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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 권한

지은이 백묘담 · 2026-10-24

평가표가 잠긴 뒤에도 검증 화면은 그대로였다.

질문 기록과 AI의 답변은 남아 있었고, 세션 종료까지 남은 시간도 정상적으로 줄어들고 있었다. 달라진 것은 내가 평가 결과를 입력할 수 없다는 점뿐이었다.

나는 우선 화면을 새로 고쳤다. 평가표는 여전히 회색이었다.

다른 항목을 선택해도 반응이 없었다. 혹시 내 컴퓨터 문제인가 싶어 사내 업무망에 접속했지만 메일도, 자료실도 정상적으로 열렸다.

도경: 이상하네.

내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계속 하자 신경 쓰였는지 옆자리의 민규씨가 고개를 들어 내 화면을 보며 물었다.

김민규: 왜요?

도경: 검증 평가표가 안 눌려요. 세션은 살아 있는데.

도경: 이런 적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김민규: 잠시만요.

김민규: 제가 한 번 볼게요.

민규씨가 의자를 끌고 왔다. 그는 화면을 보더니 내게 마우스를 받아 몇 군데를 눌렀다. 결과는 같았다.

이민규: 세션 다시 열어 보실래요?

이민규: 보통 시스템은 껐다 켜는 게 제일 확실한 해결 방법이 되기도 하잖아요.

도경: 진행 중인 기록이 날아갈 수도 있잖아요.

도경: 임시 저장 되나요? 중간에 제가 저장을 안해둬서요.

이민규: 제가 알기로는 중간에 한 번씩 자동 저장되니까 괜찮을 거예요.

도경: 일단 관리자한테 물어보고 다시 시도해볼게요.

나는 검증 지원 담당자에게 내부 메시지를 보냈다. 세션 번호와 오류가 발생한 시각, 마지막 질의 내용을 함께 첨부했다. 몇 분 뒤 답장이 왔다.

[해당 세션의 상태를 확인 중입니다. 추가 입력을 중단하고 대기해 주세요.]

도경: 확인하고 답변 줄 것 같네요.

도경: 같이 고민해줘서 고마워요. 커피 살게요.

민규씨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손을 떼고 뒤로 기대 팔짱을 낀 채 화면을 바라봤다.

내가 입력한 마지막 질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답변을 회피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문장. 표현이 지나치게 공격적이었나 싶어 다시 읽어 봤지만, 검증 지침에 어긋나는 말은 아니었다.

시스템이 질문을 이해했는지 확인하고, 부족한 답변을 보완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내 업무니까.

오전 10시 3분, 화면이 한 번 깜빡였다.

[검증 게이트웨이 연결이 종료되었습니다.]

[사유: 접근 권한 재확인]

나는 곧바로 재접속을 시도했다.

[현재 계정으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시도도 같았다. 세 번째에는 로그인 화면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나는 사내 메신저에서 검증 지원 담당자에게 다시 메세지를 보냈다.

[제 계정이 차단된 건가요?]

답은 바로 오지 않았다. 잠시 뒤 전화가 울렸다. 지원팀이었다.

보안팀: 도경님, 지금부터는 접속 시도하지 말아 주세요.

도경: 무슨 문제인지 설명 먼저 해 주셔야죠.

보안팀: 국가 보안 검토 대상으로 분류됐습니다. 저희 쪽에서 지금 당장은 세부 사유를 확인할 수 없어요.

도경: 보안 검토요? 제가 검증 중에 질문한 게 국가 보안 검토가 필요한 사항이었다는 말씀입니까?

도경: 도대체 이게...

보안팀: 그 내용은 담당 심사관에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보안팀: 관련 안내가 회사로 전달될 예정입니다.

통화가 끝났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국가 보안 검토.

익숙한 단어였지만 내 일과 연결해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검증 업무를 하다 보면 제한 자료를 요청하는 질문도 있었다. 그럴 때 시스템은 자료를 제공하지 않거나 접근 제한 근거를 안내했다. 질문한 사람의 권한을 검토하는 일은 드물었다.

