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닭고기 수프 혁명
지은이 외인 · 2026-10-16
율리안: 주방이요?
다음 날 오후 훈련 시간, 율리안은 회중시계를 든 채로 굳었다.
레티시아: 오늘은 2단계 첫날이잖아요. 복도 보행. 목적지가 있는 게 훈련 효과가 좋대요.
율리안: 누가 그래?
레티시아: 오라버니가 그랬잖아요. 신병한테 연병장만 돌리면 지루해서 금방 꾀를 부린다고. 행군은 목적지가 있어야 한다고.
율리안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을 더듬는 얼굴이었다. 했다. 어젯밤 저녁 보고를 마치고 돌아와서, 기분이 좋아 한참 떠들다가 한 말이었다. 레티시아는 그걸 빠짐없이 들어 두었다.
율리안: ...주방은 1층이야. 계단을 내려가야 해. 계단은 3단계고.
레티시아: 그럼 계단은 오라버니가 업어 주세요. 복도만 제가 걸을게요.
율리안은 한참 고민했다. 교관으로서의 원칙과, 동생이 업어 달라고 한 것에 대한 감격이 그의 얼굴 위에서 싸웠다.
감격이 이겼다.
벨하르트 공작가의 주방은 저택의 동쪽 끝, 반지하에 있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냄새가 먼저 올라왔다. 장작 타는 냄새, 빵 굽는 냄새, 양파 볶는 냄새. 레티시아는 율리안의 등에 업힌 채로 코를 킁킁거렸다. 사흘 동안 보리죽만 먹은 위장이 요동을 쳤다.
계단 끝에서 율리안이 그녀를 내려놓았다. 레티시아는 지팡이를 짚고 섰다. 니나가 뒤에서 기록지를 들고 따라왔다.
주방 문은 열려 있었다. 안은 넓고, 뜨겁고, 시끄러웠다. 커다란 화덕이 셋, 천장에는 구리 냄비가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견습생 서넛이 감자를 깎고, 누군가 반죽을 치대고, 누군가 생선 비늘을 긁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도마 앞에 여자가 하나 서 있었다.
마흔 줄의 여자였다.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였는데, 그 팔뚝이 웬만한 하인의 허벅지만 했다. 붉은 머리를 두건으로 질끈 묶었고, 한 손에 식칼을 들고 양파를 썰고 있었다. 칼질이 빨랐다. 탁탁탁탁. 양파가 종잇장처럼 쌓였다.
레티시아는 그 칼질을 오래 봤다. 동대문 원단 재단사 중에도 저렇게 손이 빠른 사람은 드물었다.
"요리장님."
견습생 하나가 레티시아를 발견하고 속삭였다. 그 순간 주방이 조용해졌다. 감자 깎던 손이 멈췄다. 반죽 치대던 손이 멈췄다. 생선 비늘이 바닥에 떨어졌다.
탁.
양파 썰던 칼도 멈췄다.
요리장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문가에 선 레티시아를 봤다. 그 얼굴에 여러 감정이 차례로 지나갔다. 놀라움, 경계, 그리고 체념.
니나의 말이 맞았다. 요리장은 칼을 도마 위에 내려놓았다. 아주 천천히.
마르타: ...아가씨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목소리가 낮고 거칠었다. 공손했지만, 문을 반쯤만 열어 둔 목소리였다.
레티시아: 요리장님 이름이 뭐예요?
요리장의 눈썹이 꿈틀했다.
마르타: 마르타입니다. 이 집에서 십오 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레티시아: 마르타.
레티시아는 그 이름을 한 번 입에 올려 보았다. 그리고 지팡이를 짚고 주방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갔다. 율리안이 뒤에서 움찔했지만 막지 않았다.
레티시아: 아까 칼질 봤어요. 양파를 그렇게 얇게 써는 사람은 처음 봐요.
마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가늘게 떴다. 칭찬 뒤에 뭐가 따라오나 기다리는 눈이었다. 작년에 수프를 열 번 돌려보낸 아가씨였다. 경계하는 게 당연했다.
레티시아는 그 경계를 이해했다. 그래서 돌려 말하지 않기로 했다.
레티시아: 작년에 수프를 열 번 돌려보냈다면서요.
주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견습생 하나가 숨을 들이켰다. 니나는 기록지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레티시아: 그때 일은 미안해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그랬다면 내가 잘못한 거예요.
마르타의 얼굴이 굳었다. 화가 나서가 아니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얼굴이었다. 십오 년 동안 주인집 아가씨에게 사과를 받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의 얼굴.
마르타: ...아닙니다. 아가씨께서 편찮으셨으니까요.
레티시아: 그래도요.
레티시아는 지팡이에 몸을 조금 더 기댔다. 다리가 슬슬 떨리기 시작했다. 율리안이 눈치채고 주방 구석에서 의자를 끌어다 주었다. 그녀는 고맙게 앉았다.
레티시아: 마르타, 하나만 물어볼게요. 요리장으로서요.
