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von 허균
이때 길동의 나이는 열한 살이었다.
기골은 장대하고, 용맹은 남달랐다.
시서백가에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으나, 대감의 분부로 밖에 출입할 수 없었다.
그는 홀로 별당에 머물며 손오의 병서를 익혔다.
귀신도 헤아리지 못할 술법과 천지조화를 품어 풍운을 마음대로 부리고, 육정육갑의 신장을 부리는 신출귀몰한 술법까지 통달했다.
이제 길동에게 세상에 두려운 것은 없었다.
그날 밤, 삼경이 지난 뒤였다.
길동은 막 책상을 물리고 잠자리에 들려 했다.
그런데 문득 창밖에서 까마귀가 세 번 울더니 서쪽으로 날아갔다.
길동은 마음속으로 크게 놀라 생각했다.
‘까마귀가 세 번 “객자와, 객자와” 하고 울고 서쪽으로 날아가니, 분명 자객이 오는 것이다. 누가 나를 해치려 하는가. 아무래도 몸을 지킬 계책을 세워야겠다.’
길동은 방 안에 팔진을 치고, 각각 방위를 바꾸었다.
남방의 이허중은 북방의 감중연으로 옮기고,
동방 진하연은 서방 태상절로 옮기며,
건방의 건삼연은 손방 손하절로 옮기고,
곤방의 곤삼절은 간방 간상연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풍운을 넣어 조화가 무궁하게 펼쳐지게 한 뒤, 때를 기다렸다.
한편 특재는 비수를 들고 길동이 머무는 별당으로 갔다.
그는 몸을 숨기고 길동이 잠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난데없이 까마귀가 창밖에 와 울고 날아가자, 마음속으로 크게 의심했다.
‘이 짐승이 무슨 앎이 있어 천기를 누설하는가? 길동은 실로 범상한 사람이 아니로다. 반드시 훗날 크게 쓰일 인물이다.’
특재는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은자의 욕심이 목숨을 생각하지 못하게 했다.
잠시 뒤 그는 몸을 날려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길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 한바탕 광풍이 일어나고 우레와 벼락이 천지를 뒤흔들었다.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동서조차 분별할 수 없었다.
좌우를 살피니 천 봉우리와 만 골짜기가 겹겹이 둘러싸여 있고, 큰 바다가 넘실거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특재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분명 방 안에 들어왔는데, 이 산은 무슨 산이며 이 물은 또 무슨 물인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옥피리 소리가 들렸다.
살펴보니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백학을 타고 공중을 날아다니며 외쳤다.
“너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 깊은 밤 비수를 들고 누구를 해치려 하느냐?”
특재가 대답했다.
“네가 분명 길동이로구나. 나는 네 부형의 명을 받아 너를 잡으러 왔다.”
그는 비수를 들어 던졌다.
그러나 갑자기 길동은 사라지고, 음산한 바람이 크게 일어나며 벼락이 진동했다.
하늘에는 살기만 가득했다.
특재는 마음속으로 크게 겁을 먹고 칼을 찾으며 말했다.
“내가 남의 재물을 탐하다가 사지에 빠졌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그가 길게 탄식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길동이 비수를 들고 공중에서 외쳤다.
“필부는 들어라. 네가 재물을 탐해 죄 없는 사람을 죽이려 하니, 이제 너를 살려 두면 훗날 죄 없는 사람이 허다하게 다칠 것이다. 어찌 살려 보내겠느냐?”
특재가 애원했다.
“과연 소인의 죄가 아니옵니다. 이는 공자 댁 초낭자의 소행이오니, 바라옵건대 가련한 목숨을 살려 주시어 훗날 잘못을 고치게 해 주옵소서.”
길동은 더욱 분노를 참지 못했다.
“네 악한 기운이 하늘에 사무쳤으니, 오늘 내 손을 빌려 악한 무리를 없애려는 것이다.”
말이 끝나자 길동은 특재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 신장을 호령하여 동대문 밖의 관상녀를 잡아오게 했다.
길동은 그녀의 죄를 물었다.
“너는 요망한 년으로 재상가에 드나들며 사람의 목숨을 해치려 했다. 네 죄를 아느냐?”
관상녀는 제 집에서 졸다가 풍운에 휩싸여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끌려왔다.
그러다 문득 길동이 꾸짖는 소리를 듣고 애원했다.
“이는 다 소녀의 죄가 아니라 초낭자의 가르침이옵니다. 바라건대 인후하신 마음으로 죄를 용서해 주옵소서.”
길동이 말했다.
“초낭자는 내 의모라 의논하지 않겠다. 그러나 너 같은 악종을 내가 어찌 살려 두겠느냐. 훗날 사람들을 징계하리라.”
그는 칼을 들어 관상녀의 머리를 베고, 특재의 시체와 함께 던져 두었다.
분한 마음을 걷잡지 못한 길동은 곧바로 대감 앞에 나아가 이 변괴를 아뢰고 초낭을 베려 했다.
그러나 문득 생각했다.
‘차라리 남이 나를 저버리게 할지언정, 내가 먼저 아버지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또 내가 일시의 분노로 어찌 인륜을 끊겠는가.’
길동은 바로 대감의 침소로 나아가 뜰 아래 엎드렸다.
그때 대감은 잠에서 깨어 문밖에 사람의 기척이 있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창을 열고 보니 길동이 뜰 아래 엎드려 있었다.
대감이 물었다.
