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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von 허균 · 2026-08-25

길동은 삼군을 거느려 승전고를 울리며 본진으로 돌아와 군사들을 먹였다.

그리고 율도왕을 왕의 예로 장사 지냈다.

이어 삼군을 재촉하여 도성을 에워쌌다.

율도왕의 맏아들이 아버지의 흉변을 듣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하들은 어쩔 도리가 없어 옥새를 받들고 항복했다.

길동은 대군을 몰아 도성에 들어가 백성을 위로하고 안정시켰다.

율도왕의 아들 또한 왕의 예로 장사 지냈다.

각 고을에 크게 사면령을 내려 죄인을 모두 풀어 주고, 창고를 열어 백성을 구휼했다.

온 나라에 그 덕을 기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날을 가려 왕위에 오른 뒤, 아버지 홍 승상을 태조대왕으로 높이고 능호를 현덕릉이라 했다.

어머니는 왕대비로 봉하고, 백용은 부원군으로 봉했다.

백씨를 중전 왕비로, 정씨와 조씨 두 사람을 정숙비로 봉했다.

삼호걸을 대사마 대장군으로 삼아 병마를 총괄하게 했다.

김인수에게는 청주절도사를, 맹충에게는 부원수를 내렸다.

그 밖의 장수들에게도 차례로 상을 내리니, 한 사람도 원망하는 이가 없었다.

새 왕이 나라를 다스린 뒤로 철마다 날씨가 고르고 해마다 풍년이 들었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편안하여 사방에 일이 없었다.

덕화가 널리 퍼져 길에 떨어진 물건도 주워 가는 이가 없었다.

그렇게 태평하게 세월을 보내던 중, 수십 년 뒤에 대왕대비가 세상을 떠났다.

그때 나이 일흔셋이었다.

왕은 못내 슬퍼하며 예를 다해 상을 치르니, 그 효성이 온 백성을 감동시켰다.

현덕릉에 모셨다.

왕은 아들 셋과 딸 둘을 두었다.

맏아들 항은 아버지의 풍모를 지녀 백성과 신하가 모두 태산처럼 우러렀다.

왕은 맏아들을 태자로 봉하고, 여러 고을에 사면령을 내린 뒤 태평연을 베풀어 즐겼다.

그때 왕의 나이 일흔이었다.

술을 들어 반쯤 취한 뒤 칼을 잡고 춤추며 노래했다.

“칼을 잡고 오른손에 비껴 서니 남쪽 바다가 몇만 리인가.”

“큰 붕새가 날아오르니 회오리바람이 이는구나.”

“춤추는 소매가 바람을 따라 표표히 날리니, 동편에도 서편에도 매복이 없구나.”

“풍진을 쓸어버리고 태평을 일삼으니, 상서로운 구름이 일고 상서로운 별이 비치는구나.”

“용맹한 장수가 사방을 지키니, 도적이 국경을 엿보는 일이 없구나.”

이날 왕은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주고 다시 각 고을에 사면령을 내렸다.

도성에서 삼십 리 밖에 월영산이 있었다.

예로부터 도를 얻은 신선들이 이따금 머물던 곳이었다.

갈홍이 단약을 굽던 아궁이가 있고, 마고가 신선이 되어 오르던 바위가 있었다.

기이한 꽃과 나무가 자라고 한가로운 구름이 늘 머물렀다.

왕은 그 산수를 사랑하여 옛 신선 적송자를 좇아 노닐고자 했다.

그리하여 산속에 세 칸 누각을 지어 백씨 중전과 함께 지냈다.

곡식을 물리치고 천지의 정기를 마시며 신선의 도를 배웠다.

태자는 왕위에 올라 한 달에 세 번씩 거둥하여 부왕과 모비께 문안을 올렸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천둥과 벼락이 천지를 진동하고 오색 구름과 안개가 월영산을 감쌌다.

이윽고 천둥이 걷히고 하늘과 땅이 맑아지더니, 신선의 학 우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그리고 대왕과 모비가 간 곳이 없었다.

왕이 급히 월영산으로 거둥하여 살폈으나 종적이 아득했다.

망극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공중을 향하여 수없이 울부짖었다.

대왕 내외의 옷을 현덕릉에 묻어 헛무덤을 지으니,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우리 대왕께서는 신선의 도를 닦아 대낮에 하늘로 오르셨다.”

새 왕은 백성을 사랑하고 덕화에 힘써 온 나라가 태평했다.

백성들은 땅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것을 일삼았고, 어진 자손이 대대로 이어져 태평하게 지냈다.

한편 조선의 홍 승상 댁 대부인이 말년에 세상을 떠났다.

맏아들 길현이 예절을 극진히 하여 선산 기슭에 장사 지내고 삼년상을 마쳤다.

그 뒤 조정에서 권세를 잡아, 처음 벼슬로 한림학사와 대간을 겸했다.

잇달아 승진하여 병조정랑에서 홍문관 교리와 수찬을 겸하고, 거듭 자리가 올라 마침내 승상에 이르렀다.

이렇듯 복이 트여 삼공과 육경을 두루 지내니 그 영화가 온 나라의 으뜸이었다.

그러나 날마다 아버지의 산소를 생각하고 아우를 보고 싶어 했다.

남과 북으로 길이 갈린 것을 끝내 슬퍼하기를 마지않았다.

아름답구나, 길동의 행적이여.

참으로 시원스러운 대장부로다.

비록 천한 몸으로 태어났으나 쌓인 원한을 풀어 버리고 효도와 우애를 온전히 하였다.

그리하여 제 몸을 활짝 펴 보였으니, 만고에 드문 일이기에 뒷사람이 알도록 여기 적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