마르타: 말씀하십시오.
레티시아: 사흘 동안 열 걸음씩 걷는 연습을 한 사람이 있어요. 다리에 힘이 붙어야 하고, 살이 좀 붙어야 해요. 그런 사람한테 뭘 먹이겠어요?
마르타가 레티시아를 빤히 쳐다봤다.
마르타: ...그게 아가씨 얘기입니까.
레티시아: 요리장으로서 대답해 줘요.
마르타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앞치마에 손을 닦았다. 그건 요리사가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하는 버릇이었다. 레티시아는 전생의 시장 국밥집 할머니에게서 똑같은 버릇을 본 적이 있었다.
마르타: 고기를 먹여야죠.
마르타의 목소리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문이 조금 더 열린 목소리였다.
마르타: 닭이 제일 좋습니다. 뼈째 오래 고아서 국물을 내면 속에 부담이 없고요. 달걀도 좋고, 흰살생선도 좋습니다. 우유에 꿀을 조금 타서 데워도 좋고요. 보리죽만 먹여서는...
마르타는 거기서 입을 다물었다. 너무 많이 말했다는 얼굴이었다. 니나가 사흘 전에 지었던 것과 똑같은 얼굴이었다.
레티시아는 그 끝을 대신 이어 주었다.
레티시아: 보리죽만 먹여서는 근육이 안 붙죠.
마르타: ...그렇습니다.
레티시아: 그런데 왜 몇 달째 보리죽이었어요?
마르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르타: 드라벨 선생님 지시입니다. 고기는 피를 탁하게 하고, 달걀은 기운이 너무 세서 약효를 해친다고요. 마님께서도 선생님 말씀대로 하라고 하셨고요.
레티시아: 마르타 생각은요?
긴 침묵이 흘렀다. 화덕의 장작이 탁, 하고 튀었다.
마르타: ...저는 의원이 아닙니다, 아가씨.
레티시아: 알아요. 마르타는 요리사죠. 십오 년째. 그 십오 년 동안 아픈 사람한테 보리죽만 먹여서 낫는 거 본 적 있어요?
마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대답이었다.
레티시아는 의자에서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이제부터가 진짜 거래였다.
레티시아: 닭고기 수프를 만들어 줘요. 오늘 저녁부터.
마르타: 아가씨, 그건...
레티시아: 드라벨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 내가 졸랐다고 해요. 내가 울고불고 떼를 써서 어쩔 수 없었다고. 작년에 수프를 열 번 돌려보낸 아가씨가 이번엔 닭고기 수프를 안 주면 주방을 엎어 버리겠다고 했다고.
마르타의 입꼬리가 아주 조금, 정말 아주 조금 올라갔다.
마르타: ...그건 다들 믿겠네요.
레티시아: 그렇죠? 그 평판, 이번엔 좀 써먹어요.
견습생 하나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입을 막았다. 마르타가 그쪽을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레티시아를 봤다.
그리고 칼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마르타: 닭은 오늘 아침에 들어온 게 있습니다. 어떻게 해 드릴까요?
레티시아는 의자에 앉은 채로 말했고, 마르타는 손을 움직였다.
레티시아: 닭은 통째로요. 껍질 기름은 좀 떼고요. 찬물에 넣어서 끓이다가 거품을 걷어 내요. 마늘이 있으면 한 줌.
마르타: 마늘 한 줌이요? 냄새가 너무 세지 않을까요?
레티시아: 오래 고면 단맛만 남아요.
마르타의 눈이 반짝했다. 요리사가 처음 듣는 요리법을 들었을 때의 눈이었다.
레티시아: 쌀도 한 줌 넣어 주세요. 국물이 걸쭉해지게. 그리고 뼈에서 살이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끓여요. 소금은 마지막에.
전생의 엄마가 하던 방식 그대로였다. 대추와 인삼은 이 세계에 있는지 몰라서 뺐다.
마르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닭을 손질했다. 손이 빨랐다. 그리고 중간중간 자기 생각을 덧붙였다.
마르타: 월계수 잎을 하나 넣으면 잡내가 덜할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리크를 썰어 넣으면 향이 좋고요.
레티시아: 좋아요. 그건 마르타 방식대로 해요.
마르타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다시 움직였다. 아까보다 조금 더 신이 난 손놀림이었다.
레티시아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사람은 제 일을 인정받을 때 가장 잘한다. 동대문에서 직원을 열 명 넘게 써 보고 깨달은 진리였다. 월급을 올려 주는 것보다, 그 사람의 칼질을 알아봐 주는 게 먼저였다.
냄비가 화덕 위에 올라갔다. 이제부터는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레티시아는 주방을 둘러봤다. 앉은 채로, 눈으로만. 선반에 쌓인 밀가루 포대, 소금 단지, 구석의 커다란 나무 상자. 그리고 벽에 걸린 커다란 열쇠 꾸러미.
