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17화. 틀렸다고 말하는 용기

지은이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제1부

17화. 틀렸다고 말하는 용기

월요일 오전, 민호는 팀장과 준호가 참석한 프로젝트 회의에 들어갔다.

회의실 화면에는 지난주에 정리한 일정표가 떠 있었다. 외부 검토가 예정대로 끝나는 경우와 지연되는 경우를 나누어 정리한 자료였다. 담당자별 역할과 보고 기준도 표시되어 있었다.

팀장은 자료를 살펴본 뒤 말했다.

“전체적인 방향은 괜찮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습니다. 외부 검토 결과가 하루 늦어지는 경우에는 대체 일정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했는데, 수정 요청이 여러 건 동시에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겁니까?”

민호는 준비해 온 답을 꺼냈다.

“우선 영향이 큰 항목부터 확인하고, 최종 제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수정 사항을 먼저 처리하는 방식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 수정 사항은 누가 확인합니까?”

민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 부분까지 구체적으로 나누지는 않았다. 수정 사항이 한두 건이면 자신과 준호가 역할을 나누어 처리할 수 있겠지만, 여러 건이 동시에 발생하면 다른 부서의 협조도 필요할 수 있었다.

“그 부분은 담당 부서와 협의해서 처리 순서를 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 세부적인 대응 절차까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부분을 보완합시다. 실제로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무엇을 결정하는지 정해 놓지 않으면, 다들 자기 일부터 처리하다가 전체 일정이 꼬일 수 있습니다.”

민호는 메모를 했다.

회의가 끝나기 전, 준호가 한 가지 의견을 덧붙였다.

“수정 사항을 영향도에 따라 구분하는 기준도 미리 정해 두면 좋겠습니다. 담당자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이 다를 수 있으니까요.”

민호는 준호를 바라보았다.

좋은 의견이었다. 그런데 순간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자신이 제안한 계획의 빈틈을 팀장이 지적했고, 이제 준호가 그 빈틈을 메우는 의견을 내놓았다. 마치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을 후배가 대신 찾아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민호는 그 감정을 숨기려 애쓰며 말했다.

“그 기준은 내가 정리해 보겠습니다. 업무 경험상 어느 항목이 중요한지는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으니까요.”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그 말로 끝났다.

자리로 돌아온 민호는 수정해야 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서를 작성하는 동안에도 준호의 의견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정리하겠다고 말한 것은 잘못이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이 맡은 역할에 필요한 일이었다. 다만 준호의 의견을 들은 순간, 그것을 함께 발전시킬 기회로 생각하기보다 자신의 부족함을 드러내는 지적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이 불편했다.

민호는 잠시 손을 멈췄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후배들의 의견을 잘 듣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업무에 도움이 되는 의견이라면 받아들이려고 노력해 왔다.

하지만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과, 자신의 판단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편안하게 인정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특히 자신이 경험을 쌓아 온 분야에서는 더 그랬다.

민호는 준호를 불렀다.

“아까 회의에서 말한 수정 사항의 영향도 구분 기준 말이야. 어떤 식으로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나?”

준호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우선 최종 제출 여부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항, 수치나 근거 자료를 다시 확인해야 하는 사항, 표현이나 형식을 다듬는 사항으로 나누면 어떨까 합니다. 다만 실제로는 담당 부서와 함께 기준을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생각이네. 내가 그 부분을 혼자 정리하겠다고 했는데, 자네 의견도 반영해서 같이 만들어 보자고.”

준호는 웃었다.

“네. 제가 초안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좋아. 대신 각 항목을 누가 최종 확인하는지도 함께 넣어 줘. 분류만 해 놓고 책임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까.”

준호가 자리로 돌아간 뒤 민호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자신의 경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준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해서 자신의 역할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놓친 부분을 보완할 수 있었다.

민호는 문서의 제목을 바꾸었다.

‘프로젝트 일정 관리안’에서 ‘프로젝트 일정 및 수정 대응 기준안’으로.

제목 하나가 달라졌을 뿐이지만, 이제는 자신이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완성된 문서가 되어 가고 있었다.

***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민호는 복도에서 팀장을 만났다.

팀장은 다른 회의에 가는 중인지 서류철을 들고 있었다.

“민호 씨, 오전에 정리한 자료는 준호 씨와 함께 보완하기로 했습니까?”

“네. 수정 사항의 영향도를 나누는 기준은 준호 씨가 초안을 만들고, 제가 담당자별 확인 절차와 결정 권한을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민호 씨가 모든 걸 직접 처리하는 것보다 팀원들이 각자 판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물론 최종 결과에 대한 점검은 필요하겠지만요.”

