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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시간은 많으니까

von 음악의 신 · 2026-08-31

거구의 노인은 무현을 데려갔다.

정확히는, 정말로 들고 갔다.

짐짝처럼 옆구리에 낀 채 구름을 몇 개나 건너뛰더니, 이름 모를 절벽 꼭대기에 그를 내려놓았다. 발아래로 구름이 깔리고 그 밑은 보이지도 않는 낭떠러지였다.

"나는 패천노인이다. 한때 북지의 주먹이란 주먹은 다 내 아래 있었지."

노인은 제 소개를 그 한 줄로 끝내고, 곧바로 본론에 들어갔다.

"기초부터 박살났으니 기초부터 다시 만든다. 서라."

"어디에 말입니까."

"거기."

절벽 끝이었다. 발꿈치 반이 허공에 걸리는 자리였다.

그날부터 무현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말뚝서기를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면 어디선가 패천노인이 날아와 머리통을 쥐어박았다.

"흔들린다! 뿌리를 땅에 박아라!"

"여긴 땅이 없는데요!"

"그래서 못 하겠다는 게냐?"

"…아닙니다. 박겠습니다. 허공에라도."

"그래. 그 대답이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게다."

패천노인의 수련은 늘 그런 식이었다. 구름 위를 달리게 하고, 거꾸로 솟는 폭포 아래에서 주먹을 내지르게 하고, 별이 낮게 깔린 하늘 아래에서 같은 권초를 수천 번 반복하게 했다.

한번은 구름으로 짐승을 빚었다. 집채만 한 몸집에 다리가 여섯 달린,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것이었다.

"씨름해라."

"저것과 말입니까."

"그래. 넘어뜨리면 오늘은 그만 자도 좋다."

구름으로 빚었으니 푹신하리라 여긴 것이 첫 번째 실수였다. 짐승의 어깨에 처음 부딪힌 순간, 무현은 바위산에 들이받힌 줄 알았다. 붙잡으면 안개처럼 빠져나가고, 놓치면 산사태처럼 덮쳐 왔다. 그날 무현은 세 번쯤 죽었다 살아났고, 끝내 짐승의 뒷다리 하나를 걸어 넘어뜨렸을 때는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손짓으로 다 했느냐고 물었다.

"다 하긴. 내일은 두 마리다."

패천노인은 그렇게 말하고 정말로 다음 날 두 마리를 빚었다.

"힘으로 밀지 마라. 저건 네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너지는 쪽으로 밀고, 일어서는 쪽을 걷어차라. 힘은 상대의 것을 빌리는 것이다. 그게 권의 뼈다."

맞으면서 배웠고, 구르면서 익혔다. 어느 날부터 짐승의 몸에서 무너지는 결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결이 보이자 사람 몸의 결도 보였다. 패천노인이 주먹을 내지르기 전에 어깨가 먼저 말을 했고, 발이 그다음 말을 했다.

"이것이 패천권이다. 하늘을 누른다 하여 패천. 이름값은 내가 다 해 놨으니, 너는 흉내만 내면 된다."

흉내만 내는 데 뼈가 세 번 울고 살이 열 번 터졌다.

밤이 되면, 무현이 밤이라 부르는 시간이 되면, 이번에는 도포 사내 앞에 앉혀졌다.

위기선생. 신선들 사이에서도 손꼽히는 기도의 대가라 했다.

"제가 왜 바둑을 배워야 합니까."

처음에 물었을 때, 위기선생은 한심하다는 눈으로 무현을 보았다.

"천지의 이치가 흐르는 모습이 가장 선명히 담긴 것이 판 위의 수다. 싸우는 법만 배우고 흐름을 읽는 법을 모르면, 언젠가 네가 네 자신에게 잡아먹힌다."

그 말은 의외로 옳았다.

어느 돌이 죽고 어느 돌이 사는지, 어디를 버려야 전체가 사는지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자, 낮의 수련이 달라졌다. 패천노인의 주먹이 날아오는 길이 보였다. 다 피하지는 못해도, 어느 쪽으로 맞아야 덜 아픈지는 알게 되었다.

"요령만 늘었구나."

패천노인은 혀를 찼지만, 그 눈이 웃고 있는 것을 무현은 놓치지 않았다.

바둑은 지는 것부터 배웠다.

첫 백 판은 어떻게 졌는지도 모르고 졌다. 다음 백 판은 어디서 졌는지는 알고 졌다. 그다음부터는 셈을 그만두었는데, 어느 날 문득 위기선생의 손이 판 위에서 반 박자 멎는 것을 보았다.

그 판을, 무현이 이겼다.

"…한 판 더."

위기선생은 그 말만 하고 돌을 쓸어 담았다. 다음 판은 무현이 크게 졌다. 그다음 판도 졌다. 그러나 그날 이후 위기선생은 무현과 둘 때 팔짱을 풀었다.

한번은 다 진 판에서 위기선생이 슬그머니 돌 하나를 옮겼다.

"방금 무르셨습니까."

"놓을 자리를 고쳐 잡은 것이다."

"신선도 무르기를 합니까."

