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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니나의 영수증

von 외인 · 2026-10-17

잔이 쟁반 위에서 계속 달그락거렸다.

레티시아는 사발을 창턱에 내려놓았다. 숨기지 않았다. 이미 늦었고, 여기서 숨기는 것은 더 나쁜 선택이었다.

레티시아: 니나야. 문 닫고 들어와.

니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레티시아: 괜찮아. 혼내려는 거 아니야.

그제야 니나가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쟁반을 탁자에 내려놓는 손이 아직 떨렸다. 레티시아는 침대 끝에 앉아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니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엉덩이를 반쯤만 걸쳤다. 하녀가 아가씨 침대에 앉는 건 이 집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레티시아는 잠깐 생각했다. 얼마나 말해야 하나.

동대문에서 사람을 쓰며 배운 것이 있었다. 반만 알려 주고 부리면, 그 사람은 반만 일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모르는 반쪽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 믿을 거면 끝까지 믿어야 했다.

이 아이는 일 년 동안 아무도 고맙다고 하지 않는 꽃에 물을 줬다. 믿기에는 충분했다.

레티시아: 기록지 가져와 볼래?

니나가 가져온 기록지를, 레티시아는 두 사람 무릎 사이에 펼쳤다.

레티시아: 여기 약 칸 있지? 이레 동안 네가 적은 거.

니나: 네...

레티시아: 이 중에서 내가 실제로 마신 건 여기랑 여기, 그리고 여기야. 나머지는 전부 저 화분에 부었어.

니나의 눈이 커졌다. 레티시아는 손가락으로 숫자를 짚어 나갔다.

레티시아: 이제 그 옆 칸을 봐. 마신 날 오후는 몇 걸음이야?

니나: ...스물여섯이요. 그리고 스물둘.

레티시아: 부은 날은?

니나의 손가락이 칸을 따라 내려갔다. 일흔. 예순여덟. 일흔넷. 계단 한 층.

니나의 입술이 벌어졌다. 그 숫자를 적은 것은 니나 자신이었다. 혀끝을 내밀고, 율리안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적은 숫자였다.

레티시아: 니나야. 네 글씨 믿니?

니나: ...네.

레티시아: 나도 믿어. 그래서 너한테 보여 주는 거야.

니나는 한참 동안 기록지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니나: 그럼 약이... 아가씨를...

레티시아: 아직 몰라.

레티시아는 고개를 저었다.

레티시아: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어. 약을 마시면 몸이 무거워지고, 안 마시면 가벼워진다. 그리고 그 약을 부은 꽃이 죽어 간다. 지금 아는 건 그게 다야.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도 니나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니나가 무언가를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다시 열었다가, 또 다물었다. 레티시아는 기다렸다. 손님이 지갑을 열지 말지 고민할 때처럼, 재촉하지 않고.

니나: ...예전 아가씨가요.

마침내 니나가 입을 열었다.

니나: 약 드시기 싫다고 사발을 던지신 적이 있어요. 여러 번요. 마시면 머릿속에 안개가 낀다고. 아무 생각도 안 난다고.

레티시아의 손이 기록지 위에서 멈췄다.

니나: 그러면 마님이 우셨어요. 아가씨가 낫기 싫어하신다고. 그러면 드라벨 선생님이 오셔서, 아가씨가 예민해지신 건 기운이 더 약해져서라고... 양을 늘리셨어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머릿속의 안개. 오늘 아침 걷히고 나서야 그런 게 있었다는 걸 안, 그 뿌연 것.

그 아이는 알았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걸 증명할 방법도, 들어 줄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사발을 던졌고, 던질수록 까칠한 아가씨가 되었고, 까칠해질수록 양이 늘었다.

레티시아는 눈을 감았다. 얼굴도 모르는 열일곱 살 소녀에게, 처음으로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니나: 공작님께 말씀드려요. 지금 당장요.

