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카지노 출입금지
von 자유 · 2026-10-27
8화 카지노 출입금지
도렌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여관 뒤편의 술통 두 개를 밀어냈다.
바닥 아래로 내려가는 좁은 계단이 나타났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그를 따라갔다.
“도박판에서 돈을 잃은 사람에게는 가끔 정문이 너무 멀게 느껴지지.”
“도망치는 손님을 위한 길입니까?”
“빚쟁이에게 잡히기 싫은 주인을 위한 길이었네.”
도렌은 작은 등불과 접힌 지도를 내게 건넸다.
지도에는 하르벤에서 마도도시 카르디아까지 이어지는 길이 그려져 있었다.
그 중간에 유난히 커다란 별이 하나 찍혀 있었다.
“루메라.”
도렌이 별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바다와 도박의 도시지. 성국보다 돈을 더 믿는 곳이라, 수배장이 붙어도 상인평의회의 허가 없이는 병사 한 명 못 들어가네.”
“그럼 안전합니까?”
“돈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도렌이 웃었다.
나는 금화 한 닢을 꺼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정보값은 포커판에서 이미 받았네. 다음에 또 만나면 그때 술이나 사게.”
“취한 척하는 사람에게 술을 사도 됩니까?”
“취한 척하려면 술값은 필요하거든.”
여관 위쪽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성국의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온 모양이었다.
도렌이 바닥문을 닫기 전에 아이가 그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도렌은 대답 대신 손을 흔들었다.
“살아남아서 갚게. 죽은 사람의 빚은 받아 내기 귀찮으니까.”
지하 통로는 마을 외곽의 버려진 양조장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도렌이 미리 마련해 둔 포도주 마차에 올라탔다.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쌓인 술통 사이로 하르벤의 불빛을 바라봤다.
“또 도망치네요.”
“싫어?”
아이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번에는 제가 어디로 가는지 아니까요.”
그 말에 나는 아이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
루메라까지는 사흘이 걸렸다.
마차에서 내려 마지막 언덕을 넘자 가장 먼저 바다가 보였다.
햇빛을 받은 푸른 물이 도시 뒤편에서 끝도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 앞에는 흰 돌로 지은 건물들이 계단처럼 늘어서 있었다.
금빛 지붕.
형형색색의 깃발.
대낮인데도 꺼지지 않은 마법 간판.
도시 한가운데에는 금화 모양의 거대한 시계탑이 서 있었고, 해안에는 왕궁보다 화려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아이의 걸음이 멈췄다.
“저게 다 물이에요?”
“그래.”
“끝은 어디예요?”
“나도 몰라. 아주 멀리 가면 다른 나라가 나오겠지.”
아이는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그럼 바다는 아주 큰 길이네요.”
나는 바다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
“언젠가 저 길도 가 보고 싶어요.”
예전의 아이였다면 가도 되느냐고 물었을 것이다.
지금은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흘 동안 달라진 것은 거의 없었지만, 그 한마디만큼은 달랐다.
루메라의 성문에는 성국의 깃발이 없었다.
대신 금화와 파도를 함께 새긴 상인평의회의 문장이 걸려 있었다.
나는 금화 한 닢을 은화 열 닢으로 바꿔 입장세를 냈다.
경비병은 우리 얼굴보다 돈의 무게를 더 꼼꼼히 확인했다.
성문 안은 하르벤과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마차가 세 줄로 지나갈 만큼 넓은 길 위를 귀족과 용병, 상인과 여행객이 뒤섞여 걸었다.
창문마다 악사가 연주했고, 길모퉁이에서는 불을 삼키는 광대와 카드로 작은 새를 만드는 마술사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설탕을 입힌 과일 냄새와 구운 새우 냄새, 향수와 술 냄새가 바닷바람에 섞여 흘러왔다.
아이의 고개가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저건 뭐예요?”
“나도 몰라.”
“저건요?”
“그것도 몰라.”
세 번째 질문에도 같은 대답을 하자 아이가 작게 웃었다.
“문자유도 모르는 게 많네요.”
“만능이지 전지전능은 아니니까.”
우리 수중에는 금화 한 닢과 은화 아홉 닢이 있었다.
카르디아까지 가는 마차를 구하고 평범한 여관에서 지내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귀환에는 칠천 골드가 필요했다.
우리 세계 돈으로 칠십억 원.
성국의 허가를 받지 않을 방법이 아직 없는 지금은 숫자 그대로 준비해야 했다.
나는 해안가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을 올려다봤다.
황금빛 고래가 지붕 위에서 꼬리를 들고 있었다.
열린 문 안으로 카드와 주사위가 부딪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
“네.”
