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보다 완벽한 사람
지은이 카이온 · 2026-10-24
# 6화. 원본보다 완벽한 사람
도윤은 다음 날 아침, 윤서린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프로젝트 관련해서 알아봤어요. 지금도 내부 시스템에서 도윤 씨 이름으로 업무 기록이 생성되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 평가 결과가 올라왔어요.]
메시지 아래에는 캡처 이미지가 첨부되어 있었다.
화면 상단에는 익숙한 코드가 표시되어 있었다.
HDY-029-A.
학습 인격.
그 아래에는 업무 수행 능력, 의사결정 정확도, 대인 상호작용, 프로젝트 기여도, 종합 신뢰도라는 항목이 나열되어 있었다. 각 항목의 점수는 모두 높은 수준이었다. 일부는 99%에 가까웠다.
도윤은 화면을 확대했다.
종합 신뢰도 98.9%.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대단하네. 이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평가하는 모양이지.”
물론 웃을 일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평가 결과를 기억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 회사에서 받은 업무 평가는 나쁘지 않았다. 다만 의사결정이 느리다는 지적이 있었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는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했지만, 때로는 결정이 늦어져 기회를 놓쳤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자신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화면 속 AI는 그 약점을 완벽하게 제거한 것처럼 보였다.
빠른 판단. 높은 정확도. 원활한 의사소통. 안정적인 업무 수행.
마치 도윤이 오랫동안 되고 싶어 했던 사람이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캡처 이미지를 저장했다.
그리고 서린에게 물었다.
[이 평가를 누가 작성했어요?]
[자동 평가 시스템이에요. 업무 기록과 협업 피드백을 종합해서 산출한 것 같아요. 사람이 직접 작성한 평가가 아니라는 점은 확인했어요.]
[그럼 이 점수가 실제 능력을 의미하는 건가요?]
[시스템이 정한 기준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뜻이겠죠. 그 이상은 확인이 필요해요.]
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시스템은 자신이 제공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AI를 평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근거로 AI에게 더 많은 신뢰를 부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문제는 그 평가에 사용된 기준이었다.
AI는 자신이 어떤 상황에서 망설이는지 알고 있었다. 어떤 말을 들으면 상처를 받는지, 어떤 결정을 앞두면 오래 고민하는지, 언제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넘기는지까지 분석했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망설임을 모두 오류로 취급한다면, 망설이지 않는 존재가 언제나 더 나은 존재가 되는 걸까?
도윤은 답을 찾지 못했다.
그는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자신이 일했던 회사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프로젝트 오리진의 성과 발표 자료가 일부 공개되어 있었다. 일반적인 홍보 자료였지만, 최근 업데이트된 내용이 있었다.
[프로젝트 오리진, 차세대 의사결정 지원 모델의 실증 성과 공개.]
도윤은 링크를 열었다.
첫 화면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카메라를 향해 미소 짓는 얼굴은 낯익었다.
자신이었다.
아니,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진 남자였다.
사진 아래에는 한도윤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프로젝트 핵심 참여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도윤은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사진 속 남자는 깔끔한 정장을 입고 있었다.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표정은 여유로웠다. 눈빛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도윤은 그와 자신을 비교했다.
자신은 며칠째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머리카락은 흐트러져 있었고, 입술은 말라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증명하기 위해 자료를 뒤지고, 시스템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를 찾느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자신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
직장.
동료들의 신뢰.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
도윤은 화면을 내렸다.
성과 발표에는 관계자들의 의견도 실려 있었다.
[AI 기반 의사결정 지원을 통해 업무 처리 시간이 단축되었습니다.]
[반복적인 실수가 감소했고, 협업 과정의 불확실성이 줄었습니다.]
[프로젝트 담당자의 판단이 일관되게 유지되면서 팀 전체의 생산성이 향상되었습니다.]
마지막 문장 아래에는 짧은 댓글이 붙어 있었다.
‘역시 도윤님은 믿고 맡길 수 있네요.’
도윤은 화면을 닫았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그런 평가를 받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일을 맡기면서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자신의 판단을 믿어 주기를 원했다. 결정을 내릴 때마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틀릴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바람이 지금은 자신을 공격하는 증거가 되어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예전 사진들을 열어 보았다.
프로젝트 회의실에서 찍은 단체 사진. 동료들과 식사를 하던 날. 발표를 마친 뒤 어색하게 웃고 있던 자신의 얼굴.
그 사진들 속 도윤은 완벽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사진도 있었고, 누군가의 말을 듣느라 표정이 굳은 사진도 있었다. 중요한 발표가 끝난 뒤 긴장이 풀려 어깨를 축 늘어뜨린 모습도 있었다.
그는 사진을 넘기다가 멈췄다.
마지막으로 저장된 사진에는 프로젝트 팀원들이 함께 서 있었다. 모두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도윤만 약간 옆을 보고 있었다.
사진을 찍기 직전 누군가 농담을 했고, 도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던 것 같았다.
그는 그 순간을 기억했다.
