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발
지은이 근화 · 2026-10-22
마지막 한 발이었다.
나는 사선 위에 서 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올리면 70미터 너머의 과녁이 보인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검은색.
흰색.
수없이 바라봤던 다섯 가지 색이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했다.
머리 위의 전광판은 보지 않았다.
굳이 볼 필요가 없었다.
상대가 몇 점을 쐈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지금 이 한 발로 끝난다.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나는 차분히 화살을 꺼냈다.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샤프트를 훑었다.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노크가 자리를 잡는다.
왼손으로 그립을 받쳤다.
손바닥으로 움켜쥐지 않는다.
손가락에 불필요한 힘도 주지 않는다.
평소와 똑같이.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평소와 똑같이 하면 된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었다.
평소와 같을 수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손끝이 조금 떨렸다.
나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과녁을 유심히 바라본다.
그리고는 활을 들어 올리며, 숨을 들이마신다.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면서 천천히 숨을 내보낸다.
어깨를 내린다.
팔로 잡아당기지 않는다.
등으로 당긴다.
오른손이 턱 아래에 자리 잡았다.
앵커.
시위가 턱과 코끝에 닿았다.
남아 있던 숨을 조금 내보냈다.
그리고 호흡을 멈춘다.
길게 참지는 않는다.
단 몇 초.
그 짧은 시간 동안 시야 한쪽으로 조준기가 들어왔다.
작은 점이 과녁의 노란색 위에서 움직였다.
오른쪽.
왼쪽.
다시 중앙.
완전히 멈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억지로 멈추게 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관중석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등 뒤에는 동료들이 있다.
감독도 있을 것이다.
조금 전까지 들리던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과녁과 나만이 이 공간에 있다는 듯.
심장이 요동친다.
무섭다.
그 사실을 굳이 부정하지 않는다.
마지막 한 발이 무서운 건 예전과 똑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하나뿐이었다.
이제는 무섭다는 이유로 활을 내려놓지 않는다.
나는 조준기를 바라봤다.
노란 원 안으로 들어온다.
조금 벗어난다.
다시 돌아온다.
예전의 나라면 여기서 생각했을 것이다.
몇 점을 쏴야 하지.
실패하면 어떻게 되지.
내가 놓치면.
내가 또 망치면.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계산하지 않았다.
이미 내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었으니까.
화살이 어디에 꽂힐지는 내가 정할 수 없다.
바람도.
미세하게 흔들리는 몸도.
손을 떠난 이후의 화살도.
전부 통제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직전까지였다.
자세를 잡고.
호흡을 정리하고.
당기고.
조준하고.
지금까지 해온 것을 믿는 것.
그것뿐이다.
등에 걸린 힘을 유지했다.
멈추지 않는다.
조금씩 확장을 이어간다.
오른쪽 팔꿈치가 뒤로 이어지고, 활을 든 왼팔은 과녁을 향한 채 버틴다.
조준기가 다시 노란색으로 들어왔다.
지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쏴야 한다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그저 지금까지 수없이 반복했던 동작을 끝까지 이어갔다.
당기던 힘을 유지했다.
손가락에 걸려 있던 시위가 자연스럽게 빠져나갔다.
오른손이 턱을 스쳐 뒤로 흘렀다.
화살이 떠났다.
나는 날아가는 화살을 바라봤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길게 느껴졌다.
70미터.
처음 활을 잡았던 나에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거리.
그때의 나는 이런 곳에 서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마지막 한 발이 두려워질 거라고도.
한동안 활을 잡지 못하게 될 거라고도.
그리고 다시 돌아오게 될 거라고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 내가 알고 있던 건 하나뿐이었다.
활을 당기고.
놓으면 화살이 날아간다.
그게 신기했다.
그래서 한 발을 더 쏘고 싶었다.
모든 것은 거기서 시작됐다.
언젠가의 여름 날에 나는 어머니를 따라 지역 종합체육관에 와 있었다.
내가 오고 싶어서 온 곳은 아니었다.
어머니에게 볼일이 있었고 집에 혼자 있기 싫어서 따라왔을 뿐이었다.
" 한 시간 정도면 끝나. "
어머니가 말했다.
