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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내 공을 책임진다는 것

지은이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 1부. 무너진 큐

### 10화. 내 공을 책임진다는 것

민호는 아침부터 수첩을 들여다봤다.

잘 치고 싶다는 마음이 잘 치기 위한 판단을 망치지 않게 할 것.

전날 밤 자신이 적어 놓은 문장이었다. 읽을 때는 당연한 말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당구대 앞에서 실제로 지켜 낼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었다.

그는 회사에 도착해서도 그 문장을 떠올렸다.

오전 회의에서 박준호가 신규 업무의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지난번 민호가 발견했던 일정 오류를 수정한 뒤, 준호는 납품 일정과 내부 검토 일정을 다시 정리해 놓았다. 자료는 깔끔했고 설명도 이전보다 나아졌다.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일정 관리가 잘됐네요. 다음 단계도 이대로 진행해 봅시다.”

민호는 자료를 바라봤다. 자신이 준호에게 조언했던 부분이 반영되어 있었다. 후배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뻐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불편한 감정이 일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려 준 일이었다. 그런데 칭찬은 준호에게 돌아갔다. 물론 업무를 맡은 사람이 준호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민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음은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회의가 끝난 뒤 준호가 다가왔다.

“선배님, 지난번에 알려 주신 방식대로 일정을 다시 잡아 봤습니다. 덕분에 놓친 부분을 찾았습니다.”

“그래. 잘했어.”

민호는 짧게 대답했다.

준호가 돌아서려는 순간, 민호는 자신이 무슨 말을 더 하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수고했다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은 조금 달랐다.

자신이 알려 주지 않았다면 이런 결과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었다.

민호는 그 말을 삼켰다. 준호가 스스로 한 노력까지 자신의 공으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 일정은 중간 점검 날짜도 표시해 둬. 문제가 생기면 마지막에 한꺼번에 고치기 어렵거든.”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준호가 웃으며 돌아갔다.

민호는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왔다. 후배를 도와주는 일이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그러나 자신이 원했던 것은 정말 후배보다 앞서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이 가진 경험과 능력을 인정받는 것이었을까.

두 가지는 비슷해 보여도 달랐다.

그는 아직 그 차이를 완전히 구분할 수 없었다.

퇴근 후 민호는 곧장 태성당구장으로 향했다.

당구장에는 성철과 재식이 있었다. 두 사람은 경기를 마친 뒤 당구대 위의 공을 정리하고 있었다. 성철이 민호를 보며 손을 들었다.

“오늘은 저랑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민호는 반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한 수 배우겠습니다.”

“배우기는요. 저도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성철은 웃었지만, 큐를 잡는 손은 진지했다. 민호는 그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성철은 재식만큼 능숙하지 않았지만, 공 하나하나를 대충 치는 법이 없었다. 자신이 놓친 공을 아쉬워하면서도 다음 배치를 살폈고, 상대가 득점하면 그만큼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서 인사를 나누고 뱅킹으로 초구를 정했다.

민호가 먼저 초구를 치게 됐다.

수구를 놓고 공 세 개의 위치를 살폈다. 가능한 경로가 눈에 들어왔다. 앞돌리기도 가능했고, 다른 경로를 선택할 여지도 있었다. 그는 수첩에 적어 놓은 내용을 떠올렸다. 득점만이 아니라 수구의 다음 위치까지 생각해야 했다.

민호는 한 가지 경로를 선택했다.

큐를 잡고 자세를 낮췄다. 예비 스트로크를 하면서 두께와 속도를 맞췄다. 타격 직전, 조금 더 강하게 치면 득점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하게 치면 수구가 예상보다 길게 움직일 수도 있었다.

그는 처음 판단을 유지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히고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공이 들어간 것도 기뻤지만, 자신의 판단대로 움직였다는 사실이 더 반가웠다. 다음 공의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다음 샷을 준비했다.

이번에는 배치가 까다로웠다. 득점 가능성이 있는 경로가 있었지만, 수구가 지나가야 할 길이 좁았다. 조금만 두께가 달라져도 제2적구를 비켜 갈 수 있었다.

민호는 잠시 당구대 주위를 돌았다. 반대편에서도 살펴보고, 수구와 적구 사이의 각도를 다시 확인했다.

