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의 기차표 (1)
von 미야자와 겐지 · 2026-10-03
새잡이: 이제 이 근방이 백조 구역의 끝이에요. 보세요. 저게 그 유명한 알비레오 관측소입니다.
창밖, 불꽃놀이를 흩뿌려 놓은 듯한 은하수 한가운데에 검고 커다란 건물 네 채가 서 있었다. 그중 한 채의 평평한 지붕 위에서 투명한 구슬 두 개가 조용히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푸른 보석 하나와 노란 보석 하나였다.
노란 구슬이 천천히 저편으로 돌아가면 작은 푸른 구슬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머지않아 두 구슬의 끝이 겹치며 아름다운 초록빛 볼록렌즈 모양이 되었다.
렌즈 모양은 다시 천천히 옆으로 비껴 나며 아까의 모습을 거꾸로 되풀이했고, 이윽고 스르르 떨어졌다. 이번에는 사파이어가 저편으로 돌고 노란 구슬이 이쪽으로 다가와, 다시 아까와 똑같은 모양이 되었다.
형체도 소리도 없는 은하의 물에 둘러싸여, 검은 관측소는 정말로 조용히 잠들어 누워 있는 것처럼 보였다.
새잡이: 저건 물의 빠르기를 재는 기계예요. 물도…….
새잡이가 말을 꺼내려던 참이었다.
차장: 표를 보여 주십시오.
어느새 빨간 모자를 쓴 키 큰 차장이 세 사람의 자리 옆에 꼿꼿이 서 있었다. 새잡이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작은 종잇조각을 꺼냈다. 차장은 그것을 흘끗 보고는 곧 눈을 돌리더니, 당신들 것은요? 하고 묻듯 손가락을 까딱이며 조반니와 캄파넬라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조반니: 저, 그게…….
조반니가 곤란해서 머뭇거리는 사이, 캄파넬라는 아무렇지도 않게 작은 쥐색 표를 내밀었다. 조반니는 완전히 당황했다.
혹시 윗옷 주머니에라도 들어 있나 싶어 손을 넣어 보니, 커다랗게 접힌 종잇조각이 손끝에 닿았다. 이런 게 들어 있었나? 서둘러 꺼내 보니 넷으로 접힌, 엽서만 한 초록색 종이였다.
차장이 손을 내밀고 있었으므로 조반니는 뭐라도 괜찮겠지 싶어 그것을 건넸다. 그러자 차장은 자세를 바로 하고 정중하게 종이를 펼쳐 보았다. 읽는 내내 윗옷 단추를 자꾸만 매만졌고, 등대지기도 아래쪽에서 그것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
조반니는 그게 무슨 증명서 같은 것이었나 보다 생각하며 가슴이 조금 뜨거워졌다.
차장: 이것은 3차원 공간 쪽에서 가지고 오신 겁니까?
조반니: 뭔지 모르겠어요.
조반니는 이제 됐다 싶어 마음을 놓고, 차장을 올려다보며 킥킥 웃었다.
차장: 알겠습니다. 남십자에 도착하는 것은 다음 제3시쯤이 되겠습니다.
차장은 종이를 조반니에게 돌려주고 저쪽으로 걸어갔다.
캄파넬라가 그 종이가 뭐였는지 못 참겠다는 듯 얼른 들여다보았다. 조반니도 빨리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그런데 종이에는 온통 검은 당초무늬가 그려져 있었고, 그 가운데 이상한 글자 열 개쯤이 인쇄되어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때 새잡이가 옆에서 그것을 힐끗 보더니 허둥대며 말했다.
새잡이: 이야, 이건 대단한 물건인데요. 이건 진짜 하늘나라에도 갈 수 있는 표예요. 하늘나라는커녕 어디든 마음대로 갈 수 있는 통행권이지요.
새잡이: 이걸 갖고 계시면 이런 불완전한 4차원 환상 은하철도쯤이야 어디까지든 갈 수 있을 겁니다. 두 분은 정말 대단하시네요.
조반니: 뭔지 모르겠어요.
조반니는 얼굴이 빨개져서 대답하고는 종이를 다시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왠지 쑥스러워져서 캄파넬라와 함께 다시 창밖만 바라보았다. 새잡이가 이따금 대단하다는 듯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캄파넬라: 이제 곧 독수리 정거장이야.
캄파넬라가 건너편 강기슭에 나란히 선 작고 푸르스름한 삼각표 세 개를 지도와 견주어 보며 말했다.
