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첫눈에 반했다
지은이 루시엘 · 2026-10-19
## 1화. 첫눈에 반했다
리서 처음 본 순간,
이준은 하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친구들과 앉아 웃고 있는 여자.
이상하게도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 여자 번호를 알고 싶다.’
강이준은 자신이 왜 이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저 예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사람에게 관심을 두는 편도 아니었고,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도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눈앞에 있는 여자가 웃을 때마다 시선이 따라갔다.
잔을 들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도, 무언가 재미있는 말을 들었는지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모습도 자꾸 눈에 들어왔다.
마치 주변의 모든 소리가 조금씩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야.”
옆에서 누군가 이준의 팔을 툭 건드렸다.
“야, 강이준.”
“……왜.”
“너 지금 내 말 듣고 있냐?”
이준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
맞은편에 앉은 한도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라고 했는데?”
“와, 진짜 안 들었네.”
도윤은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내가 아까부터 회사 이야기를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너 지금 내 말 하나도 안 들었지?”
“미안.”
“미안하다는 말은 나도 할 수 있어. 왜 안 들었냐고.”
“그냥.”
“그냥은 무슨.”
도윤은 이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 이유를 알아차렸다.
“아.”
도윤의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저분이구나?”
이준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뭐가.”
“네가 지금까지 쳐다보고 있던 사람.”
“안 쳐다봤어.”
“야, 내가 너랑 몇 년을 알고 지냈는데 그걸 속이려고 하냐?”
도윤은 팔짱을 끼며 웃었다.
“너 아까부터 저쪽만 보고 있었어. 내가 네 앞에서 손을 흔들어도 못 알아보더라.”
“그 정도는 아니거든.”
“그 정도 맞거든?”
도윤은 일부러 목소리를 낮추며 덧붙였다.
“예쁘긴 하네.”
그 순간 이준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도윤은 그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어라?”
“왜.”
“너 방금 질투했냐?”
“미쳤냐?”
“아니, 내가 예쁘다고 하니까 표정이 왜 그렇게 변해?”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내가 무슨 상관인데.”
“그럼 내가 가서 번호 물어봐도 되겠네?”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도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이준이 그의 팔을 잡았다.
“앉아.”
도윤이 빵 터졌다.
“아, 진짜!”
“웃지 마.”
“야, 너 지금 나한테 질투하는 거 맞잖아!”
“아니라고.”
“그럼 손 놔.”
이준은 그제야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도윤의 팔을 꽉 잡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놓았다.
“그냥 귀찮아서 그래.”
“그래, 그래. 귀찮아서 그러시겠지.”
도윤은 다시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저었다.
“강이준이 여자한테 관심을 다 보이고. 오늘 별일 다 보네.”
이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여자는 여전히 친구들과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이준은 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대체 왜 이러냐.’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여자였다.
나이도, 직업도, 어떤 사람인지도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데도 한 번 말을 걸어보고 싶었다.
어떤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사람인지 궁금했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오늘이 끝나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 생각이 들자 이준은 작게 웃었다.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말로.
단 한 번도.
“야, 서하린!”
하린은 친구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왜?”
“너 지금 누구 보고 있어?”
“나?”
“그래, 너.”
윤채원은 하린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아까부터 자꾸 딴 데 보는 것 같은데?”
“아니거든?”
하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사람 구경하는 거지.”
“사람 구경?”
“응. 여기 사람 많잖아.”
채원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 사람 많지.”
“왜 그렇게 웃어?”
“아니야.”
“뭔데?”
“너도 한번 봐봐.”
채원이 턱짓으로 맞은편을 가리켰다.
하린은 친구가 가리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다.
정말 찰나에 불과했다.
남자는 검은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머리와 선명한 이목구비, 차분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왔다.
하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빡였다.
남자는 잠깐 그녀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하린도 얼른 고개를 돌렸다.
“……뭐야.”
작게 중얼거리자 채원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잘생겼지?”