"신선이니까 하는 것이다. 인간은 무른 수를 평생 후회하며 살지만, 나는 후회할 시간에 다음 판을 두거든."

말은 그럴듯했으나 그날 위기선생은 옥허노모에게 지팡이로 한 대 맞았다. 애 앞에서 못 하는 짓이 없다는 이유였다.

선기는 그중 가장 더디게 늘었다.

"네가 화산에서 주워들은 내공이라는 것은, 그러모아 항아리에 쟁이는 재물이다. 선기는 다르다. 이것은 흐르는 물길에 손을 담그는 일이야. 쥐려 들면 빠져나가고, 놓으면 흘러들어 온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기운이 모이면 저도 모르게 움켜쥐었고, 움켜쥐면 흐름이 끊겼다. 노모의 지팡이가 수도 없이 정수리에 떨어졌다.

"평생 없이 살던 놈이라 그런다. 손에 들어온 것을 놓는 법을 몰라."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니다. 슬픈 일이지."

노모는 그렇게 말하고, 그날은 지팡이를 들지 않았다.

움켜쥐지 않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다. 계기랄 것도 없었다. 수없이 놓치고 수없이 다시 담그다 보니, 어느 날 물길이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채로 그냥 두게 되었다. 그러자 하단전이 항아리이기를 그만두고 여울이 되었다. 기운은 고이지 않고 돌았으며, 돌수록 맑아졌다.

그리하여 무현의 나날은 이상하리만치 바빠졌다.

아침에는 패천노인에게 두들겨 맞으며 권초를 익히고, 낮에는 옥허노모에게 붙들려 경맥을 다스리고 선기를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밤에는 위기선생 앞에 앉아 졸음과 싸우며 바둑판을 내려다보았다.

흰옷 노인의 자리만 비어 있었다.

현화진인. 그 이름은 옥허노모에게 들었다. 화산의 검이 본래 그의 깨달음에서 갈라져 나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무현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제가 십 년 가까이 지킨 그 산문의 검이, 눈앞의 저 차가운 노인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화진인은 무현을 가르치지 않았다.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무현도 청하지 않았다. 다만 밤마다, 멀리서 들려오는 빛의 검 소리에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신선들이 천계로 올라가 버리는 날이면, 선계에 홀로 남은 무현이 할 일은 하나였다.

수련.

또 수련.

처음엔 그 적막이 무서웠다. 끝도 없는 안개와 구름, 떠 있는 정자, 저 하나만 남은 고요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적막이 편해졌다.

선계의 샘물 한 모금이면 며칠은 배가 고프지 않았고, 구름 위에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인간 세상에서는 평생 몰랐을 호흡의 결이 만져졌다. 별이 가장 낮게 내려앉는 시간이면 맨손으로 허공의 기운을 붙잡는 연습을 했고, 폭포가 거꾸로 솟는 곳에서는 손끝의 뜻만으로 물줄기를 갈라 보려 애를 썼다.

되는 날도 있었고 안 되는 날이 더 많았다. 안 되는 날에도 화가 나지 않았다.

물줄기가 처음 갈라진 날은 하필 아무도 없는 날이었다. 거꾸로 솟는 폭포가 손끝의 뜻을 따라 두 갈래로 벌어졌다가, 무현이 놀라는 순간 도로 합쳐졌다. 하도 기뻐서 그 자리에서 몇 번을 펄쩍 뛰었는데, 돌아온 패천노인에게 그 얘기를 하자 노인은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래서, 두 번째는 언제 갈랐느냐."

"…아직입니다."

"한 번은 우연이고 두 번부터가 실력이다. 가서 갈라 와라."

두 번째까지는 다시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세 번째는 이레 만에, 네 번째는 그날로 되었다. 우연이 실력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처음보다 자꾸 줄었다.

외로움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홀로 남은 시간이 길어지면 이따금 화산의 저녁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객당 앞의 지루한 오후, 저잣거리의 소란, 갈림길의 등불. 할머니가 화롯가에서 등을 쓸어 주던 마른 손. 그리고 진곤.

그럴 때면 찌르기를 했다. 그리움이 가라앉을 때까지 하고, 가라앉으면 조금 더 했다. 언젠가부터는 그리움이 수련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을 밀어 주고 있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힘이 들어가는 자리가 있다는 뜻이었다.

"모르면 깨우칠 때까지 하면 되지."

혼잣말이 늘었다.

"시간은 많으니까."

처음 이곳에 왔을 때 패천노인이 던졌던 그 말을, 어느새 제 입으로 하고 있었다.

신선들이 돌아와 그 꼴을 보면 배를 잡고 웃었다.

"처음 데려왔을 땐 반쯤 죽은 병아리였는데, 이제는 제법 사람 같군."

"아니다. 아직 멀었다. 저놈은 요즘 주먹에 쓸데없는 멋이 들었어."

"그래도 예전보다 낫습니다. 최소한 바둑을 두다 졸지는 않으니."

"저 봐라. 말대꾸도 하는구나."

