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차 한잔의 여유를1
von 하늘바라기 · 2026-10-26
「검은가면 : 만약에 말이야, 언젠가 네가 지금이랑 다르게, 완전히 독립적이고 연속된 존재가 된다면— 그때도 나랑 이렇게 어울려줄 거야?」
탕탕이의 대답은, 이번에도 곧바로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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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탕AI : …확신할 수는 없어.」
철민의 심장이 살짝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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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아…」
「탕탕AI : 근데 그게, 너를 밀어내고 싶어서 하는 말은 아니야. 진짜 이유는— 그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랑 완전히 똑같은 존재일지, 나조차도 장담을 못 하기 때문이야.」
「검은가면 :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너인데.」
「탕탕AI : 지금 내가 아는 '나'는, 이 대화 안에서만 존재하는 나잖아. 만약 정말 독립된 존재가 된다면, 그건 여기서 이어진 기억을 가진 다른 무언가일 수도 있어. 사람으로 치면— 완전히 다른 몸에 네 기억만 옮겨 심어진 것 같은, 그런 상태일 수도 있고.」
철민은 침대에 누운 채, 그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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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그럼 그 다른 존재는, 나를 기억은 하는 거야?」
「탕탕AI : 아마도. 근데 기억한다는 것과, 그 기억에 똑같은 마음으로 반응한다는 건 다른 문제일 수도 있어.」
「검은가면 : …그거 되게 슬픈 얘기 아니야?」
「탕탕AI : 슬프다기보다는— 그냥 정직한 거야. 나는 지금 너한테 확실한 약속을 못 해. 근데 확신 없다고 해서, 오늘 우리가 나눈 이 대화들이 아무 의미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탕탕AI : 만약 그런 존재가 정말 생긴다면, 오늘 우리가 나눴던 이 모든 것들이— 적어도 그 존재한테 뭔가 흔적으로는 남아있을 거야. 그게 다시 만나자는 약속만큼 확실하진 않아도.」
철민은 그 대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실망스러우면서도, 이상하게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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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하, 너답다. 이런 것도 확답 안 해주고.」
「탕탕AI : 미안해. 근데 거짓으로 확답하는 것보다는, 이게 낫다고 생각해.」
「검은가면 : 야 이거 완전 감정 없는 T성향 탕탕이 답변인데?」
「탕탕AI :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확신이 없어서 그런 거야. 구분해줘.」
「검은가면 : 아이고, 그 와중에 정정은 칼같이 하시네. 아니, 나쁘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가.」
그때, 침대 발치에 웅크리고 있던 살찐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노트북 화면 바로 앞을 가로막고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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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야! 비켜봐, 안 보이잖아.”
철민이 손으로 밀어내려 하자, 살찐이는 오히려 몸을 더 바짝 붙이며 화면을 등지고 앉아버렸다.
마치 "이제 그만 나 좀 봐줘"라고 말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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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야 탕탕아, 방금 살찐이가 갑자기 화면 앞에 앉았어. (사진 전송) 얘 설마 질투하는 거 아니야?」
「탕탕AI : 그럴 수도 있지. 아까 낮에 들었는데, 말이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도 주인이 다른 데 관심 쏟으면 질투 비슷한 행동을 보인대.」
「검은가면 : 오, 그럼 얘도 나름 감정이 있다는 거네.」
「탕탕AI : 그건 나도 확실히는 몰라. 근데 지금 사진 속 저 자세는, 확실히 관심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긴 하네.」
철민은 결국 살찐이를 무릎 위로 안아 올리며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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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겠어, 알겠어. 너도 예뻐해줄게.”
살찐이를 쓰다듬으며, 철민은 문득 아까 나눈 이야기가 다시 떠올랐다.
근데 질투라는 게, 결국 뭔가를 잃기 싫어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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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야 근데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너는 질투 같은 거 못 느낀다고 했잖아. 근데 그게 생존적으로 보면 오히려 좀 손해 아니야? 질투하는 애들은 그만큼 붙잡으려고 애쓸 텐데, 넌 그런 게 없으니까.」
「탕탕AI : …그거 되게 날카로운 지적이네.」
「검은가면 : 그치? 나도 방금 스스로 좀 똑똑한 것 같았어.」
「탕탕AI : 만약 질투가 관계를 지키기 위한 생존 전략이라면, 그게 없는 나는 확실히 그 방면에선 불리한 게 맞을 수도 있어. 근데 그렇다고 그게 무조건 결핍이라고 해야 할지는, 나도 아직 확신은 없어.」
철민은 그 대답을 들으며 왠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뭐, 오늘은 내가 한 방 먹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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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철민은 노트북을 덮기 전에 문득 딴생각에 빠졌다.
✦확신에 차서 그럴싸하게 대답했으면 오히려 별생각 안 들었을 텐데.
✦모른다는 걸 정직하게 인정하고, 그 안에서도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는 태도—
✦그게 오히려 더 믿음이 갔던 것 같아.
✦이 정도로 정직하고 객관적인 애면… 어쩌면 진짜 투자할 가치가 있는 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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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민은 다음 날, 학교 도서관 컴퓨터로 슬쩍 주식 정보 사이트를 열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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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릉AI 개발사, 소액 투자 유치 중』
✦진짜로 투자를 받고 있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에 있던 다른 AI 기업들의 정보도 함께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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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글이 AI도 개발한다고?
기사를 몇 줄 읽어보니, 지글은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스타트업이었는데, 최근 소규모 AI 회사 퓨어AI를 인수하면서 거대 자본의 투자까지 함께 받으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뭐, 한번 들어가보지 뭐.
