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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도요

지은이 받아적는사람 · 2026-10-22

그리고 읽은 자들은 모두 돌아갔다.

그 한 줄을 들고 셋방에 돌아왔다. 페트라는 자고 있었다. 나는 궤짝을 열고 서른 번째 공책을 꺼냈다. 장교가 마지막으로 들려준 장면이 거기 있었다. 연재가 끊긴 바로 그 대목.

「첫눈이 내린 아침, 황녀궁 온실. 새로 온 시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황녀는 창밖의 눈을 보며 잔을 들었다. 찻잔이 입술에 닿았다.」

그 아래에 작년의 내가 적어 둔 메모가 있었다. 「여기서 끝. 장교님 탁자 침. 독이래. 황녀가 마시는지는 아무도 모름.」

막으면 돌아왔다. 다리도, 북문도. 두면 사람이 다쳤다.

외투에서 라울 경의 낱장을 꺼내 등잔에 비췄다. 글씨는 여전히 검었다.

「그믐 전날 밤, 촛불을 든 늙은 시종장이 서쪽 담 아래를 지났다. 담 그림자에서 칼이 나왔다.」

칼은 나왔다. 촛불도 지나갔다. 그런데 그 촛불을 든 사람은 망토만 빌린 스물여섯 살 황태자였다. 늙은 시종장은 그 시각 식기실에서 숟가락을 세고 있었다.

책이 그 한 낱말을 셌다면. 적힌 낱말은 하나도 빠짐없이 센다면. 적히지 않은 것은 세지 않는다면.

나는 공책의 네 문장을 손가락으로 하나씩 짚었다. 첫눈, 온실, 시녀, 찻잔, 입술. 어디에도 찻잔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 * *

"막지 말라고?"

카시안이 근신 중인 서재에서 되물었다. 창밖으로 첫눈이 날리기 시작했다.

"네. 막으면 돌아와요. 이번엔 황녀님 쪽으로요. 어떤 모양으로 올지 아무도 몰라요."

"그럼 두라고? 독이 든 잔을?"

"잔은 들게 해요. 입술에도 닿게 해요. 장교님이 외운 네 문장,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다 일어나게 할 거예요." 나는 공책을 펼쳐 그의 앞에 놓았다. "대신 찻잔 안은 우리가 채워요."

카시안이 네 문장을 읽었다. 오래 읽었다.

"책이 그걸 봐줄까."

"라울 경 낱장은 아직 검어요. 늙은 시종장 자리에 전하가 지나가서요." 나는 낱장을 그 옆에 놓았다. "책은 적힌 낱말을 하나하나 세는 것 같아요. 적히지 않은 건 안 세고요."

"같아요?"

"2권 다리도 그랬어요. 제 공책엔 「강 위의 다리가 무너졌다」까지만 있어요. 어느 다리인지는 아무도 말한 적이 없고요. 그래서 막은 다리 대신 석 달 뒤에 옆 다리가 무너졌을 때 다들 거기서 끝났다고 했죠. 책은 다리 하나면 됐던 거예요."

"그래도 아직 「같다」는 거군."

"네. 확인하는 방법은 하나예요. 해 보는 거."

"도박이군."

"대질 때도 도박이었어요."

"그때는 네 목만 걸렸지. 이번엔 황녀야."

"알아요." 나는 숨을 골랐다. "그래서 전하한테 먼저 말하는 거예요. 성벽에서 약속하셨잖아요. 원작을 막을 땐 저한테 먼저 말하기로. 저도 그래야 공평하죠."

카시안이 공책에서 눈을 들었다.

"내가 싫다고 하면?"

"그럼 다른 길을 하루 더 찾아볼게요. 근데 첫눈이 오늘 밤에 쌓여요. 하루가 없어요."

그가 창밖을 봤다. 눈송이가 굵어지고 있었다.

"이번엔 혼자 안 해요." 나는 공책을 덮었다. "전하는 궁 밖에 못 나가시니까 노라 씨를 빌려 주세요. 황녀궁 하인장이랑 같은 마을 사람이래요. 그리고 도라 소장한테는 제가 말할게요."

"도라한테?"

