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그 남자의 첫사랑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2화. 그 남자의 첫사랑
“돌아올 수 없는 사람을 잊지 못하는 남자와, 그런 남자의 여자친구가 되어 버린 여자.”
“그 사람은 이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서도혁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마치 오래전에 끝난 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처럼.
하지만 윤하니는 알 수 있었다.
그 말에는 단순한 미련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돌아올 수 없다는 말.
잊었다는 말과는 달랐다.
누군가를 잊었다면 굳이 돌아올 수 없다고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하니는 조심스럽게 도혁을 바라봤다.
“……죄송해요.”
도혁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요?”
“괜히 물어봤어요.”
“괜찮습니다.”
또 그 말이었다.
괜찮습니다.
하니는 그 말이 이상하게 싫었다.
자신도 힘들 때마다 괜찮다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하는 걸 들으면 무언가 더 묻고 싶어졌다.
정말 괜찮은지.
아니면 괜찮은 척하는 건지.
하지만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니었다.
계약서에 서명한 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하니가 그의 과거를 궁금해할 이유는 없었다.
“그럼 이제 가도 될까요?”
하니가 물었다.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집까지 데려다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지하철 타면 돼요.”
“계약서에 공식 일정이 끝난 뒤 귀가를 지원할 수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런 조항도 있었어요?”
“읽어 보셨잖습니까.”
“읽긴 읽었는데, 이런 내용까지는 기억이 안 나거든요.”
도혁은 차 문을 열었다.
“타세요, 윤하니 씨.”
하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진짜 말 안 통하는 남자네.”
“들립니다.”
“그것도 들으라고 한 말이에요.”
도혁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하니는 그 모습을 보고 잠깐 멈칫했다.
이 남자.
가끔 웃을 때마다 사람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잘생긴 얼굴로 그렇게 웃지 말든가.
아니, 잘생긴 건 잘생긴 거고.
자신은 돈을 받고 여자친구 역할을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하니는 고개를 저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그때였다.
“하니 씨.”
도혁이 운전석에 앉으며 불렀다.
“네?”
“오늘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사과하겠습니다.”
하니는 그를 바라봤다.
“왜요?”
“어머니가 개인적인 질문을 하셨으니까요. 당신이 불편했을 수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다.
하니는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그가 무뚝뚝하기는 해도 적어도 자신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괜찮아요.”
하니는 웃었다.
“저도 계약서에 서명했잖아요. 어느 정도는 감수해야죠.”
도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렇다고 모든 걸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니는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차갑고 무심한데, 가끔 이렇게 다정한 말을 했다.
그게 더 위험하다는 사실을 하니는 아직 알지 못했다.
차가 출발한 지 십 분쯤 지났을 때였다.
하니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서도혁 씨.”
“네.”
“아까 어머님이 말씀하신 거요.”
도혁의 손이 운전대 위에서 잠시 멈췄다.
“무슨 이야기 말입니까?”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 이야기요.”
차 안이 조용해졌다.
하니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아, 싫으면 대답 안 하셔도 돼요. 그냥…….”
“궁금합니까?”
“네?”
“제가 어떤 사람을 사랑했는지 궁금하냐고 물었습니다.”
하니는 입술을 달싹였다.
솔직히 궁금했다.
하지만 궁금하다고 대답하는 순간, 자신이 계약 상대의 사생활에 관심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요.”
결국 솔직하게 대답했다.
“왜요?”
도혁이 물었다.
하니는 잠시 생각했다.
“그냥요. 대표님도 누군가를 그렇게 사랑했던 적이 있다는 게 조금 신기해서요.”
“제가 사랑을 못 할 사람처럼 보입니까?”
“네.”
하니는 너무 빠르게 대답했다.
도혁이 고개를 돌렸다.
“……솔직하시군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하니는 급히 손을 저었다.
“첫인상이 그랬다는 거예요.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
“어떻게요?”
“음…….”
하니는 그를 살짝 바라봤다.
“생각보다 사람을 배려하는 것 같아요.”
도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니는 괜히 민망해져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냥 그렇다고요.”
한참 뒤, 도혁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제 첫사랑이었습니다.”
하니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도혁의 시선은 여전히 앞을 향해 있었다.
“오래전 일이에요. 지금은 더 이상 만날 수 없습니다.”
“……헤어지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도 된다니.
하니는 그 말이 마음에 걸렸다.
헤어진 사람에 관해 이야기할 때 보통은 헤어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도혁은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마치 그 사람에게 다시는 연락할 수 없는 것처럼.
“많이 좋아하셨나 봐요.”
하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도혁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그때는 그 사람이 제 전부였으니까요.”
