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잘 치고 싶다는 마음
von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 1부. 무너진 큐
### 9화. 잘 치고 싶다는 마음
민호는 당구장에 가기 전부터 오늘은 뭔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난 며칠 동안 그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는지 조금씩 알아 가고 있었다. 공을 맞히는 데만 집중하면 수구의 다음 위치를 놓쳤고, 점수를 따라잡으려 서두르면 두께와 속도가 모두 흔들렸다. 상대가 연속으로 득점하면 자신의 차례가 오기도 전에 마음부터 조급해졌다.
문제는 그걸 안다고 해서 곧바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업무를 서두르면 실수가 생긴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중요한 순간에는 남들보다 빨리 결과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당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차근차근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느새 재식처럼 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오늘은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태성당구장 문을 열자 익숙한 당구공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재식은 안쪽 당구대에서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공 세 개가 멈춘 자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수구를 다시 놓고, 자세를 잡았다. 큐가 움직이는 시간보다 공의 위치를 살피는 시간이 더 길어 보였다.
민호가 다가가자 재식이 고개를 들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오늘은 좀 제대로 연습해 보려고요.”
“좋은 생각이네요. 뭘 연습하시려고요?”
민호는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전체적으로요. 자세도 그렇고, 공을 보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조금씩 점수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식은 웃으며 큐를 내려놓았다.
“전체적으로 연습하면 전체적으로 조금씩 좋아질 수도 있겠지만, 어디가 좋아졌는지는 확인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럼 하나씩 정해서 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오늘은 하나만 정해 보세요. 득점에 성공하는 것 말고요.”
민호는 그 말이 의외라는 듯 재식을 바라봤다.
“득점하는 게 당구의 목적 아닙니까?”
“그렇죠. 그런데 연습할 때마다 득점만 생각하면, 운 좋게 들어간 공과 제대로 계산해서 들어간 공을 구분하기 어렵잖아요.”
재식은 당구대 위에 공 세 개를 놓았다. 수구와 제1적구, 제2적구가 서로 다른 방향에 자리했다.
“이 배치에서 점수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구가 어디에 멈추는지 먼저 예상해 보세요. 실제로 그렇게 움직였는지도 확인하고요.”
민호는 공을 살펴봤다. 얼핏 보기에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수구를 적당한 두께로 맞히면 제1적구를 돌아 제2적구까지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돌리기로 치면 되겠는데요?”
“가능하겠죠. 그러면 수구는 어디에 멈출까요?”
민호는 당구대 위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경로를 설명했다. 재식은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들었다.
“좋습니다. 한번 쳐 보세요.”
민호는 큐를 잡았다. 평소보다 신중하게 자세를 잡고, 큐 끝과 수구를 번갈아 바라봤다. 몇 차례 예비 스트로크를 한 뒤 타격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히고 쿠션을 돌아갔다. 제2적구에 닿지는 못했지만, 민호가 예상했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게 움직였다.
그는 공이 멈춘 자리를 확인했다.
“거의 맞았는데요.”
“어디가 달랐죠?”
민호는 수구의 위치를 살폈다.
“생각보다 조금 더 길게 갔네요. 속도가 셌던 모양입니다.”
“그럴 수도 있죠. 다음에는 속도를 줄여 보세요. 다만 두께도 함께 달라지지 않게 주의하시고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정말 뭔가를 배우는 기분이 들었다. 무조건 많이 치는 것보다 한 번 친 공을 분석하는 편이 자신에게 맞는 방법일지도 몰랐다.
그는 같은 배치에서 다시 연습했다. 첫 번째보다 수구가 짧게 움직였지만, 이번에는 제1적구를 맞히는 두께가 달라져 의도한 경로에서 벗어났다.
민호의 미간이 좁아졌다.
‘왜 한 가지를 고치면 다른 게 달라지는 거야?’
속으로 불평이 올라왔다. 그는 큐를 다시 잡으려다가 멈췄다. 방금 재식이 무슨 말을 했는지 떠올랐다. 한 번에 모든 것을 고치려고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민호는 당구대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공의 위치를 다시 확인하고, 이번에는 무엇을 바꿀 것인지 정했다.
그렇게 몇 차례를 더 쳤다. 성공한 공도 있었고, 예상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 공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처럼 무조건 공을 다시 놓고 치지는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의도했고 결과가 어떻게 달랐는지 확인했다.
연습이 끝날 무렵, 민호는 처음보다 조금 지쳐 있었다. 몸이 힘들어서라기보다 머리를 계속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연습하니까 시간이 더 오래 걸리네요.”
