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납품업자의 선물
von 외인 · 2026-10-19
노파의 이름은 베르타였다.
선대 공작부인의 시녀였고, 레티시아가 태어났을 때 젖을 먹이고 업어 키운 유모였다. 그녀는 레티시아의 두 손을 붙잡고 한참을 울었다. 쭈글쭈글한 손이 따뜻했다.
베르타: 아가씨가 아프시다는 소리만 들었지, 뵐 수가 있어야지요. 이렇게 걸어서, 이렇게 제 발로...
레티시아는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이 노인이 기억하는 아이는 그녀가 아니었다. 그 생각에 가슴 한쪽이 찔렸다. 그러나 손을 빼지는 않았다. 이 몸의 주인이라면 빼지 않았을 것이다.
레티시아: 베르타. 아까 그 노래, 다시 불러 줄 수 있어요?
베르타가 눈물을 닦으며 웃었다.
베르타: 아가씨가 잠투정할 때마다 불러 드리던 거예요. 기억하세요?
레티시아: 몸이 기억하네요.
거짓말이 아니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금방 소개를 받았다.
다리 한쪽이 없는 노인은 오토 경. 선대 공작의 호위기사였고, 하르칸과의 전투에서 공작을 지키다 다리를 잃었다. 등 굽은 노인은 얀. 선대 공작의 마부로 오십 년을 일했다. 침대에 누운 사람은 선대 마님의 재봉사였던 할멈이었다. 요즘 기침이 심해 누워만 있다고 했다.
넷 다 가족이 없었다. 평생 이 집에서 일했고, 늙어서 갈 곳이 없었다.
오토: 선대 각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약속하셨지요.
오토 경이 카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사다운 목소리였다.
오토: 벨하르트를 위해 몸 바친 자는, 죽을 때까지 벨하르트가 돌본다. 그래서 그레고르가 우리를 여기 들였소. 다달이 연금도 가져다주고, 마르타가 남는 음식도 보내 주고.
레티시아: 연금이요?
오토: 각하께서 보내 주시는 거라 들었소. 고마운 일이지.
레티시아는 머릿속 장부를 펼쳤다.
별관 관리비에는 장작과 양초와 세탁비가 있었다. 식비도 연금도 없었다. 넷이나 되는 사람의 연금이, 이 집 장부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 돈은 어디서 오는가.
다음 날, 레티시아는 장부를 처음부터 다시 봤다. 이번에는 한 해 치가 아니라 십 년 치였다. 그레고르는 말없이 상자를 날라 왔다. 별관에 다녀온 일을 알고 있는지, 그의 얼굴로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품목 대신 값을 봤다.
밀가루는 십 년 동안 한 덩이에 동전 몇 닢이 올랐다. 장작도 비슷했다. 세상 물가가 그 정도로 올랐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양초는 삼 할이 올라 있었다. 포도주도, 세탁비도. 그리고 이 셋은 십 년 전 같은 해에, 한꺼번에 뛰었다.
선대 공작이 죽은 해였다.
레티시아는 니나를 불렀다.
레티시아: 니나야. 양초 장수, 포도주 장수, 세탁소. 이 집에 들어오는 납품업자들이 집사님한테 뭘 가져온다는 얘기 들어 본 적 있니?
니나는 대답하기 전에 문 쪽부터 돌아봤다. 그게 대답이었다.
니나: ...명절마다 선물을 가져온다는 얘기는 있어요. 하인들끼리 하는 말이에요. 집사님이 받으시는 걸 본 사람도 있대요.
레티시아: 넌?
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니나: 한 번이요. 작년 가을에. 양초 장수가 하인 출입문에서 집사님께 봉투를 드렸어요. 집사님은 그걸 안주머니에 넣으셨고요.
동대문에서는 그걸 '뒷돈'이라고 불렀다. 납품 단가를 올려 받고, 그 일부를 구매 담당에게 돌려준다. 장부에는 비싼 양초값만 남는다. 아무도 훔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집의 돈은 새어 나간다.
그 구매 담당이 그레고르였다.
레티시아는 장부 위에 손을 얹었다. 반듯하고 작은 글씨들. 한 줄도 틀어지지 않은 글씨들.
이 사람이 칠 년 동안 얼음을 재 보지 않은 건, 정말 몰라서였을까.
레티시아: 양초는 언제 들어오니?
니나: 내일 오후요. 보름에 한 번이에요.
다음 날 오후, 니나는 빨랫감을 안고 하인 출입문 근처를 서성였다. 레티시아는 2층 복도 창가에 섰다. 거기서 출입문이 내려다보였다.
양초 장수의 수레가 들어왔다. 하인들이 상자를 내렸다. 그레고르가 나와 수량을 셌다. 계산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양초 장수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더니,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레고르는 그것을 받았다. 망설임 없이. 그리고 연미복 안주머니에 넣었다.
레티시아는 창가에서 물러났다.
손이 차가웠다. 화분 흙을 만졌을 때와 같은 차가움이었다. 그때는 모르는 사람이 상대였다. 이번에는 그녀에게 지팡이를 건네준 사람이었다. 정원 다섯 시 반을 비워 두겠다고 한 사람이었다.
장사하면서 제일 아픈 건 모르는 사람에게 사기당할 때가 아니다. 믿기 시작한 사람이 장부를 속일 때다.
그런데 이상했다.
십 년 전, 선대 공작이 죽은 해. 납품 단가가 한꺼번에 뛴 해. 그리고 늙은이 넷이 별관에 들어온 해.
같은 해였다.
그날 밤, 레티시아는 다시 별관에 갔다. 이번에는 혼자였다.
베르타가 반갑게 맞았다. 오토 경은 카드를 한 판 하자고 했고, 얀은 마부 시절 이야기를 꺼냈다. 레티시아는 벽난로 옆 의자에 앉아 이야기를 들으며 기다렸다.
베르타: 오늘이 그 날이에요.
베르타가 뜨개바늘을 움직이며 말했다.
베르타: 보름날이요. 그레고르가 연금을 가져오는 날.
레티시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열 시가 조금 넘어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규칙적이고, 조용하고, 서두르지 않는 발소리. 그 발소리가 복도를 걸어와 방문 앞에서 멈췄다.
문이 열렸다.
그레고르가 서 있었다. 한 손에는 마르타의 수프 냄새가 나는 바구니를, 다른 한 손에는 봉투를 들고 있었다. 오후에 양초 장수에게 받은 바로 그 봉투였다. 봉인도 뜯지 않은 채였다.
그의 시선이 벽난로 옆에 앉은 레티시아에게 닿았다.
사십 년 동안 한 번도 무너진 적 없다는 그 얼굴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그레고르: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