레티시아: 저건 무슨 열쇠예요?
마르타: 식료품 창고랑, 얼음 창고 열쇠입니다.
마르타는 냄비 거품을 걷어 내며 대답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마르타: 얼음 창고는 말만 창고지요. 얼음 값은 매달 오르는데, 정작 얼음은 늘 모자라요. 여름이면 생선 보관할 데가 없어서 매번 애를 먹습니다.
레티시아는 그 말을 머릿속 장부의 한구석에 적었다. 얼음 값은 오르는데 얼음은 모자란다. 동대문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면, 열에 아홉은 중간에서 누가 빼먹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 파고들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녀가 가진 건 지팡이 하나와 열 걸음짜리 다리뿐이었다. 장사도 순서가 있었다.
해가 질 무렵, 수프가 완성되었다.
마르타가 국자로 떠서 우묵한 그릇에 담았다. 뽀얀 국물 위로 기름이 동그랗게 떴다. 결대로 찢어진 닭고기가 쌀알과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 리크를 송송 썰어 올리자, 김과 함께 향이 피어올랐다.
주방 안의 모든 사람이 그 그릇을 보고 있었다. 견습생들도, 니나도, 율리안도.
레티시아는 숟가락을 들었다.
한 숟가락.
뜨거웠다. 진했다. 마늘은 마르타의 걱정과 달리 단맛만 남아 있었고, 월계수 잎이 잡내를 깔끔하게 잡아 주었다. 엄마의 맛은 아니었다. 그런데 엄마의 맛과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두 숟가락. 세 숟가락.
배 속이 따뜻해졌다. 그 따뜻함이 팔다리 끝까지 천천히 퍼졌다. 탕약을 마셨을 때의 노곤함과는 달랐다. 몸이 무거워지는 게 아니라, 속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레티시아는 그릇을 다 비웠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레티시아: 마르타.
마르타: ...네, 아가씨.
레티시아: 한 그릇 더 줘요.
마르타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몸을 홱 돌려 화덕 쪽으로 갔다. 국자를 드는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레티시아는 그 등을 보며 모르는 척했다. 십오 년 동안 돌려보내지기만 하던 요리사에게 '한 그릇 더'가 무슨 의미인지,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두 번째 그릇이 나왔을 때, 율리안이 헛기침을 했다.
율리안: 레티. 교관으로서 그 음식의 영양 상태를 점검해야 할 것 같은데.
레티시아: 오라버니도 먹고 싶다고 그냥 말해요.
율리안은 세 그릇을 먹었다. 니나는 한 그릇을 먹고 울었다. 견습생들은 냄비 바닥을 긁었다. 마르타는 그 모습을 팔짱을 끼고 지켜봤는데, 레티시아는 그녀의 입꼬리가 한 번도 내려가지 않는 것을 봤다.
식사가 끝나고, 레티시아는 니나의 기록지 뒷면을 빌렸다. 그리고 마르타와 함께 일주일 치 식단을 짰다.
월요일, 닭고기 수프. 화요일, 흰살생선 찜과 으깬 감자. 수요일, 반숙 달걀과 우유. 목요일, 다시 닭고기 수프. 금요일에는 마르타가 제안한 송아지 고기 스튜.
마르타는 식단표를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봤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
마르타: 아가씨. 이게 드라벨 선생님 귀에 들어가면요.
레티시아: 그건 내 일이에요. 마르타는 마르타 일만 해요. 맛있게.
마르타는 식단표를 접어 앞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고개를 깊이 숙였다.
마르타: 맛있게 만들겠습니다, 아가씨.
그날 밤, 레티시아는 침대에 누워 손발을 꼼지락거려 봤다.
따뜻했다. 수프의 온기가 아직 배 속에 남아 있었다. 팔에도, 다리에도 힘이 조금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장사는 기분을 무시하면 안 된다. 손님의 기분도, 자기 기분도.
문이 열리고 니나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니나: 아가씨, 저녁 약 드실 시간이에요.
거무튀튀한 사발. 한약방 뒷골목 냄새.
레티시아는 사발을 받아 들고 마셨다. 쓰고, 그 뒤에 달큰했다. 그리고 잠시 후, 익숙한 노곤함이 밀려왔다. 팔다리에 모래주머니가 하나씩 매달렸다. 방금까지 배 속에서 차오르던 온기가, 그 무게에 눌려 가라앉았다.
레티시아는 빈 사발을 내려다봤다.
수프를 먹었을 때는 몸이 차올랐다. 약을 마시니 몸이 가라앉는다.
새벽에 정원으로 나가던 날도 그랬다. 밤새 약을 안 마신 새벽에는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장사를 오래 하면 숫자가 말을 걸어올 때가 있다. 맞지 않는 숫자, 이상하게 반복되는 숫자. 그럴 때 그냥 넘기는 사람은 결국 큰 손해를 본다.
레티시아는 눈꺼풀이 내려앉는 것을 버티며, 사발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이거, 정말 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