니나가 벌떡 일어섰다. 레티시아는 그 손목을 잡았다.

레티시아: 가서 뭐라고 할 건데?

니나: 약이 이상하다고요. 꽃이 죽었다고요.

레티시아: 그럼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겠지. 꽃은 사람이 아니다. 약을 몰래 버린 아가씨가 잠깐 기운이 난 건, 촛불이 꺼지기 전에 확 밝아지는 거다. 그리고 어머니는 또 우시겠지.

니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레티시아: 장사에서 고발은 한 번이야. 두 번은 없어. 첫 번째에 못 끝내면, 상대는 그다음부터 숨기거든. 한 번에 끝낼 증거가 있어야 해.

니나: ...장사요?

레티시아: 말이 그렇다는 거야.

레티시아는 니나를 다시 앉혔다.

레티시아: 니나야. 이 약은 어디서 와?

니나: 드라벨 선생님 조수가 가져와요. 매주 한 번, 하인 출입문으로요. 봉인한 병에 담아서요.

레티시아: 누가 받니?

니나: 제가요. 아가씨 방에 들어가는 거니까요. 받아서 주방에 갖다주면 마르타 아주머니가 데워 주시고...

레티시아: 돈은?

니나: 조수가 병이랑 같이 계산서를 줘요. 그걸 출납실에 갖다 드리면, 그레고르 집사님이 확인하시고 돈을 내주세요.

레티시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레티시아: 그 계산서, 읽어 본 적 있니?

니나: ...숫자는 읽을 줄 아는데요. 감히 그런 걸 어떻게...

레티시아: 다음 배달이 언제야?

니나: 내일이요.

레티시아는 니나의 손을 잡았다. 작고, 거칠고, 물 냄새가 나는 손이었다.

레티시아: 내일은 출납실에 가기 전에 나한테 먼저 가져와 줄래? 보기만 하고 바로 돌려줄게. 누가 물으면 아가씨가 약값이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했다고 해. 그건 거짓말이 아니니까.

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하녀가 출납실 서류에 손을 대는 일이었다. 들키면 쫓겨나도 할 말이 없었다.

레티시아는 그걸 알았다. 그래서 강요하지 않았다.

레티시아: 싫으면 안 해도 돼. 다른 방법을 찾을게.

니나: ...아니요.

니나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는 여전히 빨갰지만, 눈빛은 달라져 있었다.

니나: 아가씨 다리 때문이라면요. 할게요.

다음 날은 길었다.

레티시아는 새벽 훈련에서 계단 한 층 반을 올랐다. 율리안은 감격해서 구령을 두 번 틀렸다. 점심에는 공작부인 앞에서 약을 마셔야 했고, 오후 훈련은 짧게 끝났다. 그 모든 시간 동안 그녀의 머릿속에는 하인 출입문만 있었다.

해 질 녘이 다 되어서야 니나가 돌아왔다.

니나는 문을 닫자마자 앞치마 주머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손바닥에 땀이 배어 종이 귀퉁이가 눅눅했다.

니나: 조수가 오늘은 좀 늦게 왔어요. 출납실은 해 지기 전에 닫으니까, 얼른...

레티시아는 종이를 받아 펼쳤다.

두껍고 질 좋은 종이였다. 윗단에 붉은 밀랍 인장이 찍혀 있었다. 약재상의 문장이었다. 레티시아는 그 모양을 눈에 새겼다.

그 아래, 단정한 글씨로 품목이 적혀 있었다.

강장 탕약 원액, 일곱 병.

특제 감미 시럽, 세 병.

왕진 및 조제료.

그리고 맨 아래, 합계.

금화 열 닢, 은화 넷.

레티시아는 그 숫자를 오래 봤다. 이 세계의 물가를 그녀는 아직 잘 몰랐다. 그래서 물었다.

레티시아: 니나야. 너 일 년 급료가 얼마니?

니나: 네? 저요? 금화 두 닢이요. 먹고 자는 건 따로 해 주시고요.

