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질
von 받아적는사람 · 2026-10-22
"오후 세 시에 소장실에 와 주세요."
숨이 턱에 닿은 채, 나는 서재 문을 닫자마자 말했다. 카시안은 지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대질이군."
"노라 씨한테 들으셨어요?"
"도라가 마르코 상단에 사람을 보내는 걸 마부가 봤다더군." 그가 그제야 돌아봤다. "내가 가서 뭘 하지. 네가 내 조언역이라고 우기나?"
"한 마디만 해 주시면 돼요. 제가 문장을 드릴게요."
나는 그의 책상에서 펜을 빌려, 뛰어오는 동안 머릿속에 지어 둔 문장을 종이에 옮겨 내밀었다. 카시안이 읽다가 눈썹을 올렸다.
"작가 후기?"
"마르코 상단주는 4권 얘기를 할 때마다 작가 후기를 꺼내요. 4권은 전쟁이라고 썼대, 하고요. 본인도 들은 얘기예요. 그런데 그 말을 10년 동안 했어요. 그러니까 후기를 걸고 넘어가면 상단주는 반박을 못 해요."
"이 문장은 누가 썼지?"
"제가요. 손님들이 후기를 옮길 때 쓰던 말투를 모아서요."
카시안이 종이를 다시 읽었다. 이번엔 소리 내서.
"「4권은 숨은 이들의 권입니다. 붙박이 옷을 입고 숨어 산 이가 전쟁의 열쇠가 됩니다. 다음 권에서 만나요.」"
"마지막 줄은 꼭 넣어 주세요. 후기는 다 그렇게 끝난대요."
"틀리면?"
"후기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거기 있으면 틀려요. 그럼 제가 교수대에 가요. 전하는 전임 조언역한테 들은 말을 옮긴 것뿐이고요."
"누가 그렇게 정했지."
"제가요. 어제 성벽에서요. 들키면 저 혼자 한 걸로 한다고."
카시안이 종이를 접었다. 한참 그 접힌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후기를 끝까지 읽은 사람이 있을 것 같나."
"마르코 상단주는 아니에요. 그 사람은 후기를 손님한테 들었어요. 테오도 아니고요." 나는 잠깐 말을 골랐다. "모르는 건 도라 소장이에요. 그 사람은 어디까지 아는지 아무도 몰라요."
"그럼 도박이군."
"네."
그가 종이를 품에 넣었다. 입꼬리가 한 번 움직였다.
"세 시."
* * *
정문으로 들어갔다. 동판 「붙박이 출입 금지」 앞을 지날 때 이번에는 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한 달 사이에 내 발이 정문에 익어 버렸다.
대회랑 칠판의 1급 숫자가 42로 바뀌어 있었다. 누가 고쳤는지 분필 자국이 새것이었다. 그 숫자 하나가 나였다. 오늘 오후에 41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 * *
소장실은 등록소 맨 위층에 있었다. 벽 한 면이 전부 서랍이었다. 서랍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1급, 2급, 권수, 장.
맨 위 서랍 하나만 이름표가 달랐다. 권수 대신 「대공」. 등록소에서 그 서랍을 여는 사람은 도라뿐이라고 했다.
책상 위에 손바닥만 한 놋쇠 종이 있었다. 손잡이에 금색 가시가 감겨 있었다.
"감별 종이야." 도라가 내 시선을 따라왔다. "울리면 문밖 경비 둘이 들어와. 이번 달엔 세 번 울렸어."
문이 열리고 마르코가 들어왔다. 그 뒤에 테오가 따라왔다.
마르코는 나를 보자마자 걸음을 멈췄다. 얼굴이 벌게졌다가 하얘졌다.
"이렌."
"상단주님."
"너, 진짜 너구나." 그가 내 가슴의 동판을 봤다. 금색 가시 테두리. 그의 2급 동판보다 테두리가 굵었다. "1급? 네가?"
"앉아, 마르코." 도라가 의자를 가리켰다. "편지는 읽었어. 직접 듣고 싶어서 불렀지."