성철은 조용히 기다렸다.

민호는 가능한 경로를 하나로 좁혔다. 성공 확률이 아주 높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었다. 그는 큐를 잡았다.

그 순간, 조금 전 득점했을 때의 기분이 떠올랐다.

‘이번에도 들어가면 두 점을 연속으로 낼 수 있겠는데.’

그 생각은 아주 짧았다. 그러나 민호는 그 생각이 자신의 자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득점에 성공한 뒤 느꼈던 자신감이 손끝에 힘을 더하고 있었다.

그는 공을 쳤다.

수구는 제1적구를 맞혔지만, 의도했던 두께에서 조금 벗어났다. 쿠션을 돌아 나간 수구는 제2적구를 스치듯 비켜 갔다.

민호는 아쉬운 표정으로 큐를 세웠다.

‘조금만 더 맞았으면 됐는데.’

그렇게 생각한 뒤, 그는 다시 당구대 쪽을 바라봤다. 조금만 더 맞았으면 득점했을 것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왜 두께가 달라졌는지 확인해야 했다.

민호는 수구가 멈춘 위치를 살폈다. 타격 순간 큐가 평소보다 조금 빨리 움직였던 것이 기억났다. 득점한 기분에 다음 공도 성공하고 싶어서, 자신도 모르게 스트로크가 급해진 것이다.

그는 입술을 다물었다.

성철의 차례가 돌아왔다. 성철은 당구대 앞에서 한참을 살피더니 옆돌리기를 선택했다. 타격은 정확했지만 수구가 예상보다 짧게 움직여 득점에 실패했다.

성철은 곧바로 큐를 다시 잡지 않았다. 수구가 지나간 경로를 살펴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속도를 조금 더 줬어야 했네요.”

민호는 그 말을 듣고 성철을 바라봤다.

성철은 실패한 샷을 변명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책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의도한 것과 실제 결과를 비교한 다음,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민호는 그 태도가 부러웠다.

자신은 실패하면 이유를 찾으려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운이 나빴다는 말을 덧붙일 때가 있었다. 반대로 성공하면 자신의 판단이 정확했다고 믿고 싶었다. 결과가 좋을 때와 나쁠 때, 자신에게 적용하는 기준이 조금씩 달랐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경기는 계속됐다.

성철은 몇 차례 득점에 성공하며 점수를 쌓았다. 민호도 중간중간 좋은 샷을 만들었지만, 연속 득점으로 이어 가는 데는 어려움을 겪었다.

점수 차가 좁혀지자 민호는 다시 마음이 급해졌다.

성철이 득점할 때마다 점수판을 확인했고,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면 이번에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 세웠던 계획은 조금씩 흐려졌다.

그러다 민호에게 득점 기회가 왔다.

수구와 제1적구, 제2적구의 배치는 익숙한 형태였다. 민호는 가능한 경로를 확인했다. 평소 연습하던 방식대로 치면 득점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런데 반대편에서 보니 다른 경로도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더 어려웠지만 성공하면 수구가 좋은 위치에 남을 것 같았다. 그 경로를 선택하면 연속 득점으로 이어 갈 가능성이 커 보였다.

민호는 고민했다.

처음 선택한 경로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 반면 새롭게 떠올린 경로는 성공했을 때의 이점이 컸지만, 두께와 속도를 더 정교하게 맞춰야 했다.

그는 당구대 주변을 다시 돌았다.

성철은 말없이 기다렸다. 민호는 그 침묵을 의식했다. 자신이 지나치게 오래 고민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재식과 경기를 할 때 느꼈던 부담이 다시 찾아왔다.

‘이 정도는 시도해 볼 만하지 않나?’

민호는 어려운 경로를 선택했다.

자세를 잡고 큐를 움직였다. 공은 제1적구를 맞혔다. 그러나 수구가 예상했던 방향으로 충분히 뻗지 못했다. 제2적구에 닿기 전에 경로가 어긋났다.

또 한 번의 실패였다.

민호는 큐를 내려놓았다.

이번에는 단순히 속도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그 경로를 선택한 이유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좋은 위치를 남기려는 계산 자체는 틀리지 않았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어려운 경로를 선택한 것이 정말 다음 공을 위한 판단이었는지, 아니면 지금 점수 차를 줄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지는 따져 봐야 했다.

