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저잣거리의 피
von 음악의 신 · 2026-08-31
싸움이라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것은 도륙에 가까웠다.
검은색과 짙은 회색 옷을 걸친 사내들이 열 명 남짓. 옷차림은 제각각이었으나 왼팔이나 허리춤에 붉은 실로 꿰맨 작은 해골 문양이 공통으로 보였다. 누군가는 곡도를 들었고, 누군가는 두 자루 단도를 빙글빙글 돌렸으며, 또 다른 자는 끝이 갈라진 기문병기를 휘둘렀다. 안광은 사나웠고 동작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사람 사이를 헤집는 굶주린 들개 떼 같았다.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혈풍십귀다!"
그 이름이 퍼지는 순간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혈풍십귀. 사파 무리 가운데서도 손속이 잔혹하기로 이름난 패거리였다. 산채와 변방을 전전하며 청부 살인과 약탈을 일삼고, 한번 칼을 뽑으면 앞뒤를 가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무현 같은 평범한 사람의 귀에도 몇 번쯤 흘러든 적이 있었다.
그들과 맞선 쪽은 화산파 제자들이었다.
희색 도포와 검은 띠, 등 뒤로 곧게 묶은 머리. 검을 쥔 자세와 발놀림만 보아도, 문외한의 눈에조차 정파의 고수라는 것이 단박에 보였다. 숫자는 여섯. 혈풍십귀보다 적었다. 하지만 검이 뽑히는 순간만큼은 조금도 밀려 보이지 않았다.
한 화산 제자가 땅을 박차고 솟았다.
무현은 눈을 크게 떴다.
분명 사람의 몸이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은 사람의 상식 밖에 있었다. 소매가 바람을 가르고 검광이 번쩍이는가 싶더니, 다음 찰나에는 이미 사파인 둘의 공격을 동시에 막아 내고 있었다. 혈풍십귀 쪽도 하나같이 비정상이었다. 좁은 장터 바닥을 미끄러지듯 가로지르고,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각도에서 칼날이 튀어나오고, 몸을 비트는 속도는 눈으로 따라가기조차 어려웠다.
쾅!
수레 하나가 산산조각 나며 튕겨 나갔다. 누군가의 장력이 실린 듯했다. 부서진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뒤편에서 도망치던 중년 사내 하나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목에 파편을 맞아 쓰러졌다.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였다.
"피해! 피해라!"
누군가 목이 터져라 외쳤지만 늦었다.
혈풍십귀 하나가 달아나는 사람들 사이로 거침없이 뛰어들며 곡도를 휘둘렀다. 칼은 무당 제자를 겨눈 것이었으나, 궤적 사이에 낀 사람들은 조금도 배려받지 못했다. 장을 보던 아낙 하나가 어깨부터 옆구리까지 깊게 베이며 피를 뿜었고, 짐을 지고 뛰던 청년은 무릎이 꺾이듯 쓰러졌다. 어린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그 아이를 끌어안으려던 노파는 날아든 장력 여파에 떠밀려 벽에 부딪혔다.
무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그가 아는 싸움이란 주먹다짐이나 곤봉질 정도였다. 저건 싸움이 아니었다. 폭풍이었다. 사람의 형상을 한 무언가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부딪히고, 그 여파만으로 주변 사람들이 죽어 나갔다. 어느 쪽도 평범한 사람의 목숨 따위는 셈에 넣지 않는 것 같았다.
화산 제자 하나가 날카롭게 외쳤다.
"민간인을 뒤로 물려라!"
말처럼 될 리 없었다. 사람들은 이미 공포에 질려 제각기 달아나고 있었고, 어디가 안전한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때 혈풍십귀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괴이하게 웃으며 장터 기둥을 박찼다. 몸이 비스듬히 솟구치더니, 공중에서 뒤집혀 무당 제자의 머리 위로 곧장 떨어져 내렸다. 검은 곡도가 석양을 받아 핏빛으로 번뜩였다.
캉!
화산 제자가 가까스로 막았으나 충격을 못 이기고 한쪽 무릎이 꺾였다. 그 틈을 노려 좌우에서 사파인 둘이 달려들었다. 한 사람의 목숨이 끝장나는가 싶던 순간, 뒤편의 화산 제자가 허공을 가르며 검을 찔러 넣었다. 검끝이 사파인의 목을 꿰뚫었다.
푹, 하는 소리가 무현의 귀에까지 들렸다.
사파인이 피를 토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검을 찌른 무당 제자도 무사하지 못했다. 다른 혈풍십귀 하나가 비웃듯 단도를 던졌고, 그것이 옆구리에 깊숙이 박혔다. 청색 도포가 순식간에 검붉게 젖었다.
"사숙!"
날카로운 외침이 터졌다.