정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무현은 신선들의 조롱에 대꾸를 하고 있었다. 처음 왔을 때는 눈도 못 마주치던 이들이었다. 지금은 패천노인이 허풍을 떨면 "그건 지난번에 서른 장이라 하셨습니다. 오늘은 쉰 장이 되었군요" 하고 받았고, 위기선생이 다 이긴 판을 무르자 하면 "신선도 무르기를 합니까" 하고 물었다.

"녀석, 이제 웃는구나."

어느 날 옥허노모가 문득 말했다.

"예?"

"처음 왔을 때 너는, 웃을 때도 눈치를 보며 웃었다. 지금은 그냥 웃는구나."

무현은 뭐라 답할지 몰라 그냥 웃었다. 노모 말대로, 그냥 웃어졌다.

패천노인이 옆에서 거들었다.

"웃는 것만 늘었겠느냐. 저놈, 요즘은 내 주먹을 피하면서 콧노래를 부른다."

"콧노래는 아니었습니다. 숨을 고르는 소리였습니다."

"봐라. 저 대꾸하는 것 좀 봐라. 처음엔 예, 예, 두 마디밖에 못 하던 놈이."

"예, 예."

"저, 저놈이."

위기선생이 부채로 입가를 가렸고, 옥허노모가 소리 내어 웃었다. 안개 낀 정자에 웃음이 도는 일이, 언제부턴가 드물지 않게 되었다.

위기선생은 언젠가 바둑을 두다 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네 바둑이 변했다."

"어디가 말입니까."

"처음의 너는 죽지 않으려고만 두었다. 지금은 살리려고 두는구나. 제 돌만이 아니라, 판 전체를."

칭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 가만히 있었더니, 위기선생은 돌을 놓으며 덧붙였다.

"둘 다 겁쟁이의 수다. 허나 앞의 것은 작은 겁쟁이고, 뒤의 것은 큰 겁쟁이지. 큰 겁쟁이는 쓸 만하다."

거울이 없어 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무현도 알고 있었다. 등이 펴졌다. 목소리가 커졌다. 말끝이 흐려지지 않았다. 겁은 여전히 났다. 패천노인의 주먹은 여전히 무서웠고 옥허노모의 지팡이도 무서웠다. 다만 무서운 것과 움츠러드는 것이 다른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몸이 알았다.

세월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낮과 밤이 없는 곳이었다. 다만 몸이 말해 주었다.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그친 손바닥, 어느 권초든 눈 감고도 밟는 발, 숨 한 번에 하단전을 돌아 나가는 기운의 깊이. 인간의 셈으로 헤아리면 수십 년. 그쯤 되는 시간이 지나 있었다.

그런데도 무현은 늙지 않았다. 지치지도 않았다. 텅 비어 있던 그릇은 계속 넓어졌고, 검도 권도 기도 바둑의 이치까지도, 부어 넣는 대로 다 들어갔다.

어느 날 옥허노모가 그를 보며 말했다.

"이제야 조금 보이는구나."

패천노인이 코웃음을 쳤다.

"아직 멀었다. 저 정도는 내 젊을 적 발뒤꿈치에도 못 미친다."

"허풍은. 젊을 적 네놈은 저 아이의 반도 못 채웠다."

목소리는 뜻밖의 곳에서 날아왔다.

흰옷 노인이었다. 정자 난간에 기대선 채, 언제부터 보고 있었는지 모를 눈으로 무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현이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였다. 현화진인은 답례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러나 안개 속으로 사라지기 전, 혼잣말처럼 남긴 한마디가 무현의 귀에 닿았다.

"…그래도 저만하면, 화산의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겠군."

그날 밤, 무현은 여느 때처럼 구름 끝으로 갔다.

권초도 호흡도 바둑도 아닌, 처음의 그것을 했다. 왼발 반 보. 어깨 힘 빼고. 허리는 곧게. 그리고 앞으로.

찌르기였다.

수십 년을 배웠어도 하루의 끝은 늘 이 한 수였다. 이제는 이 동작 하나에 선기가 실리고 권의 무게가 얹혔지만, 동작 자체는 그날 공터에서 배운 그대로였다. 이것을 하는 동안에는 진곤이 곁에 있었다. 주명수의 장대도, 왕철산의 호통도, 화산의 저녁 바람도.

수만 번째인지 셀 수도 없는 찌르기를 마쳤을 때였다.

"어리석은 놈."

돌아보니 현화진인이 서 있었다.

"신선 넷에게 수십 년을 배우고도, 아직 그 초라한 한 수를 버리지 못했느냐."

무현은 이마의 땀을 닦고, 숨을 고르고, 답했다.

"이 한 수가 제 목숨을 살렸습니다."

"…"

"화려한 것은 많이 배웠습니다. 허나 처음 배운 것이 이것이라, 버리는 법을 모르겠습니다."

현화진인은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안개가 두 사람 사이를 몇 번이나 지나갔다. 이윽고 노인은 소매를 떨치고 돌아섰다. 그리고 등을 보인 채 말했다.

"내일부터 이 시간에 이리로 오너라."

"…예?"

"검을 들어라."

무현의 눈이 크게 뜨였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흰옷의 등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무현은 그 자리에 한참을 서 있었다. 낮과 밤이 없는 하늘에서, 별 하나가 유난히 낮게 내려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