민호는 그 말을 듣고 조금 생각하다가 물었다.

“팀장님께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세요.”

“제가 후배들에게 일을 맡기면서도, 막상 문제가 생길 것 같으면 제가 직접 처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인데, 그게 오히려 팀원들이 판단할 기회를 줄이는 건 아닌지 고민됩니다.”

팀장은 잠시 생각했다.

“책임감이 강한 건 장점입니다. 다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모든 일을 자기 손으로 처리해야 안심하는 경우가 있죠. 그렇게 하면 당장은 일이 잘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그 사람에게 업무가 집중됩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까지 맡기고, 어느 시점에 개입해야 하는지가 중요하겠군요.”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맡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업무의 위험도와 담당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겠죠. 중요한 건 개입할 기준을 미리 정하는 겁니다. 문제가 커진 뒤에 대신 처리하는 것보다,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점검할 수 있도록 만드는 편이 낫습니다.”

민호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겼다.

팀장은 잠시 민호를 바라보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말씀드리자면, 후배가 좋은 의견을 냈다고 해서 선배의 경험이 부정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활용하면 결과가 더 좋아질 수 있겠죠.”

민호는 순간 뜨끔했다.

팀장이 자신의 마음속까지 알고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전 회의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정확히 짚는 말처럼 들렸다.

“명심하겠습니다.”

팀장과 헤어진 뒤 민호는 천천히 자리로 돌아왔다.

자신의 경험을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오랫동안 일해 왔고, 누구보다 많은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자신의 판단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존중받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의 좋은 의견을 불편하게 여긴다면, 자신이 원하는 인정과는 오히려 멀어질 수 있었다.

민호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자신이 보여 줘야 할 것은 혼자서 가장 많은 일을 처리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여러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를 정리하고, 중요한 문제를 놓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었다.

그것이 앞으로 자신에게 요구되는 역할이라면, 자신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했다.

***

퇴근 후 민호는 당구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태성이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조금 늦으셨네요.”

“회사에서 정리할 일이 있었습니다.”

“일이 잘 풀렸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잘 풀렸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후배가 찾아냈거든요.”

태성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공을 닦던 천을 내려놓았다.

“그럼 잘된 일 아닙니까?”

민호는 태성을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조금 불편했습니다. 제가 경험이 더 많으니까 당연히 제가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구도 비슷합니다. 오래 쳤다고 모든 공을 다 아는 건 아니니까요. 오래 친 사람도 처음 보는 배치를 만날 수 있고, 초보자가 우연히 더 좋은 길을 찾아낼 수도 있죠.”

“그렇다고 초보자의 판단이 언제나 맞는 건 아니겠죠.”

“물론입니다. 오래 친 사람의 판단이 더 정확할 때도 많습니다. 다만 누가 말했는지만 보고 판단하면, 좋은 길을 놓칠 수 있겠지요.”

민호는 웃었다.

“오늘은 회사에서 들은 이야기와 비슷한 말이 계속 나오는군요.”

“회사 이야기는 제가 모르지만, 당구대에서는 자주 보는 일입니다.”

태성은 큐를 가리켰다.

“오늘은 직접 쳐 보시죠. 생각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있으니까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이고 큐를 꺼냈다.

마침 재식이 한 게임을 마치고 자리를 비우려던 참이었다.

“민호 씨,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좋습니다.”

두 사람은 당구대 양쪽에 섰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뱅킹을 했다. 재식이 먼저 초구를 치게 되었다.

재식은 수구와 제1적구, 제2적구의 위치를 살펴보고 초구를 쳤다. 첫 득점에 성공한 뒤 다음 배치를 확인했다. 하지만 두 번째 공은 예상과 달리 움직이며 득점에 실패했다.

민호는 공이 멈춘 위치를 살폈다.

자신이라면 다른 경로를 선택했을 것 같았다. 수구가 쿠션에서 나오는 각도를 고려하면 옆돌리기가 더 나은 선택처럼 보였다.

재식은 잠시 공을 바라보다가 큐를 내려놓았다.

“두께를 조금 잘못 봤네요.”

민호는 그 말을 듣고 자신이 생각한 경로를 설명하고 싶어졌다.

“저라면 이 공은 옆돌리기를 시도했을 것 같습니다. 수구가 나오는 방향을 보면 그쪽이 조금 더 편하지 않을까요?”

재식은 민호가 가리킨 위치를 살펴보았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다만 저쪽으로 보내려면 제1적구를 맞히는 두께가 까다로울 것 같습니다. 지금 배치에서는 제가 아까 선택한 경로가 더 낫다고 봤습니다.”