“누가?”
“방금 네가 본 사람.”
“내가 언제 봤다고 그래?”
“야, 너 지금 귀 빨개졌어.”
“안 빨개졌거든!”
하린은 급하게 잔을 들어 물을 마셨다.
채원은 그런 하린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귀여워. 서하린 연애 세포 아직 살아 있었네.”
“윤채원!”
“왜, 사실이잖아.”
“아니라니까!”
“그럼 저 남자 잘생겼어, 안 잘생겼어?”
하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잘생겼다.
그것도 꽤 많이.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채원이 자신을 얼마나 놀려댈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하린은 괜히 얼음이 녹은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냥…… 평범한데.”
“평범?”
채원이 눈을 크게 떴다.
“야, 네가 평범하다고 하면 대한민국에 잘생긴 남자 없어.”
“아니, 그냥 그렇다고.”
“그럼 나한테 소개해 줘.”
“뭘 소개해 줘!”
“아까 평범하다며. 네가 관심 없으면 내가 관심 가져도 되잖아.”
하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맞은편을 힐끗 바라봤다.
남자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또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하린이 먼저 시선을 피했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왜 자꾸 쳐다보는 거야?’
하린은 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설마 내가 쳐다봐서 그런가?’
그렇게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하린은 속으로 자신을 타일렀다.
‘아니야. 그냥 우연이겠지.’
세상에는 잘생긴 남자도 많고, 예쁜 여자도 많았다.
서로 눈이 마주칠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런 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하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친구들과의 대화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저 남자가 지금도 자신을 보고 있을까.
혹시 방금 눈이 마주친 걸 기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어쩌면.
자신이 그를 다시 바라보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닐까.
하린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휴, 서하린. 별생각을 다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남아 있었다.
“야, 강이준.”
“또 왜.”
도윤이 턱을 괴고 이준을 바라봤다.
“너 진짜 번호 물어볼 거야?”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면 오늘 여기서 계속 바라보다가 집에 갈 거야?”
“…….”
“야, 네가 아무리 잘생겼어도 상대방 마음은 모르는 거야. 괜히 혼자 기대했다가 차이면 어떡하려고?”
“안 차일 수도 있지.”
이준의 대답에 도윤이 눈을 크게 떴다.
“와.”
“왜.”
“너 진짜 심각하구나?”
이준은 피식 웃었다.
“뭐가.”
“아니, 평소에는 여자들이 먼저 다가와도 별 관심 없던 사람이 지금은 번호 하나 못 물어봐서 고민하고 있잖아.”
“그런 적 없거든.”
“있거든?”
도윤은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지난달에 소개팅 들어온 것도 네가 거절했지. 회사에서 소개해 준다는 것도 싫다고 했지. 친구가 괜찮은 사람 있다고 해도 관심 없다고 했지.”
“그래서?”
“그런 네가 지금 저 여자 때문에 이러고 있다고.”
도윤은 감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은 정말 무서운 거구나.”
“그만해.”
“알았어, 알았어.”
도윤은 웃음을 참으며 잔을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너, 진짜 좋아?”
이준은 이번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도 그 감정의 이름을 정확하게 붙이기는 어려웠다.
고작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녀가 웃으면 기분이 좋아졌고, 다른 곳을 바라보면 아쉬웠다.
단 한 번이라도 가까이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르겠어.”
“뭐?”
“좋아하는 건지, 그냥 궁금한 건지.”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런데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어.”
도윤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럼 가.”
“…….”
“네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네가 뭘 원하는지는 알잖아.”
이준은 친구를 바라봤다.
도윤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절당하면 어때. 번호 안 주면 그냥 돌아오면 되는 거고, 주면 좋은 거고.”
“말은 쉽지.”
“야, 강이준.”
도윤은 이준의 어깨를 툭 쳤다.
“너 지금 저 여자한테 가서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번호 물어보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가. 네가 이렇게 고민하는 거 처음 보니까 나도 구경 좀 하자.”