나는 업무 지침을 열어 관련 항목을 찾았다.

'비인가 자료에 대한 반복 접근 시도'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내가 요청한 것은 공개 예산의 배분 근거였다. 게다가 자료가 비공개라는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

장석현: 도경씨.

장석현: 잠깐 회의실에서 봅시다.

고개를 들자 부사장님이 서 있었다.

회의실에는 부사장님과 보안관리팀장, 인사 담당자가 앉아 있었다.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걸 보자 마음이 불편해졌다.

나는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직감했다.

부사장님이 먼저 상황 설명을 해주시려는 듯 했다.

장석현: 국가 검증 운영기관에서 연락이 왔어요. 도경씨 계정에 보안 검토가 걸렸답니다.

도경: 저도 방금 알게 됐습니다.

도경: 그저 매일 하던 업무로 검증 중에 정상적인 질문을 했을 뿐입니다.

도경: 혹시 로그 확인이 아직 안됐습니까?

장석현: 질문 내용은 확인했어요. 우리가 보기에도 당장 문제 삼을 만한 건 없습니다.

그 말에 조금 안심하려던 순간, 보안관리팀장이 태블릿을 내 쪽으로 돌리며 심각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보안팀: 운영기관에서 해당 세션의 원본 기록 보존을 요청했습니다.

보안팀: 개인적으로 내려받은 자료나 외부에 공유한 내용이 있습니까?

도경: 없습니다. 전부 검증 세션 안에서 처리했습니다.

보안팀: 검증 화면을 촬영하거나 별도 저장한 적은 없고요?

도경: 제가 이 일을 한 지가 벌써 몇 년인데요.

도경: 기본적인 그런 보안 사항은 위반하지 않습니다.

도경: 말씀하신 모든 상황이 아닌데 제가 왜 이런 확인까지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팀장은 내 대답을 기록했다.

취조당하는 듯한 이 분위기에 미칠 노릇이었다.

보안팀: 보안 검토가 시작되면 통상적으로 확인하는 절차이니 걱정마십시오.

보안팀: 현재로서는 위반이 확정된 상태가 아니고 이런 경우가 흔치 않아서 조사를 진행하는 것 뿐입니다.

도경: 그럼 제 권한은 언제 복구됩니까?

도경: 언제부터 다시 원래 업무로 복귀할 수 있죠?

인사 담당자가 가져온 태블릿에 정보를 적으며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작성을 마친 후 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보탰다.

보안팀: 확실하진 않습니다. 일단 심사 결과가 나와봐야 알겠네요.

보안팀: 그동안 국가 인가 업무에서는 일시적으로 제외될 예정입니다.

보안팀: 사내 일반 업무는 가능하지만, 검증 시스템과 관련 자료에는 접근하지 말아 주세요.

나는 부사장님을 봤다. 그는 팔짱을 낀 채 한 손으로는 턱을 한참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장에 해결하기 어려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괜한 말을 덧붙였다가 더 손해일 수 있겠지만, 그냥 넘어갈 수도 없다.

도경: 부사장님, 이건 제가 문제를 발견해서 확인한 겁니다.

도경: 검증자가 이상한 답변을 그냥 넘기면 오히려 그게 잘못 아닙니까?

장석현: 알아요. 그래서 우리도 기록을 보고 이의 의견을 낼 겁니다.

도경: 그럼 제가 직접 설명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장석현: 그 절차도 요청하겠습니다.

장석현: 다만 지금은 운영기관 쪽 판단이 먼저입니다.

부사장님은 내게 시선을 맞추고 차분한 어조로 계속했다.

장석현: 도경 씨가 일부러 문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석현: 하지만 국가 인가가 걸린 일이라 회사가 임의로 접속을 열어 줄 수는 없습니다.

장석현: 기다려 봅시다.

부사장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에 나는 입만 뻥긋거리다 이내 말하는 것을 멈추기로 했다.

답답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리로 돌아오니 내 컴퓨터에 새로운 알림이 떠 있었다.