레티시아: 하인들은 다 비슷하니?

니나: 주방 견습이나 마구간 아이들은 그보다 적고, 시종들은 조금 더 받아요. 그래도 대개 두 닢쯤이요.

레티시아는 머릿속에서 주판을 튕겼다.

한 주에 금화 열 닢 남짓. 한 달이면 마흔 닢이 넘는다. 하인 한 사람의 일 년 급료가 두 닢.

한 달 약값이, 하인 스무 명의 일 년 급료였다.

레티시아: ...니나야.

레티시아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니나는 그 목소리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레티시아의 손에 들린 종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숫자를 읽었다. 니나는 숫자를 읽을 줄 알았다.

니나의 입술이 떨렸다.

니나: 작년 겨울에요.

레티시아: 응.

니나: 하인이 다섯 명 나갔어요. 살림이 어려워서 사람을 줄여야 한다고요. 그중에 제 사촌 언니도 있었어요. 마구간 일 하던 오빠도요. 다들... 다들 고향에 돈 보내던 사람들이었는데.

니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끝까지 애썼다. 그러다 결국 앞치마 자락으로 눈가를 눌렀다.

레티시아는 그 등을 쓸어 주었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 계산서를 다시 봤다.

특제 감미 시럽, 세 병.

쓴 약을 달게 하려고 시럽을 탄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럽이 왜 따로, 세 병씩, 이렇게 비싼 값에 들어오는가. 쓰고, 그 뒤에 달큰한 맛. 흙을 끈적하게 굳힌 그 무언가.

이 계산서에서 제일 수상한 줄은 탕약이 아니었다. 단맛이었다.

레티시아는 니나의 기록지 뒷면에 계산서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품목, 수량, 금액. 인장의 모양까지 대강 그려 넣었다. 그리고 원본을 니나에게 돌려주었다.

레티시아: 얼른 가. 출납실 닫기 전에.

니나가 계산서를 품에 넣고 뛰어나갔다.

레티시아는 혼자 남아 옮겨 적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영수증 한 장. 이것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드라벨은 왕도 최고의 의원이고, 좋은 약은 원래 비싸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공작은 딸의 약값을 아까워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한 장이 아니라 전부였다. 이 약값이 이 집 살림에서 얼마를 차지하는지. 그 돈이 어디에서 빠져나와 이리로 흘러가는지. 하인 다섯이 나간 그 겨울, 이 집의 장부에는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

장부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집의 장부를 쥐고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니나는 생각보다 늦게 돌아왔다.

문을 열고 들어온 니나의 얼굴이 이상했다. 겁에 질린 것도, 안도한 것도 아닌 얼굴이었다.

니나: 늦지 않게 갖다 드렸어요. 그런데요, 아가씨.

레티시아: 응.

니나: 그레고르 집사님이 계산서를 받으시더니, 한참 들여다보셨어요. 접힌 자국을요.

레티시아의 손이 멈췄다. 조수가 접어 온 대로가 아니라, 니나의 앞치마 주머니에 맞게 한 번 더 접힌 자국. 사십 년 동안 이 집의 종이를 만져 온 사람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니나: 그러시더니 물으셨어요. 아가씨께서 이걸 보셨느냐고.

레티시아: 그래서?

니나: 아가씨가 약값이 얼마나 하는지 궁금해하셨다고 했어요. 시키신 대로요.

니나가 침을 삼켰다.

니나: 그랬더니 집사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시고, 계산서를 서랍에 넣으시더니요. 내일 아침 훈련이 끝나면, 아가씨를 잠깐 뵙고 싶다고 하셨어요.

레티시아는 창가의 화분을 봤다. 누렇게 마른 잎 사이로, 아직 지지 않은 흰 꽃 한 송이가 남아 있었다.

잘됐다. 어차피 찾아갈 생각이었다.

장부를 쥔 사람이, 먼저 자리를 깔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