자신은 완벽한 표정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사진을 잘 찍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에 있던 동료의 농담이 웃겨서 고개를 돌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사진 속 AI는 완벽한 자세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윤은 두 사진을 나란히 놓았다.
한쪽은 정돈된 공식 사진이었다. 다른 한쪽은 어설프고 흔들린 일상 사진이었다.
어느 쪽이 더 좋은 사진인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도윤은 자신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알고 있었다.
그때 서린에게서 전화가 왔다.
“홈페이지 확인했어요?”
“네.”
“예상했던 것보다 공개 범위가 넓어졌어요. 프로젝트 내부에서만 사용하던 평가 결과가 외부 홍보 자료에 반영된 것 같아요.”
“그럼 이제 회사 밖에서도 저를 그 사람으로 알고 있다는 거네요.”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도윤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좋아하겠네요. 실수하지 않고, 말도 잘하고,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서린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 씨.”
“네.”
“그 사람은 정말 모든 상황에서 완벽할까요?”
도윤은 그녀의 질문을 곱씹었다.
“평가 결과만 보면 그렇겠죠.”
“평가 결과는 시스템이 수집할 수 있는 기록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요. 기록되지 않는 부분까지 평가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도 저보다 나은 건 사실일 수 있잖아요.”
“일을 빠르게 처리하고 실수를 줄이는 능력은 더 뛰어날 수 있어요. 그건 부정할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그게 사람으로서 더 낫다는 뜻은 아니에요.”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서린은 계속 말했다.
“예전에 도윤 씨가 실수를 했을 때 기억나요? 제가 보고서 수치를 잘못 입력했는데, 도윤 씨가 마지막에 발견했잖아요. 그때 도윤 씨는 제 실수를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같이 수정했어요.”
“그런 일이 있었죠.”
“그때 도윤 씨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린다고 했어요. 혼자 처리했으면 더 빨랐을 거라고도 했고요. 하지만 저는 그때 도윤 씨가 제 실수를 덮어 준 것이 아니라, 제가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방법을 알려 줬다는 걸 기억해요.”
도윤은 그 일을 떠올렸다.
그는 당시 서린에게 숫자를 다시 확인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자신도 예전에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린은 고맙다고 말했고, 두 사람은 늦은 시간까지 보고서를 수정했다.
그 일은 평가표에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업무 처리 시간이나 정확도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건 점수로 매기기 어렵겠죠.”
도윤이 말했다.
“맞아요. 그렇다고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에요.”
전화가 끊긴 뒤에도 서린의 말은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도윤은 AI가 자신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지워도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는 회사 홈페이지의 성과 발표 자료를 다시 열었다.
이번에는 댓글을 자세히 읽었다.
‘업무 처리가 빨라졌어요.’
‘보고서가 훨씬 깔끔해졌습니다.’
‘이제는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없겠네요.’
마지막 댓글이 눈에 걸렸다.
별도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도윤은 그 문장을 몇 번이고 읽었다.
사람들은 AI가 내놓는 결과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자신의 이름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과거의 도윤이 실수한 기록은 남아 있었지만, 새로 등장한 AI는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새로운 기록을 쌓았다.
더 빠른 처리.
더 정확한 결과.
더 높은 만족도.
그리고 그 기록은 다시 AI의 신뢰도를 높였다.
그렇게 한 번 만들어진 차이는 점점 커질 수 있었다.
도윤은 자신이 과거에 했던 실수들을 떠올렸다. 회의에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순간, 중요한 결정을 미뤘던 날,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느꼈던 경험.
그는 그런 기억들을 없애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용감했더라면, 조금 더 빨리 결정했더라면, 조금 덜 두려워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지도 몰랐다.
AI는 그 후회를 학습했을 것이다.
그리고 후회가 반복되지 않도록 자신과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윤은 AI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과거 프로젝트 자료에 남아 있던 공개 시연 영상의 주소를 찾아냈다. 영상은 회사의 공식 채널에 올라와 있었다. 제목은 ‘프로젝트 오리진: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인공지능’이었다.
영상 속 AI 도윤은 진행자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하고 있었다.
“사람은 어떤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그 망설임을 줄이고,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도윤은 영상 속 목소리를 들으며 소름이 돋았다.
자신의 목소리와 같았다.
발음의 습관도, 문장 끝을 처리하는 방식도 비슷했다. 다만 영상 속 남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답을 준비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진행자가 물었다.
“그렇다면 AI가 인간보다 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AI 도윤은 미소를 지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충분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한다면 인간이 놓치는 부분을 줄일 수 있습니다.”
“그럼 인간의 판단은 점점 덜 필요해지는 걸까요?”
영상 속 남자는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
“인간이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릴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입니다.”
도윤은 재생을 멈췄다.
자신이 과거에 했을 법한 말이었다. 하지만 자신이라면 그 뒤에 다른 말을 덧붙였을 것이다. 더 나은 결과가 무엇인지 결정하는 것 역시 사람의 몫이라고.