[국가 인가 업무 권한: 임시 정지]

[심사 완료 전까지 관련 시스템 접근 제한]

화면 아래에는 이의제출 메뉴가 있었다. 나는 곧바로 사건 경위를 적기 시작했다.

질문 목록은 사전에 승인된 것이었고, 응답 제한 사유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이상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시간순으로 정리했다.

마지막에는 검증 목적의 질문을 보안 위반 가능성으로 분류한 근거를 알려 달라고 적었다.

제출 버튼을 누르자 접수번호가 발급됐다.

[예상 처리 기간: 영업일 기준 5~15일]

나는 날짜를 세어 봤다. 길면 3주였다. 그동안 국가 인가 업무를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팀원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 같으면 민규씨가 같이 먹자고 했을 텐데, 오늘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휴대전화에 담이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도담: [오빠 오늘 일찍 오는 거지?]

도담: [아빠 생신 식당 정해야 돼]

나는 잠시 고민하다 답장을 보냈다.

[응. 오늘은 일찍 갈게.]

오후에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일반 업무용 자료를 정리했지만, 화면을 볼 때마다 오전의 검증 기록이 떠올랐다.

시스템은 왜 같은 말만 반복했을까. 공개할 수 없는 자료라면 그렇게 답하면 될 일이었다. 내가 확인하려던 것은 그 단순한 원칙이었다.

퇴근하기 직전, 부사장님께 메시지가 왔다.

[내일 오전에 운영기관과 통화 예정. 일단 집에서 기다려요. 불필요한 접속 시도는 하지 말고.]

나는 알겠다고 답했다. 더 물어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다.

***

집에 도착하니 거실에서는 식당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담이가 화면에 메뉴 사진을 띄워 놓고 있었고, 어머니는 가격을 비교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식탁 옆에 앉아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었다.

도담: 오빠 왔다!

민정희: 생각보다 일찍 왔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나는 외투를 벗으며 웃었다.

도경: 오늘 일이 좀 일찍 끝났어요.

도담: 잘됐다. 이것 좀 봐. 아빠는 자꾸 아무 데나 괜찮다시네.

담이가 화면을 내밀었다. 나는 사진을 몇 장 넘겨 보다가 아버지께 여쭸다.

도경: 아빠, 이번 생신은 진짜 잡수고 싶은 거 하나만 골라 보세요.

도경: 작년에는 담이 먹고 싶은 거 하고 재작년엔 엄마 드시고 싶은 거 먹으러 갔잖아요.

도기철: 나는 너희랑 먹으면 다 좋지.

담이가 그럴 줄 알았다며 투덜거리자 아버지가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그 순간만큼은 오전에 있었던 일을 잊을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방에 들어와서야 휴대전화를 다시 확인했다. 이의 의견은 여전히 접수 상태였다.

내일 통화가 잘되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문제없다고 했으니까.

그때 새로운 알림이 도착했다.

[국가 인가 업무 적격성 심사]

[추가 확인 사항이 발생하여 심사 절차가 변경되었습니다.]

나는 알림을 열었다. 화면에는 짧은 안내가 적혀 있었다.

[심사 상태: 임시 정지 → 인가 유지 적격성 재검토

심사 기간 중 해당 인가를 전제로 한 직무 수행이 제한됩니다.]

문장을 두 번 더 읽었다.

임시 정지와 적격성 재검토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아래쪽의 설명 버튼을 눌렀다.

[인가 유지 적격성 재검토 결과에 따라 직무 자격이 변경될 수 있습니다. 직무 자격 변경 시 시민 생산성 평가에 반영됩니다.]

나는 화면을 내려다봤다. 직무 자격이 바뀌면 생산성 평가에도 영향을 준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검토 중일 뿐이었다. 잘못된 판단이라면 바로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손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방 밖에서 담이가 나를 불렀다.

도담: 오빠! 식당 예약할 건데, 토요일 저녁 괜찮아?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괜히 상황이 심각해진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숨기고 싶었다.

나는 양손으로 이마를 감싸 고개를 푹 숙인 채 너무 작지 않게 말했다.

도경: 응. 괜찮아.

대답하고 나서도 나는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