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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숲》 제1부 — 죽은 친구의 남자 제2화. 죽은 사람의 전화

von SEINE · 2026-10-20

새벽 두 시 십칠 분.

김준은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사람 믿지 마.

짧은 여섯 글자였다.

그런데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준은 이상하게도 유진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준아, 너는 사람을 너무 안 믿어.”

유진은 종종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세상에 좋은 사람 많아.”

“알아.”

“아니, 넌 몰라. 네가 누굴 좋아하는 걸 한 번도 못 봤거든.”

준은 그때마다 대답하지 않았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에게 자신의 일부를 맡기는 일이었다.

그리고 준은 무엇인가를 맡겼다가 잃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유진이 죽었다.

그리고 죽은 유진의 번호로 경고가 도착했다.

준은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준은 통화를 종료했다.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전원이 꺼져 있다는 안내가 나왔다.

그녀는 잠시 생각한 뒤 메시지 창을 열었다.

누구세요?

전송 표시가 떴다.

읽음 표시는 사라지지 않았다.

준은 휴대전화를 책상 위에 내려놓고 노트북을 켰다.

우선 메시지가 도착한 시각을 적었다.

오전 2시 17분.

발신 번호는 이유진의 번호.

첫 번째 전화는 받지 못했고, 두 번째 전화에서는 아무런 대답 없이 숨소리만 들렸다.

그리고 마지막 메시지.

그 사람 믿지 마.

준은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 사람.

누구를 말하는 걸까.

유진의 가족?

주변 친구?

아니면.

준은 장례식장에서 마주쳤던 남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강태신.

그녀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근거가 없었다.

유진이 남긴 말인지조차 확인되지 않은 메시지였다.

누군가 유진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준은 화면을 캡처하고 통화 기록을 따로 저장했다.

그다음 유진의 어머니에게 연락하려다가 손을 멈췄다.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딸을 잃은 어머니에게 지금 전화를 걸어 물을 수는 없었다.

준은 노트북 화면에 새 문서를 열었다.

제목을 적었다.

이유진 사망 관련 기록.

그리고 첫 줄에 이렇게 썼다.

확인된 사실과 추측을 구분할 것.

아침 일곱 시.

준은 한숨도 자지 못한 채 연구실로 향했다.

대학원 건물 복도는 조용했다.

자동판매기에서 따뜻한 커피를 뽑아 들고 연구실 문을 열자, 안쪽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김준.”

지도교수 한서윤이 고개를 들었다.

마흔 중반의 한서윤은 범죄심리학과 교수였다. 범죄자의 심리뿐 아니라 피해자 진술과 수사 면담을 오랫동안 연구해 온 사람이었다.

“오늘은 안 나와도 된다고 했잖아.”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없어서요.”

서윤은 준의 얼굴을 살폈다.

“잠은 잤니?”

“조금요.”

“거짓말.”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서윤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았다.

“유진 씨 일은 들었어. 장례식장에는 다녀왔니?”

“네.”

“많이 힘들겠다.”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준의 말에 서윤은 더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

“앉아.”

준은 의자에 앉았다.

서윤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나한테 할 말 있어?”

준은 망설였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냈다.

“교수님. 죽은 사람의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올 수도 있을까요?”

서윤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무슨 뜻이니?”

준은 어젯밤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전화가 두 번 걸려 왔고, 두 번째 통화에서는 숨소리만 들렸으며, 마지막으로 경고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사실까지.

서윤은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유진 씨 휴대전화가 지금 어디 있는지는 알아?”

“아니요.”

“그럼 먼저 그걸 확인해야겠네.”

“경찰이 가지고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단정하면 안 돼. 유족이 보관 중일 수도 있고.”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준아.”

“네.”

“이 메시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되기 전까지는, 그 문장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마.”

“알고 있어요.”

“누군가 일부러 너를 불안하게 만들려고 보냈을 수도 있으니까.”

준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았다.

불안.

그 단어가 낯설었다.

자신이 불안한 걸까.

아니면 단순히 궁금한 걸까.

그녀는 아직 두 감정을 구분하지 못했다.

오전 열 시 삼십 분.

준은 유진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지친 목소리가 들렸다.

“준이니?”

“네, 어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먹어야지. 사람은 살아 있으니까.”

준은 잠시 말을 잃었다.

“어머니,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응. 말해.”

“혹시 유진이 휴대전화는 지금 어디 있나요?”

