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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장2. 고3의 새벽

von 음악의 신 · 2026-03-18

삐리리링!!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좋은 아침이에요.

…좋긴 개뿔.

현오는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다. 몸은 납덩이 같고, 공기는 무겁다.

시계를 보니 03:00.

이건 새벽도 아니다. 그냥 ‘밤의 잔재’였다.

손끝으로 알람 시계를 더듬어 꺼버렸다.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그러면 내일의 자신이 욕할 테니까.

화장실로 갔다.

세면대에 얼굴을 묻었다.

차가운 물이 정신을 깨웠다.

거울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늘 실패였다.

붉은 여드름, 앙상한 몸, 웃기게 볼록 나온 아랫배.

자신의 얼굴이 낯설다 못해 짜증난다.

피부는 전쟁터였다.

매일 작은 화산이 터지고, 터진 자리는 시뻘건 흉터가 남는다.

의사들은 말했다. “사춘기니까.”

젠장,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랬는데.

거울을 노려보다가 고개를 홱 돌렸다.

현오: 내일부터는 저 거울을 깨버려야겠다.

입안으로 뱉은 말이 물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팔을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온몸이 뻐근하다.

꿈 때문이다.

며칠째, 같은 꿈.

이상하게 생생했다.

불빛이 어둠을 찢고, 낯선 언어가 허공을 울렸다.

— 홍의 피여, 깨어나라…

— 잊힌 이름의 후예여, 그대의 아침이 온다.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낮고, 뜨거웠고,

가슴 속 어딘가를 두드렸다.

식은땀을 훔쳤다.

심장이 멋대로 두근거린다.

현오: 젠장, 또 그 꿈이야 …

도대체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중세 사극도 아니고, 누가 새벽마다 그딴 대사를 읊는단 말인가.

그런데 더 무서운 건,

그 목소리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

이제는 잠결에도 단어가 또렷하게 들린다.

목소리: 홍의 피여…

그 대목이 나오면 꼭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현오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현오: SF도, 판타지도 싫다고. 제발 좀 꺼져라.

그렇게 중얼거리며 식탁에 앉았다.

하얀 쪽지가 눈에 들어왔다.

현오야, 미안하다. 아침 든든히 먹고 힘내라. 사랑한다 – 엄마

울컥.

그 짧은 글자가 목구멍을 조였다.

현오: 이럴 땐 또 왜 감성 터지는 건데…

눈물이 살짝 고였다. 욕으로 덮었다.

현오: 씨발… 반찬은 또 왜 이렇게 많아.

밥을 한 주걱 퍼서 대충 입에 넣었다.

밥알이 모래처럼 씹힌다.

그래도 삼켰다.

고3은 체력 싸움이다.

현오: 먹고, 버텨야지.

가방을 메고 문을 나섰다.

휘이익~~~!

새벽 바람이 뺨을 후려쳤다.

늦 여름이라 해도, 새벽의 바람은 살을 베었다.

현오: 으, 추워… 젠장.

고3이 되고 나서 ‘젠장’이란 단어는 그의 생활의 절반이었다.

집, 학교, 세상 전부가 그에게는 젠장이었다.

도시의 어둠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발자국 소리만 메아리쳤다.

현오: 내가 왜 이렇게 일찍 나왔지.

첫 차까지 아직 20 분 남았다.

기다림은 질색이다.

아버지를 기다리던 시간부터, 기다림은 늘 불행의 전조였다.

생각을 털며 공원 쪽 길로 방향을 틀었다.

조금 더 걸으면, 적어도 시간은 줄일 수 있으니까.

터벅— 터벅—

그때,

남자: 이 썅년! 조용히 못해!

여자: 너 4반 재우지? 이거 놔!

목소리.

남자의 거친 욕설, 여자의 울음.

현오는 잠깐 멈췄다.

이성은 계속 그냥 가라고 한다.

참견해 봐야 도움이 안될께 뻔했다.

하지만......

현오: 야, 재우! 새벽부터 뭐 하는 짓이냐! 그냥 가면 안 되겠냐?

입이 먼저 나갔다.

그 순간, 스스로가 놀랐다.

왜 끼어드냐, 이 바보야.

이미 늦었다.

재우가 천천히 뒤돌았다.

놈의 금속성 눈빛. 여자애는 이미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다.

재우: 어느 개새끼야.

현오의 머리가 새하얘졌다.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발은 붙박이처럼 땅에 박혀 있었다.

재우: 호오… 반장이면 눈에 뵈는 게 없냐?

재우가 다가왔다.

그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 단어, ‘반장’.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말이었다.

공부 잘한다고 떠넘겨진, 자격 없는 직책.

선생들이 좋아하는 모범생.

하지만 실상은—

사람 앞에 서는 게 죽기보다 싫은 놈이었다.

현오의 입술이 말라붙었다.

현오: 젠장…

재우가 야비하게 웃었다.

재우: 너, 오늘 운 없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퍽!

복부에 쏟아진 충격.

그 한 방은 주먹이 아니라, 쇳덩이가 박히는 느낌이었다.

폐가 안쪽에서 찢어지는 듯했다.

“컥—!”

공기가 빠져나갔다.

몸이 반으로 접혔다.

가슴이 저려오고, 시야가 깜박였다.

재우: 모처럼 내가 눈독 들이고 있던 미나를 먹으려는데

퍽!

재우: 너 따위가

퍽!