조반니는 왜 그런지도 모르게 옆자리의 새잡이가 가엾어 견딜 수 없었다. 백로를 잡고 기뻐하던 모습, 흰 천으로 그것을 돌돌 싸던 모습, 남의 표를 놀란 눈으로 곁눈질하고는 허둥지둥 칭찬하던 모습.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자, 이 낯선 새잡이에게 자기가 가진 것이든 먹을 것이든 무엇이든 다 주고 싶어졌다.
이 사람이 정말로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자기가 저 빛나는 은하수 강가에 백 년 동안 서서 새를 잡아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조반니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당신이 정말로 바라는 게 대체 뭔가요. 그렇게 물어보려다가, 그건 너무 뜬금없을 것 같아 어떻게 할까 망설이며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이미 새잡이가 없었다. 그물 선반 위의 흰 짐도 보이지 않았다.
또 창밖에서 다리를 버티고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백로 잡을 채비를 하고 있나 싶어 얼른 그쪽을 보았다. 하지만 창밖에는 아름다운 모래와 흰 억새 물결뿐이었다. 새잡이의 넓은 등도 뾰족한 모자도 보이지 않았다.
캄파넬라: 그 사람, 어디로 갔을까.
캄파넬라도 멍하니 중얼거렸다.
조반니: 어디로 갔을까. 대체 어디서 또 만날 수 있을까. 나는 그 사람한테 말 한마디 제대로 못 건넨 게 너무 후회돼.
캄파넬라: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조반니: 나는 그 사람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너무 괴로워.
조반니는 이런 이상한 기분이 든 건 정말 처음이었다. 이런 말을 입 밖에 낸 것도 처음이었다.
캄파넬라: 어쩐지 사과 냄새가 나. 내가 방금 사과 생각을 해서 그런가?
캄파넬라가 신기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조반니: 정말 사과 냄새다. 그리고 들장미 냄새도 나.
조반니도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냄새는 역시 창문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지금은 가을이니 들장미 꽃향기가 날 리 없는데. 조반니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였다. 어느새 여섯 살쯤 된 남자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윤기 나는 검은 머리에, 빨간 재킷 단추도 채우지 않은 채였다. 아이는 놀란 얼굴로 맨발인 채 떨고 있었다.
아이 곁에는 검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키 큰 청년이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서 있었다. 바람을 맞고 선 느티나무처럼 꼿꼿한 모습이었다.
가정교사: 여기가 어디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청년이 말했다. 그 뒤에는 검은 외투를 입은 열두 살쯤 된 여자아이가 있었다. 귀여운 갈색 눈을 한 아이는 청년의 팔에 매달린 채 신기한 듯 창밖을 내다보았다.
가정교사: 여기는 랭커셔야. 아니, 코네티컷주다. 그래, 우리는 하늘에 온 거야. 우리는 하늘나라로 가는 거예요. 봐요, 저 표시가 하늘나라의 표시예요. 이제 무서울 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는 하느님께 부름을 받은 거예요.
검은 옷의 청년은 기쁜 듯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어쩐지 그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고, 몹시 지쳐 보였다.
청년은 애써 웃으며 남자아이를 조반니 옆에 앉혔다. 그리고 여자아이에게는 캄파넬라 옆자리를 다정하게 가리켰다. 여자아이는 얌전히 그 자리에 앉아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다다시: 나, 누나한테 가는 거야.
막 자리에 앉은 남자아이가 등대지기 건너편 자리에 앉은 청년에게 말했다. 청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픈 얼굴로 아이의 곱슬곱슬하고 젖은 머리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여자아이는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가정교사: 아버님과 누님은 아직 하실 일이 많아요. 하지만 곧 뒤따라오실 거예요. 그보다 어머님이 얼마나 오래 기다리셨겠어요.
가정교사: 우리 소중한 다다시는 지금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눈 내리는 아침에 친구들과 손을 잡고 딱총나무 덤불을 빙빙 돌며 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거예요. 그러니 얼른 가서 어머님을 만나요.
다다시: 응. 그래도 나, 배 같은 거 타지 말 걸 그랬어.
남자아이가 말했다.
가정교사: 그래요. 하지만 저 멋진 강을 봐요. 여름 내내 ‘반짝반짝 작은 별’을 부르고 쉴 때면, 늘 창밖으로 희뿌옇게 보이던 곳이잖아요. 바로 저기예요. 봐요, 예쁘죠? 저렇게 빛나고 있어요.
울고 있던 누나도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고 창밖을 보았다. 청년은 타이르듯 다시 남매에게 말했다.
가정교사: 우리는 이제 슬플 일이 하나도 없어요. 이렇게 멋진 곳을 여행하면서 곧 하느님 곁으로 가는 거예요. 그곳은 정말 밝고 향기롭고, 훌륭한 분들로 가득하답니다.