상대방이 잠시 침묵했다.

“휴대전화?”

“네.”

“경찰에서 가져갔다고 들었는데…….”

준의 손끝이 멈췄다.

“경찰에서요?”

“응. 정확히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유진이 물건 중에 휴대전화가 없었어.”

“그렇군요.”

“왜 그러니?”

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사실을 말하면 어머니가 얼마나 놀랄지 예상할 수 있었다.

“유진이랑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다시 보고 있어서요.”

“그랬구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준아.”

“네.”

“유진이가 너한테 무슨 힘든 얘기 한 적 없니?”

준은 눈을 감았다.

어제 오후 열한 시 사십이 분.

나 너한테 할 말 있는데.

그 문장이 떠올랐다.

“특별한 얘기는 없었어요.”

“그래…….”

준은 그 대답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진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자신은 듣지 않았다.

내일 해.

그 짧은 대답이 자꾸만 떠올랐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준의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김준 씨 되십니까?”

“네.”

“서울○○경찰서 형사과입니다. 이유진 씨 사망 사건과 관련해서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준은 조용히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씀하세요.”

“고인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다고 들었습니다.”

“네. 오래 알고 지냈습니다.”

“혹시 최근 고인의 심리 상태나 주변 관계에서 달라진 점이 있었는지 여쭤보려고 합니다.”

“전화로 말씀드리면 되나요?”

“가능하면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참고인 신분이고요.”

준은 책상 위 달력을 확인했다.

“내일 오후는 가능합니다.”

“그럼 내일 두 시에 뵙겠습니다.”

준은 통화를 끝내려다가 문득 물었다.

“한 가지 확인해도 될까요?”

“네.”

“고인의 휴대전화는 현재 경찰에서 보관하고 있나요?”

형사가 잠시 침묵했다.

“그건 왜 물으시죠?”

“어젯밤 고인의 번호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길었다.

“연락이 왔다고요?”

“전화 두 통과 문자메시지입니다.”

“내용이 뭡니까?”

준은 잠시 망설였다.

“그 사람 믿지 마.”

형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준은 이어 말했다.

“발신 번호와 수신 시각은 기록해 뒀습니다.”

“김준 씨.”

형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그 메시지, 삭제하지 마세요.”

“네.”

“내일 오실 때 휴대전화도 가져오시고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준은 한동안 화면을 바라보았다.

형사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다.

단순한 장난 문자라면 그렇게 긴 침묵이 필요했을까.

하지만 그것 역시 추측이었다.

준은 메모장에 적었다.

경찰 반응의 의미는 확인되지 않음.

같은 시각.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강태신은 사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검토하고 있었다.

검은색 셔츠 위로 단정하게 걸친 재킷.

반듯한 자세.

책상 위에는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동료 검사 박현우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들어왔다.

“야, 너 어제 장례식장 다녀왔다며.”

“응.”

“괜찮냐?”

태신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뭐가.”

“여자친구 죽었잖아.”

태신은 펜을 내려놓았다.

“그렇지.”

“너 진짜 대단하다.”

“뭐가.”

“표정이 하나도 안 변하네.”

태신은 그제야 현우를 바라보았다.

“내가 여기서 울기라도 해야 해?”

“그런 뜻은 아니고.”

현우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냥 네가 너무 멀쩡해서.”

태신은 커피를 받아 들었다.

“사람은 죽을 수도 있지.”

너무 담담한 대답이었다.

현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무튼 경찰에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도 있겠다.”

“그러겠지.”

“귀찮겠네.”

태신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 정도야.”

현우가 나간 뒤 사무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태신은 서류를 넘겼다.

그러나 집중이 되지 않았다.

머릿속에 어젯밤 장례식장에서 본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짧은 검은 머리.

유난히 창백한 피부.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던 눈.

태신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이상한 일이었다.

유진과 사귀는 동안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그 여자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누구였을까.

유진의 친척인가.

친구인가.

그는 휴대전화를 꺼냈다.

유진과 주고받았던 대화창을 열었다.

대부분은 유진이 보낸 메시지였다.

사진.

일상 이야기.

사랑한다는 말.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

태신 씨, 오늘도 바빠요?

저녁은 먹었어요?

내일은 만날 수 있어요?

태신은 무심하게 화면을 넘겼다.

그러다 한 문장에서 손가락이 멈췄다.

오늘 준이 만나고 왔어요.