이준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꼭 마지막에 이상한 말을 붙이더라.”
“친구가 잘되는 걸 보고 싶어서 그러지.”
“진짜?”
“아니. 놀리고 싶어서.”
“미쳤냐?”
도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준도 결국 웃었다.
그런데 웃음이 멎은 뒤에도 마음은 여전히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
하린.
아직 이름도 모르는 여자.
그는 다시 한번 그녀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린도 마침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또다시 마주쳤다.
이준은 이번에는 웃었다.
아주 작게.
하지만 분명하게.
하린은 예상하지 못한 미소에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그 순간 이준은 마음을 정했다.
‘가자.’
더 고민해 봐야 달라질 것은 없었다.
거절당할 수도 있었다.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늘 그냥 돌아가면 분명히 후회할 것 같았다.
이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 가?”
“잠깐.”
“야, 설마…….”
이준은 대답 대신 셔츠의 소매를 정리했다.
도윤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 가는 거야?”
“응.”
“야, 잠깐만!”
도윤이 이준의 팔을 붙잡았다.
“너 뭐라고 말할 건데?”
“그냥 말하면 되지.”
“그냥이 뭔데?”
“마음에 든다고.”
도윤은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와…….”
“왜 또.”
“아니, 진짜 대단하다. 너 원래 그렇게 직진하는 사람이었냐?”
이준은 웃으며 친구의 손을 떼어냈다.
“나도 내가 이럴 줄 몰랐어.”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러니까 나도 지금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아.”
도윤은 더 이상 그를 붙잡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라, 가.”
이준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그리고 또 한 걸음.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걸었을 길이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하린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정확히는 듣는 척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자꾸만 시선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결국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놀랐다.
아까 자신과 눈이 마주쳤던 남자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어?’
하린은 순간 몸이 굳었다.
남자는 망설이는 듯하다가도 다시 걸음을 옮겼다.
하린은 급하게 채원의 팔을 붙잡았다.
“야.”
“왜?”
“저기…….”
채원이 하린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머.”
“야, 어떡해?”
“뭘 어떡해?”
“오고 있잖아!”
“그러네?”
채원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었다.
“야, 너한테 오는 거 맞는 것 같은데?”
“아니겠지.”
“그럼 누구한테 오겠어?”
“…….”
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남자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하린은 괜히 머리카락을 정리했다가 손을 내렸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확인했다가 다시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아, 나 왜 이래.’
평소 같았으면 모르는 사람이 다가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했다.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면서도 두려웠다.
혹시 길을 물어보려는 걸까?
아니면 친구를 찾고 있는 걸까?
아니면 정말로…….
하린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때였다.
“저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바로 앞에 그 남자가 서 있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더 잘생겼다.
그 사실을 깨닫자 하린은 순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남자 역시 잠깐 말을 멈췄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하린의 얼굴은 멀리서 봤을 때보다 훨씬 선명했다.
눈이 마주쳤다.
이준은 순간 준비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전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큰일 났네.’
정말로 큰일이었다.
친구에게는 마음에 든다고 말하면 된다고 했지만, 막상 그녀 앞에 서니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이준은 숨을 한번 고르고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린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혹시 잠깐 괜찮으세요?”
“네?”
“제가 잠깐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하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남자는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아까 멀리서 보았을 때는 차분하고 여유로워 보였는데, 지금은 어딘가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게 이상하게 귀여웠다.
하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씀하세요.”
이준은 잠시 망설였다.
이름부터 물어볼까.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볼까.
아니면 자신이 왜 다가왔는지 솔직하게 말할까.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선택했다.
“저…….”
이준은 하린의 눈을 바라봤다.
“혹시 번호 물어봐도 될까요?”
그 순간 하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채원은 옆에서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이준은 대답을 기다리며 조용히 서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믿지 않았던 남자.
다시는 쉽게 사랑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