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음악의 신
연재작가
음악의 신
@musicart작가 '음악의 신' 블로그 예요
작품
3
완결
0
최근
03-25
팔로워
1

음악의 신

@musicart · 팔로워 1
AI가 쓴 이야기,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AI가 쓴 이야기,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2026-10-20

5



들어가며: 생각보다 훨씬 깊이 들어와 있다

AI로 글을 쓰고, AI로 게임을 만드는 일은 더 이상 실험실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쓰고 있는지 정확한 통계는 없다. 다만 단언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우리가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가지 숫자가 그 짐작에 힘을 실어 준다. 2026년 초 GDC가 게임업계 종사자 2,3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업무에 생성형 AI를 직접 쓴다는 응답은 36%였고 자기 회사가 쓰고 있다는 응답은 52%에 달했다. 스팀에서는 생성형 AI 사용을 밝힌 게임이 2024년 한 해 약 1,000개에서 2025년 상반기에만 약 8,000개로 늘었다. 한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신작 가운데 AI 사용을 공개한 비율은 30%를 넘는다.

소설도 다르지 않다. 북버브(BookBub)가 작가 1,200여 명에게 물었을 때 45%가 이미 작업에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고 답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5 웹툰산업 실태조사에서 웹툰 업체의 생성형 AI 활용 경험이 48% 수준으로 나타났다.

중요한 것은 이 숫자들이 모두 '스스로 밝힌' 수치라는 점이다. 스팀의 공개는 개발자의 자율 신고에 기대고 있고, 북버브 조사에서는 AI를 쓰는 작가의 약 80%가 그 사실을 독자에게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국내 웹소설 플랫폼 역시 공모전 등에서 AI 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이를 가려낼 검수 체계는 아직 없다. 드러난 것이 이 정도라면, 드러나지 않은 쪽은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림1. GDC 2026 에서 게임업계 종사자의 36%가 업무에 생성형 AI를 쓰고 있다고 답함, 작가 45%, 사용자80%가 이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답함. https://gdconf.com/article/gdc-2026-state-of-the-game-industry-reveals-impact-of-layoffs-generative-ai-and-more/]




두 갈래의 거부감

AI 창작물에 대한 거부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이 거부감을 하나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독자(사용자)가 느끼는 거부감과, AI를 쓰지 않는 작가나 개발자가 느끼는 거부감은 뿌리가 다르다.

독자의 거부감: 내 감정을 누가 움직였는가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맡기는 일이다. 웃고, 울고, 분노하고, 설레는 그 모든 감정의 반대편에 '사람'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마음을 연다. 그런데 그 반대편에 사람이 아니라 확률 계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독자는 자신의 감정이 조종당했다고 느낀다.

유고브(YouGov)가 미국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읽은 책이 AI가 쓴 것임을 알게 되면 만족감이 떨어질 것이라는 응답이 61%였다. 국내 웹소설 판에서는 AI 특유의 말투나 실수로 남겨진 프롬프트 흔적이 드러난 작품이 별점 테러를 받고 연재를 접는 일이 잇따랐다. 독자들이 쏟아낸 감정의 핵심은 창작이 아니라 데이터의 조합에 돈을 냈다는 배신감이었다.

창작자의 거부감: 내 생계를 누가 가져가는가

창작자의 거부감은 성격이 다르다. 그것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AI가 쓰는 만큼 내 일이 줄고, 내 일이 주는 만큼 내 수입이 준다.

GDC 조사에서 생성형 AI가 게임업계에 해롭다고 답한 비율은 2024년 18%, 2025년 30%를 거쳐 2026년 52%까지 치솟았다. 긍정적이라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에서는 소설가의 절반 가까이가 AI가 자신의 일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고 우려했고, 실제로 AI 때문에 수입이 줄었다는 작가도 많았다. 고담 고스트라이터스의 조사에서는 AI를 쓰지 않는 소설가 전원이 자신의 작품을 AI 학습에 쓰는 것은 부당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독자는 '감정의 진정성'을, 창작자는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 한다. 같은 반대처럼 보여도, 무엇을 지키려는지가 다르기 때문에 해법도 달라야 한다.


[그림2. zIVA의 3개년 분석 페이지 - https://ziva.sh/blogs/gdc-2026-generative-ai-game-development-data]

노래와 영화는 끄는데, 소설은?

고백하자면 나 역시 AI로 만든 노래나 영화, 만화는 꺼 버린다. 어색해서 싫다. 목소리의 미묘한 떨림, 표정의 어긋남, 선의 묘한 뭉개짐 같은 것들이 즉각 감각에 걸린다. 사람과 거의 같지만 어딘가 다른 대상에서 느끼는 불쾌감, 이른바 '불쾌한 골짜기'가 귀와 눈을 통해 바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과 게임은 이야기가 다르다. 소설은 감각이 아니라 의미로 전달된다. 문장을 읽는 순간 그것은 독자의 머릿속에서 다시 그려진다. 글에서는 '어색함'이 소리나 그림만큼 즉각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도 웹툰은 그림체로 AI 사용이 어느 정도 드러나지만, 웹소설은 텍스트라서 가려낼 방법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물론 소설에서도 어색함을 포착하면 나는 책을 덮을 것이다. 반복되는 표현, 맥락 없이 매끈하기만 한 문장, 인물의 감정이 설명으로만 남는 장면. 이런 것이 눈에 걸리면 몰입은 깨진다.

