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소문에는 발이 달렸다
von 음악의 신 · 2026-08-31
화산까지는 관도로 엿새 길이었다.
무현의 걸음이면 사흘로 줄일 수 있었고, 밤낮없이 달리면 하루 만에도 닿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현은 엿새 길을 엿새에 가기로 했다. 급히 갈수록 눈에 띄고, 눈에 띄면 탈영병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걷는 것이 좋았다. 서른 해 만의 속세였다. 밭갈이하는 소도, 시끄러운 장돌뱅이도, 길가의 개똥까지도 반가웠다.
첫 이틀은 아무 일 없이 갔다. 아니, 무현 기준으로 아무 일이었다.
밭두렁에 빠진 소달구지를 지나가다 들어 올려 준 것이 하나. 개울에 떠내려가는 빨래 함지를 건져 준 것이 둘. 나무에서 못 내려오는 아이를 받아 준 것이 셋. 하나같이 지나가는 사람의 도리라 여겼는데, 등 뒤에서 사람들이 자꾸 수군거렸다. 달구지가 소째로 들렸다느니, 물 위를 걸었다느니. 소는 들지 않았고 물가를 빨리 걸었을 뿐인데, 소문이란 놈은 어디서든 부지런했다.
문제는 밥이었다.
노잣돈 두 냥은 이틀 만에 바닥났다. 몸이 달라진 탓이었다. 역근을 지난 몸은 평소에는 신선처럼 조용하다가도, 한번 허기가 지면 장정 셋 몫을 먹어치웠다. 주먹밥 꾸러미는 첫날 점심에 끝났다. 둘째 날 저녁부터는 길가의 국밥집 앞을 지날 때마다 걸음이 저절로 느려졌다. 냄새만 맡고도 국밥의 종류를 맞히는 재주가 생겼다. 뼛국물에 시래기. 저건 닭 국물. 저 집은 선지를 넣는구나. 서른 해 수련으로 얻은 감각을 이런 데 쓰고 있자니, 옥허노모의 지팡이가 그리워졌다.
사흘째 저녁, 무현은 어느 저잣거리 객잔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국밥 냄새가 담을 넘어오고 있었다.
주머니에는 엽전 몇 닢. 국밥 한 그릇에 어림도 없었다. 무현은 침을 삼키며 객잔 안을 기웃거리다가, 구석 평상에서 바둑판을 벌여 놓은 노인들을 발견했다.
훈수꾼까지 예닐곱이 붙은 판이었다. 그리고 판 옆에 엽전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내기 바둑이었다.
무현은 위기선생을 떠올렸다. 객잔에서 바둑으로 밥값을 벌 수 있다고 한 것은 위기선생 본인이었다. 흐름을 읽는 눈은 어디서든 밥은 번다고.
"저, 어르신들. 한 수 배워도 되겠습니까."
"뭐야, 이 도령은. 내기 바둑이야. 코 묻은 돈은 안 받는다."
"돈은 이것뿐입니다만."
엽전 몇 닢을 내놓자 노인들이 코웃음을 쳤다.
"그걸로는 국밥 내기도 안 돼."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제가 지면 이 돈에다, 물을 긷고 장작을 패겠습니다. 제가 이기면 국밥 한 그릇만 사 주십시오."
"허, 배포는 있네. 좋다. 앉아라."
첫 판에서 무현은 곤란한 사실을 깨달았다.
져 주는 것이 안 됐다.
접대 바둑이라는 것을 해 볼 요량이었다. 초장에 슬쩍 몇 집 져 주고 두 번째 판에 이겨서 국밥만 따면 그림이 좋았다. 그런데 손이 말을 안 들었다. 삼만 판을 둔 손은 죽는 자리에 돌을 놓는 것을 몸이 거부했다. 대충 두려고 하면 할수록 판이 더 좋아졌다.