" 한 시간이나? "
" 금방이야. "
" 엄마한테만 금방이겠지. "
" 끝나고 아이스크림 사줄게. "
나는 잠깐 생각하고 대답했다.
" 두 개. "
" 하나. "
" 큰 거. "
" 생각해볼게. "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로비에 혼자 남았다.
당시의 나는 휴대전화도 없었다.
책도 없었다.
할 일이 없었다.
처음 십 분 정도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다음에는 자판기를 구경했다.
하지만 동전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포기했다.
그다음에는 체육관 내부를 돌아다녔다.
농구공이 오가는 코트도 있었고,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별로 관심은 없었다.
그러다 벽에 붙은 종이 하나를 발견했다.
「 여름방학 어린이 양궁 체험교실 」
나는 걸음을 멈췄다.
초등학생 대상.
당일 참가 가능.
체험 시간 약 30분.
무료.
거기까지 읽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다 가장 아래에 적힌 작은 글씨를 발견했다.
「참가 어린이 음료 제공」
다시 종이를 봤다.
양궁.
무료.
음료.
나쁘지 않았다.
나는 안내문에 적힌 화살표를 따라갔다.
체육관 옆 공간에 작은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 곳에는아이들이 한 줄로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처음 보는 물건들이 놓여 있었다.
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았다.
아마 어린이용 장난감 활이었을 것이다
반대편에는 과녁이 있었다.
다섯 가지 색의 원.
흰색.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 체험하러 왔니? "
앞에 있던 남자가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양궁 해본 적 있어? "
" 없어요. "
" 활 잡아본 적은? "
" 없어요. "
" 그럼 완전 처음이네. "
그러고는 작은 활 하나를 가져왔다.
" 자. 잡아봐. "
나는 활을 받았다.
" 이렇게요? "
" 반대로 들어야해. "
나는 활을 돌렸다.
남자가 웃었다.
조금 창피했다.
" 왼손으로 여길 잡아. "
나는 별 생각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 너무 세게 쥐지는 말고. "
나는 손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었다.
남자가 화살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활 시위에 걸었다.
" 이 부분이 노크야. 여기를 시위에 거는 거야. "
" 노크? "
처음 듣는 단어였다.
" 화살 맨 뒤에 이렇게 살짝 갈라진 부분 보이지? "
남자가 화살을 돌려 뒤쪽을 보여줬다.
" 이게 노크야. 이 사이에 활줄을 끼우는 거야. "
" 여기에요? "
" 응. 그래야 화살이 활줄에 붙어 있을 수 있어. 그리고 손가락은 이렇게. "
그가 시위를 잡는 법을 보여줬다.
나도 따라 했다.
" 이제 몸을 옆으로. "
발을 움직였다.
" 이제 과녁을 보고. "
고개를 돌렸다.
" 활 들어봐. "
활을 들었다.
생각보다 팔이 빨리 힘들어졌다.
" 줄을 당겨. "
시위를 당겼다.
처음에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더 힘을 줬다.
시위가 뒤로 따라왔다.
" 으……. "
" 힘들지? "
" 별로요. "
거짓말이었다.
팔이 떨리고 있었다.
남자는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 좋아. 과녁 가운데 보여? "
나는 고개를 조금 움직였다.
" 노란색이요? "
" 맞아. "
가운데에는 노란색 원이 있었다.
" 저게 만점이에요? "
" 응. 10점이야. "
나는 노란 원을 바라봤다.
가까워 보였다.
저 정도면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 이제 준비됐으면 줄을 잡은 손가락에 힘을 빼. "
" 그냥 놓으면 돼요? "
" 응. "
" 진짜 그냥요? "
남자가 웃었다.
" 처음에는 그냥 해봐. "
나는 다시 노란색을 봤다.
가운데.
저기다 맞힌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손가락의 힘을 풀었다.
이내 화살이 날아갔다.
노란색에서 한참 떨어진 곳.
가장 바깥쪽 흰색에 꽂혔다.
나는 잠깐 과녁을 바라봤다.
" ……저건 몇 점이에요? "
" 1점. "
" 1점? "
" 그래도 처음인데 과녁에는 맞았네. "
칭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과녁 가운데를 다시 바라봤다.
분명 거길 보고 쐈는데.
왜 저기로 갔지?
" 다음. "
두 번째 화살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노크를 시위에 걸어봤다.