그런데 포착하지 못한다면? 그러면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게임이라면 엔딩까지 즐겁게 플레이할 것이다. 실제로 스탠퍼드 연구진이 소설가들과 진행한 실험에서, 독자들은 사람이 쓴 글과 AI의 도움을 받은 글 사이에서 뚜렷한 선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그림3. 파이낸셜뉴스(뉴시스) 「"AI 활용" 고백한 인기 웹소설 작가, 오히려 동정 받은 이유」https://www.fnnews.com/news/202506121007394905]

네 개의 층위: 어디까지 거부해야 할까

논의를 소설로 좁혀 보자. AI가 소설 창작에 개입하는 방식은 대략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AI가 스토리를 짜고 글을 쓴다.

  2. 내가 스토리를 짜고, AI가 글을 쓴다.

  3. 내가 글을 쓰고, AI가 문장을 검수한다.

  4. 나와 AI가 협의하면서 글을 만든다.

이 네 가지를 가르는 기준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야기의 주인이 누구인가', 다른 하나는 '문장의 주인이 누구인가'다.

1번은 이야기도 문장도 AI의 것이다. 사람은 버튼을 누르고 결과를 고를 뿐이다. 여기서 '작가'라는 말을 쓰기는 어렵다. 독자의 거부감도, 창작자의 우려도 가장 정당하게 성립하는 영역이다.

2번은 이야기는 사람의 것이지만 문장은 AI의 것이다. 낯선 구조 같지만 사실 역사가 길다. 알렉상드르 뒤마는 조수들과 함께 방대한 작품을 쏟아냈고, 오늘날 웹툰 스튜디오도 기획과 작화를 분업한다. 다만 소설에서 문장은 곧 작가의 목소리다. 문장을 통째로 넘긴다면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독자에게 밝히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다.

3번은 이야기도 문장도 사람의 것이고, AI는 교정자의 자리에 선다. 맞춤법 검사기와 편집자가 해 온 일을 AI가 대신하는 것에 가깝다. 고담 고스트라이터스 조사에서도 소설가들이 AI를 가장 많이 쓰는 용도는 아이디어 구상, 자료 검색, 적절한 단어 찾기였고, 본문 생성에 쓴다는 비율은 11%에 그쳤다. 게임업계도 비슷해서, AI를 쓰는 개발자의 81%가 리서치와 브레인스토밍에 쓰는 반면 플레이어가 직접 보는 콘텐츠에 쓰는 비율은 5%에 불과했다. 창작자 대다수가 원하는 것은 AI 대필 작가가 아니라 AI 조수인 셈이다.

4번은 가장 넓고 가장 모호하다. 협의의 정도에 따라 3번에 가까울 수도, 2번에 가까울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최종 판단을 누가 내리느냐다. 어떤 장면을 넣고 뺄지,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 문장이 내 목소리인지 아닌지를 사람이 결정한다면, 그 이야기의 주인은 여전히 사람이다.

[그림4. 이야기와 문장, 누가 쥐느냐로 네 층위가 갈린다. 가로: 문장을 쓰는 쪽, 세로:이야기를 짜는 쪽]

기준은 '얼마나'보다 '정직하게'

선이 사람마다 다르다면, 우리가 공동으로 지켜야 할 것은 하나다.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즉 정직이다.

독자에게는 자신의 취향대로 고를 권리가 있다. 그 권리는 정보가 있을 때만 행사할 수 있다. 스팀은 이미 개발자에게 AI 사용 여부를 표시하게 하고 있고, 앞서 본 웹소설 작가의 사례처럼 스스로 밝힌 사용은 오히려 신뢰가 되기도 한다. 반대로 숨겼다가 들킨 사용은, 그것이 아무리 작은 도움이었더라도 배신으로 받아들여진다.

창작자에게도 정직은 무기다. AI를 쓰지 않는 작가는 그 사실을 가치로 내세울 수 있고, AI를 쓰는 작가는 어디까지 썼는지를 밝힘으로써 자신의 몫을 증명할 수 있다. 모두가 몰래 쓰는 시장에서는 정직한 사람만 손해를 본다. 모두가 밝히는 시장에서는 각자의 선택이 존중받는다.

맺으며: 판단은 여전히 우리의 몫이다

AI를 여전히 거부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가. 받아들인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이 질문에 정답은 없다. 어색해서 덮는 것도, 알고 나서 덮는 것도, 알면서도 끝까지 읽는 것도 모두 각자의 선택이다. 다만 그 선택은 남이 대신해 줄 수 없다. 플랫폼도, 업계도, 그리고 무엇보다 AI 자신도 대신해 줄 수 없다.

AI는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이야기를 엮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사람의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AI가 할 수 없다. 그것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이야기를 쓰고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참고 자료

AI창작
AI소설
생성형AI
웹소설
AI와창작자
AI게임개발
AI글쓰기
창작윤리
AI공개의무
작가의미래
독자와작가
웹소설작가
소설쓰기
인디게임
게임개발
챗GPT글쓰기
AI시대
AI가 쓴 이야기,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가 | WEINOV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