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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8화. 우리가 만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윤하니 씨와 관련된 기록이라고요?”

서도혁은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비서는 잠시 침묵하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네, 대표님. 다만 오래된 기록이라 아직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습니다.”

“확인된 사실만 말하세요.”

“과거 아동 지원 기관에서 작성한 보호자 관련 문서에 윤서정 씨와 서은재 씨의 이름이 함께 기재되어 있습니다. 해당 문서에는 한 아이의 출생과 관련된 기록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혁은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바라봤다.

그 아이가 태어난 날…….

윤서정이 서은재에게 보낸 편지에는 분명히 그런 문장이 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에는 자신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도혁은 낮게 물었다.

“그 아이가 윤하니 씨입니까?”

“아직 확정할 수 없습니다. 기록에 남은 생년월일과 윤하니 씨의 실제 생년월일이 일치하는지 추가 확인이 필요합니다.”

“그 자료를 보내세요.”

“네.”

“그리고 서은재 씨의 행방도 계속 확인하세요. 출국 기록뿐 아니라 실종 당시 주변 인물들의 진술까지 다시 살펴보세요.”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났다.

도혁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윤하니.

그 여자는 자신이 처음부터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비 오는 날 우연히 부딪친 여자.

면접장에서 다시 만난 여자.

자신이 계약 연애를 제안했고, 그녀가 그 제안을 받아들인 여자.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니의 어머니는 서은재를 알고 있었다.

서은재는 하니에게 무언가를 숨겼다.

그리고 자신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도혁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는 답을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이제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

하니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던 순간, 도혁은 그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마음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녀에게 숨겨진 과거가 있다면, 적어도 그 과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하니를 또다시 상처 입히지 않으려면.

이번에는 자신이 먼저 도망치지 않아야 했다.

1. 좋아한다고 말해 놓고

다음 날 아침.

하니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젯밤 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서도혁의 얼굴이 떠올랐다.

저도 당신을 좋아합니다.

그 말을 몇 번이나 떠올렸는지 모른다.

처음 들었을 때는 믿을 수 없었다.

계약이 끝났고, 이제는 더 이상 서로에게 연인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도혁은 그제야 자신의 마음을 고백했다.

왜 하필 그때였을까.

조금만 더 일찍 말해 줬다면.

자신이 계약 종료 합의서에 서명하기 전에 말해 줬다면.

어쩌면 두 사람은 지금과 다른 관계였을지도 몰랐다.

하니는 컴퓨터를 켜고 업무 파일을 열었다.

하지만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 진짜.”

그녀는 이마를 책상에 살짝 기댔다.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도혁에게는 아직 잊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서은재.

그 이름만 떠올려도 마음이 복잡해졌다.

자신은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도혁이 왜 그토록 아파했는지, 왜 과거를 숨겼는지, 왜 자신을 밀어냈는지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다.

“윤하니.”

하니는 고개를 들었다.

민석이 사무실 입구에 서 있었다.

“오빠? 여긴 웬일이야?”

“근처에 볼일 있어서 왔지. 이거.”

그가 작은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하니는 봉투를 열어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뭐야?”

“네가 좋아하는 빵.”

봉투 안에는 따뜻한 크림치즈 허니 토스트가 들어 있었다.

하니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이걸 어떻게 기억했어?”

“네가 좋아하는 게 한두 개냐? 십 년을 친구로 지냈는데 그 정도는 알지.”

민석은 의자를 끌어 하니의 책상 옆에 앉았다.

“아침 먹었어?”

“아니.”

“그럴 줄 알았다.”

그는 토스트를 꺼내 하니에게 건넸다.

“먹어.”

하니는 빵을 받아 들었다.

따뜻한 온기가 손바닥에 전해졌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토스트와 똑같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맡자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왜 그래?”

민석이 물었다.

하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고마워서.”

“고맙긴. 먹기나 해.”

하니는 한 입 베어 물었다.

달콤한 꿀과 부드러운 크림치즈가 입안에 퍼졌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도혁도 보고 싶었다.

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서로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자신이 우스웠다.

민석은 그런 하니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사람한테 연락 왔어?”

하니의 손이 멈췄다.

“……아니.”

“그래?”

“응.”

민석은 더 묻지 않았다.

하지만 하니는 알 수 있었다.

민석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어쩌면 그 걱정 속에 친구 이상의 감정이 섞여 있다는 것도.

하니는 토스트를 내려놓았다.

“오빠.”

“응?”

“나……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조금 무서워.”

민석의 표정이 굳었다.

하니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좋아하면 그 사람의 모든 게 궁금해지잖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표정을 짓는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

“그런데 그걸 알게 된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더라.”

민석은 하니를 바라봤다.

“오히려 더 아플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그녀는 억지로 웃었다.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민석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하니가 누구를 이야기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남자였다.

자신이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남자.