첫 판 상대는 이 저잣거리 바둑판을 십 년 주름잡았다는 조 첨지였다. 조 첨지는 초반 열 수 만에 콧노래를 그쳤고, 스무 수에 부채질을 그쳤고, 서른 수에는 훈수꾼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성을 냈다. 훈수꾼들은 이미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할 말을 아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이보게. 방금 그 수는 왜 거기다 둔 겐가."
"여기가 아프시길래."
"아프다니. 돌이 아픈가."
"예. 아까부터 이쪽 돌들이 끙끙 앓는 소리를 내서."
훈수꾼들이 바둑판에 귀를 기울였다. 물론 아무 소리도 안 났다.
"…젊은이."
쉰 수 만에 조 첨지가 돌을 던지며 물었다.
"자네 뭐 하는 사람인가."
"길 가는 사람입니다."
"어디서 바둑을 배웠어."
"산에서, 어느 어르신께 어깨너머로."
"그 어르신이 뉘신데."
"내기 바둑을 아주 좋아하시고, 다 진 판에서 무르기를 하시는 분입니다."
노인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신선을 욕보인 셈이 되었지만, 위기선생이라면 껄껄 웃고 넘어갈 것이었다. 아마도. 어쩌면 무르기 대목만은 정정해 달라고 할지도 몰랐다. 무르기가 아니라 놓을 자리를 고쳐 잡은 것이라고.
국밥은 두 그릇을 얻어먹었다. 두 번째 판부터는 요령이 생겨서, 이기되 한두 집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법을 익혔다. 그편이 판돈 잃은 쪽 기분도 덜 상했고, 구경꾼들도 재미있어했다. 위기선생이 보았으면 큰 겁쟁이의 수라고 했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는 관도에서 검문을 만났다.
길목에 목책을 치고 병졸 넷이 행인을 세우고 있었다. 무현의 등에 식은땀이 배었다. 골짜기 패잔병을 잡아들인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명부를 대조하면 어쩌나. 진무현이라는 이름이 어느 명부에 어떻게 올라 있는지, 저는 아직 몰랐다.
"어이, 거기. 어디서 오는 길이야."
"절벽… 아니, 저 아랫녘에서 옵니다."
하마터면 또 절벽 소리를 할 뻔했다. 입버릇이 무서웠다.
"뭐 하는 사람이야."
"품팔이입니다. 화산 쪽에 일자리를 알아보러."
병졸은 무현의 행색을 아래위로 훑었다. 낡은 회청색 무복. 순한 낯짝. 빈손. 병졸의 눈이 무복의 바랜 얼룩에서 잠깐 멎었다. 무현의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다.
"…이 시국에 품팔이라. 젊은 사람이 겁도 없군. 식솔은."
"없습니다. 혼자입니다."
"…거참. 요즘 세상에. 고생이 많네."
병졸은 혀를 차더니, 목소리를 한결 눅여서 물었다.
"그 아랫녘에서 왔으면 소문 들었나? 절벽 과객인지 뭔지."
"…예. 조금."
"진짜 있대? 도적 마흔을 눕혔다는 게?"
"저는 서른이라 들었습니다만."
"거봐! 내가 서른이랬잖아!"
병졸이 옆의 동료에게 소리쳤고, 동료는 마흔이 맞다며 우겼고, 목책 앞은 순식간에 서른이냐 마흔이냐 논쟁판이 되었다. 무현은 그 틈에 목례를 하고 조용히 목책을 지났다. 다 지나서 돌아보니 병졸들은 아직도 싸우고 있었다. 검문이 소문 검증으로 끝난 셈이었다. 명부는 구경도 못 했다.
국밥을 먹는데, 등 뒤 평상에서 장사꾼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 얘기 들었나. 아랫골 쪽 마을에 신선이 내려왔다는 얘기."
무현의 숟가락이 멈췄다.
"신선은 무슨."
"진짜라니까. 도적 마흔 놈이 마을을 털러 왔는데, 웬 과객이 젓가락 한 짝으로 마흔을 다 눕혔다는 게야."
'서른이었는데.'
"젓가락이 아니라 낫이라던데."
'부지깽이였는데.'