한 번에 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남자가 조금 도와줬다.
다시 자세를 잡았다.
아까보다 조금 익숙했다.
활을 들었다.
시위를 당겼다.
노란색을 본다.
이번에는 조금 더 오래 조준했다.
조준이 되었디고 생각할 따 손가락의 힘을 뺐다.
화살이 날아갔다.
검은색.
" 3점. "
조금 안쪽으로 들어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 올랐네요. "
" 그러네. "
그리고 마지막 화살을 받았다.
이번에는 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기억나는 대로 했다.
왼손으로 활을 잡는다.
화살을 건다.
몸을 옆으로 둔다.
고개를 돌린다.
활을 든다.
당긴다.
팔이 다시 떨렸다.
그래도 조금 전보다는 나았다.
과녁을 봤다.
노란색.
이번에는 반드시 저기에 맞춘다.
그렇게 생각하다가 잠깐 멈췄다.
아까도 똑같이 생각했다.
나는 그냥 가운데를 바라봤다.
그리고 손가락의 힘을 풀었다.
화살이 날아갔다.
마지막 화살은 파란색에 꽂혔다.
" 이번에는 5점이네. "
1점.
3점.
5점.
한 발 쏠 때마다 조금씩 가운데로 들어왔다.
나는 세 개의 화살을 바라봤다.
가장 바깥쪽에 하나.
그보다 안쪽에 하나.
그리고 조금 더 안쪽에 하나.
이상했다.
겨우 세 발 쐈을 뿐이었다.
그런데 다음에는 어디에 꽂힐지 궁금했다.
나는 옆에 있던 화살통을 내려다봤다.
화살통은 비어 있었다.
" 저기요. "
" 응? "
" 한 발만 더 쏘면 안 돼요? "
" 뒤에 기다리는 애들 있잖아. "
돌아보니 정말 여러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 한 발만 더요. "
" 안 돼. "
" 진짜 한 발만요. "
" 다음에 정식으로 배우러 와. "
나는 아쉬운 마음으로 활을 돌려줬다.
체험이 끝나고 약속했던 음료를 받았다.
분명 그것 때문에 들어왔다.
그런데 정작 음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빨대를 입에 문 채 다른 아이들이 쏘는 모습을 구경했다.
한 아이가 화살을 쐈다.
빨간색.
나보다 잘했다.
다음 화살.
노란색.
나도 모르게 시선이 그쪽으로 갔다.
화살이 10점에 꽂혀 있었다.
조금 억울했다.
나는 세 번이나 쐈는데 5점이 최고였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한 발만 더 쐈다면 7점까지 갈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다음에는 9점.
그리고 10점.
정말 그렇게 되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 하준아. "
그 때 뒤에서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 뭐 하고 있어? "
나는 뒤를 돌아봤다.
어머니가 체험장을 바라보며 내게 물었다.
" 양궁? "
" 응. "
" 네가? "
" 응. "
" 재밌었어? "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과녁을 바라봤다.
조금 전 다른 아이가 쏜 화살이 여전히 노란색에 꽂혀 있었다.
그 주변으로 수많은 화살이 흩어져 있었다.
흰색.
검은색.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나는 손가락으로 가운데를 가리켰다.
" 엄마. "
" 응? "
" 양궁은 어디서 배워? "
어머니가 나를 바라봤다.
" 배우고 싶어? "
나는 잠깐 고민했다.
양궁이 좋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세 발밖에 쏘지 않았다.
재능이 있는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잘했던 것도 아니다.
내 첫 화살은 겨우 1점이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 그냥 한 발만 더 쏴보고 싶어. "
" 한 발? "
" 응. "
나는 다시 한 번 과녁을 바라봤다.
" 다음에는 저거보다 안쪽에 맞힐 수 있을 것 같아. "
그게 시작이었다.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운명이라고 부를 만한 일도 없었다.
누군가 내 재능을 발견해 준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다음 화살이 어디에 꽂힐지 궁금했다.
그래서 다시 활을 잡았다.
한 발이 두 발이 되고.
열 발이 되고.
백 발이 되고.
천 발이 됐다.
그렇게 나는 계속 화살을 쐈다.
그러니까 아마 내 청춘은 그날
1점짜리 화살 한 발과 함께 시작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