하지만 민석은 하니에게 당장 그 사람을 잊으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녀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마음까지 부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니야.”

“응.”

“무서우면 천천히 가.”

민석이 말했다.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돼. 네 마음이 뭔지 알 때까지 기다려도 되고, 그 사람을 더 알아봐도 되고.”

“…….”

“다만 네가 다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지는 마.”

하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갈게. 점심도 꼭 먹어.”

“응. 고마워, 오빠.”

민석은 몇 걸음 걷다가 돌아봤다.

“하니야.”

“응?”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나는 네 편이야.”

하니는 웃었다.

“알아.”

민석도 웃었다.

하지만 사무실 문을 나서는 순간, 그의 표정은 달라졌다.

그는 주머니 속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아직 보내지 못한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하니야. 나 사실 너를…….

민석은 한참 동안 문장을 바라보다가 전부 지웠다.

아직은 아니었다.

지금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면 하니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민석은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조용히 건물을 나섰다.

2. 대표실에 놓인 토스트

오전 열한 시.

하니는 업무 자료를 정리하다가 비서실에서 온 연락을 받았다.

“윤하니 씨, 대표님께서 자료를 확인하고 싶어 하십니다.”

“아, 네. 지금 가져가겠습니다.”

하니는 서류를 챙겼다.

대표실 앞에 도착하자 잠시 망설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들어가는 일이 익숙했다.

계약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문을 열기 전부터 마음이 복잡해졌다.

똑똑.

“들어오세요.”

하니는 문을 열었다.

도혁은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하니를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료 가져왔습니까?”

“네.”

하니는 서류를 건넸다.

도혁은 서류를 받으면서 그녀의 손을 바라봤다.

손끝이 조금 붉었다.

아침에 추웠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를 오래 만진 걸까.

그는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하니가 불편해할까 봐서였다.

“감사합니다.”

“네. 그럼 저는 이만…….”

“하니 씨.”

하니가 멈췄다.

“네?”

도혁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잠깐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하니는 그를 바라봤다.

“업무 관련 이야기인가요?”

도혁은 대답하기 전에 잠깐 눈을 내리깔았다.

“아닙니다.”

하니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럼…….”

“싫다면 하지 않겠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도혁은 더 이상 그녀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않으려는 듯했다.

하니는 한참 동안 고민하다가 소파에 앉았다.

“잠깐이라면 괜찮아요.”

도혁은 맞은편에 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도혁이었다.

“어제는 미안했습니다.”

하니는 눈을 깜빡였다.

“무엇이요?”

“당신에게 좋아한다고 말한 일입니다.”

하니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왜요?”

“그 말을 했다고 해서 당신이 제게 다시 기회를 줘야 하는 건 아니니까요.”

도혁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이 계약을 끝내고 싶어 했던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충분히 솔직하지 못했고, 당신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하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혁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 제 고백 때문에 부담을 느끼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답을 요구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니는 손가락을 맞물렸다.

그는 또다시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고 있었다.

자신이 떠나고 싶다고 했을 때도 그랬다.

붙잡지 않았지만, 억지로 남게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하니는 그 배려가 때로는 더 서운했다.

“대표님은 항상 그러세요.”

도혁이 고개를 들었다.

“어떻게 말입니까?”

“저한테 선택하라고 하시잖아요.”

“…….”

“제가 계약을 끝내고 싶다고 하니까 끝내 주셨고, 제가 부담을 느낄까 봐 좋아한다고 말한 것까지 사과하시고요.”

하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런데 대표님은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표님은 뭘 원하세요?”

그 질문은 도혁이 가장 피하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하니를 바라봤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당신이 제 곁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니의 눈이 흔들렸다.

“……네?”

“당신이 원한다면요.”

도혁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당신이 편안한 방식으로, 당신이 원하는 만큼만 제 곁에 있어 줬으면 합니다.”

하니는 가슴이 아파 왔다.

그 말은 자신이 듣고 싶었던 말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믿을 수 없었다.

“대표님.”

“네.”

“서은재 씨를 아직도 좋아하세요?”

도혁의 표정이 굳었다.

하니는 그 모습을 보고도 물러서지 않았다.

“저는 그 사람을 몰라요. 대표님과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르고, 왜 헤어지게 됐는지도 모르고요.”

그녀는 숨을 고른 뒤 말했다.

“그런데 대표님이 그 사람을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면…… 저는 그 자리에 들어갈 수 없어요.”

도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하니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은재를 잊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이 완전히 끝났다고 확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하니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분명했다.

은재를 향한 그리움과는 달랐다.

하니가 웃으면 함께 웃고 싶었다.

하니가 아프면 걱정됐다.

하니가 떠난다고 했을 때는 붙잡고 싶었다.

그는 천천히 대답했다.

“서은재는 제게 소중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니의 시선이 내려갔다.