그 뒤로는 더 처절했다. 화산 제자들은 단숨에 진법 비슷한 형태를 이루더니 서로의 빈틈을 메우며 검을 전개했다. 검광이 물결치듯 이어지고, 사파인들의 뒤틀린 공격이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무현의 눈으로는 도저히 전부 볼 수 없었다. 칼날이 번쩍였다 싶으면 누군가의 피가 튀었고, 몸이 스쳐 지나갔다 싶으면 어느새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너무 빨라 눈이 따라가지 못했고, 너무 무서워 차라리 보고 싶지 않았다.
승부는 화산 쪽으로 기울었다.
혈풍십귀 셋이 바닥에 쓰러졌고, 둘은 팔이나 다리를 잃은 채 신음했으며, 나머지는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하나씩 제압되었다. 끝까지 버티던 우두머리도 어깨와 허벅지를 잇달아 베인 끝에 목덜미를 눌려 땅에 처박혔다.
하지만 화산의 승리라고 하기엔 참혹했다.
여섯 가운데 둘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한 사람은 목에서 피를 쏟은 채 숨이 끊어졌고, 다른 이는 복부가 길게 갈라져 눈을 감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살아남은 자들도 멀쩡한 이가 없었다. 팔을 들지 못하는 자, 절뚝이며 서 있는 자, 피범벅이 된 동문을 부여잡고 이를 악문 자.
장터 바닥에는 피가 흥건했다.
방금 전까지 사람들로 붐비던 저잣거리가 한순간에 참극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무현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진곤이 옆에서 무언가 중얼거렸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손끝이 떨렸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런 자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같은 사람이라고 하기 어려운 몸놀림. 같은 칼인데 자기가 아는 칼과는 전혀 다른 세계의 살의. 저들이 눈 한번 돌리면 저 같은 사람은 손가락 하나 까딱해 보지 못하고 죽겠구나. 그 생각이 머리를 후려쳤다.
그리고 그보다 더 끔찍한 생각이 뒤따랐다.
저런 자들과 맞붙는 전장에, 자신이 끌려간다면.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이 전쟁이라는 것이 멀리서 들려오는 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무현은 그날 처음으로 실감했다.
넋을 놓고 서 있을 수만도 없었다.
살아남은 화산 제자 하나가 화산의 근무복을 알아보고 이쪽을 향해 소리쳤다.
"화산의 사람들인가! 손을 좀 빌리자!"
수위 몇이 얼떨결에 달려갔고, 무현과 진곤도 그 틈에 섞였다. 다친 사람을 들것 대신 문짝에 실어 의원으로 옮기고, 널브러진 좌판을 치우고, 시신 위에 거적을 덮었다. 무현이 덮은 거적 아래에는 장을 보던 그 아낙이 누워 있었다.
장바구니에서 쏟아진 푸성귀가 핏물에 절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그 곁에 예닐곱 살쯤 된 사내아이 하나가 주저앉아, 울음도 잊은 얼굴로 제 어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현은 아이에게 해 줄 말을 찾지 못했다.
살아남은 화산 제자 하나가 다가와 아이 앞에 무릎을 굽혔다. 피 묻은 손으로 아이의 어깨를 감싸고 무어라 나직이 말을 건넸으나, 아이는 여전히 제 어미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검 한 자루로 혈풍십귀를 상대하던 등이, 그 앞에서는 이상하리만치 작아 보였다. 강한 자에게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 당연한 사실이 그날은 유난히 무겁게 다가왔다.
강한 자들이 부딪치면, 죽는 것은 이런 사람들이었다. 칼 한번 잡아 본 적 없는, 장을 보러 나온,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전장이란 그런 죽음이 벌판 가득 깔리는 곳일 터였다.
뒷정리를 마치고 산 아래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 있었다.
진곤은 내내 말이 없다가, 갈림길 앞에서야 입을 열었다.
"오늘 그 아이 말일세."
"…예."
"우리 막내 어릴 적과 참 닮았어."
무현은 진곤을 돌아보았다.
"열두 살짜리 막내 놈이 있네. 그 위로 열여섯 먹은 계집아이가 하나 있고. 어미가 편찮으시니, 그 계집아이가 사실상 살림을 다 하지. 오라비라고 내가 벌어다 주는 품삯이 그 집의 전부일세."
진곤은 마을 쪽 어둠을 바라보았다. 화산 아래 마을. 등불 몇 점이 가물거렸다.
"그러니 무현 자네, 내 부탁 하나만 함세."
"말씀하십시오."
"전장에 나가거든, 영웅 노릇 할 생각일랑 말게. 뭐가 됐든 살아 돌아올 궁리만 하게. 나도 그럴 걸세. 죽어서 이름 남기는 것보다, 살아서 식구들 밥 벌어다 주는 게 백배 나은 일이야."
"…예, 형님."
"약조한 걸세."
진곤이 무현의 어깨를 한 번 쥐었다 놓고는, 마을 쪽 어둠 속으로 내려갔다.
그날 밤 초가로 돌아와서도 잠은 오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목에 파편을 맞고 쓰러지던 사내가 보였다. 어깨부터 베여 피를 뿜던 아낙이 보였다. 그들은 싸움의 당사자도 아니었다. 그저 장을 보러 나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죽었다. 칼을 든 자들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저 여파 한가운데에 서 있어야 한다.
