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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4-15

지은이 한용운 · 2026-08-25

순영의 말을 자세히 듣고 있던 여승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그것은 물을 것도 없이 저희 스승님의 일입니다.”

“저희 스승님의 법명은 정공 스님이신데, 마음이 착하시고 좋은 일을 많이 하셔서 공보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절에 있는 수좌들 중에 그런 일을 하실 분은 그 어른 말고는 없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런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스님이 금강산에 가셨다 오시는 길에, 원산 바다에서 열댓 살 먹은 계집아이가 빠져 죽게 된 것을 보셨답니다.”

“헤엄치는 사람에게 돈을 주어 건져 내게 하시고, 빠졌던 아이에게도 돈 십 원을 주셨다고 하셨어요.”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소승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들었습니다.”

“두어 달만 일찍 오셨더라도 뵐 수 있었을 텐데요.”

“만나 뵈었으면 피차에 오죽이나 반가웠을까요.”

여승도 순영을 유심히 바라보며 안타까워했다.

순영은 내친걸음이라, 공보살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여 다시 다른 데로 갈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절에 머물자니 의지할 곳이 없어 몹시 번민했다.

그러다 조용한 틈에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제 앞뒤 사정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자세히 이야기했다.

듣는 이들은 이상하고 신기하게 여겨, 소리 내어 찬탄하는 사람도 있었다.

더구나 공수좌의 제자들은 마치 형제나 친척이라도 만난 것처럼 순영을 반기고 안쓰럽게 여겼다.

순영은 여러 스님과 의논하여 공수좌의 상좌가 되기로 했다.

중이 되기 전에 순영은 약간의 향과 초를 마련해 대철의 넋을 위하여 불공을 올렸다.

축원에는 김대철과 김난향을 부부로 나란히 써 넣었다.

그리고 수복을 위해서도 축원을 올렸다.

이튿날은 공수좌 사십구재의 회향날이었다.

꽃과 향과 등불로 청정하고 엄숙하게 꾸민 도량에서 종이 울리자 모든 의식이 시작되었다.

향을 사르고 차를 올리는 가운데 맑고도 한가롭게 울려 나오는 범패 소리가 있었다.

그 소리는 주인 있는 넋도 주인 없는 넋도, 슬픈 영혼들까지 모두 좋은 연화대로 인도했다.

그러한 가운데 순영은 머리를 깎고 먹물 들인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우선 오계를 받았는데, 법명을 선행이라 지었다.

밤에는 설법이 시작되었다.

안변 석왕사에서 오신 이름난 덕암 스님이 거룩한 위의로 사자좌에 올랐다.

주장자를 한 번 꽝 하고 내린 뒤, 공수좌의 영가를 위하여 사자후를 토했다.

그러고는 이렇게 서두를 꺼내고 설법을 이어 갔다.

“지금부터는 새로 출가한 선행 수좌를 위하여 말하겠다.”

“선행 수좌는 지난 생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은 사람으로, 이 세상에서 위대한 일을 행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선행 수좌가 한 일이 어째서 위대한지 모를 것이다.”

“사람 같지 않은 남편을 위했다느니, 못난 아편쟁이를 위해 한평생을 희생했다느니 하며,”

“도리어 선행 수좌를 비웃고 헐뜯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결단코 그렇지 않다.”

“선행 수좌가 김대철에게 한 일은 순전히 아내로서 남편을 위한 것이 아니다.”

“판단이 모자라고 못나서 아무 생각 없이 복종한 것도 아니다.”

“선행 수좌는 사람에게 가장 아름다운 순진한 보은의 마음과, 불행한 이를 가엾이 여기는 아름다운 덕으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일을 행한 것이다.”

“선행 수좌는 무슨 종교적 수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학문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니니, 배워서 행한 것이 아니다.”

“또한 명예를 바라거나 무슨 보답을 기대하고 한 것도 아니다.”

“다만 타고난 천품으로 행한 것이다.”

“몸으로나 마음으로나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였으니 이 얼마나 굳센 일인가.”

“하물며 연약한 여자로서 그만한 참을성을 보인 것이 아닌가.”

“사람이 한 개인을 위하든, 사회를 위하든, 국가를 위하든 크고 작은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행하는 사람으로서 백 번 꺾여도 굽히지 않고 어려운 길을 가는 정신을 지녀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국가나 사회를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더 크고, 개인을 위해 희생한 것이라고 더 작은 것이 아니다.”

“다만 그 결과가 다를 뿐, 행하는 원인 곧 행하는 사람의 희생 정신은 똑같은 것이다.”

“그런데 요즘의 인정과 세태를 보면 가련한 일이 많지 않은가.”

“당당한 대장부로서 무슨 주의니 무슨 사상이니 하며 천하 만사를 저 혼자 이끌 듯 큰소리를 치다가도,”

“어느 틈에 찬 재처럼 사그라져 아침의 지사가 저녁의 천한 사내가 되고, 어제의 주의자가 오늘의 반대자가 된다.”

“제 한 몸의 이해와 고락을 따라 변하는 빠르기가 고양이 눈보다 더하지 않은가.”

“그런데 선행 수좌는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니라’ 하는 소리를 듣는 여자다.”

“아무런 교양도 없이 다만 아름다운 천품 하나로, 세상 사람이 견딜 수 없는 온갖 고통을 참아 냈다.”

“은혜를 갚기 위하여 순수한 자비심으로 많은 세월을 희생하였으니 어찌 위대하지 않겠는가.”

“세상 사람은 은혜를 입을 때에는 고마워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 은혜를 기억하는 이조차 드물다.”

“은혜를 잊지 않는 것만으로도 무던한 일이거늘,”

“그것을 갚기 위하여 온갖 유혹과 온갖 굴욕을 견디며 제 행복의 전부를 보은의 제물로 바쳤다.”

“이것이 위대하지 않다면 무엇이 위대하겠는가.”

“만일 자리를 바꾸어 선행 수좌가 나라를 위하는 처지에 놓였더라면,”

“마찬가지로 그만한 희생을 하며 끝까지 나아갔을 것이다.”

“무슨 주의자나 사상가가 되었더라면 시종일관 목숨을 걸고도 변함이 없어,”

“원숭이 같은 신사들을 부끄러워 죽게 하였을 것이다.”

“선행 수좌 같은 이는 실로 위대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