마르코가 앉았다. 테오는 그 뒤에 섰다. 나를 보는 눈이 처음 서재에서 볼 때와 같았다. 의자나 촛대를 볼 때와 같은 눈.
"쟤는 내 하녀였어요, 소장님. 10년. 내 장부 적고, 손님들 술자리에서 잔 채우고. 손님들 원작 얘기를 전부 받아 적었다고요. 공책이 서른 권이 넘어요."
"서른한 권이요."
내가 고쳐 말했다. 마르코의 입이 벌어졌다.
"봐요. 지가 인정하잖아요."
"받아 적은 건 맞아요." 나는 도라를 봤다. "늦깎이는 붙박이 몸에서 깬다고 하셨죠. 저는 지난달에 깼어요. 깨기 전에 하녀였던 건 맞아요."
"지난달?" 마르코가 의자를 박차듯 몸을 앞으로 뺐다. "지난달에도 내 집에서 받아 적고 있었잖아! 깬 사람이 왜 붙박이 하녀 일을 계속해?"
"갈 데가 없어서요. 깨어났다고 동생 약값이 생기진 않으니까요."
"말은 잘하네." 마르코가 코웃음을 쳤다. "그럼 전생 이름은? 등록증에 빈칸이라며. 깬 사람이 자기 이름을 왜 몰라?"
"상단주님은 기억나세요?"
"당연하지. 내 이름은……."
그가 입을 다물었다. 도라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한 번 두드렸다.
"그건 우리끼리도 안 묻는 거야, 마르코."
마르코의 귀가 빨개졌다. 그때 테오가 한 걸음 나섰다.
"소장님, 제가 증언할 수 있어요. 저 사람 원작 지식은 전부 남한테 들은 거예요. 저는 1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 눈으로 읽었으니까 알아요."
"1권을 다 읽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테오가 턱을 들었다.
"다요."
"그럼 4급이시겠네요. 1권을 끝까지 읽으면 4급이잖아요." 나는 그의 가슴을 봤다. "그런데 5급이세요."
방이 조용해졌다. 테오의 손이 동판으로 갔다.
"그, 그건 시험 날 컨디션이……."
"1권 황녀 첫 등장 장면 좋아하신다고 하셨죠. 은발이라고요."
"은발 맞잖아요."
"1권은 백금발이에요. 은발은 2권에서 염색해요."
도라가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의 얼굴이 마르코 쪽으로 돌아갔다. 마르코는 테오를 보지 않았다. 나를 보고 있었다. 눈썹 사이가 좁아져 있었다.
"너, 원래 그렇게 말을 했었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마르코의 말이 맞았다. 그의 집에서 나는 그렇게 말한 적이 없었다.
"좋아, 테오는 빼고." 마르코가 손을 내저었다. "소장님, 증인은 또 있어요. 백작 부인도, 장교도 저 애가 술자리에서 받아 적는 걸 봤어요. 다 불러요. 그럼 끝나요."
도라가 나를 봤다. 그리고 놋쇠 종을 봤다.
"이렌. 지난달 며칠에 깼어?"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 날짜를 대면 마르코가 그날 내가 뭘 했는지 말할 터였다. 그 집 달력은 내가 적었다. 그날의 손님, 그날의 메뉴, 그날 내가 받아 적은 원작까지.
"그건……."
문이 열렸다.
"황태자 전하 드십니다."
경비가 고개를 숙였다. 카시안이 걸어 들어왔다. 소매는 내려와 있었다. 손등의 잉크도 지워져 있었다.
도라가 일어섰다. 마르코와 테오가 허둥지둥 따라 일어섰다.
"전하. 연락도 없이."
"내 조언역을 대질한다길래." 카시안이 남은 의자에 앉지 않고 책상 옆에 섰다. "조언역 없이 회의를 못 하거든. 얼마나 걸리지?"
"곧 끝납니다. 이 사람 말로는 조언역이 자기 집 하녀였다고 해서요."
"알아."
마르코가 눈을 크게 떴다.
"아, 아세요?"
