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
von 이익상 · 2026-03-20
성호는 잠에서 깼다. 전등불은 힘없이 켜져 있었고, 창문 너머로는 밝은 빛이 비치고 있었다. 분명 날이 밝은 것이었다. 곁에서 자던 아내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네 살 된 아들 문환이 아내의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전구의 심지는 누렇게 물들어 있었고, 그 빛은 하룻밤을 밝혀주기에는 너무 약해 보였다.
그럼에도 성호는 전등을 한참 바라보며 눈이 부시게 느껴졌다.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빚쟁이, 원고지, 사진, 활자, 전차, 먼지, 윤전기, 시, 소설, 감상문, 활동사진 등등. 그는 아내가 누웠던 자리까지 차지하며 몸을 뒤척이며 기지개를 켰다. 팔이 곁에 누워 있던 문환의 머리를 살짝 건드렸다. 그 순간, 가늘게 비치던 전등이 꺼져버렸다. 방 안은 파랗게 변한 듯했다. 붉은빛으로 물들었던 방이 파란빛으로 덧칠해진 것 같았다. 창문으로 흰 광선이 스며들었다.
성호의 눈에서도 새로운 기운이 솟아났다. 그는 손으로 눈을 비비고 크게 하품을 했다. 그 소리에 문환이 두 눈을 번쩍 뜨며 일어났다. 두 주먹으로 눈을 비비며 부스스하게 일어나더니, 사방을 한참 바라보다가 엄마를 부르며 “응아!”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성호는 중얼거렸다. “이제 잠은 다 잤군. 또 울기 시작하니….” 벌떡 일어나 이불로 얼굴을 가리고 어린 아들을 달래주었다.
“울지 마라! 착한 아이는 안 우는 법이야!” 성호의 달래는 그리 부드럽지 않았다. 나무라는 듯한 어조였다.
문환은 성호의 말을 듣지 않은 듯 울며 엄마만 부르짖었다. 성호는 화가 났다. “네 살이나 처먹고 울기는 왜 울어? 아침마다 꼭 지랄을 부려….” 그의 말소리와 문환의 울음소리에 부엌에서 밥을 짓던 아내가 물기를 씻고 방으로 들어왔다.
“오오! 내 새끼! 왜 울어? 착한 아이는 안 우는 법이야!” 아내는 문환을 안아 올리며 달래주었다.
문환은 두 발이 방바닥에 대롱대롱 매달리며 “엄마! 과자!” 하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아내는 문환에게 옷을 갈아입히며 말했다. “안 울면 과자 줄게! 착한 아이는 자고 일어날 때 안 운단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께 인사도 해야지, 응…?”
하지만 문환은 여전히 칭얼거렸다. 아내는 책상 위에 놓인 양철통에서 비스켓을 한 줌 꺼내 문환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 순간 문환의 눈은 새별처럼 반짝였고, 입은 함박꽃처럼 활짝 피었다. 아내는 문환을 달래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문환은 어머니의 치마자락을 잡고 따라갔다. 성호는 이제야 눈을 비비고 일어난 아들에게 과자를 주는 것이 마땅치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어린 문환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반드시 과자를 손에 쥐어야 한다는 것이 버릇이 되어버렸다. 최근에는 자고 일어나면 과자를 받을 것이라 믿고, 어머니가 과자를 줄 것이라 당연하게 여겼다. 성호는 이런 습관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입 밖에 내어 말한 적은 없었다. 다행히 과자를 주고도 별탈이 없었던 것이 성호의 간섭을 막아버렸다.
오늘도 성호는 마음속으로 불길한 생각을 하며 아내와 아이가 나간 뒤 방 안의 고요함을 느꼈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곁방에서는 아내가 아이와 함께 밥상을 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성호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생각했다.
“아침밥을 어떻게 짓게 되나?” 아침밥을 짓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문득 “아이 참, 오늘이 그믐날이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가슴이 답답해지는 듯했다.
그는 자신이 다니는 신문사에서 월급을 두 달이나 받지 못했다. 월급이 제때 나올 때에도, 그 돈으로는 세 식구의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집세, 쌀값, 반찬값, 신문 대금, 전기세, 수도세 등 모든 것을 제하고 나면 매달 이십여 원이 부족했다.
부족한 돈은 시골에 있는 친구에게 구걸하거나 다른 신문사에서 받는 원고료로 겨우 보충해왔다. 월급이 두 달이나 밀리니 그의 생활은 말할 수 없는 궁지에 이르렀다. 그들이 밥을 먹는 것은, 즉 욕을 먹는 것이었다.
“막이란 놈은 꿈을 먹고 산다 하더니, 우리는 욕을 먹고 사는 셈이야!” 성호는 아내에게 면목이 없을 때마다 이런 우스운 말을 하곤 했다. 집세를 내지 못한 것은 그들에게 큰 걱정이 아니었다. 쌀가게, 반찬 가게, 두부장수와의 거래가 모두 막혔다. 이런 자질구레한 빚이 두 달 동안 쌓여 오늘, 내일 밀려왔다.
어떤 때는 “내일 주지.” 하는 말을 아무런 대책 없이 내놓기도 했다. 성호는 이런 대답이 자신의 양심 속에 숨어 있다가 나오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성호는 오늘, 내일 미뤄온 실신을 한 번 해보려고 그믐날로 날짜를 늦추어 잡았다.
그것은 월급이 아무리 늦어도 이십칠, 팔 일이면 넉넉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믐날로 미룰 때 여러 사람이 “정말 되겠냐?”고 물었지만, 그는 꼭 된다고 장담했다. 그러나 사흘 전에 되어야 할 월급이 그믐이 되어도 아직 오지 않았다. 성호는 이런 생각을 반복하며 오늘을 어떻게 무사히 넘길까 고민했다. 지폐 뭉치를 손에 쥐기 전까지는 아무런 방법이 막연하게 느껴졌다.
혼자라면 신문사로 가서 조금의 창피를 피할 수 있었겠지만, 아내에게 혼자서 그런 창피를 당하게 하는 것은 너무나 염치없는 일이었다. 성호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