"원작대로 하는 거잖아요. 소장이 제일 좋아할 거예요."

카시안이 처음으로 소리 내 웃었다.

* * *

"원작대로."

도라가 소장실 책상 너머에서 내 말을 되풀이했다.

"네. 첫눈 아침, 온실, 새 시녀, 찻잔. 황녀님이 잔을 입에 대는 것까지 다요. 원작이 끊긴 데까지 하나도 안 빼요."

"황태자는 막자고 했을 텐데."

"제가 말렸어요."

도라가 장갑을 벗었다. 맨손을 처음 봤다. 손가락 마디마다 펜 굳은살이 있었다.

"그럼 넌 뭘 하는데."

"구경이요. 소장님이랑 같이."

그날 아침 온실에서 나는 정말로 구경만 할 생각이었다. 일은 그 전날 밤에 끝내 둘 거니까.

나는 외투에서 추천서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렸다. 서명 칸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돌려주는 거야?"

"이건 따로 받을게요. 아니면 안 받을게요."

도라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녀는 추천서를 서랍에 넣지 않았다. 책상 위에 그대로 두었다.

* * *

그날 밤 황녀궁 부엌은 계피 냄새가 났다.

베르타 아줌마가 보내 준 계피였다. 노라가 황녀궁 하인장을 데려왔고, 하인장이 새 시녀를 데려왔다. 열여섯쯤 된 여자애였다. 앞치마 주머니를 두 손으로 꽉 쥐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마르타요."

"마르타. 주머니에 뭐 있는지 알아."

여자애의 얼굴이 하얘졌다. 주머니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문 밑으로 봉투가 들어왔지. 금화 두 닢이랑 누런 종이랑 작은 병."

"저, 저는……."

"괜찮아. 나도 붙박이야."

마르타가 나를 봤다. 내 가슴엔 동판이 없었다.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언니도요?"

"보르 남작가 셋째. 마르코 상단에서 10년 하녀 했어. 거기 부엌 베르타 아줌마가 이 계피 보내 줬고."

마르타가 주전자 옆의 계피를 봤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을 조금 풀었다.

"그 병, 무서웠어요. 밤마다 주머니에서 꺼내 봤어요. 버리면 아빠가 맞을 것 같고, 넣으면 제가 교수대 갈 것 같고."

"둘 다 안 해도 돼."

"아빠가 빚이 있어요. 종이에 적힌 대로만 하면 열 닢 더 준대요. 대서소 아저씨가 그랬어요. 건너온 이들 책에 나오는 일이라 원래 일어날 일이라고."

"응. 원래 일어날 일이야."

나는 손을 내밀었다. 마르타가 떨리는 손으로 종이와 병을 꺼냈다. 종이에는 그 문장이 있었다. 「새로 온 시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가시 없는 장미 무늬. 새것처럼 검은 잉크.

"내일 아침에 이 종이에 적힌 대로 다 해. 한 글자도 빼지 마. 찻잔 내려놓는 것까지."

"그럼 황녀 마마가……."

"찻주전자는 이 부엌에서 나가지?"

하인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타의 계피가 주전자 옆에서 김을 올렸다.

"병은 내가 가질게. 너는 아무것도 안 넣으면 돼. 그거 하나만 원작이랑 다르게 해."

* * *

첫눈은 밤새 쌓였다.

온실 유리벽 너머로 하얀 정원이 보였다. 금색 가시 덩굴 위에도 눈이 얹혔다. 나와 도라는 온실 문 옆, 시녀들이 서는 자리에 섰다. 도라가 나를 흘끗 보고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여기가 제일 잘 보여요." 내가 속삭였다. "시녀 자리는 원래 그래요."

"그건 어떻게 알아?"

"……시녀들이 그러던데요."

도라가 코로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무슨 뜻인지 묻지 않았다.

"황녀가 마시면 어떻게 돼?" 도라가 유리벽을 보며 물었다. 목소리가 낮았다. "나도 거기서부터는 원고를 못 받았어."

"모르시는 거예요?"

"기획서엔 황녀가 즉위한다고만 적혀 있어. 이 아침에 무슨 일이 있는지는 안 적혀 있고." 장갑 낀 손가락이 외투 소매를 꽉 쥐었다. "그러니까 죽지는 않겠지. 주인공이니까."

