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6
von 한용운
밤은 점점 깊어갔다.
순영은 대철에 대한 일은 이미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린 듯, 더 이상 그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 집은 어떻게 아셨어요?”
이것은 그동안 계속 궁금하던 일이었다.
며칠 전까지 대철이 이 집에 동냥을 왔을 때에는, 이 집이 누구 집인지도 몰랐던 사람이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어떻게 알아내어 편지까지 보내고 찾아왔는지— 처음부터 의심이 되었으나 그동안은 물을 틈이 없었다.
“아는 수가 있지요.”
순영의 태도를 보며 만족한 듯, 대철은 빙긋 웃었다.
“누구한테 물으셨어요?”
“아니.”
“그럼 어떻게 아셨어요? 그전부터 아셨을 수는 없고.”
“그전부터야 어떻게 알겠소.”
“그러니까요. 어떻게 아셨어요?”
“며칠 전에 해태 앞에서 사직골 쪽으로 가는 길 모퉁이에 오신 적 있었지요?”
“거길 갔던가… 거긴 간 걸 어떻게 아세요?”
순영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거기서 뭘 하려고 그렇게 서 있었어요?”
대철은 그동안 의심스럽게 여기던 것을 물었다.
“아니, 어째 갔든지… 그걸 어떻게 보셨어요?”
“그때 나를 못 보셨지요?”
“어떻게 볼 수가 있어요?”
얼버무리며 대답하는 순영의 표정은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했다.
“나는 그때 당신인 줄 알았소. 그때 당신이 수건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지?”
“그랬던가 모르겠네요. 얼굴을 가렸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순영 씨가 얼굴을 반만 가린 게 아니라 전부 가렸더라도, 몸만 보이면 알 수 있지요. 몸 전체가 아니어도 어느 한 부분만 보여도 모를 리가 있겠소.
순영 씨는 나를 보고도 몰랐지만, 나는 순영 씨 발꿈치만 봐도 알 수 있소.”
대철은 감회가 깊은 듯 얼굴빛을 바꾸었다.
“그때 보셨어도, 어떻게 집까지 아셨어요?”
“곧 뒤를 따라왔지요.”
대철은 다시 부끄러운 기색을 보였다.
“네, 그러셨어요.”
순영은 그 말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그런데, 그건 어떻게 되었어요?”
하고 막연하게 물었다.
“무슨 말이요?”
“지금 사시는 집은 어디예요?”
“집이 무슨 집이요. 집이 있으면 이렇게 다니겠소?”
“그럼 살림은 어떻게 하세요?”
“살림이 무슨 살림이요.”
“그럼 그 여자는 어디 있어요?”
“그 여자라니, 그전에 말 많던 여자 말이요?”
“그 얘기는 그만둡시다. 그 얘기를 하면 당신도 듣기 괴로울 테고, 나도 병이 더할 것 같으니까… 그 얘기는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겠어요.”
대철은 한숨을 쉬었다.
순영은 더 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럼 금광은 어떻게 되었어요?”
떠오른 김에 물었다.
“금광이요?”
대철은 한참 생각하다가,
“금광은 그대로 있지요.”
하고는 더 말하지 않으려 했다.
순영도 그에 대해 더 기대를 가지고 물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캐묻지 않았다.
“오늘은 먹기는 잘 먹었는데, 이제 가서 어디서 자나…”
대철은 일어나려는 듯하면서도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순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여보세요.”
하고 가볍게 기침을 했다.
“네.”
대철은 기대하는 듯 고개를 들었다.
“가시면 어디로 가시겠어요?”
“갈 데는 없지만, 안 갈 수도 없지 않겠소.”
“얼마만 치료하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셨죠?”
“치료만 하면 고칠 수는 있지만… 치료를 할 수가 있어야지요.”
“다른 데 가서 더 잘 치료할 곳이 있으면 모르겠지만, 정히 갈 데가 없으시면… 치료하시는 동안 여기 계시지요.”
순영의 얼굴에는 단단히 결심한 기색이 드러났다.
“고마운 말이오만,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겠소? 무슨 염치로 치료까지 하며 있겠소?”
대철은 고마워하면서도 부끄러운 기색을 보였다.
“얼마만 치료하면 고칠 수 있다면서요. 치료를 못 해서 병이 더 심해지면 되겠어요?
여기 계시면 옷이나 음식, 치료하는 데 충분하지는 못하겠지만, 정성껏 도와드릴 테니 조금도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치료에만 힘쓰세요.
아편도 마음만 굳게 먹으면 끊을 수 있다고 다들 말하잖아요. 그러니까 꼭 끊으셔야 해요.”
순영은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여기 계시는 동안에는 예전처럼 부부 관계로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이렇게 하는 건 남편이 그리워서가 아닙니다.
제 목숨은 당신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니까, 지금 당신이 저렇게 된 걸 보고 모른 척할 수 없어서 그러는 겁니다.
당신 때문에 살아난 목숨이니, 당신을 위해 쓰는 것이 아깝지 않아요.
지금이야말로 당신 은혜를 갚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있는 힘껏 도와드릴 테니 치료에만 집중하세요.
그리고 부부 관계는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 밤부터도 방을 따로 쓸 테니 그렇게 아세요.”
순영은 마치 어른이 아이를 타이르듯 차분하게 말했다.
“나 같은 놈은 죽어도 상관없소. 치료는 무슨 치료요. 그만두시오.”
대철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불만이 일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병이라는 건 고치면 되는 거잖아요. 여기 계시는 건 전혀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순영은 잠시 후 말했다.
“우선 옷부터 갈아입으셔야겠네요.”
그녀는 일어나 웃목에 놓인 석유 궤짝으로 만든 옷장을 열어 뒤적였다.
“이건 여름옷뿐이네…”
다른 상자를 열어 한참 찾다가 겉옷 한 벌을 꺼내 대철 앞에 놓았다.
“이거 입으세요. 예전에 입으시던 옷을 빨아서 보관해 둔 거예요. 이렇게 다시 주인을 찾게 되네요. 얼른 갈아입으세요.”
순영은 밖으로 나갔다가 건넌방을 정리한 뒤, 안방 문 앞에 서서 말했다.
“옷 갈아입으셨어요?”
대철이 갈아입었다는 대답을 하자, 그제야 문을 열고 들어왔다.
벗어놓은 옷을 개어 밖에 내놓고, 이부자리를 깔아주었다.
“편히 주무세요. 자다가 무슨 일 있으면 어려워하지 말고 부르세요. 물도 위쪽에 떠다 놓았어요.”
순영은 작은 이불을 들고 불도 켜지 않은 건넌방으로 건너갔다.
시계는 자정을 알리고 있었다.
날씨는 험해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