재우: 왜 나서서 성가시게 구냐구!

퍽!

여자애: 그만해, 재우! 그만하라고!

여자애가 미나였구나. 우리학교 퀸카...

현오는 두드려 맞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도 남자다. 그녀를 흠모하는 뭇 남학생들중 하나인 것이다.

미나: 제발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미나: 미나의 목소리가 터졌다.

재우가 흘겨봤다.

재우: 입 다물라니까.

다음 순간, 무릎이 날아왔다.

퍽!

이번엔 배가 아니라 갈비뼈.

딱딱한 뼈가 ‘뻐걱’하며 휘었다.

숨이 끊겼다.

현오의 몸이 허공에 떴다가 바닥에 처박혔다.

모래와 먼지가 입안으로 들어왔다.

혀끝에서 쇠맛이 번졌다.

입가가 붉게 번졌다.

재우가 웃었다.

재우: 반장님 체력은 개판이네?

그가 현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다시 끌어올렸다.

눈앞이 흔들린다.

귀가 멍해지고, 세상이 멀어진다.

재우: 이 새끼가 말이 많았지?

재우의 손이 뒤로 젖혀졌다.

주먹이 다시 날아온다.

그 순간,

미나가 달려들었다.

미나: 하지 마!

재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미나: 놔… 그만해, 재우. 경찰 오면......

재우: 닥쳐!

재우가 소리쳤다.

그녀를 밀쳐내며, 손끝으로 현오의 뺨을 후려쳤다.

짝!

불빛이 터졌다.

현오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한쪽 귀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그 와중에도,

미나가 재우의 팔에 매달렸다.

미나: 제발 그만! 네가 사람이라면!

재우: 사람? 하, 웃기지 마.

재우는 한번 눈이 돌면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놈이었다.

벽돌을 집어 들었다.

"퍽"

바닥에 피가 번졌다.

벽돌이 붉게 물들었다.

미나가 비명을 질렀다.

미나: 악!

현오는 그 모든 걸 슬로우모션처럼 보았다.

벽돌이, 공기 속을 천천히 가르며 올라간다.

빛이 그 표면을 스친다.

공기 속의 먼지가 유리조각처럼 부서졌다.

심장이 울렸다.

쿵—쿵—

그때,

현오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울림이 터졌다.

목소리: ... 피의 후예여, 일어나라.

현오: 뭐…?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그러나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벽돌이 그의 시야를 덮기 직전,

한 줄기 빛이 스쳤다.

불빛이었다.

누군가의 손이 그 위로 들어왔다.

미나: 꺄악!

미나가 그의 위로 몸을 덮었다.

벽돌이 바닥에 떨어졌다.

쾅!

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삐익~~!

공원 어귀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울렸다.

재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재우: 이 새끼들… 오늘은 운 좋은 줄 알아.

그는 오토바이로 달려갔다.

엔진이 포효했다.

연기가 새벽 공기를 찢었다.

페달을 밟는 소리, 쇳소리, 매캐한 연기 냄새.

모든 게 천천히 흩어졌다.

현오는 바닥에 누운 채로 하늘을 봤다.

별이 없었다.

대신 불빛처럼 희미한 무언가가 깜박였다.

그의 귓속에서는 아직도,

그 목소리가 맴돌고 있었다.

현오: ‘젠장… 나 진짜 왜 끼어들었지.’

모든 게 천천히 흩어졌다.

공원에는 고요가 남았다.

현오의 시야에 여학생 하나가 보였다.

교복 단추가 풀어져 있고, 무릎이 까져 있다.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린 눈물,

익숙한 얼굴.

미나였다.

학교에서 가장 예쁘다고 불렸던,

하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아이.

그녀의 얼굴은 눈물과 먼지에 뒤섞여 있었다.

입술은 피로 얼룩졌고,

눈동자는 공포로 얼어붙어 있었다.

현오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손등 위로 무언가가 뚝— 떨어졌다.

붉은 방울.

현오: 젠장… 내 손이었구나.

피였다.

자신의 것이었다.

팔이 떨렸다.

근육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웅웅거리는 소리만 맴돌았다.

휘이익—

새벽바람이 지나갔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공기가 식었다.

냄새가 변했다.

피 냄새, 흙 냄새, 그리고—

어디선가 익숙한 향.

불탄 쇠의 냄새.

목소리: ... 일어나라, 홍의 피여…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엔 분명히 들렸다.

아니, 귓속이 아니라 머리 안쪽에서 울렸다.

현오: 누…구야…

현오가 입술을 떨며 중얼거렸다.

혀끝에서 피가 번졌다.

시야가 붉게 번진다.

새벽이 아니라, 피가 눈에 번지는 것 같았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바닥의 핏자국과, 하늘의 빛이 하나로 섞였다.

쿵… 쿵…

심장이 요동쳤다.

귀 속의 소리인지, 머리 속의 메아리인지 알 수 없었다.

목소리: ... 네 피가 깨어난다…

현오: 젠…장…

현오의 시야가 기울었다.

미나의 얼굴이 흐려졌다.

그녀의 입이 무언가를 외쳤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빛이 번쩍였다.

피, 모래, 그리고 공기 속의 먼지들이 붉은 소용돌이로 변해 흩날렸다.

몸이 무너졌다.

땅의 감촉이 차갑다.

하지만 곧 아무 감각도 남지 않았다.

새벽은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그 붉음이 현오의 시야를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