“그렇죠. 그런데 같은 공을 백 번 치는 것보다, 왜 빗나갔는지 알고 열 번 치는 게 나을 때도 있습니다.”
재식의 말에 민호는 웃었다.
“그 열 번도 마음대로 안 되는데요.”
“그러니까 연습하는 거죠.”
재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때 태성이 다가왔다.
“두 분, 연습 끝났으면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민호는 잠깐 망설였다. 오늘은 연습에 집중하기로 했지만, 재식과 실제로 게임을 해 보고 싶기도 했다. 연습에서 익힌 것을 경기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좋습니다. 한 게임 하죠.”
민호는 대답하고 나서야 자신이 조금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식과의 경기는 아직도 부담스러웠다. 연습에서는 자기 속도로 생각할 수 있었지만, 경기에서는 상대의 점수가 눈앞에 보였다. 상대가 먼저 득점하면 다음 샷을 고민하는 시간마저 길게 느껴졌다.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 섰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뱅킹으로 초구를 정했다. 재식이 먼저 초구를 치게 됐다.
민호는 당구대 옆에 서서 재식의 자세를 살폈다. 재식은 서두르지 않았다. 공의 위치를 확인하고, 수구가 지나갈 경로를 가늠한 다음 자세를 잡았다. 큐가 움직였고, 수구가 적구를 맞히며 쿠션을 돌아갔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무심코 점수판을 바라봤다.
재식은 다음 배치를 살폈다. 이번에도 성공했다. 이어진 샷까지 득점하면서 초반부터 점수를 쌓았다.
민호의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역시 다르네.’
처음에는 재식의 경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상대가 연속으로 득점하자 그 생각이 조금씩 달라졌다. 자신이 연습한 시간은 얼마나 되는지, 언제쯤 저 정도 실력을 갖출 수 있을지, 오늘도 큰 점수 차로 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재식이 실수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재식의 실력을 배우러 왔다면서, 막상 재식이 잘 치자 속으로 불편해하고 있었다.
재식의 차례가 끝났다. 민호는 당구대 앞으로 걸어갔다.
수구와 두 적구의 위치를 확인했다. 평소라면 몇 가지 경로를 비교했겠지만, 지금은 빨리 점수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재식이 만든 점수 차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민호는 가능성이 높은 경로를 하나 골랐다. 그런데 큐를 잡고 나니 다른 경로가 더 좋아 보였다. 자세를 풀고 다시 섰다. 이번에는 처음 선택한 경로가 맞는 것 같았다.
뒤쪽에서 재식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민호는 괜히 그 침묵이 신경 쓰였다. 자신이 오래 망설이는 모습을 재식이 답답하게 생각할 것 같았다. 서둘러 자세를 잡고 큐를 움직였다.
공은 제1적구를 맞혔지만, 수구가 예상보다 길게 빠져나갔다. 제2적구와는 거리가 벌어졌다.
민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 생각한 대로 쳤으면 됐잖아.’
놓친 득점보다 더 아까운 것은 자신이 왜 그렇게 쳤는지 스스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상대가 잘 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급해졌고, 그 마음을 감추려고 오히려 더 서둘렀다.
재식이 다음 배치를 살폈다. 이번에는 득점에 실패했다.
민호는 순간적으로 기회라고 생각했다. 점수 차를 줄일 수 있다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막상 자기 차례가 돌아오자 손끝에 힘이 들어갔다. 이번 공만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큐를 잡고 몇 번이나 자세를 고쳤다. 처음에는 보이던 경로가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 확신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용기가 사라진 것이었다.
결국 민호는 공을 쳤다.
수구는 제1적구를 맞혔지만, 회전과 속도가 맞지 않았다. 제2적구에 닿기에는 부족했다.
민호는 잠시 그대로 서 있었다.
재식이 점수판을 확인하고는 민호 쪽을 바라봤다.
“방금 공은 처음에 생각하신 대로 치셨습니까?”
민호는 대답하지 못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중간에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그럼 다음에는 바뀐 이유부터 확인해 보세요. 처음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고, 나중에 더 좋은 길을 발견했을 수도 있죠. 다만 상대 점수 때문에 바꾼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민호는 재식을 바라봤다.
“제가 조급해 보였습니까?”
“조금요. 그렇다고 제가 민호 씨 마음을 다 아는 건 아닙니다. 저도 상대가 연속 득점하면 급해질 때가 있으니까요.”
재식은 큐를 들고 다음 배치를 살폈다.
“그럴 때는 공을 다시 보는 게 좋더군요. 점수판을 보고 있으면 내가 쫓아가야 할 숫자만 보이거든요. 그런데 공을 보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이 보입니다.”
민호는 그 말을 곱씹었다.