"눕히기만 한 게 아니라, 새끼줄로 엮어서 관아까지 끌고 갔다며."
'엮어 놓기만 했는데.'
"그리고 사례로 천 냥을 내놓는 걸 마다하고, 짚신 한 짝만 받아 갔다더군."
'두 냥과 짚신 두 켤레와 주먹밥은 받았는데.'
무현은 정정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으나 국밥과 함께 삼켰다. 소문이란 놈은 하루 만에 서른을 마흔으로 불리고 부지깽이를 젓가락으로 깎는 재주가 있었다. 젓가락 쪽이 어감이 좋아서 그런가.
"그 과객이 어디서 왔다는데?"
"그게 또 기가 막혀. 애들한테 절벽 아래서 왔다고 했다는 게야."
"절벽 아래?"
"낙애곡 절벽 말이야. 이 사람아. 골짜기에서 죽은 원혼이 신선이 되어 돌아왔다는 거지."
"에이, 설마."
"설마가 아니라니까. 그러니 사례도 마다한 게지. 죽은 사람이 돈이 무슨 소용이야."
무현은 하마터면 국밥을 뿜을 뻔했다.
"그럼 그 원혼이 왜 도적을 잡고 다니는데?"
"몰라서 묻나. 억울해서지. 머릿수로 끌려가 개죽음당한 원혼이니, 힘없는 백성들 등치는 놈들을 두고 볼 수가 없는 게야."
"듣고 보니 그럴듯하구먼. 아이고, 무서워라."
"무섭긴 뭐가 무서워. 착한 원혼인데. 우리 같은 장사치한테는 복덩이지. 그 어른 지나간 길목은 도적이 없다잖나."
"하기야. 우리도 내일 그 길로 갈까."
살다 살다 제 원혼 소문을 제 귀로 듣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것이 더 곤란했다. 실종자 명부에 오른 몸이니, 서류상으로는 과연 죽은 사람이었다. 게다가 장사꾼들이 내일 일부러 그 길로 돌아가겠다는 데에는 할 말을 잃었다. 원혼이 관졸 노릇에 길잡이 노릇까지 하게 생겼다.
'형님이 들으셨으면 배를 잡으셨겠지.'
문득 그 생각이 들어, 웃음 끝이 조금 씁쓸해졌다.
나흘째에는 왈패를 만났다.
관도가 강을 끼고 도는 나루터에서였다. 나룻배를 기다리는 행인들 틈에서, 왈패 대여섯이 뱃삯이라며 통행세를 뜯고 있었다. 관에서 정한 뱃삯의 다섯 배였다.
무현은 조용히 줄을 섰다.
'참자. 크게 벌이면 눈에 띈다. 눈에 띄면 화산 가는 길이 늦어진다.'
차례가 왔다. 왈패가 손을 내밀었다.
"닷 푼."
"뱃삯은 한 푼이라 들었습니다만."
"물이 불었잖아. 물이 불면 배가 힘드니까 닷 푼이야."
무현은 강을 보았다. 물은 오히려 줄어 있었다.
"물이 불었습니까."
"불었다면 분 거야."
"그렇습니까. 그럼 한 푼은 뱃사공께 드리고, 넉 푼은 형씨들 몫입니까."
"말이 많다? 너 어디서 온 놈이야."
"절벽 아래서 왔습니다."
무현은 별생각 없이 답했다. 요 며칠 아이들에게 하던 대답이 입에 붙은 탓이었다.
그런데 왈패의 낯빛이 변했다.
"…절벽?"
"예. 절벽 아래."
왈패들이 우르르 모여 귓속말을 나누더니, 그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저기, 손님. 요즘 절벽에서 왔다는 사기꾼이 하도 많아서 말이오. 증표가 있으면 좀."
"증표라 하시면."
"소문에, 그 어른은 사례로 짚신만 받으신다던데."
무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발을 들어 보였다. 종가에서 받은 새 짚신이 아침 이슬에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지, 짚신이다."
"진짜 짚신이야."
"새 짚신이라고!"