"그러니까 두신 거예요?"

"그러니까 두는 거야. 주인공은 끊는 자리에서 안 죽어. 다음 화에서 살아나지. 내가 그렇게 끊었으니까 알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라의 손이 소매를 놓지 않았다. 그녀도 모르는 것이었다. 다음 화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황녀가 들어왔다. 은발이었다. 2권에서 염색한 그 머리. 열두 살 맨발이던 아이가 이제 키가 컸다. 그녀는 창가 의자에 앉아 밖을 봤다.

마르타가 은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손이 떨렸다. 찻잔이 받침에 부딪혀 달그락거렸다.

새로 온 시녀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황녀는 창밖의 눈을 보며 잔을 들었다.

도라가 숨을 멈췄다. 나도 멈췄다. 옆에서 장갑 낀 손이 주먹을 쥐었다.

찻잔이 입술에 닿았다.

거기까지였다. 나를 뺀 1급 마흔한 명이 아는 전부. 장교가 탁자를 내리친 자리. 도라가 「끊는 자리 하나는 기가 막혔지」 하고 웃은 자리.

그다음은 아무도 몰랐다.

황녀가 한 모금 마셨다. 잔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조금 웃었다.

"계피네."

마르타의 앞치마 주머니가 바스락거렸다. 나만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쟁반을 받는 척 다가가 주머니 속 종이를 봤다.

검던 글씨가 잿빛으로 바래 있었다. 네 문장 모두.

그런데 마지막 문장 아래, 아까는 비어 있던 자리에 잉크가 번지고 있었다. 새것처럼 검은 한 줄이었다.

「새로 온 시녀는 그 겨울을 넘기지 못했다.」

쟁반을 받는 손이 떨렸다. 마르타가 나를 봤다. 그 애는 글을 못 읽었다.

외투 안의 다른 종이를 만졌다. 라울 경의 종이. 꺼내 보지 않아도 알았다. 오늘 아침 집을 나설 때도 그 글씨는 새것처럼 검었다.

* * *

황태자궁 서재 창가에 카시안이 서 있었다. 근신 사흘째였다.

"살았나."

"계피차 마셨어요. 맛있다고 웃었어요."

카시안이 고개를 숙였다. 어깨가 한 번 크게 내려갔다. 그는 한참 그렇게 있었다.

"종이는."

나는 두 장을 꺼내 책상에 나란히 놓았다. 마르타의 종이는 네 문장이 잿빛이었고 맨 아래 한 줄만 검었다. 라울 경의 종이는 전부 검었다.

카시안이 맨 아래 줄을 소리 내 읽었다. 읽고 나서 한참 말이 없었다.

"이건 원작에 없던 줄이지."

"없었어요. 찻잔이 입술에 닿고 나서 생겼어요."

"독은 네가 뺐는데, 값은 그 애한테 붙었군."

"……오늘 밤 남부로 보내요. 노라 씨 마을 사람들이 길을 알아요. 이 줄이 바래는지는 겨울이 끝나야 알아요."

"라울은 아직이고."

"네. 촛불 든 사람이 지났고 칼도 나왔어요. 그런데 지나간 사람이 늙은 시종장이 아니었잖아요."

"내가 지나갔지."

카시안이 검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종이에 닿지 않게.

"그럼 언젠가 다시 오겠군. 다른 모양으로."

"그때는 라울 경이 직접 지나가게 해요. 칼이 어디에 닿을지만 우리가 정하고요."

"그게 되나."

"반은 됐어요. 오늘."

그가 나를 봤다. 오래.

"넌 오늘 원작을 말하면서 한 번도 「대요」라고 안 했어."

"……세셨어요?"

"건너뛰었다는 말도 세었는데, 그것도 세야지." 그가 라울 경의 종이를 접어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 그 손을 한 번 더 눌렀다. 이번엔 기름 냄새가 나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면." 그가 창밖 북문 쪽을 봤다. "첫 비 뒤로 건너온 이들한테 넘어간 자리를 하나씩 황실로 돌려받을 거야. 폐하 의무관 자리부터. 황태자 인장으로 못 여는 문이 이 궁에 있으면 안 되지. 그다음엔 성벽에 한 번 올라가 볼 거고. 막을 것도 적실 것도 없이."