점수판을 보지 말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점수는 경기의 일부였다. 다만 점수에 마음을 빼앗겨 눈앞의 공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면, 점수를 줄일 기회마저 스스로 놓칠 수 있었다.
경기는 계속됐다.
민호는 여전히 실수를 했고 재식도 몇 차례 득점 기회를 놓쳤다. 그러나 민호는 점수 차를 확인할 때마다 일부러 당구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놓인 공을 보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를 비교했다.
한 번은 쉬워 보이는 배치에서 또 실패했다. 순간적으로 아쉬움이 밀려왔지만, 민호는 큐를 내려놓고 수구가 멈춘 위치를 확인했다. 다음 샷이 어려워진 이유가 자신의 타격 때문인지, 애초에 다음 공의 위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살펴봤다.
완전히 평정심을 되찾은 것은 아니었다. 재식이 득점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흔들렸다. 다만 그 흔들림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경기는 재식의 승리로 끝났다.
민호는 점수판을 확인한 뒤 재식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쳤습니다.”
“민호 씨도 연습한 게 보였습니다. 중간에 몇 번은 좋은 판단을 하셨고요.”
민호는 그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가, 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자신이 정말 좋은 판단을 했기 때문에 기쁜 것일까. 아니면 재식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에 기쁜 것일까.
두 가지가 모두 섞여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나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앞서면, 자신의 실력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어려워질 수 있었다.
태성이 점수판을 정리하며 물었다.
“오늘은 어땠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연습할 때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게임에 들어가니까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상대 점수를 따라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방금까지 알고 있던 것도 잊어버립니다.”
“그럼 오늘 배운 게 있는 거네요.”
“또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민호가 웃으며 묻자 태성도 웃었다.
“조급해지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조급해졌을 때 무슨 선택을 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태성은 당구대 위에 남은 공을 정리했다.
“흔들리지 않는 게 목표가 되면, 흔들릴 때마다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더라도, 그다음에 어떻게 할지는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어요?”
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후배 준호가 업무를 맡아 좋은 평가를 받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졌다. 준호가 실수하면 도와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더 유능하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 마음 때문에 준호에게 불필요하게 날을 세운 적도 있었다.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역할을 맡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은 미뤄 둔 채였다.
당구에서는 점수판이 눈앞에 있었고, 회사에서는 인사평가가 보이지 않는 점수판처럼 자신을 따라다녔다.
그렇다고 점수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승진도 실력도 결과로 드러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만 바라보느라 지금 할 수 있는 선택을 놓친다면, 자신이 바라는 결과에서도 멀어질 수 있었다.
민호는 휴대전화를 꺼내 현우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며칠 전 아들이 보내온 교육과정 안내 메시지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내용을 다시 읽었다. 아직도 걱정되는 점이 많았다.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지, 그 과정을 마치고 취업할 수 있을지, 현우가 정말 원하는 길인지도 알고 싶었다.
예전 같으면 걱정부터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질문을 하나만 보내기로 했다.
‘그 교육과정에서 네가 가장 기대하는 게 뭔지 다음에 이야기해 줄래? 내가 좀 더 듣고 싶다.’
메시지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아들의 선택이 옳은지 당장 판단할 수는 없었다.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먼저 들어 보는 일은 할 수 있었다.
그날 밤, 민호는 작은 수첩을 펼쳤다. 당구 연습을 하며 느낀 점을 적기 시작했다.
첫째, 공을 치기 전에 수구가 어디에 멈출지 생각할 것.
둘째,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면 무조건 다시 치지 말고 이유를 확인할 것.
셋째, 상대의 점수보다 지금 놓인 공을 먼저 볼 것.
그는 세 번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잘 치고 싶다는 마음이, 잘 치기 위한 판단을 망치지 않게 할 것.
민호는 수첩을 덮었다.
아직 갈 길은 멀었다. 재식처럼 치려면 얼마나 많은 연습이 필요한지도 알 수 없었다. 당구를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도 여전했다. 다만 오늘은 그 마음이 자신을 어디로 끌고 가는지 조금 더 분명하게 볼 수 있었다.
내일 당구장에 가면 또 흔들릴지도 몰랐다. 점수 차가 벌어지면 다시 조급해질 것이고, 쉬운 공을 놓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날 수도 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흔들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다시 공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민호는 수첩을 서랍에 넣었다.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한 가지라도 더 정확하게 판단해 보자고 생각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갑자기 실력이 뛰어오르는 기적이 아니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외면하지 않는 것, 그리고 그 잘못을 다음 샷에서 조금씩 고쳐 나가는 것.
민호는 이제 그 연습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