도혁은 말을 이었다.

“지금도 그 사람이 왜 사라졌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싶고요.”

“…….”

“하지만 당신을 은재와 비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니가 고개를 들었다.

도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당신은 그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 말에 하니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도혁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덧붙였다.

“그리고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이유도, 당신이 그 사람과 닮아서가 아닙니다.”

하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이 마음에 깊이 박혔다.

자신은 서은재의 자리를 대신할 수 없다.

하지만 애초에 대신할 필요도 없었다.

도혁이 자신을 좋아한다면, 그것은 윤하니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어야 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제가 대표님 곁에 있어도 괜찮아요?”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제가 묻고 싶은 말입니다.”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제가 당신 곁에 있어도 괜찮습니까?”

하니는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기에는 아직 두려웠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든지요.”

하니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도혁이 다시 불렀다.

“하니 씨.”

“네?”

“아침은 먹었습니까?”

하니는 잠깐 웃었다.

“먹었어요.”

“무엇을요?”

“크림치즈 허니 토스트요.”

도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렇군요.”

하니는 그 표정을 보고 작게 웃었다.

“민석 오빠가 사다 줬어요.”

그 순간 도혁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하니는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대표님, 혹시 질투하세요?”

도혁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정말요?”

“업무 시간입니다.”

“아, 또 그 말!”

하니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혁은 굳은 표정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입가가 아주 조금 올라갔다.

하니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자신이 이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는 어쩌면 이런 순간 때문인지도 몰랐다.

차갑고 무뚝뚝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가끔은 솔직하지 못한 표정으로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사람.

자신을 붙잡고 싶어 하면서도, 억지로 붙잡지는 않는 사람.

하니는 문손잡이를 잡은 채 말했다.

“저, 아직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오늘 점심은 같이 먹을래요?”

도혁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봤다.

하니가 먼저 제안한 것은 처음이었다.

“계약 때문에 먹는 건 아닙니다.”

하니가 서둘러 덧붙였다.

“그냥…… 저도 대표님이랑 밥 먹고 싶어서요.”

도혁은 천천히 웃었다.

이번에는 숨기지 않았다.

“좋습니다.”

하니는 그 미소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점심시간에 봬요!”

문이 닫혔다.

도혁은 한동안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사람을 힘들게 하는군.”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다.

3. 서은재의 편지

그날 오후.

도혁은 비서에게서 새로운 자료를 전달받았다.

서은재와 윤서정이 함께 일했던 기관의 기록이었다.

오래된 서류 몇 장과 당시 담당자 명단, 그리고 한 아이에 관한 문서.

도혁은 문서를 하나씩 넘겼다.

윤서정.

서은재.

두 사람의 이름은 여러 번 함께 등장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기록은 일부가 삭제되어 있었다.

아이의 출생 정보.

보호자 정보.

그리고 기록을 수정한 사람의 이름.

도혁은 문서를 덮었다.

“누가 이런 기록을 삭제한 겁니까?”

비서가 대답했다.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당시 기관이 여러 차례 이전하면서 일부 문서가 분실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삭제된 기록을 복구할 방법은 없습니까?”

“원본 자료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확인하세요.”

비서가 나가자 도혁은 서은재의 편지를 다시 펼쳤다.

도혁아, 내가 돌아오면 그때는 나를 미워해 줘.

그 문장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은재는 자신이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돌아오지 않기로 결심했던 걸까.

그는 편지의 뒷면을 살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작은 글씨가 있었다.

종이 가장자리, 접힌 부분에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하니가 스무 살이 되면…….

도혁의 눈이 커졌다.

그는 편지를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러나 문장은 거기서 끊겨 있었다.

하니가 스무 살이 되면.

무엇을 하라는 걸까.

무엇을 알려 주라는 걸까.

도혁은 편지를 움켜쥐었다.

하니가 스무 살이 된 날, 자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는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었다.

은재가 사라진 지 몇 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는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가족들은 은재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세상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힌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혁은 잊지 못했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문장까지.

그런데 그 편지에 하니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은재는 하니가 스무 살이 되면 무언가를 하라고 부탁했다.

그렇다면 하니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이 모든 일이 계획되어 있었던 걸까.

도혁은 숨을 내쉬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은재야.”

그는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이제는 더 이상 단순한 실종 사건이 아니었다.

은재는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윤서정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니는 그 약속의 중심에 있었다.

도혁은 결심했다.

이번에는 끝까지 알아내기로.

누군가가 숨기려 했던 진실이 무엇이든, 하니가 원한다면 함께 확인하기로.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니가 상처받지 않도록, 자신이 먼저 그녀를 믿어 주기로.

4. 뜻밖의 방문자

저녁 여섯 시.

하니는 퇴근 준비를 하다가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했다.

정세린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윤하니 씨, 어제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하니는 잠시 망설이다 답장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