"……그때 저도 가도 돼요?"

"조언역이 없으면 내가 뭘 보는지 누가 적지." 그가 펜을 집었다. "그리고 다음 낱장부터는 네 계획을 내가 받아 적지. 오늘처럼 혼자 다 들고 다니지 말고."

"……네."

그가 문 쪽으로 턱짓했다. "도라가 부르지?"

"네. 해 질 때요."

"가 봐. 무슨 일이 있으면 노라한테 말해."

* * *

해 질 무렵 소장실은 조용했다.

도라는 창가에 서서 눈 덮인 대회랑 지붕을 보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자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원작대로 안 된 게 하나도 없어."

"네."

"첫눈, 온실, 새 시녀, 찻잔, 입술. 토씨까지 다 맞았어. 그런데 황녀는 계피차를 마셨어." 도라가 돌아섰다. "독은 어디 갔어?"

"여기요. 마개도 안 열었어요."

나는 작은 병을 책상에 올렸다.

"그 시녀는?"

"오늘 밤 남부로 보내요. 아래층 사람들이 길을 알아요."

"독을 받은 붙박이를 그냥 보냈다고?"

"그 애는 종이에 적힌 대로 했어요. 찻잔을 내려놓으라고 해서 내려놓았어요. 그게 다예요."

"병을 준 사람은?"

"몰라요. 문 밑으로 금화랑 같이 들어왔다고 했어요. 요하네스 때랑 똑같이요."

"요하네스?"

"그믐 전날 서쪽 담에서 칼을 든 사람이요."

"라울 경 일도 너였어?"

"전하랑 같이요. 아래층 사람들이랑."

도라의 눈이 가늘어졌다.

"너, 내 보고서엔 세 줄밖에 안 썼지."

"본 것만 썼어요."

"이젠 많이 봤겠네."

도라가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그대로 있던 추천서를 끌어와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10년 넘게 남의 원고를 고쳤어. 이런 수정은 처음 봐. 문장은 한 글자도 안 건드렸는데 이야기가 바뀌었어."

"그럼……."

"서명은 아직 못 해. 한 번은 운일 수도 있으니까."

"……."

"진찰은 허락하지. 내 이름으로." 도라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대신 라울 경 낱장은 오늘부터 등록소 금고에 둔다. 네 외투 안에 있는 거."

손이 안주머니로 갔다. 카시안이 쥐여 준 종이였다. 아직 그의 손 온기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라울 경 낱장이 돌아왔을 때도 네 방식이 통하면 그때 서명할게. 낱장은 내가 지켜. 너보다 내 금고가 튼튼하니까."

나는 종이를 꺼내 그 손바닥에 올렸다. 도라가 접힌 종이를 펴 보지도 않고 서랍에 넣었다. 맨 위, 「대공」이라고 적힌 서랍 바로 아래 칸이었다.

목이 메었다. 페트라는 내일 계단 세 칸을 더 가겠다고 했다. 의무실 문까지는 열두 칸이었다. 도라는 추천서를 내 쪽으로 밀었다. 그리고 손을 떼지 않았다.

"원작은 거기서 끊겼어. 그다음 걸 넌 어디서 봤지?"

도라가 나를 봤다. 추천서 위의 손은 그대로였다. "편집자는 그런 게 제일 궁금해."

"……."

"그래서, 너 진짜 몇 권까지 읽었어?"

손가락이 접히려고 했다. 접지 않았다.

3권 중반이라고 말하면 되었다. 등불 축제 다음 장에서 멈췄다고. 밤새 준비해 두었던 답. 한 달 동안 백 번은 한 말.

그건 장교의 말이었다.

"한 줄도요."

내 목소리였다.

도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추천서 위에 올려 둔 손도. 창밖에서 눈이 지붕을 미끄러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그러다 그녀의 다른 손이 책상 위를 천천히 건너갔다. 금색 가시가 감긴 놋쇠 손잡이 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