성철이 득점에 성공했다.

민호는 박수를 치듯 가볍게 큐를 움직여 상대의 좋은 샷을 인정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당구대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점수판을 보지 않으려 애쓰지 않았다. 점수는 여전히 중요했다. 다만 점수를 확인한 뒤에는 다시 공을 보려고 했다.

경기가 끝났을 때 민호는 아쉽게 패했다.

그는 성철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쳤습니다.”

“민호 씨도 중간에 좋은 공이 많았습니다. 마지막에는 제가 운이 조금 따랐고요.”

성철은 웃으며 말했다. 민호는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운도 있었겠지만, 잘 치신 공도 많았습니다.”

성철은 잠시 민호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그렇게 봐주시니 고맙네요.”

민호는 그제야 자신이 경기 중에 무엇을 했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점수를 줄이려는 마음 때문에 어려운 경로를 선택했고, 좋은 흐름을 이어 가려다가 스트로크를 서둘렀다. 하지만 모든 실패가 욕심 때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공은 단순히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놓쳤다.

그 둘을 구분하는 일이 중요했다.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면 배울 기회를 잃고, 모든 실패를 실력 부족으로만 생각하면 무엇을 고쳐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태성이 다가와 물었다.

“오늘은 어떤 점이 가장 아쉬웠습니까?”

민호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놓친 득점이나 점수 차를 이야기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공을 못 친 것보다, 왜 그 공을 선택했는지 확신하지 못했던 게 아쉽습니다. 처음에는 안정적인 경로를 생각했는데, 더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서 어려운 쪽으로 바꿨습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좋은 판단이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무조건 쉬운 길만 고르지는 않을 겁니다.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겠죠. 다만 왜 그 길을 고르는지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좋네요. 어려운 공을 선택하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니까요.”

태성은 당구대 위의 공을 정리했다.

“실패했다고 무조건 나쁜 선택은 아니고, 성공했다고 항상 좋은 선택도 아닙니다. 선택할 때 무엇을 알고 있었는지, 어떤 결과를 예상했는지, 그리고 실제 결과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봐야겠죠.”

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당구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회사에서도 그는 결과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 싶어 했다. 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면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하고, 결과가 나쁘면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판단을 먼저 떠올리곤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실제로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바꿀 수 있었는지는 충분히 살펴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자기 탓으로 돌릴 필요는 없었다. 부당한 평가가 있을 수 있고, 개인의 노력만으로 바꿀 수 없는 상황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책임질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구분하는 일이었다.

민호는 집에 돌아와 수첩을 펼쳤다.

첫 번째 줄에는 수구의 다음 위치를 생각하라고 적혀 있었다. 두 번째 줄에는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이유를 확인하라고 적혀 있었다. 세 번째 줄에는 상대의 점수보다 지금 놓인 공을 먼저 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아래에 네 번째 문장을 적었다.

내가 선택한 공이라면, 실패한 이유도 외면하지 말 것.

잠시 후 그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실패한 이유를 외면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자신이 잘못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때로는 판단이 합리적이었어도 공이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럴 때는 운이 나빴다고 인정할 수도 있었다. 다만 운이 나빴다는 말이 자신의 실수를 덮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됐다.

민호는 펜을 내려놓았다.

당구를 배우면서 자신이 몰랐던 것은 공의 경로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어떤 순간에 서두르고, 어떤 순간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어떤 순간에 결과를 자기 편한 대로 해석하는지도 조금씩 알아 가고 있었다.

그 사실이 반갑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의 약점을 발견하는 일은 때로 실수를 반복하는 것보다 더 불편했다. 실수는 한 번의 결과로 끝날 수 있지만, 약점을 인정하면 앞으로의 행동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민호는 수첩을 덮지 않았다.

아직 고칠 것이 많았다. 당구 실력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자신이 인정받고 싶어 하는 방식도 그랬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실패한 공을 무조건 다시 치는 대신, 잠시 멈춰 그 이유를 살펴보려 했다.

당구대 위에서 자신이 선택한 공을 책임지는 연습.

어쩌면 민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연습을 일상으로 가져가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