가정교사: 그리고 우리 대신 보트에 탄 사람들은 분명 모두 구조되어서, 애태우며 기다리는 아버지 어머니 곁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갈 거예요. 자, 이제 금방이니까 힘을 내서 즐겁게 노래하며 가요.
청년은 남자아이의 젖은 듯한 검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들을 달랬다. 그러는 사이 청년 자신의 얼굴빛도 차츰 밝아졌다.
등대지기: 당신들은 어디서 오셨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아까의 등대지기가 이제야 조금 사정을 알겠다는 듯 청년에게 물었다. 청년은 희미하게 웃었다.
가정교사: 실은 배가 빙산에 부딪혀 가라앉았습니다. 이 아이들 아버님이 급한 일로 두 달 전에 먼저 본국으로 돌아가셔서, 저희는 나중에 출발했지요. 저는 대학에 다니면서 이 댁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가정교사: 그런데 꼭 열이틀째 되던 날, 오늘인가 어제쯤에 배가 빙산에 부딪혀 단숨에 기울더니 금세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달빛이 어딘가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지만 안개가 아주 짙었어요. 게다가 왼쪽 뱃전의 보트는 절반이 이미 못 쓰게 되어서, 모두가 다 탈 수는 없었습니다.
가정교사: 배는 가라앉고 있었고, 저는 죽을힘을 다해 어린아이들을 태워 달라고 외쳤습니다. 가까이 있던 사람들은 곧바로 길을 비켜 주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보트까지 가는 길에는 아직도 어린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있어서, 그들을 밀쳐 낼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가정교사: 그래도 저는 이 아이들을 살리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해서, 앞에 있는 아이들을 밀어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도, 그보다는 다 함께 하느님 앞으로 가는 편이 이 아이들에게 정말로 행복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정교사: 그러다 또, 하느님을 거스르는 죄는 저 혼자 짊어지고 어떻게든 이 아이들만은 살리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가정교사: 아이들만 태운 보트로 아이를 내려보내며 어머니는 미친 듯이 입맞춤을 보내고, 아버지는 슬픔을 꾹 참고 꼿꼿이 서 있었습니다. 그 모습은 정말 창자가 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가정교사: 그러는 동안에도 배는 자꾸만 가라앉았습니다. 저희는 한데 뭉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두 아이를 끌어안은 채 떠 있을 수 있는 데까지는 떠 있자며 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습니다. 누가 던졌는지 구명부표가 하나 날아왔지만, 미끄러져 저 멀리 가 버렸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갑판의 격자 판을 뜯어내어, 셋이서 그것을 꼭 붙잡았습니다.
가정교사: 어디선가 306장! 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두가 저마다 자기 나라 말로 일제히 그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그때 갑자기 커다란 소리가 나더니 저희는 물에 빠졌습니다. 이제 소용돌이에 휘말렸구나 생각하며 이 아이들을 꼭 끌어안고 정신이 아득해졌는데, 깨어 보니 벌써 이곳에 와 있었습니다.
가정교사: 이 아이들 어머님은 재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네, 보트는 틀림없이 무사했을 겁니다. 아무튼 노련한 뱃사람들이 노를 저어 재빨리 배에서 멀어졌으니까요.
주위에서 나지막한 탄식과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조반니도 캄파넬라도 지금까지 잊고 있던 여러 가지 일들이 어렴풋이 떠올라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아, 그 큰 바다가 태평양이라는 곳 아니었을까. 빙산이 떠내려오는 북쪽 끝 바다에서, 작은 배를 타고 바람과 얼어붙는 바닷물과 매서운 추위에 맞서 싸우고 있는 누군가가 있어. 나는 그 사람에게 정말 미안하고 면목이 없어. 나는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
조반니는 고개를 떨군 채 깊이 시무룩해졌다.
등대지기: 무엇이 행복인지는 알 수 없는 법이지요. 아무리 괴로운 일이라도 그것이 올바른 길을 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면, 고갯길을 오르는 것도 내려가는 것도 모두 참된 행복에 다가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니까요.
등대지기가 위로했다.
가정교사: 그렇습니다. 가장 큰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라면, 갖가지 슬픔도 모두 하느님의 뜻입니다.
청년이 기도하듯 대답했다.
그 사이 남매는 지칠 대로 지쳐 서로에게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아까까지 맨발이던 발에는 어느새 하얗고 부드러운 신이 신겨져 있었다.
기차는 덜컹덜컹 소리를 내며 휘황한 인광이 흐르는 강둑을 따라 달렸다. 맞은편 창밖의 들판은 꼭 환등기로 비춘 그림 같았다. 크고 작은 삼각표 수백, 수천 개가 늘어서 있었고, 커다란 것 위에는 붉은 점이 찍힌 측량 깃발도 보였다.