“이제 밤이 이미 깊었거늘, 너는 어찌 자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이러고 있느냐?”
길동이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집안에 흉한 변이 있어 목숨을 보전하고자 도망쳐 나가옵니다. 대감께 하직하고자 왔나이다.”
대감은 놀라 속으로 생각했다.
‘필시 무슨 사연이 있구나.’
그리고 말했다.
“무슨 일인지는 날이 새면 알 것이니, 급히 돌아가 자고 분부를 기다려라.”
길동이 엎드려 아뢰었다.
“소인은 이제 집을 떠나가옵니다. 대감께서는 몸을 보중하시고 만복을 누리옵소서. 소인이 다시 뵈올 기약은 아득하옵니다.”
대감은 헤아렸다.
길동은 범상한 아이가 아니다.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을 짐작했다.
대감이 물었다.
“네가 이제 집을 떠나면 어디로 가겠느냐?”
길동이 엎드려 아뢰었다.
“목숨을 보전하려 천지를 집 삼아 나가오니, 어찌 정처가 있겠사옵니까. 다만 평생의 원한이 가슴에 맺혀 풀 날이 없으니, 더욱 서럽사옵니다.”
대감은 위로하듯 말했다.
“오늘부터 네 원을 풀어 주겠다. 네가 나가 사방을 떠돌지라도 부디 죄를 지어 부형에게 화를 끼치지 말고, 속히 돌아와 내 마음을 위로하라. 여러 말 하지 않겠다. 부디 조심하여라.”
길동은 일어나 다시 절하며 아뢰었다.
“부친께서 오늘 여러 해의 소원을 풀어 주시니, 이제 죽어도 한이 없사옵니다. 황공하오니 바라건대 아버님께서는 만세무강하옵소서.”
길동은 하직을 고하고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어머니의 침실로 들어가 말했다.
“소자가 이제 목숨을 보전하고자 집을 떠나옵니다. 모친께서는 불효자를 생각하지 마시고 계십시오. 소자가 돌아와 뵈올 날이 있을 것이니, 달리 염려하지 마시고 부디 조심하시어 천금 같은 몸을 보중하옵소서.”
길동은 초낭이 꾸민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낱낱이 설명했다.
어머니는 그 변괴를 자세히 들은 뒤, 길동을 말릴 수 없음을 알았다.
그녀는 탄식했다.
“네가 이제 나가 잠시 화를 피하고, 어미 얼굴을 보아 속히 돌아와라. 나로 하여금 실망의 병이 들게 하지 말아라.”
어머니는 몹시 서러워했다.
길동은 여러 번 위로하며 눈물을 거두었다.
그리고 하직한 뒤 문밖으로 나섰다.
넓은 천지 사이에, 한 몸을 들일 곳이 없었다.
길동은 탄식하며 정처 없이 길을 떠났다.
한편 부인은 자객을 길동에게 보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날 밤이 다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고 수없이 탄식했다.
장자 길현이 위로했다.
“소자도 실로 마지못해 한 일이옵니다. 저 아이가 죽은 뒤라도 어찌 한이 없겠습니까? 그의 어미를 더욱 후대하여 평생 편히 지내게 하고, 그의 시신을 후하게 장사 지내 마음의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옵니다.”
그렇게 밤을 지냈다.
이튿날 새벽, 초낭은 별당에서 날이 밝도록 소식이 없는 것을 이상히 여겼다.
사람을 보내 살펴보게 하니, 길동은 간 곳이 없고 목 없는 시체 둘이 방 안에 거꾸러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특재와 관상녀였다.
초낭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라 급히 내당으로 들어가 이 사연을 부인에게 고했다.
부인은 크게 놀라 장자 길현을 불러 길동을 찾게 했다.
그러나 끝내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부인은 대감을 청해 모든 일을 아뢰고 죄를 청했다.
대감은 크게 꾸짖었다.
“집안에서 이런 변고를 일으켰으니 화가 장차 끝이 없을 것이다. 지난밤 길동이 집을 떠난다며 하직을 고하기에 무슨 일인지 몰랐더니, 원래 이런 일이 있었구나.”
그리고 초낭을 크게 꾸짖었다.
“네가 앞서 괴이한 말을 지어내기에 꾸짖어 물리치고 다시는 그런 말을 꺼내지 말라 하였거늘, 끝내 마음을 고치지 않고 집안에 이런 변을 일으켰다. 죄를 논한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어찌 내 눈앞에 두고 보겠느냐.”
대감은 노복을 불러 두 시체를 남몰래 치우게 했다.
그리고 마음 둘 곳을 몰라 앉아도 편치 않았다.
이때 길동은 집을 떠나 사방으로 떠돌고 있었다.
어느 날 한 곳에 이르렀다.
겹겹이 쌓인 산은 하늘에 닿은 듯했고, 초목이 무성하여 동서를 분별할 수 없었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었고, 인가도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는 형세였다.
길동은 배회하며 망설였다.
그때 한 곳을 바라보니, 이상한 표주박 세 개가 냇물을 따라 떠내려오고 있었다.
길동은 인가가 있으리라 짐작하고 냇물을 따라 몇 리를 들어갔다.
그러자 산천이 탁 트인 곳에 수백 채의 집이 줄지어 있었다.
길동이 그 마을로 들어갔다.
한곳에서는 수백 명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었고, 술상과 음식상이 어지럽게 차려져 있었다.
사람들의 의논 소리가 분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