민호는 순간 자신의 의견을 다시 강조하고 싶었다.

그러나 재식이 공을 살피며 설명하는 모습을 보니, 두 사람의 판단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성공 가능성과 다음 배치가 달랐을 수 있었다.

“그렇군요. 제가 수구가 나오는 각도만 보고 생각했네요. 제1적구를 맞히는 두께까지 고려하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겠습니다.”

재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 씨가 말한 경로도 시도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제가 지금 익숙하게 칠 수 있는 경로와는 조금 다르네요.”

민호는 웃었다.

“그럼 다음에 비슷한 공이 나오면 제가 한번 시도해 보겠습니다.”

게임은 계속되었다.

민호는 몇 차례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다 까다로운 배치를 만났을 때, 앞서 재식과 이야기했던 옆돌리기를 시도할 기회가 찾아왔다.

수구와 제1적구의 거리를 확인하고, 제2적구의 위치를 살폈다. 자신이 생각한 경로는 가능해 보였다. 다만 두께를 조금만 잘못 조절해도 수구가 목적구를 비켜 갈 수 있었다.

민호는 큐를 잡았다.

이번에는 자신의 판단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재식이 다른 경로를 선호한 이유를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선택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각도와 속도를 정하고 스트로크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으로 향했다. 공은 민호가 예상한 경로를 따라 움직였지만, 마지막에 각도가 조금 부족했다. 제2적구를 맞히지 못했다.

민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재식이 다가와 공을 살폈다.

“경로 자체는 괜찮았습니다. 다만 수구가 조금 더 돌아 나와야 했는데, 처음 두께가 약간 두꺼웠던 것 같습니다.”

민호는 공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그렇네요. 제가 생각한 방향으로는 갔는데, 마지막에 각도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큐를 세워 들고 잠시 생각했다.

“처음부터 잘못된 판단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네요. 실행에서 차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재식이 웃었다.

“그럴 수 있죠. 다만 같은 공을 다시 친다면 어떻게 바꿀지는 생각해 봐야 합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에는 두께를 조금 더 얇게 조절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는 변명도, 억지도 없었다.

자신이 선택한 경로가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실패였지만, 무엇이 부족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반대로 재식의 판단이 더 나았을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민호는 자신의 선택을 무조건 옳다고 주장할 필요가 없었다. 다음에 비슷한 공이 나오면 두 경로의 장단점을 다시 비교하면 될 일이었다.

경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재식은 여전히 민호보다 안정적인 득점을 보여 주었지만, 민호도 이전보다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실수한 뒤 곧바로 만회하려 하지 않았고, 좋은 득점을 했다고 다음 공을 가볍게 보지도 않았다.

마지막에는 재식이 승리했다.

“잘 쳤습니다.”

민호가 먼저 인사했다.

재식도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선택하신 공에 대한 설명이 더 분명해진 것 같습니다.”

“아직 부족합니다. 그래도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는 전보다 조금 더 알 것 같습니다.”

재식은 큐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게 중요하죠. 결과가 좋으면 기쁘고, 나쁘면 아쉽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왜 나왔는지 모르면 다음에도 같은 상황에서 망설이게 됩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 판단이 틀렸을 때는 틀렸다고 인정해야겠죠.”

재식이 웃었다.

“물론입니다. 다만 실패했다고 무조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공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살펴보고 구분해야죠.”

민호는 그 말을 들으며 미소 지었다.

회사에서도 당구에서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 자신을 믿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실패할 때마다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주저앉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근거로 판단했는지 확인하고, 결과를 살펴보고,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는 것.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도 참고하되, 최종적으로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

민호는 이제 그 차이를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

집에 돌아온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오늘 회사에서는 준호의 의견을 받아들였고, 당구장에서는 재식과 다른 경로를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의견이 불편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시도해 보니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는 일이 아니었다. 반대로 자신의 생각을 지킨다는 것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일은 아니었다.

민호는 천천히 문장을 적었다.

내 판단을 믿되, 내 판단만 믿지는 말 것.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틀렸다면 인정하고, 맞았더라도 더 나은 길이 있는지 살펴볼 것.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민호는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쓴 적이 많았다. 잘못을 인정하면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능력까지 부정당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달랐다.

준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고 자신의 경험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재식과 다른 경로를 선택했다고 해서 당구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인정할수록 다음에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분명해졌다.

민호는 수첩을 덮었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프로젝트 일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자신의 역할도 앞으로 더 구체화해야 했다. 당구 실력 역시 단번에 좋아질 리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틀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기보다, 틀렸을 때 다시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의 자신에게 더 필요한 실력일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