들판 끝에서는 그것들이 한데 모여 희미한 푸른 안개처럼 보였다. 거기서, 혹은 그보다 더 먼 곳에서, 이따금 갖가지 모양의 희미한 봉화 같은 것이 아름다운 도라지꽃빛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투명하고 아름다운 바람에는 장미 향기가 가득했다.
등대지기: 어떻습니까. 이런 사과는 처음 보시지요?
맞은편 자리의 등대지기가 황금빛과 붉은빛으로 아름답게 물든 커다란 사과를 두 팔로 무릎 위에 한가득 안고 있었다.
가정교사: 아니, 이게 어디서 났습니까? 정말 훌륭하군요. 여기서는 이런 사과가 납니까?
청년은 정말 놀란 얼굴이었다. 등대지기의 두 팔에 안긴 사과 더미를 눈을 가늘게 뜨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며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등대지기: 자, 어서 하나 드시오. 자, 어서요.
청년은 하나를 집어 들고 조반니 쪽을 힐끗 보았다.
가정교사: 자, 저쪽 도련님들도 어떠세요. 하나씩 드세요.
조반니는 도련님이라는 말이 조금 거슬렸다. 하지만 캄파넬라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캄파넬라: 고맙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직접 사과를 하나씩 두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조반니도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조반니: 고맙습니다.
등대지기는 그제야 두 팔이 비자, 이번에는 잠든 남매의 무릎 위에 손수 하나씩 살며시 올려 주었다.
가정교사: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사과는 어디서 나는 겁니까?
청년이 사과를 찬찬히 살펴보며 물었다.
등대지기: 이 근방에서도 물론 농사를 짓지요. 하지만 대개는 저절로 좋은 것이 나도록 약속되어 있다오. 농사도 그리 힘들지 않아요. 바라는 씨앗만 뿌려 두면 대개 저절로 쑥쑥 자라지요. 쌀도 태평양 근방 것처럼 껍질이 없고, 열 배나 크고 향도 좋다오.
등대지기: 하지만 당신들이 가시는 곳에는 이제 농사가 없어요. 사과도 과자도 찌꺼기가 조금도 남지 않아서,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은은하고 좋은 향기가 되어 땀구멍으로 흩어져 버린답니다.
그때 남자아이가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다다시: 아, 나 방금 엄마 꿈 꿨어. 엄마가 말이야, 멋진 찬장이랑 책이 있는 곳에 있었는데, 나를 보고 손을 내밀면서 방긋방긋 웃었어. 내가 엄마, 사과 주워다 드릴까요? 했더니 잠이 깼어. 아, 여기 아까 그 기차 안이구나.
가정교사: 그 사과가 여기 있어요. 이 아저씨가 주셨답니다.
다다시: 고맙습니다, 아저씨. 어, 가오루 누나는 아직 자네. 내가 깨워 줄게. 누나, 이거 봐. 사과 받았어. 일어나 봐.
누나는 웃으며 눈을 떴다. 눈이 부신 듯 두 손으로 눈가를 가렸다가 사과를 보았다.
남자아이는 벌써 파이라도 먹듯 사과를 먹고 있었다. 애써 깎은 예쁜 껍질은 코르크 마개뽑이처럼 빙글빙글 말려 내려가다가, 바닥에 닿기도 전에 스르르 잿빛으로 빛나며 증발해 버렸다.
조반니와 캄파넬라는 사과를 소중히 주머니에 넣었다.
강 아래쪽 건너편 기슭에 푸르게 우거진 커다란 숲이 보였다. 나뭇가지마다 잘 익어 새빨갛게 빛나는 둥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숲 한가운데에는 높디높은 삼각표가 서 있었다. 숲속에서는 오케스트라 같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소리가 녹아들 듯 스며들 듯 바람을 타고 흘러왔다.
청년은 오싹한 듯 몸을 떨었다.
말없이 그 음악을 듣고 있으니, 주위에 온통 노랗고 연한 초록빛의 밝은 들판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새하얀 밀랍 같은 이슬이 해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 같았다.
가오루: 어머, 저 까마귀 좀 봐!
캄파넬라 옆에 앉은, 가오루라고 불린 여자아이가 소리쳤다.
캄파넬라: 까마귀가 아니야. 전부 까치야.
캄파넬라가 무심코 나무라듯 외치는 바람에 조반니는 저도 모르게 웃었고, 여자아이는 무안해했다. 정말로 강가의 푸르스름한 빛 위에 검은 새들이 줄지어 앉아, 강물의 희미한 빛을 가만히 받고 있었다.
