있는 두 개에만 줬고, 며칠이 될지 몰라서 접시에 고일 만큼 부었다.

불을 끄기 전에 휴대폰을 한 번 봤다. 인터넷등기소는 여전히 점검 중이었다.

그 점검 화면 앞에서 다인은 잠깐, 자기 집 등기부를 떠올렸다. 지하철에서 두 번 읽고 세 번째를 못 읽은 그 줄. 진정명의회복. 열어볼 수도 있었지만 앱은 열리지 않았고,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게 이번에는 다행처럼 느껴졌다. 다인은 그 안도가 싫었다.

찾을 수 없습니다, 라던 아침의 화면을 생각했다. 그 노인의 집은 사라진 게 아니다. 어딘가의 백업 테이프 안에는 아직 그 사람 이름이 적혀 있을 것이다. 문제는 테이프가 여러 개이고, 시점이 다 다르고, 어느 것이 맞는지를 이제 누군가 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한다는 것.

다인은 그 단어에서 멈췄다. 기록은 정하는 게 아니라 남기는 것이라고 삼 년 동안 믿어왔다. 내일부터 가는 곳은 기록을 정하는 곳이었다.

불을 끄고 누웠을 때 문자가 하나 왔다. 임 주사였다.

*가서 대장 얘기 먼저 꺼내지 마.*

다인은 그 문장을 한참 봤다. 왜냐고 묻는 답을 쓰다가 지웠다. 다음 문자가 먼저 왔다.

*자네가 먼저 꺼내면 자네가 책임지는 거야.*

복구대책본부 1차 회의록 (발췌)

일시: D+8 09:00 / 장소: 법원행정처 4층 대회의실

참석: 본부장 황인선 외 19명

1. 피해 규모: 삭제 필지 4,012건 확정. 추가 삭제 징후 없음.

2. 복구 방침: 백업 정합성 검증 후 일괄 복원. 검증 기간 미정.

3. 대외 발표: "복구 작업 순조" 기조 유지.

5. 차기 회의: D+15 09:00

※ 회의록 공개 범위: 본부 내부 한정

D+8 · 08:40

법원행정처 4층은 등기소와 냄새가 달랐다.

등기소는 종이와 토너 냄새가 났다. 여기는 새 카펫과 커피 냄새가 났다. 회의실 문에 A4로 복구대책본부라고 붙어 있었는데, 인쇄한 지 며칠 안 된 종이가 벌써 한쪽 귀퉁이가 떠 있었다.

스무 명 남짓이 모였다. 전산 담당이 절반, 법무 담당이 넷, 홍보가 둘, 그리고 창구 출신이 다인 하나였다. 법무 넷 중 하나는 마흔 줄의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명찰에 정이라고만 보였고 회의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으면서 남의 말을 전부 받아 적었다.

자리는 직급순이었고 다인의 자리는 문에서 제일 가까웠다. 옆자리의 전산 담당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명찰에 최민기 계장이라고 붙어 있는데 다인보다 젊어 보이는 남자였다.

"창구에서 오셨다면서요. 저희는 창구를 몰라서, 좀 많이 여쭤볼 것 같습니다."

"저는 서버를 몰라요. 서로 배우면 되겠네요."

"근데 솔직히," 그는 목소리를 낮췄다. "여기 계신 분들 절반은 등기부를 떼본 적도 없을걸요. 자기 집 살 때 법무사가 다 해줬으니까."

다인은 그 말을 농담으로 들었는데, 일주일쯤 지나고 보니 농담이 아니었다. 이 방은 등기를 시스템으로 아는 사람들과 절차로 아는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등기를 유리 너머의 얼굴로 아는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본부장 황인선은 오십 줄의 여자였고, 정장에 넥타이를 맨 차림이었다. 회의를 시작하며 짧게 말했다.

"우리 일은 두 가지입니다. 뭐가 지워졌는지 아는 것. 어떻게 되돌릴지 정하는 것. 순서 바꾸지 마세요. 아는 게 먼저입니다."

말하기 전에 넥타이 매듭을 한 번 만졌다. 다인은 그 동작을 그날 처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