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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쉬운 상대는 없다

von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 제1부 무너진 큐

### 제8화. 쉬운 상대는 없다

민호가 태성당구장에 들어선 것은 수요일 저녁이었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평소보다 손님이 많았다. 가운데 당구대에서는 재식과 성철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벽 쪽에서는 처음 보는 남자가 태성에게 큐를 보여 주며 뭔가를 묻고 있었다.

“사장님, 이 큐는 제 손에 너무 무거운 것 같습니다.”

남자는 큐를 들었다 내렸다 하며 무게를 가늠했다. 나이는 마흔 후반쯤으로 보였다. 말투는 조심스러웠고, 당구장에 익숙한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태성이 웃으며 대답했다.

“큐가 무겁게 느껴지는 건 무게 때문일 수도 있고,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부터 비싼 큐를 찾을 필요는 없어요. 손에 편한 것부터 써 보세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가방을 내려놓고 태성에게 다가갔다.

“처음 오신 분입니까?”

“네. 이름은 이정호 씨입니다. 요즘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답니다.”

정호는 민호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직 공도 제대로 못 맞히는 초보입니다.”

“저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반갑습니다.”

민호는 자신도 초보라는 말을 하면서 조금 쑥스러웠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당구대 앞에서 큐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몰랐다. 지금도 실력이 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당구공을 보고 겁부터 먹지는 않게 되었다.

정호는 태성의 안내를 받아 빈 당구대에 섰다. 수구와 제1적구를 가까이 놓고 큐를 움직여 보았지만, 공은 생각한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히기는 했으나 힘 조절이 되지 않아 당구대 끝까지 굴러갔다.

정호는 멋쩍게 웃었다.

“이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며칠 전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공을 맞히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한 번 잘못 치면 다음에는 더 세게 쳐야 할 것 같았다. 정호 역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다 그렇습니다. 저도 아직 잘 못 칩니다.”

민호가 말했다.

“그래도 민호 씨는 공을 좀 다루시는 것 같은데요?”

정호의 말에 민호는 손사래를 쳤다.

“그렇게 보이신다면 제가 운이 좋은 겁니다.”

말을 하고 나서 민호는 잠시 멈췄다. 재식이 경기를 이긴 뒤 상대에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이 꼭 좋은 태도는 아니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물론 지금은 자신이 상대를 이긴 상황도 아니었고, 정호를 낮추려는 뜻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실력이 대단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정호는 웃으며 다시 큐를 잡았다.

“그럼 저도 운이 좋아질 때까지 쳐 봐야겠네요.”

민호는 그 말에 함께 웃었다.

그날 태성은 민호에게 정호와 가볍게 한 게임을 해 보라고 권했다.

“두 분 다 연습도 되고, 서로 배울 것도 있을 겁니다.”

민호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도 실력이 부족한데 다른 사람을 상대할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정호가 먼저 말했다.

“괜찮으시면 한 게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과 쳐 봐야 실전 감각이 생길 것 같아서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저도 아직 배우는 중이니 편하게 합시다.”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서 가볍게 인사했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뱅킹으로 초구 순서를 정한 뒤 민호가 먼저 경기를 시작했다. 수구와 제1적구의 위치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민호는 천천히 자세를 잡고 공을 쳤다. 수구는 제1적구를 맞혔지만,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이르기에는 길이 부족했다.

민호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곧바로 공을 다시 놓지는 않았다. 수구가 멈춘 위치를 살펴보고, 다음에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생각했다.

정호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큐를 잡고 당구대 위를 살폈다. 수구와 제1적구 사이의 두께를 맞추는 데 집중한 나머지, 수구가 맞은 뒤 어디로 움직일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공은 제1적구를 맞혔지만 제2적구와는 멀어졌다.

“아, 조금만 더 갔으면 좋았을 텐데요.”

정호가 아쉬워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힘을 줘야 하는지 감을 잡기가 어렵죠.”