증표 치고 이렇게 허술한 증표가 없었다. 세상에 짚신 안 신은 길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나 왈패들은 이미 믿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이라, 짚신 하나로 충분했다. 믿고 싶은 자에게는 짚신도 신물이 되는 법이었다. 낙애곡 원혼 소문은 나루터까지 흘러와 있었던 것이다. 소문의 걸음이 무현의 걸음보다 반나절은 빨랐다. 게다가 눈앞의 사내는 행색이 딱 소문 그대로였다. 핏물 얼룩이 바랜 회청색 무복에, 새 짚신에, 사례를 마다할 것 같은 순한 낯짝.
"저, 저기. 손님은 그냥 한 푼만."
"아니, 그냥 타시오. 뱃삯은 우리가."
"예?"
"아이고, 배 나갑니다! 어서어서!"
무현은 얼떨결에 공짜 배를 탔다. 배 위에서 돌아보니 왈패들이 나루터에 엎드리다시피 절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뒤에 줄 서 있던 행인들의 통행세까지 그 자리에서 전부 물러 주는 모양이었다. 뜯긴 돈을 돌려받은 행인들이 어리둥절해서 절벽 쪽을 향해 덩달아 절을 했다. 절벽은 아무 죄가 없는데 오늘 하루 절을 참 많이 받았다.
옆자리 행인들이 수군거렸다.
"뭐야, 저 사람. 뉘시기에."
"모르오? 요즘 소문난 그 절벽 과객이라오."
"아이고, 그럼 나도 인사를."
"저,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배에서 내릴 때쯤, 무현은 행인 열둘의 절을 받고 아이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어느 할머니에게서 삶은 달걀 세 개를 강제로 받은 뒤였다. 사양했더니 할머니가 원혼님 잡수시는 데 사양이 어디 있느냐며 소매에 쑤셔 넣었다. 원혼이 삶은 달걀을 먹는지는 둘째 치고, 원혼님이라는 호칭이 문제였다. 등에는 식은땀이 배어 있었다. 도적 서른보다 소문 하나가 더 무서웠다.
'명성이라는 게, 이렇게 나는 건가.'
그런데 이상하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왈패들은 통행세를 뜯다 말고 착해졌고, 행인들은 편히 배를 탔다. 저는 주먹 한 번 쓰지 않았다. 소문이 대신 일을 한 것이다. 위기선생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잘 놓인 돌 하나는 놓이지 않은 백 수를 대신한다고.
'소문도 돌이라면, 이건 어디에 놓인 돌일까.'
그날 밤 무현은 헛간을 빌려 자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화산까지 이틀. 이대로면 소문보다 늦게 도착할 판이었다. 소문에는 발이 달렸는데, 그 발이 무현의 발보다 빨랐다.
다만 소문 속의 과객과 문지기 진무현을 이어 붙일 사람은 아직 세상에 없었다. 소문은 젓가락을 쓰는 신선 혹은 원혼이고, 저는 부지깽이도 버리고 온 빈손의 문지기였다.
'그럼 됐다. 소문은 소문의 길을 가라. 나는 내 길을 가마.'
속 편하게 결론을 내리고 눈을 감았다.
잠들기 전, 문득 진곤 생각이 났다. 소문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저잣거리 소문이란 소문은 다 물어다가 목소리를 낮추고 전해 주던 사람. 소문에 의하면 말이야, 하던 그 말버릇.
'형님. 요즘 소문에 의하면, 낙애곡에 착한 원혼이 하나 나왔답니다.'
들려줄 수 있었으면 배를 잡았을 텐데. 그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물론, 세상일이 그렇게 속 편하게 풀릴 리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무현은 관도 한복판에서 짐수레 여남은 대가 늘어선 상단 행렬과 마주쳤다. 행렬은 멈춰 서 있었고, 표사 차림의 사내들이 잔뜩 굳은 얼굴로 앞쪽 숲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숲에서, 낯익은 종류의 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무현은 하늘을 한번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정하신다더니.'
아무래도 하늘은, 그를 화산까지 곱게 보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