“돈을 가장 빠르게 버는 방법을 찾은 것 같아.”
아이는 황금 고래를 보고, 다시 나를 봤다.
“방앗간을 이만 번 넘게 고치는 건 아니죠?”
“그것보다 훨씬 빠를 거야.”
“지난번처럼 또 전부 거는 거예요?”
“이번에는 전부 걸지 않을게.”
“지난번에도 다 잃을 생각은 없다고 했어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은화 다섯 닢이 든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이건 우리가 오늘 자고 먹을 돈이야. 내가 금화를 다 잃어도 이건 절대 주지 마.”
아이는 주머니를 두 손으로 받아 품 안쪽에 넣었다.
“정말 다 잃으면요?”
“그때는 방앗간을 찾자.”
그제야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황금 고래 카지노의 천장은 성당보다 높았다.
금빛 샹들리에 아래로 수십 개의 도박판이 펼쳐져 있었다.
카드 탁자뿐 아니라 열두 개의 룬이 그려진 회전판, 수정 주사위를 굴리는 긴 탁자, 작은 마물들이 달리는 경주로까지 있었다.
아이와 나는 먼저 룬 회전판 앞에 섰다.
“하나 골라 봐.”
“제가요?”
“한 번쯤은 네가 정해도 돼.”
아이는 열두 개의 색을 한참 살피더니 보라색 달 문양을 가리켰다.
나는 은화 한 닢을 그 위에 올렸다.
회전판이 돌았다.
금속 구슬이 룬 위를 튀며 맑은 소리를 냈다.
한 바퀴.
두 바퀴.
구슬은 보라색 달 바로 옆의 붉은 태양에 멈췄다.
아이가 아쉬운 얼굴로 나를 봤다.
“제가 골라서 잃었어요.”
“내가 돈을 걸었으니 내가 잃은 거야.”
“그래도 다음에는 맞힐게요.”
두 번째도 틀렸다.
세 번째에는 구슬이 보라색 달에 들어갔다.
딜러가 은화 열한 닢을 우리 쪽으로 밀었다.
아이의 두 눈이 회전판의 마법등보다 밝아졌다.
“됐어요!”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내 팔을 붙잡았다가 곧 손을 놓았다.
“한 번 더 해요.”
“이길 때 그만두는 게 도박을 잘하는 방법이야.”
“문자유는 그걸 지킬 수 있어요?”
또 반박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은화 한 닢만 남겨 다시 보라색 달에 걸었다.
당연히 잃었다.
그래도 아이는 조금 전보다 더 크게 웃었다.
그건 돈을 버는 도박이 아니라, 자기가 고른 것의 결과를 기다리는 놀이였다.
그다음부터는 내가 돈을 벌 차례였다.
[직업 선택: 도박꾼 A]
수정 주사위가 탁자 위를 구르는 순간마다 딜러의 손목 각도와 주사위 모서리의 마모가 보였다.
[직업 선택: 수학자 A]
나온 숫자가 쌓일수록 어느 선택에 얼마를 걸어야 손실을 줄이고 이익을 키울 수 있는지 계산됐다.
그래도 무조건 맞힐 수는 없었다.
세 번 이기고 두 번 졌다.
두 번 이기고 한 번 크게 잃었다.
나는 이길 수 있는 판만 골랐고, 불리해지면 미련 없이 자리를 옮겼다.
금화 한 닢 남짓하던 판돈은 해가 질 무렵 열네 닢이 되어 있었다.
카지노의 검은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내게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손님, 잠시 위층으로 모시겠습니다.”
“싫다고 하면요?”
“그러면 경비원들이 조금 덜 정중하게 모실 겁니다.”
위층 방에는 카드도 주사위도 없었다.
카지노 지배인은 내 앞에 금화 열네 닢을 정확히 세어 놓았다.
그 옆에는 마력을 감별하는 푸른 수정이 있었다.
“부정한 마법이나 도구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문제없겠네요.”
“그게 문제입니다.”
지배인은 피곤한 얼굴로 안경을 벗었다.
“손님은 주사위의 흠집을 읽고, 딜러의 습관을 읽고, 확률을 계산하면서도 질 때는 평범한 관광객처럼 잃습니다. 저희가 손님의 수법을 특정할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기더군요.”
“여러 게임을 즐겼을 뿐입니다.”
“저희에게는 손님이 아니라 여러 명의 전문가가 한 몸에 들어온 재해처럼 보입니다.”
그는 금화를 내 쪽으로 밀었다.
“오늘 딴 돈은 모두 가져가셔도 됩니다. 대신 황금 고래에는 다시 입장하지 말아 주십시오.”