가정교사: 까치가 맞네요. 머리 뒤쪽 깃털이 빳빳하게 뻗어 있으니까요.
청년이 둘 사이를 달래듯 말했다.
푸른 숲 한가운데 선 삼각표가 기차 정면으로 다가왔다. 그때 기차 뒤쪽에서 귀에 익은 306장 찬송가 가락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함께 부르는 듯했다.
청년의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청년은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가려다가, 곧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가오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
조반니도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그런데 어느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 노래가 시작되더니 점점 또렷하고 힘차게 퍼져 나갔다. 조반니와 캄파넬라도 저도 모르게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푸른 올리브 숲이 보이지 않는 은하수 저편에서 조용히 빛나며 차츰 뒤로 멀어져 갔다. 숲에서 흘러오던 신비한 악기 소리도 기차 소리와 바람 소리에 묻혀 점점 희미해졌다.
승객: 봐, 공작이 있어. 아, 공작이야.
누군가 소리쳤다.
가오루: 저 숲은 분명 하프들이 머무는 집일 거야. 옛날 큰 오케스트라 사람들이 다 모여 있을 것 같아. 그 둘레엔 푸른 공작이 잔뜩 있을 게 틀림없어.
다른 여자아이: 응, 많이 있었어.
조반니는 점점 작아지는 숲 위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공작들이 날개를 폈다 접었다 하는 것을 보았다.
캄파넬라: 맞아, 아까 공작 우는 소리도 들렸어.
캄파넬라가 여자아이에게 말했다.
가오루: 응, 서른 마리쯤은 틀림없이 있었어.
조반니는 갑자기 말할 수 없는 슬픔이 북받쳤다. 캄파넬라, 우리 여기서 내려서 놀러 가자.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려 했지만, 얼굴이 굳어 버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조반니는 강 아래쪽 저 멀리서 이상한 것을 보았다. 검고 매끈하고 길쭉한 것이 보이지 않는 은하수의 물 위로 튀어 올라 활처럼 휘어지며 물속으로 사라졌다. 이상하다 싶어 유심히 보고 있으니, 이번에는 가까운 곳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이윽고 여기저기서 그 검고 매끈한 것들이 물에서 튀어 올라 둥글게 날았다가 다시 물속으로 잠기는 모습이 수없이 보였다. 모두 물고기처럼 강 위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가오루: 어머, 저게 뭘까. 다다시야, 봐. 잔뜩 있어. 저게 뭐지?
가오루의 말에, 졸린 듯 눈을 비비던 남자아이가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가정교사: 뭘까요.
청년도 일어섰다.
가오루: 이상한 물고기네. 저게 뭘까?
캄파넬라: 돌고래야.
캄파넬라가 그쪽을 보며 대답했다.
가오루: 돌고래는 처음 봐. 그런데 여긴 바다도 아닌데.
낮은 목소리: 돌고래가 꼭 바다에만 있는 건 아니지.
그 이상하게 낮은 목소리가 또 어디선가 들려왔다.
정말로 돌고래의 모양은 이상했다. 두 팔을 아래로 내린 듯한 자세로 물속에서 튀어 올랐다가, 머리를 아래로 하고 다시 물속으로 돌아갔다. 보이지 않는 은하수의 물도 그때만큼은 푸른 불꽃처럼 일렁였다.
가오루: 돌고래는 물고기야?
여자아이가 캄파넬라에게 물었다. 남자아이는 지친 듯 자리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캄파넬라: 돌고래는 물고기가 아니야. 고래랑 같은 종류의 동물이야.
가오루: 너 고래 본 적 있어?
캄파넬라: 응, 있어. 고래는 머리하고 검은 꼬리만 보여. 물을 뿜으면 꼭 책에 그려진 것처럼 보여.
가오루: 고래라면 크겠다.
캄파넬라: 고래는 커. 새끼만 해도 돌고래만 하거든.
가오루: 맞아, 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봤어.
누나는 가느다란 은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즐겁게 이야기했다.
캄파넬라, 나 이제 가 버릴 거야. 나는 고래 같은 건 본 적도 없단 말이야.
조반니는 견딜 수 없이 속이 탔지만, 입술을 깨물고 꾹 참으며 창밖을 보았다. 창밖에는 이제 돌고래도 보이지 않았다. 강은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다.
어두운 섬 한가운데에 높디높은 망루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에 헐렁한 옷을 입고 빨간 모자를 쓴 남자 하나가 서 있었다. 남자는 두 손에 빨간 깃발과 파란 깃발을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