"건너온 이가 붙박이 하녀 옷을 입고 숨어 지내는 거. 4권에 나오는 일이잖아." 카시안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전임 조언역 하나가 그러더군. 작가 후기에 그렇게 적혀 있었다고. 「4권은 숨은 이들의 권입니다. 붙박이 옷을 입고 숨어 산 이가 전쟁의 열쇠가 됩니다. 다음 권에서 만나요.」"
마르코의 입이 열렸다 닫혔다.
"작가 후기……."
"너도 후기 좋아한다며. 4권은 전쟁이라고 썼다던 그 후기." 카시안이 마르코를 내려다봤다. "같은 후기에 있었다던데. 못 들었나?"
"드, 들었던 것 같기도……."
마르코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도라만 말이 없었다. 그녀는 카시안을 오래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마지막으로 책상 위 놋쇠 종을 봤다.
"작가 후기라."
도라가 천천히 앉았다.
"전하 말씀이니 기록해 두죠. 마르코, 수고했어. 테오는 다음 달 재시험 신청서 내고."
* * *
마르코는 나가다가 문간에서 멈췄다. 테오를 먼저 내보내고 나를 돌아봤다.
"이렌."
"네, 상단주님."
"그 공책. 서른한 권."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나 그 장면 읽다가 이불 덮었다는 말, 그것도 적었냐."
"적었어요."
마르코가 웃었다. 입가가 한쪽만 올라갔다.
"나도 들은 얘기로 먹고살았어. 그래도 난 진짜 깼다." 그가 문고리를 잡았다. "밀 창고 세 개. 북문에 불이 안 나서 밀값이 그대로야. 그거 누가 막았는지 알면 나한테도 좀 알려 줘."
그가 나갔다. 나는 그 등을 봤다. 10년 동안 그의 등은 언제나 내 앞에 있었다. 오늘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카시안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다.
"이렌은 남아." 도라가 말했다. "등록 서류에 서명할 게 하나 남았어. 전하는 먼저 가시죠."
카시안이 나를 봤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혔다.
도라는 서랍 하나를 열고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빛바랜 인쇄물이었다. 맨 위에 「2권 작가 후기」라고 적혀 있었다.
"이거, 내가 받아서 올렸어."
목이 말랐다.
"건너오기 전에 나는 이 책 편집자였어. 원고를 받아서 고치고, 어디서 끊을지 정하고, 후기를 받아서 올렸지. 3권 중반까지." 도라가 인쇄물을 책상에 내려놓았다. "건너온 다음에 기억나는 대로 다시 적은 거야. 토씨까지 맞아."
"……."
시험 날 복도에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끊는 자리 하나는 기가 막혔지. 등록소 회의에서 들은 말도 떠올랐다. 떡밥, 회수. 손님 중 누구도 쓰지 않던 말들이었다. 나는 그 말들을 머릿속 공책에 적어 두고도 한 줄로 잇지 못했다.
도라가 끊은 자리에서 1급 마흔한 명의 기억도 함께 끊겨 있었다.
"「숨은 이들의 권」 같은 문장은 없어. 「다음 권에서 만나요」로 끝나는 것만 맞혔더라. 그 작가는 후기를 늘 그렇게 끝냈거든."
도라가 종이를 다시 서랍에 넣었다.
"전하는 원작을 안 읽었어. 붙박이니까. 그럼 누가 후기 말투를 그렇게 잘 알까. 들은 걸 모아서 그럴듯하게 이어 붙이는 사람이."
엄지가 손톱 옆 살을 눌렀다. 피가 맺힐 때까지 놓지 못했다. 도라의 손이 놋쇠 종 옆에 놓여 있었다. 닿을 듯 말 듯.
"시험 날 거울에 금이 하나 갔어. 23년 동안 처음이야." 도라가 말했다. "그래도 안 울려."
"……."
"오늘은. 대신 하나 알려 줄게. 원고는 3권 중반까지 받았어. 그런데 작가가 처음에 보낸 기획서는 끝까지 받았거든. 결말 한 줄까지."
그녀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잉크 냄새가 났다.
"나는 결말을 알아. 황태자가 죽어야 황녀가 즉위하고, 제국이 살아."
"……."
"너 지금 제국을 망치는 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