“이 도시에는 카지노가 여기 하나뿐입니까?”
지배인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아닙니다.”
“다행이네요.”
방을 나서는데 아이가 내 소매를 당겼다.
“저 사람이 다른 곳에도 말할 것 같아요.”
“말이 도착하는 것보다 우리가 이기는 게 빠르면 돼.”
그날 밤 우리는 붉은 달 카지노로 갔다.
황금 고래에서 딴 돈 중 금화 두 닢만 판돈으로 바꿨다.
붉은 달에는 텍사스 홀덤과 비슷한 카드 게임이 있었다.
나는 도박꾼과 수학자, 배우를 번갈아 사용했다.
상대가 내 표정을 읽으려 하면 일부러 진짜 감정을 보여 줬고, 그걸 믿기 시작하면 거짓 표정을 섞었다.
새벽이 가까워졌을 때 내 앞에는 금화 마흔일곱 닢이 쌓여 있었다.
마지막 상대가 카드를 덮자 박수가 터졌다.
박수를 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붉은 달의 지배인과 경비원들이었다.
“혹시 황금 고래에서 오셨습니까?”
“관광객에게 전에 어디 있었는지까지 묻습니까?”
“조금 전 황금 고래에서 손님의 인상착의가 도착했습니다.”
“생각보다 말이 빨랐네요.”
이번에도 딴 돈은 돌려받았다.
대신 붉은 달의 문도 우리 뒤에서 닫혔다.
다음 날에는 해안 경주장으로 갔다.
작은 날개를 가진 도마뱀들이 모래 위를 달리는 경기였다.
아이와 나는 관중석에서 과일 얼음을 먹으며 출전하는 마물들을 살폈다.
[직업 선택: 수의사 A]
겉보기에는 가장 크고 화려한 푸른 비룡의 왼쪽 뒷다리에 미세한 염증이 보였다.
인기가 없는 회색 비룡은 몸집은 작았지만 호흡과 심장 박동이 가장 안정적이었다.
[직업 선택: 조련사 A]
출발 전 조련사의 손길에 반응하는 모습만으로도 녀석이 소음에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회색 비룡에게 금화 다섯 닢을 걸었다.
아이도 보라색 천을 목에 두른 그 비룡을 골랐다.
이번에는 같은 선택이었다.
출발 종이 울렸다.
푸른 비룡이 가장 먼저 튀어나갔지만 마지막 굽이에서 다리가 무너졌다.
회색 비룡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속도를 유지했다.
마지막 직선에서 두 마리를 추월하며 결승선을 넘었다.
아이가 두 손을 들고 환호했다.
“이번에도 됐어요!”
“이번에는 네가 고른 게 맞았네.”
“문자유도 같은 걸 골랐잖아요.”
“그럼 반씩 잘한 걸로 하자.”
배당금까지 합치자 가진 돈은 금화 백 닢이 되었다.
우리 세계 돈으로 거의 일억 원이었다.
하르벤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은화 몇 닢으로 그날의 잠자리와 끼니를 걱정하던 아이가, 지금은 금화가 든 주머니를 두 손으로도 다 들지 못했다.
칠천 골드는 여전히 멀었다.
하지만 이 속도라면 불가능한 숫자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도박꾼 A.
수학자 A.
배우 A.
감정사와 수의사, 조련사까지.
카지노와 경주장이 게임을 바꿔도 나는 직업을 바꾸면 됐다.
귀환을 위한 돈을 가장 쉽게 버는 방법은 도박이었다.
적어도 그날 오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경주장을 나서자 검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슴에는 루메라 카지노협회의 금화 문장이 달려 있었다.
가운데 선 노인이 종이 한 장을 펼쳤다.
거기에는 내 얼굴이 놀라울 정도로 닮게 그려져 있었다.
그 아래에는 아이의 은빛 머리카락과 보라색 달에 돈을 거는 습관까지 적혀 있었다.
“문자유 손님.”
“제 이름은 어떻게 알았습니까?”
“붉은 달의 참가 명부에 직접 쓰셨습니다.”
그제야 어젯밤 아무 생각 없이 이름을 적었던 것이 떠올랐다.
노인은 헛기침을 했다.
“협회 소속 카지노, 경주장, 사설 카드방은 오늘부터 두 분의 입장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이도요?”
“보라색 달에만 거는 손님은 저희도 환영합니다만, 두 분이 늘 함께 움직이시니까요.”
아이가 조금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
“저는 두 번이나 잃었어요.”
“알고 있습니다.”
노인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록도 보고서에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도시에 들어온 지 이틀 만에 루메라의 모든 카지노에서 출입금지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