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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3-1

지은이 한용운 · 2026-08-25

대철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거품을 흘리며 쓰러졌다.

힘없는 손으로 순영의 손목을 쥐려다가 저절로 스르르 놓쳤다.

순영은 대철이 숨을 거두는 것이 아닌가 하여 자세히 살폈다.

그러나 언제나 금방 죽을 듯한 형세였던 터라 그다지 놀랄 것도 없었다.

당장 죽는다 한들 순영으로서는 달리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그저 지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뭇잎 사이로 이지러진 달빛이 새어 들었다.

살아날 기색 없는 대철의 해쓱한 얼굴을 비추는 그 빛이, 무슨 뜻이라도 있는 것처럼 처량하고도 무서웠다.

그 곁에 우두커니 앉아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는 순영은, 아까 운옥이 한 말과 대철이 한 말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세상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 세상이 모두 그러하고 사람이란 누구나 그러한 것인가.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은 서로서로 그렇게만 사는 것인가.

자기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서도 남들이 타고난 무엇을 타고나지 못해 그런 마음이 없는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 사람이 다 착하고 정직하게 타고났는데, 오직 대철과 운옥 두 사람만 짐승처럼 타고났을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순영은 대철이 사람같이 생기기는 했으나 실은 무슨 짐승이 아닌가 하여 다시금 그 모습을 두루 살펴보았다.

그러나 도저히 판단할 수 없었다.

운옥으로 말하면 어려서 장난삼아 한 말 한마디를 두고 끝끝내 하늘을 함께 이지 못할 원수를 갚듯 심술을 부렸다.

대철은 미워할 만한 일이라고는 없었는데도, 이른바 부부로 지내면서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것을 속여 왔다.

그것을 생각하니 순영의 지식으로는 세상 사람이 어떤 것인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순영은 골똘히 그 일을 생각하다가 끝을 맺지 못하고 다시 자신을 돌아보았다.

대철과 운옥이 본래 그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잘못이 있어 자기에게만 그런 짓을 한 것은 아닐까 하고 돌이켜 보기도 했다.

자기가 운옥이며 대철과 그런 인연을 맺게 된 뿌리를 거슬러 보면, 본래 운옥을 따라 나선 것이 원인이었다.

운옥이 아무리 꾀었어도 제 마음이 없었으면 따라갔을 리가 없다.

따라가지 않았다면 그들이 자기에게 그런 짓을 하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로 하여금 그런 못된 짓을 하게 만든 것이 곧 제 허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리저리 생각하는 사이, 계모 슬하의 고생이 싫어 꿈같은 허영을 좇아 믿지 못할 사람을 따라나선 일이 가슴 아프도록 후회되었다.

제 본집과 부모를 떠올리자 뜨거운 눈물이 샘솟듯 흘렀다.

순영은 여태 가슴에 품고 다니던 어머니의 사진을 꺼내 보았다.

하도 오래 지니고 다녀 저도 모르게 닳아 흐려진 얼굴 위로 달빛이 비쳤다.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희미했다.

순영은 그 사진을 든 채 소리 내어 울었다.

대철은 점점 숨이 가빠지고 눈자위가 돌아갔다.

손발의 맥이 걷힌 지는 오래였고, 가슴마저 꺼져 가는 거품처럼 잦아드는 모양이었다.

순영은 남은 주사 한 대를 놓아 보았다.

그러나 반딧불처럼 반짝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어디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만호장안이 고요했다.

사직공원은 죽은 듯했다.

다만 한 여자의 흐느끼는 소리를, 오직 우는 그 사람만이 듣고 있을 뿐이었다.

쇠잔한 달은 넘어가고 별들이 성기어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여러 사람의 낙원이 되어 웃음과 즐거움으로 채워지던 사직공원은, 그 이튿날 전에 없던 살풍경이 되었다.

경관들이 경찰의를 데리고 나와 검시를 했다.

경성부에서도 여러 사람이 나와 부산을 떨었다.

그들 외에는 그 근처에 얼씬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여러 가지로 조사한 끝에 대철과 운옥의 시체는 병사한 행려 사망자로 인정되어 부청에서 처리했다.

순영은 대철은 물론 운옥까지도 제 힘으로 장사를 지내 주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워낙 잔약한 몸이요 장례 비용을 마련할 길이 없어, 행려 사망자로 처리되는 대로 맡겨 둘 수밖에 없었다.

대철이 죽고 난 뒤 순영은 제 힘으로 감당할 수 없던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것 같았다.

몸도 마음도 없는 것처럼 가벼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늘 대철을 돌보는 일로 마음이 팽팽히 당겨져 있었다.

고생이라면 고생이고 직분이라면 직분이어서, 어쨌든 의지할 곳이 있는 것처럼 지내 온 터였다.

마침내 대철이 없고 보니 이 세상에 터럭 끝만큼도 얽힌 데가 없었다.

몸이 허전하고 마음이 텅 비어, 바람이 없어도 날아갈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순영은 평지에서도 비틀거리며 풀뿌리나 나뭇가지라도 붙들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오직 사람에게만은 의지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앞으로 어찌해야 옳을지가 여간 큰 문제가 아니었다.

대철이 없는 바에는 사직공원에 하루라도 머무를 까닭이 없었다.

그렇다고 어디로 가자니, 넓고 넓은 천지에 갈 곳이 없었다.

순영은 전에 있던 자리에서 몇 번이나 앉았다 일어섰다 했으나 어디로 향할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철의 시중을 들 때는 천병만마가 몰려온대도 무섭지 않았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공원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모두 한집안 식구처럼 여겨졌다.

그러던 것이 별안간 사람마다 부끄러워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개며 수풀의 새들까지도 자기에게 덮쳐들어 해칠 것만 같아 공연히 무시무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