이불을 끌어안고 몸을 웅크렸다. 도망가게. 진곤의 목소리가 또 떠올랐다. 이제는 늦었다. 탈영은 사형. 격문이 뜨면 강호 전체가 적이 된다. 남은 길은 주명수의 말대로였다. 버티다 죽든, 칼을 들고 나가 죽든.
'살아남기 위한 한 번의 동작이라도, 해 보고 죽자.'
그 생각을 붙들고서야 겨우 얕은 잠에 빠졌다.
다음 날 아침.
화산의 공기는 전날과 비교도 되지 않게 분주했다.
해가 다 뜨기도 전에 사람들이 뛰어다녔다. 마당마다 병장기가 정리되고 짐이 실렸으며, 본산 제자들과 속가제자들, 잡역으로 동원된 자들까지 한데 뒤섞여 움직였다. 누가 봐도 출정을 앞둔 모습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주명수의 태도였다.
어제까지 야차처럼 굴던 그가, 오늘은 믿기지 않을 만큼 온화한 낯을 하고 있었다. 욕설도, 발길질도, 살기 어린 눈빛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무현과 진곤, 같은 조의 인원들을 모아 놓고 헛기침을 했다.
"그동안 고생들 많았다."
사람들 얼굴에 기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너무 뜻밖의 말이라 누가 먼저 반응해야 할지도 몰랐다.
"다들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덕에 최소한 사람 구실은 하게 되었지."
주명수가 손을 뒤로 깍지 끼며 말했다.
"오늘이 출정일이다."
낯빛들이 다시 굳었다.
무현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보았다. 정말로 화산의 거의 모든 인원이 나와 있었다. 본산 제자들, 속가제자들, 무기를 옮기는 자들, 보급을 맡은 자들, 상처를 돌볼 의관과 약재를 진 이들까지. 거대한 개미떼처럼 분주하고도 질서정연했다.
훈련 내내 쥐던 목검 대신, 이날 아침 수위들에게는 저마다의 규격 검이 다시 채워졌다. 날이 선 진짜 검이었다. 허리에 매달린 그 무게가 어떤 말보다 분명하게 일러 주었다. 이제부터는 연습이 아니라는 것을.
출정 명단을 받아 적는 자리에는 유청악이 나와 있었다. 그 공지의 날 이후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는 명부를 앞에 두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부르며 얼굴을 확인했다.
"진무현."
"예."
붓끝이 종이 위를 지나갔다. 제 이름 석 자가 명부에 적히는 것을 무현은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태어나 어디에 이름이 오르는 일 자체가 처음이었다. 하필 그 처음이 이런 명부라는 것이 우스웠다.
유청악이 잠깐 고개를 들어 무현을 보았다. 무어라 말할 듯하다가, 결국 아무 말 없이 다음 이름으로 넘어갔다. 그 짧은 눈길에 무엇이 담겨 있었는지 무현은 알지 못했다. 미안함이었는지, 연민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피로였는지.
그리고 그때, 무현은 처음으로 화산파의 일대제자들을 보았다.
앞줄 가장 중심에 선 이들은 다른 제자들과 확연히 달랐다. 허리에 찬 검도, 자세도, 눈빛도 범상치 않았다. 나이는 젊어 보였으나 몸에 밴 기세는 도무지 젊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들 주변만 공기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람들은 감히 가까이 가지 못했고, 속가제자들조차 흘끗 보는 것만으로 긴장하는 눈치였다.
저들이야말로 진짜 화산의 칼이구나.
어제 저잣거리의 무당 제자들이 스쳐 지나갔다. 저 사람들도 그런 괴물들일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몰랐다. 그런 괴물들끼리 부딪치는 판에 저 같은 것이 끼어드는 것이다.
출정은 해가 중천에 오르기 전에 시작되었다.
긴 행렬이 산길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앞에는 정식 제자들과 무공을 익힌 속가제자들이 서고, 중간과 뒤에는 무현 같은 잡졸들과 짐꾼, 보급 인원이 뒤섞였다. 처음 몇 시진은 모두가 말없이 걸었다. 낯선 긴장과 피로가 겹쳐 누구도 쓸데없는 말을 입에 담지 않았다. 산길을 밟는 발소리와 수레바퀴 소리,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만 길게 이어졌다.
산문을 나설 때, 무현은 딱 한 번 뒤를 돌아보았다.
늘 서 있던 객당 앞자리가 보였다. 하품을 하며 지루해하던 자리. 장식 같은 검을 차고 근엄한 표정만 짓고 있으면 하루가 갔던 자리. 그때는 그 지루함이 제 삶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이제는 그 지루한 하루가, 사무치게 돌아가고 싶은 것이 되어 있었다.
"무현."
진곤이 낮게 불렀다.
"떨어지지 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옆에 붙어 있게."
"예, 형님."
행렬은 산을 내려갔다. 그 흐름 속에서, 진무현 역시 멈출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