하니는 숨을 멈췄다.
그 말은 생각보다 아팠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전부였던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이 더 이상 곁에 없다는 것.
하니는 그 외로움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엄마가 떠난 뒤, 자신에게도 세상의 전부였던 사람이 사라졌으니까.
그녀는 무심코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럼…… 아직도 좋아하세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뀌었다.
차가 멈췄다.
도혁은 앞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한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도 있습니다.”
하니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는 사람.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사람.
시간이 지나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사람.
“그렇군요.”
하니는 작게 대답했다.
“그럼 저도 더 이상 안 물어볼게요.”
도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왜요?”
“그냥…… 대표님이 슬퍼 보이니까요.”
그 순간 도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슬퍼 보인다는 말.
그는 오랫동안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잘 지내느냐고 물었고, 일이 잘되느냐고 물었고, 언제 결혼할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슬퍼 보인다고 말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한참 동안 하니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윤하니 씨는 참 이상한 사람이군요.”
“네?”
“처음 만났을 때는 그렇게 따지더니, 지금은 남의 기분까지 신경 쓰고.”
하니는 입술을 삐죽였다.
“제가 원래 좀 이상해요.”
“그런 것 같습니다.”
“아니, 칭찬을 해 주셔야죠!”
도혁은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하니도 분명히 보았다.
그가 정말로 웃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웃음이 어쩐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니의 집 앞에 도착했을 때는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다.
“여기서 내리면 돼요.”
하니는 안전벨트를 풀었다.
“오늘 감사합니다.”
“내일 오전 열 시까지 회사로 오시면 됩니다.”
“네?”
“계약에 따른 첫 업무입니다.”
하니는 눈을 크게 떴다.
“내일도 출근해야 해요?”
“당연합니다. 계약연애와 별개로 업무 계약도 체결하셨으니까요.”
“아…… 맞다.”
하니는 이마를 짚었다.
그러고 보니 자신은 계약연애만 한 게 아니었다.
정식으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그것도 대표실 업무 보조라는, 지금까지 해 본 적 없는 일을.
“저, 잘할 수 있겠죠?”
하니가 작게 물었다.
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지원서에 적힌 경력은 거짓이 아니겠죠?”
“당연하죠!”
“그럼 잘할 겁니다.”
하니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단순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 자신을 믿어 준다는 느낌.
오랜만이었다.
“그럼 내일 뵐게요.”
하니는 차에서 내렸다.
문을 닫으려는 순간 도혁이 불렀다.
“윤하니 씨.”
“네?”
“오늘 수고했습니다.”
하니는 멈칫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서도혁 씨도요!”
문이 닫혔다.
하니는 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러고는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하루는 이상했다.
갑자기 일자리를 얻었고, 계약연애를 시작했고, 자신과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남자의 과거까지 알게 됐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서도혁이 웃는 모습을 자꾸 떠올리게 된다는 것.
하니는 두 손으로 뺨을 감쌌다.
“안 돼, 윤하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신 차려. 그 사람은 네 남자친구가 아니야.”
계약상 남자친구일 뿐이었다.
세 달 뒤면 끝날 관계.
그러니 마음을 주면 안 됐다.
하니는 그렇게 다짐하며 집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날 밤, 잠자리에 누운 그녀는 몇 번이나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혹시 메시지가 오지 않았을까.
물론 메시지는 없었다.
하니는 피식 웃었다.
“내가 미쳤지.”
그리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진동이 울렸다.
화면에는 낯선 메시지가 떠 있었다.
서도혁
내일 출근할 때 따뜻하게 입고 오세요. 아침부터 기온이 많이 내려간다고 합니다.
하니는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웃었다.
윤하니
네! 서도혁 씨도 감기 조심하세요.
잠시 뒤 답장이 왔다.
서도혁
감사합니다.
그게 전부였다.
하니는 휴대전화를 가슴에 올려놓았다.
별것 아닌 메시지였다.
그저 업무 관계자에게 보내는 안부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하니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아…… 진짜 큰일 났네.”
아직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조금 신경이 쓰이는 것뿐이었다.
정말 그뿐이었다.
같은 시각.
서도혁은 자신의 집 서재에 앉아 있었다.
책상 위에는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도혁과 한 여자가 나란히 서 있었다.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도혁은 손끝으로 사진 가장자리를 쓸었다.
“……오랜만이네.”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도련님.”
집안 관리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머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오늘 함께 오신 윤하니 씨에 관해 여쭤보실 게 있다고 하십니다.”
도혁은 사진을 뒤집어 놓았다.
“내일 말씀드리겠다고 전하세요.”