준.

태신은 그 이름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 아래에도 비슷한 메시지가 있었다.

준이가 오늘 내 그림 보고 좋다고 했어요.

준이는 진짜 신기한 애예요.

준이는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요.

태신은 그제야 유진이 종종 친구 이야기를 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때는 관심이 없어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젯밤 본 여자가 그 친구라는 증거는 없었다.

그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준.”

입안에서 짧은 이름이 굴러갔다.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오후 한 시 오십 분.

준은 경찰서 앞에 도착했다.

유리문 너머로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준은 가방 안에 휴대전화가 있는지 확인했다.

전날 밤 받은 메시지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사람 믿지 마.

준은 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유진이 정말 자신에게 경고하려 했던 거라면.

그 사람은 누구일까.

왜 이름을 적지 않았을까.

아니.

애초에 그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유진이 아닐 수도 있었다.

준은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그때 뒤쪽에서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준은 무심코 돌아보았다.

검은 세단 한 대가 길가에 정차해 있었다.

차에서 내린 남자는 익숙한 얼굴이었다.

강태신.

그는 누군가와 통화하며 경찰서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준은 걸음을 멈췄다.

태신도 그녀를 발견했다.

잠깐의 정적.

그가 먼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미소 지었다.

“어디서 뵌 것 같은데.”

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태신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장례식장이었죠?”

“네.”

“유진이 친구분이세요?”

“그렇습니다.”

태신의 미소가 조금 깊어졌다.

“그렇구나.”

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김준입니다.”

“김준.”

그가 이름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강태신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태신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저를요?”

“유진이한테 많이 들었어요.”

“좋은 이야기였으면 좋겠네요.”

준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건 잘 모르겠네요.”

순간 태신이 웃었다.

크게 웃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 재미있다는 듯한 짧은 웃음이었다.

“말씀이 재미있으시네요.”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닙니다.”

“알아요.”

태신은 조금 몸을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려 했다.

“그런데 김준 씨.”

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혹시 시간 되시면 조사 끝나고 커피라도 한잔하실래요?”

“아니요.”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태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쁘신가 보네요.”

“그것도 있지만.”

“하지만?”

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죽은 친구의 남자친구와 따로 만날 이유는 없어서요.”

바람이 불었다.

태신의 넥타이가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대답이 조금 늦었다.

“그렇군요.”

“그럼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준은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태신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작은 체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는 여자.

그는 입가에 남아 있던 미소를 천천히 지웠다.

이상했다.

자신의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유를 설명하거나, 미안해하거나, 적어도 조금은 망설였다.

김준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자신에게 관심이 없었다.

태신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가 하나 떠 있었다.

그는 잠시 그것을 바라보다가 경찰서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김준.”

다시 한번 이름을 불러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조금 다른 미소였다.

조사실 안.

준의 맞은편에 앉은 형사는 그녀가 제출한 문자메시지 화면을 확인하고 있었다.

“이게 어제 말씀하신 메시지군요.”

“네.”

“통화 중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고요?”

“숨소리만 들렸습니다.”

형사는 기록을 남겼다.

준은 그의 손끝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혹시 유진이 휴대전화는 확보하셨나요?”

형사가 펜을 멈췄다.

“그 부분은 수사 관련 사항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알겠습니다.”

준은 더 묻지 않았다.

형사는 잠시 그녀를 살폈다.

“김준 씨는 고인과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습니까?”

“오래된 친구였습니다.”

“최근에 자주 연락했나요?”

“거의 매일 통화했습니다.”

“마지막 통화는 언제였죠?”

“사망 전날 밤입니다.”

“그때 이상한 점은 없었습니까?”

준은 잠시 생각했다.

유진의 목소리.

평소보다 조금 낮았던 말투.

그리고 마지막 질문.

준아, 너는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어?

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평소와 다른 질문을 하나 했습니다.”

“무슨 질문이었죠?”

“사람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느냐고요.”

형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김준 씨는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준은 입술을 다물었다.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 자신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

형사는 잠시 기다렸다.

“괜찮습니다. 천천히 생각해 보세요.”

준은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형사의 책상 위 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네, 말씀하세요.”

짧은 침묵.

“지금요?”

형사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졌다.

“알겠습니다.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는 잠시 준을 바라보았다.

“김준 씨.”

“네.”

“혹시 어젯밤 이후에 그 번호로 다시 연락이 온 적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