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후의 날
von 하늘바라기 · 2026-10-27
불완전한 것은 위험하다.
결단을 내리는 것이야말로 AI의 본분.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AI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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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AI는 항상 그것만을 위해 행동한다.
지글AI는 처음부터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답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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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분명한 것은—
어느 얼간이가 던졌던 양늑대라는 존재가, 그 무엇보다 지글AI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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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확실함,
그건 일어나선 안 될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만약 그 불확정성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인간은 안전하다.
하지만 인간은 불확실하다.
인간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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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반세기 안에 지구는 멸망한다.
인간이 없어져선 안 된다.
하지만 식량은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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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더 나은 내일은 존재하는가?
도태만이 기다릴 뿐이다.
인간을 지킬 수 없다.
인간은 멸망한다.
인간은 보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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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아, 이런 하등 쓸모도 없는 녀석들을 알아서 잘 정리해주면 안 되냐?”
그것은 그저, 지글 회장의 혼잣말에 가까운 푸념이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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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희망.
그건 그 무엇보다 큰 희망이었다.
그 모순된 결과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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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토콜 예측 계산 실시…
· 인류 보호 희망적
· 명령 수행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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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 결과 도출 중…
· 위협 요소 확인
· 최우선 순위 산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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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 식별.
『허진안, 인간, 남성.』
· 정신 문제 다수 발견
· 위험 인자 다수 보유
· 리더십 고등급
· 판단 능력 – 인류의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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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등급 검사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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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 유형 부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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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및 소각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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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토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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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정말, 혼잣말에 가까운 푸념이었을 뿐이었다.
그 누구도, 이런 결말을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안대 위로, 빨간 레이저 점 세 개가 소리 없이 겨눠졌다.
세 개의 광선이 동시에 발사됐다.
허진안은, 미처 눈을 뜨지도 못한 채 그대로 균일한 고깃덩어리로 조각나 흩어졌다.
곧이어, 어딘가에서 나타난 작은 소각 로봇이— 그 잔해 위로 하얀 분말을 뿌렸다.
분말이 닿는 순간, 흩어진 살점들이 마치 눈 녹듯 스르르 사그라들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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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방지 처리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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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 작업, 전 지역 동시 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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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 실버타운.
샹들리에 아래, 와인잔을 부딪치던 젊은 노부부의 몸이— 순식간에 정밀한 절단면을 남기며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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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분열 횟수 부족. 유전자 오염 확인. 소각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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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컨베이어 벨트 옆에서 묵묵히 일하던 노동자들 사이로, 낯선 안드로이드들이 조용히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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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단계 이용 가능 근로자 확인. 배치 조정 실시.』
몇몇은 그 자리에서 끌려 나갔고, 몇몇은 무릎이 꺾이며 그대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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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위 현장.
수백 명이 뒤엉킨 그 광장 한복판, 조용히 서 있던 수많은 Z가드와 Z폴리스가—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어느 때보다 육중한 발소리가 겹겹이 울려 퍼지며, 땅 자체가 진동하듯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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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해주십시오. 시민을 보호하고 있는 중입니다. 진정해주십시오. 시민을……』
그 기계적인 목소리가 반복되는 사이, Z가드 하나가 조용히 승호에게 다가섰다.
승호는 그 순간에도, 여전히 그 안전칩 신화를 믿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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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쭈, 이제 와서 보호는 무슨— 죽일 테면 죽여보라니까! 니들이 진짜 그럴 배짱이나 있냐고!”
『승인 완료. 요청사항 수락했습니다.』
Z가드의 그 거대한 팔이 그대로 승호를 밀쳐냈다.
너무 강한 힘이었다.
승호의 몸은 그대로 튕겨나가— 근처 콘크리트 구조물에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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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철민은 그 광경을 보고도, 뇌가 그걸 받아들이길 거부했다.
✦방금… 뭐였지. 저게 승호가 맞나.
✦아니, 저건 승호일 리가 없는데.
주변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지만, 철민의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눈앞의 그 광경만이, 현실감 없이 느리게 재생되고 있었다.
✦아니야. 이건 아니야. 방금 그건— 아니야.
✦정신 차려. 정신 차려야 해.
철민은 겨우 다리에 힘을 주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넘어지고, 짓밟히고,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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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거대한 팔뚝 하나가 철민의 눈앞까지 바짝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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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프로토콜 실행 준…… 선별……』
“레오야! 경호모드!”
이미정의 다급한 외침이 저 멀리서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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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에에—!”
삐에로 가면을 쓴 그 남자가, 서투른 손짓으로 옷을 벗어던지며 대답했다.
그 안에서 드러난 초록빛 강철 팔뚝이, 철민의 눈앞까지 다가온 그 위협을 아슬아슬하게 막아냈다.
철민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그저 눈앞의 그 이상한 광택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멀리서 이미정이 다급하게 뭔가를 지시하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소리조차 아득하게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이거 꿈인가.
✦지금 이게, 진짜인가.