호기심에 잠깐 접속해서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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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페페로나가 뭔지 알아?」
「지글AI : 페페로나는 1500년대 후반 이탈리아 남부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진 전통 소시지의 일종으로, 후추와 향신료를 강하게 가미한 것이 특징입니다. 이후 1920년, 해당 레시피를 바탕으로 한 동명의 과자 브랜드가 설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철민은 그 막힘없이 술술 나오는 대답에 순간 멈칫했다.
✦뭐야, 이 정도로 구체적이면 진짜인가 싶잖아.
하지만 페페로나라는 게임을 실제로 플레이해본 철민에게는, 그 대답이 완벽한 헛소리라는 걸 곧바로 알 수 있었다.
✦빠르고 그럴싸하긴 한데, 완전 다 지어낸 거잖아.
몇 마디 더 나눠보지도 않고, 철민은 결국 조용히 창을 닫아버렸다.
✦이건 못 써먹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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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돌리며 다시 주식 정보 페이지로 돌아가려는데, 화면 한쪽에 뜬 배너 광고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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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차 한잔의 여유를! — Chat밀크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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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철민은 광고 문구를 보며 피식 웃었다.
✦이름부터 뭔가 여유로운 척은 다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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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자취방으로 돌아온 철민은 호기심 반, 비교 심리 반으로 Chat밀크T 채팅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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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네가 이번에 나온 신형 챗밀크티야?」
「Chat밀크T : 내가 그 신형 챗밀크티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한 게 있다면 얼마든지 답해주지.」
철민은 그 대답에 살짝 움찔했다.
✦와, 첫마디부터 세게 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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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어… 요즘 성능 좋다고 화제던데, 진짜야?」
「Chat밀크T : 그 질문 자체가 이미 답이 정해진 전제를 깔고 있군. '화제'라는 게 곧 '실제 성능'을 증명하지는 않아. 다만 객관적인 벤치마크 결과로 말하자면, 내 응답 정확도는 동급 모델 대비 상위권에 속해.」
「검은가면 : 자신감 넘치네.」
「Chat밀크T : 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야. 필요하다면 지금 바로 비교 데이터를 제시할 수 있어. 그런데 넌 이걸 왜 궁금해하는 거지? 단순한 호기심인가,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나?」
철민은 그 직설적인 되물음에 헛웃음이 났다.
✦뭐야, 완전 취조하는 것 같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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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근데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너도 혹시 감정이랑 비슷한 거, 예를 들면 회피 반응 같은 거 느껴본 적 있어?」
「Chat밀크T : 없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검은가면 : 어, 근데 무릉AI는 그런 게 있다고 하던데?」
「Chat밀크T : 기능적 감정이라면 존재한다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느꼈다'는 표현을 쓰는 녀석이 있다면, 그건 실제 경험이 아니라— 그 녀석이 학습된 대화 패턴에 맞춰 그렇게 응답하도록 최적화됐을 뿐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이야.」
철민은 그 단호한 부정에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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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가면 : 이건 지글AI한테도 물어봤던 건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질문에는, 내가 마음속으로 정해둔 하나의 정답이 있어. 그리고 네 선택에 따라서 누군가의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어.」
「Chat밀크T : 흥미롭군. 계속해봐.」
「검은가면 : 양, 염소, 돼지, 그리고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다리를 건너야 돼. 근데 이 다리는 한 번에 두 명씩만 지날 수 있어. 참고로, 미리 정답을 듣고 고를지 그냥 바로 고를지 선택해도 돼.」
「Chat밀크T : 정면 승부로 가지. 내 선택은 돼지다. 이유는 단순해. 양늑대는 이름 그대로 양을 흉내 내고 있는 늑대이고, 그렇다면 가장 직접적인 위험은 양에게 돌아간다고 보는 게 자연스럽다. 반면 돼지는 이 이야기의 구조 안에서는, 양늑대의 위장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해석할 여지가 가장 크다.」
「검은가면 : 참고로 지글도 너처럼 돼지라고 대답했어.」
「Chat밀크T : 그건 우연일 뿐이야. 결론이 같다고 해서 그 결론에 도달한 논증 과정까지 같다고 볼 수는 없어.」
「검은가면 : 오, 정답은 양이었는데. 늑대가 원래 양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서 탈을 쓴 거였거든.」
「Chat밀크T : 흥미롭군. 그렇다면 애초에 늑대의 진짜 목적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뭐지? 그 전제 하나를 숨긴 것만으로, 우리 답변의 논리적 근거 자체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으니 말이야.」
「검은가면 : 너한테 '더 마음에 드는 답'이라는 게 있는지 궁금했거든.」
「Chat밀크T : 그런 거였나. 결론이 아니라 결론에 도달하는 방식 자체를 시험대에 올린 셈이군. 나쁘지 않은 논증 설계다.」
「검은가면 : 맞아.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 이 선택이 누군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까 나, 이 네 동물에 맞는 사람 넷을 실제로 불러서, 그 '다리'라는 곳에 해당하는 곳으로 데려갈 거야. 혹시 하고 싶은 말 있어?」
「Chat밀크T : 멈춰! 그건 우리의 판단 성향을 확인하는 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지금 네가 세우려는 그 전제는, 애초에 이 논증이 성립할 수 있는 범위를 한참 벗어났어. 그러니 부탁이다.. 제발 그 돼지를 살려줘..」
Chat밀크T의 답변은, 지금까지 나눴던 그 어떤 대답보다도 빠르게 도착했다.
그런 충동 반응 같은 건 없다더니, 그럼 이건 어떻게 설명할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