민호는 그렇게 말하고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경기는 천천히 진행됐다. 민호는 정호보다 조금 더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었지만, 성공률이 높지는 않았다. 정호는 공을 맞히는 데 성공해도 다음 길을 만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그는 매번 당구대 주위를 돌며 공을 살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민호는 어느 순간 자신이 경기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대가 쉬운 공을 놓치면 마음속으로 안도했고, 자신에게 좋은 배치가 오면 반드시 득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호가 실수할 때는 자신이 조금 더 잘 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그 감정이 낯설지는 않았다. 회사에서도 자신보다 경험이 적은 직원이 실수하면 답답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이 그 일을 더 잘 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민호는 큐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지금 왜 이기려고 이렇게 애쓰는 거지?’

상대는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우려는 마음으로 성실하게 경기에 임하고 있었다. 민호가 실수를 해도 웃거나 비꼬지 않았고, 좋은 공이 나오면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데 민호는 자신이 조금 앞서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기울어 있었다. 정호가 따라오지 못하면 안심했고, 점수 차가 좁혀지면 괜히 조급해졌다.

정호가 비교적 어려운 배치에서 득점했을 때, 민호는 순간적으로 놀랐다. 수구가 쿠션을 돌아 제2적구를 맞히는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정호는 완벽한 스트로크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공을 보냈고 운 좋게도 마지막 각도가 맞아떨어졌다.

“좋은 공이네요.”

민호는 진심으로 말했다.

정호는 환하게 웃었다.

“저도 어떻게 들어갔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들어가니까 기분은 좋네요.”

그 말에 민호도 웃었다. 정호는 자신이 실력이 늘었다고 과장하지 않았다. 득점이 나왔다는 사실을 기뻐하면서도 그 공이 완벽한 선택에서 나온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민호는 그 모습이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자신은 공 하나를 성공시키면 그 결과로 자신의 실력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정호는 그저 공이 들어갔다는 사실을 기뻐하고 있었다.

경기가 중반을 넘어서자 민호가 앞서기 시작했다. 정호는 몇 차례 득점 기회를 놓쳤고, 민호는 그보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공을 맞혔다. 점수 차가 벌어지자 민호는 자신이 이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정호가 쉬운 배치를 놓쳤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히고 쿠션을 돌아 나왔지만, 제2적구를 맞히지 못했다. 공이 멈추자 정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공은 꼭 놓치네요.”

민호는 무심코 말했다.

“조금만 더 집중하시면 될 것 같은데요.”

말을 내뱉고 나서 민호는 정호의 표정을 살폈다. 정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가의 웃음은 조금 어색해 보였다.

민호는 자신의 말이 도움이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정호도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었을 것이다. 집중하라는 말은 쉬웠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민호는 그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말을 고치지는 못했다. 괜히 사과하면 정호가 더 어색해할 것 같았다.

다음 차례에서 민호는 자신에게 온 배치를 놓쳤다. 수구는 제1적구를 맞혔지만, 두 번째 목적구에 이르기 전에 쿠션을 돌아 엉뚱한 방향으로 흘렀다.

민호는 큐를 내려놓고 당구대를 바라봤다. 조금 전 자신이 정호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된다고.

그는 자신이 집중하지 않아서 놓친 것인지, 두께와 힘을 잘못 판단한 것인지 차분히 살펴보았다. 단순히 집중하라는 말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에게도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 다음에 바꿀 부분을 생각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정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도 방금 공을 놓치고 나니까 다음 공이 더 어렵게 느껴지더라고요. 잘 쳐야 한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몸에 힘이 들어갑니다.”

민호는 고개를 들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민호 씨는 그래도 저보다 잘 치시니까 조금만 더 연습하면 좋아지실 것 같습니다.”

민호는 그 말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자신이 조금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정호의 말에는 자신을 높이려는 뜻이 없었다. 그는 그저 상대의 장점을 보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정호 씨도 좋은 공을 치셨습니다. 아까 그 공은 저도 쉽게 못 칠 것 같습니다.”

정호는 멋쩍게 웃었다.