“알겠습니다.”
발소리가 멀어졌다.
도혁은 다시 사진을 바라봤다.
하니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오늘 식당에서 긴장한 얼굴로 자신의 손을 잡았던 모습.
차 안에서 첫사랑에 대해 조심스럽게 물어보던 목소리.
그리고 슬퍼 보인다고 말하던 표정.
이상했다.
그저 계약 상대일 뿐인데.
왜 자꾸 그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는 걸까.
도혁은 사진을 서랍 안에 넣었다.
그리고 불을 껐다.
다음 날 아침.
하니는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예상하지 못한 광경을 마주했다.
로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직원들이 작은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저분이 서유진 씨래.”
“대표님 약혼 상대 아니었어?”
“그런데 어제 대표님이 여자친구를 데려왔다면서?”
“진짜야? 누구래?”
하니는 걸음을 멈췄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정확했다.
로비 한가운데 서 있던 유진이 하니를 발견했다.
“어머, 하니 씨.”
유진은 우아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잘 잤어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는 어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하니는 당황했다.
“왜요?”
유진은 하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봤다.
“도혁이가 여자친구를 데려올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하니는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하니 씨.”
유진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도혁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알고 사귀는 거예요?”
하니의 웃음이 멈췄다.
유진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쉽게 잊지 못해요. 한번 마음을 주면 오랫동안 붙잡고 있는 사람이죠.”
하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니까 혹시라도 진심이 되지는 말아요.”
유진의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하니 씨만 다칠 테니까.”
그 말은 조언처럼 들렸다.
하지만 하니는 알 수 있었다.
유진은 자신을 걱정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하니가 도혁에게 마음을 주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니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니는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제 마음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 말을 남기고 하니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자신도 놀랄 만큼 단호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하니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와…… 무서워.”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서도혁이 들어왔다.
하니는 깜짝 놀랐다.
“대표님!”
도혁은 하니의 얼굴을 바라봤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도혁은 잠시 하니를 바라봤다.
“거짓말을 잘 못한다고 하셨죠.”
“……네?”
“지금도 그렇습니다.”
하니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도혁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그가 조용히 말했다.
“유진이가 무슨 말을 했든 신경 쓰지 마세요.”
하니는 고개를 돌렸다.
“대표님은 어떻게 아셨어요?”
“예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럼 저분은…….”
하니는 말을 멈췄다.
도혁이 그녀를 바라봤다.
“궁금하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하니는 잠시 망설이다가 물었다.
“서유진 씨는 대표님을 좋아하세요?”
도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가 18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기 직전, 그가 입을 열었다.
“유진이는 제가 아닌,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사랑하는 겁니다.”
하니는 그 말을 곱씹었다.
그리고 도혁이 먼저 내린 뒤에야 천천히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왔다.
그때였다.
도혁의 비서가 급하게 다가왔다.
“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비서는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화면에는 한 장의 사진이 떠 있었다.
어제 저녁, 식당에 들어가는 도혁과 하니의 모습.
그리고 두 사람의 맞잡은 손.
사진 아래에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어 있었다.
〈HONEY TABLE 서도혁 대표, 재벌가 약혼설 뒤집고 미모의 일반인 여성과 열애?〉
하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이게 뭐예요?”
도혁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휴대전화를 돌려주었다.
표정은 차분했다.
하지만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누가 사진을 흘렸는지 확인하세요.”
“네, 대표님.”
비서가 물러났다.
하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서도혁 씨. 이거…… 괜찮은 거예요?”
도혁은 그녀를 바라봤다.
“괜찮게 만들 겁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면 어떡해요? 제 친구들이 보면요? 가족들이 보면요?”
“제가 약속한 범위 안에서 보호하겠습니다.”
하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계약서에는 적혀 있지 않은 일이었다.
가짜 연애가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두 사람만의 비밀이 아니게 되었다.
그리고 하니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계약연애의 대가가 돈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도혁이 조용히 말했다.
“윤하니 씨.”
“……네.”
“이제부터는 제 옆에 있어 주셔야겠습니다.”
하니는 그를 올려다봤다.
“왜요?”
도혁은 사진 속 두 사람의 맞잡은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낮게 대답했다.
“사람들이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이라고 믿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하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계약연애는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그런데 벌써 세상 전체가 두 사람의 연애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하니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윤하니 씨죠?
서도혁 씨와 계속 만나면 후회하게 될 겁니다.
하니는 화면을 바라보며 숨을 멈췄다.
곧이어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그 남자가 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지, 정말 알고 싶지 않으세요?
하니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그 남자의 과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는 하니가 그 과거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