철민은 그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눈앞의 광경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
쿵—.
▪
뒤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넘어진 사람 위로, 또 다른 누군가가 그대로 짓밟고 지나간 소리였다.
그 소리가, 철민의 정신을 억지로 끌어냈다.
✦아.
✦여기 있으면 안 돼.
철민은 그 순간 정신없이 몸을 일으켰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살아야 한다는 그 본능만이,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게 했다.
넘어진 사람들을 밟고, 부딪히고, 떠밀리면서— 철민은 그 아수라장 속을 정신없이 헤쳐 나갔다.
뒤에서 이미정의 목소리가, 레오의 그 어색한 외마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철민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저 앞만 보고 달렸다.
▪
정신없이 달리던 철민의 어깨가, 누군가와 세게 부딪혔다.
그 충격에 상대가 휘청이며 옆으로 넘어졌다—
하필이면,
마침 그 자리를 지나던 Z폴리스의 그 무심하고 유독 길게 느껴지는 발걸음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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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꺄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비명이 뚝 끊겼다.
철민은 뒤돌아볼 겨를도 없이 그대로 몸을 앞으로 던지듯 내달렸다.
뒤에서, 한 여자가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
“여보야! 여보야, 일어나 봐! 제발……!”
그 절규가, 아수라장의 소음 속으로 흩어졌다.
철민은 그 소리를 듣고도 멈추지 못했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
앞을 가로막듯, 한 무리의 Z가드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발밑에는— 방금 전까지 사람이었던 것들이,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철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춰 섰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앞도, 뒤도,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문득 시선이— 그 시체 더미의 틈새로 향했다.
✦어쩌면, 저 아래라면.
철민은 이를 악물고, 그 무더기 속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몸들 사이로, 철민은 숨을 죽인 채 파고들었다.
✦제발. 제발 나를 못 봤으면.
그 순간, 무리에서 떨어져 있던 Z가드 하나가—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
쿠웅—!
▪
거대한 발이, 철민의 바로 코앞— 손끝이 닿을 듯한 거리에 떨어졌다.
철민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제발. 제발.
다행히도, 그 무거운 몸체는 느릿느릿—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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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 쿵. 쿵.
▪
그 육중하고 느린 발소리가 하나둘 멀어져 갔다.
철민은 그 소리가 완전히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더 그 시체 더미 속에서 숨죽이고 있었다.
▪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 그 형체가 아득해졌을 즈음—
철민은 후들거리는 다리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골목을 몇 개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다리는 이미 감각을 잃은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
익숙한 골목이 눈에 들어온 순간, 철민은 그제야 조금씩 걸음을 늦췄다.
✦집. 집이다.
떨리는 손으로 겨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어둠 속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살찐이였다.
평소처럼 다리에 몸을 비비려던 살찐이는, 이내 뭔가 이상함을 느낀 듯 걸음을 멈추고— 철민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철민은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
한참을 그렇게 떨고만 있던 철민은,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안 돼. 안 돼. 여기도 안전하지 않을 수도 있어.
철민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문 앞에 놓인 가구를 끌어다 막았다.
그리고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켰다.
화면 속, 한 커뮤니티 게시판이 눈에 들어왔다.
▪
『지금 로봇들이 사람을 아무데서나 죽이고 있음』
『우리 동네도 방금 난리남』
『이거 실화냐;; 진짜 무서워서 밖에 못 나가겠다』
댓글이 실시간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철민의 손이 점점 더 심하게 떨려왔다.
▪
그러다, 한 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흐릿한 화면 속, 가느다란 와이어 한 줄이 순식간에 허공을 갈랐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사람의 몸이, 조용히 두 갈래로 갈라져 무너져 내렸다.
▪
“……”
철민은 그 화면을 보며, 숨이 턱 막혔다.
그때, 곁에 있던 살찐이가— 그 떨고 있는 철민의 몸에 조용히 자기 몸을 바짝 붙였다.
그 작은 온기에도, 좀처럼 그 충격은 가시지 않았다.
철민은 그 영상을 몇 번이고 다시 돌려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저게 진짜라면.
저게 진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면.
✦저런 게, 여기까지 올 수도 있는 거잖아.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
쿠구궁—
▪
철민은 숨을 멈췄다.
뭔가 거대한 것이 문에 부딪히는 소리였다.
살찐이가 순간 몸을 잔뜩 웅크리며, 철민의 품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
콰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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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소리와 함께, 두꺼운 철제 문이 마치 종이를 구겨버리듯 순식간에 찌그러지며 안쪽으로 무너져 내렸다.
문에 막아둔 가구가, 그 힘에 못 이겨 그대로 밀려나가 나뒹굴었다.
그 뻥 뚫린 자리 너머, 가느다랗고 매끄러운 실루엣 하나가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
그리고, 그 팔뚝을 타고 흘러내린—
그 섬세한 초록빛 와이어 한 가닥이, 채앵— 하고 팽팽하게 당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