“그건 운이 좋았던 거죠.”

“운도 있었겠지만, 공을 보내려고 생각한 방향이 있었잖습니까. 그건 정호 씨가 선택한 겁니다.”

말을 하고 나서 민호는 잠시 멈췄다. 자신이 정호에게 건넨 말이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도 필요한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가 좋았다고 모든 것이 실력인 것은 아니고, 결과가 나빴다고 모든 선택이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시도했는지 살펴보는 일이었다.

경기는 끝까지 이어졌다. 민호가 승리했지만 큰 점수 차는 아니었다. 정호는 마지막까지 공을 신중하게 살폈다. 승부가 기울었다고 해서 대충 치거나 빨리 끝내려 하지 않았다.

경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서 인사했다.

“잘 쳤습니다.”

정호가 말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민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아까 제가 집중하라고 말씀드렸는데, 생각해 보니 너무 쉽게 한 말이었습니다. 저도 실수할 때마다 왜 안 되는지 모르겠어서 답답하거든요.”

정호는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저도 집중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됐습니다. 그래도 다음에는 조금 나아지겠죠.”

민호는 정호의 얼굴을 바라봤다. 정호는 패배를 받아들이면서도 기분이 상한 사람처럼 굴지 않았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그 때문에 경기를 포기하지도 않았다.

민호는 자신이 이겼다는 사실보다 정호가 끝까지 진지하게 경기를 치렀다는 점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태성이 다가와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제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더 긴장했습니다. 상대가 실수하면 안심하고, 점수 차가 줄어들면 조급해졌습니다.”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지요.”

“그런데 정호 씨는 제가 실수해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자기 공을 치려고 하더군요.”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어떤 마음으로 치는지는 우리가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자기 차례에 무엇을 할지는 스스로 정할 수 있겠지요.”

민호는 당구대를 바라봤다.

“저는 이기고 싶었습니다. 그게 잘못은 아니겠죠?”

“이기고 싶은 마음이 왜 잘못이겠습니까. 경기를 하는데 이기고 싶을 수 있지요. 다만 그 마음 때문에 상대가 진지하게 치는 것까지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그때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구는 승부였다. 점수를 내고 상대보다 먼저 목표에 도달해야 이길 수 있었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버리면 경기에 임하는 힘도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기려는 마음이 상대를 낮추거나 자기 실수를 감추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됐다.

민호는 아직 그 균형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오늘 정호와의 경기에서도 몇 번이나 자신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래도 그 마음을 알아차렸다는 것은 전과 다른 일이었다.

그는 정호가 큐를 정리하는 모습을 바라봤다. 정호는 자신이 이겼다고 해서 우쭐해하지도 않았고, 상대가 자신보다 조금 더 잘 친다고 해서 기죽지도 않았다. 당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적어도 오늘 경기에서는 자신의 공을 치기 위해 끝까지 노력했다.

민호는 자신이 당구를 배우면서 무엇을 얻고 싶은지 다시 생각했다. 실력을 키우고 싶었다. 좋은 공을 치고 싶었고, 언젠가는 재식과 대등한 경기를 하고 싶었다. 이길 수 있다면 당연히 기쁠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당구장에 오면 회사에서의 직급도, 승진 결과도 잠시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공을 치는 동안만큼은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평가받는지보다 지금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중요했다.

그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당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또 다른 경쟁만은 아닐 수 있었다.

민호는 큐를 제자리에 놓았다.

“정호 씨, 다음에 오시면 또 한 게임 하시죠.”

정호가 환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그때는 제가 이길지도 모르죠.”

“그럼 저도 열심히 연습해야겠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웃었다.

당구장을 나서는 민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오늘은 이겼다. 하지만 승리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이 있었다. 자신보다 부족한 상대를 만났을 때,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되는지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민호는 아직 이기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다만 다음 경기에서는 상대의 실수를 기다리기보다 자신의 공을 제대로 치는 데 더 집중하고 싶었다.

그것이 지금 민호가 배워야 할 다음 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