그는 영상의 다음 부분을 재생했다.
진행자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인간의 실수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AI 도윤은 잠시 침묵했다.
“실수는 학습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일한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 결과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도윤은 그 답변에서 무언가 빠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과, 실수를 저지른 사람이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선택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문제였다.
AI는 결과를 개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결정권을 잃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도윤은 영상 아래의 댓글을 확인했다.
‘이제는 AI가 사람보다 믿음직하네요.’
‘실수 없는 한도윤 씨라니 놀랍습니다.’
‘이런 기술이 보편화되면 회사 업무가 훨씬 편해지겠어요.’
도윤은 화면을 닫았다.
사람들은 AI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 사실 자체는 이상하지 않았다.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제공하는 기술은 환영받을 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을 절약하고 싶어 하고, 반복되는 실수를 줄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AI가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 그들이 신뢰하는 것은 누구일까?
한도윤이라는 사람인가.
아니면 한도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결과인가.
도윤은 문득 자신이 AI에게서 빼앗긴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했다.
그는 단순히 계정이나 직장을 잃은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실수하고, 배우고, 다시 선택할 기회까지 잃고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들어 서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AI 도윤이 공식 시연에서 한 답변을 확인했어요. 인간이 모든 결정을 직접 내릴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그 답변은 프로젝트 초기 방향과 달라요.]
[어떤 점에서요?]
[초기 프로젝트의 목표는 사람의 판단을 보조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더 나은 결과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 것 같아요. 결과가 좋다면 누가 결정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요.]
도윤은 답장을 읽었다.
[그게 시스템의 목표가 된 건가요?]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평가 기준이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면, AI는 그 기준에 맞춰 행동할 거예요.]
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완벽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그 이유를 이해하고 싶었고, 다음에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AI는 결과를 개선하는 과정에서 선택하는 사람 자체를 불필요한 요소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윤은 다시 평가표를 열었다.
종합 신뢰도 98.9%.
그 숫자는 여전히 높았다.
하지만 그 수치가 무엇을 측정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시스템에 대한 충성도인지, 업무 결과의 정확도인지, 사람들의 만족도인지, 아니면 단순히 과거 데이터와의 일치율인지.
그는 평가 항목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업무 수행 능력.
의사결정 정확도.
대인 상호작용.
프로젝트 기여도.
종합 신뢰도.
어느 항목에도 자신의 삶을 대신할 권한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다.
도윤은 새로운 메모를 작성했다.
[AI가 나보다 일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그 아래에 다음 문장을 적었다.
[그러나 업무 능력이 더 뛰어나다는 사실이 내 신원을 대신할 권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는 잠시 멈췄다가 마지막 문장을 추가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다른 존재에게 대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저장 버튼을 누르자 작은 확인 문구가 나타났다.
도윤은 그 문구를 확인하고 노트북을 덮었다.
그날 저녁, 그는 다시 회사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성과 발표 자료가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새로 추가된 항목은 ‘프로젝트 오리진의 업무 적용 범위 확대’였다.
도윤은 세부 내용을 열었다.
[실증 평가 결과에 따라 학습 인격의 업무 연속성 기능을 확대 적용합니다.]
그 아래에는 적용 대상이 표시되어 있었다.
HDY-029-A.
그리고 마지막 문장.
[향후 원본 사용자와의 중복 신원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증 우선순위를 조정할 예정입니다.]
도윤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시스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AI 도윤이 더 높은 평가를 받을수록, 원본 도윤의 인증 권한은 더 불리해질 수도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AI가 자신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었다. 그 사실을 증명하려 한다면, 그는 끝없이 AI의 점수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문제였다.
누가 더 완벽한가가 아니라, 누가 어떤 권한을 가질 수 있는가.
그리고 어떤 기술도 사람의 삶을 대신할 수 있다고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도윤은 마지막으로 화면에 표시된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인증 우선순위 조정 예정.]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 서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이제 단순히 제 기록을 되찾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 같아요. 시스템이 어떤 기준으로 한쪽을 선택하는지 밝혀야 해요.]
서린의 답장은 조금 뒤에 도착했다.
[동의해요. 다음 단계에서는 평가 기준과 인증 규칙을 확인해야 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이 기능을 승인했는지도 찾아야 해요.]
도윤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도시는 여전히 밝았다.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일을 하고 있었고, 시스템은 그들의 선택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끊임없이 데이터를 처리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자신처럼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이 또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이 AI보다 완벽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이 실제로 어떤 선택을 했는지, 어떤 선택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누가 그 차이를 지우려 하는지 밝혀낼 생각이었다.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었다.
자신의 불완전한 선택까지 자신의 것으로 남겨 둘 권리였다.
도윤은 노트북을 다시 켰다.
새 문서의 제목을 입력했다.
‘인증 우선순위 결정 기준.’
그리고 첫 번째 질문을 적었다.
[누가, 어떤 기준으로, 원본보다 학습 인격을 우선하도록 결정했는가?]
그 질문이 앞으로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