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파
von Ryūnosuke Akutagawa
하지만 유리 회사 사장 게엘이 붙임성 좋은 갓파였던 건 틀림없어요.
저는 자주 게엘과 함께 게엘이 속한 클럽에 가서 즐거운 밤을 보냈어요. 하나는 그 클럽이 토크가 속한 초인 클럽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게엘의 이야기는 철학자 마그의 이야기처럼 깊이는 없었을지 몰라도, 제게 전혀 새로운 세계를, ―넓은 세계를 엿보게 해 주었어요. 게엘은 늘 순금 숟가락으로 커피 잔을 휘저으며 쾌활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했죠.
어느 안개 짙은 밤이었어요. 저는 겨울 장미를 꽂은 꽃병을 사이에 두고 게엘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방 전체는 물론이고 의자와 탁자까지 하얀 바탕에 가는 금테를 두른, 분리파풍 방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게엘은 여느 때보다 의기양양하게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마침 그 무렵 천하를 쥐고 있던 Quorax당 내각 이야기 같은 걸 했어요.
쿠오락스라는 말은 그냥 뜻 없는 감탄사라서 ‘어라’ 정도로나 옮길 수밖에 없어요. 아무튼 무엇보다 먼저 ‘갓파 전체의 이익’을 내세우던 정당이었죠.
게엘: 쿠오락스당을 지배하는 건 이름난 정치가 롯페예요. ‘정직은 최선의 외교다’라는 건 비스마르크가 한 말이지요. 하지만 롯페는 정직을 나라 안 정치에까지 펼치고 있답니다…….
나: 하지만 롯페의 연설은…….
게엘: 자, 제 말을 들어 보세요. 그 연설은 물론 죄다 거짓말이에요. 하지만 거짓말이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으니, 결국 정직한 것과 다를 바 없지요. 그걸 무턱대고 거짓말이라고 하는 건 당신네만의 편견이에요.
게엘: 우리 갓파는 당신네처럼…….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좋아요. 제가 하고 싶은 건 롯페 이야기예요. 롯페는 쿠오락스당을 지배하고, 그 롯페를 지배하는 건 Pou-Fou 신문 사장 쿠이쿠이예요.
(이 ‘푸후’라는 말도 역시 뜻 없는 감탄사예요. 굳이 옮기자면 ‘아아’라고나 할 수밖에 없죠.)
게엘: 하지만 쿠이쿠이도 자기 자신의 주인은 못 돼요. 쿠이쿠이를 지배하는 건, 당신 앞에 있는 이 게엘이랍니다.
나: 하지만, ―실례일지도 모르겠지만, 푸후 신문은 노동자 편을 드는 신문이잖아요. 그 사장 쿠이쿠이도 당신의 지배를 받는다는 건…….
게엘: 푸후 신문 기자들은 물론 노동자 편이지요. 하지만 기자들을 지배하는 건 쿠이쿠이 말고는 없을 테고요. 게다가 쿠이쿠이는 이 게엘의 후원 없이는 버틸 수가 없답니다.
게엘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순금 숟가락을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렸어요. 이런 게엘을 보고 있자니, 게엘 자신을 미워하기보다는 푸후 신문 기자들이 딱하게 느껴졌어요.
그러자 게엘은 제 침묵에서 대번에 그 동정을 알아챘는지, 커다란 배를 부풀리며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게엘: 뭘요, 푸후 신문 기자들도 전부 노동자 편은 아니에요. 적어도 우리 갓파라는 족속은 누구 편을 들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편을 드니까요……. 그런데 더 골치 아픈 건, 이 게엘 자신마저 역시 남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게엘: 그게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바로 제 아내예요. 아름다운 게엘 부인이죠.
게엘은 큰 소리로 웃었어요.
나: 그건 오히려 행복한 일이겠군요.
게엘: 아무튼 저는 만족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것도 당신 앞에서만, ―갓파가 아닌 당신 앞에서만 대놓고 떠벌릴 수 있는 거지요.
나: 그렇다면 결국 쿠오락스 내각은 게엘 부인이 지배하고 있는 셈이군요.
게엘: 글쎄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칠 년 전의 전쟁 같은 건, 분명 어떤 암컷 하나 때문에 시작된 게 틀림없어요.
나: 전쟁이요? 이 나라에도 전쟁이 있었어요?
게엘: 있었고말고요. 앞으로도 언제 있을지 모르지요. 어쨌든 이웃 나라가 있는 한은…….
저는 사실 이때 처음으로 갓파의 나라도 국가로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게엘의 설명에 따르면, 갓파는 늘 수달을 가상의 적으로 삼고 있대요. 게다가 수달도 갓파에 뒤지지 않는 군비를 갖추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이 수달을 상대로 갓파가 벌인 전쟁 이야기에 적잖이 흥미를 느꼈어요. (어쨌든 갓파의 강적이 수달이라는 건 『수호고략(水虎考略)』의 저자는 물론, 『산도민담집(山島民譚集)』의 저자 야나기타 구니오 씨조차 몰랐던 듯한 새로운 사실이니까요.)
게엘: 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물론 두 나라 모두 방심하지 않고 가만히 상대를 엿보고 있었지요. 어느 쪽이나 똑같이 상대를 두려워했으니까요.
게엘: 그런데 이 나라에 있던 수달 한 마리가 어떤 갓파 부부를 찾아갔어요. 그 부부의 암컷은 남편을 죽일 생각이었지요. 어쨌든 남편이 난봉꾼이었거든요. 게다가 생명보험이 들어 있던 것도 조금은 유혹이 됐을지 모르고요.
나: 그 부부를 아세요?
게엘: 네, ―아니, 수컷만 알아요. 제 아내는 그 갓파를 악당처럼 말하지만요. 제가 보기엔 악당이라기보다, 암컷에게 붙잡힐까 봐 겁내는 피해망상이 심한 미치광이예요.
게엘: ……그래서 그 암컷은 남편의 코코아 잔에 청산가리를 넣어 두었어요. 그런데 그걸 또 어떻게 착각했는지, 손님인 수달에게 마시게 하고 만 거예요. 수달은 물론 죽어 버렸지요. 그러고는…….
나: 그래서 전쟁이 난 건가요?
게엘: 네, 공교롭게도 그 수달이 훈장을 갖고 있었거든요.
나: 전쟁은 어느 쪽이 이겼어요?
게엘: 물론 이 나라가 이겼지요. 삼십육만 구천오백 마리의 갓파가 그 때문에 장하게도 전사했어요. 하지만 적국에 비하면 그 정도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나라에 있는 모피라는 모피는 대개 수달 모피랍니다.
게엘: 저도 그 전쟁 때는 유리를 만드는 것 말고도 석탄재를 전장에 보냈어요.
나: 석탄재를 뭐에 쓰는데요?
게엘: 물론 식량으로 쓰지요. 우리는, 갓파는 배만 고프면 뭐든 먹게 되어 있으니까요.
나: 그건, ―부디 화내지 마세요. 그건 전장에 있는 갓파들에게는……. 우리나라에서라면 추문인데요.
게엘: 이 나라에서도 추문인 건 틀림없어요. 하지만 저 자신이 이렇게 말하고 다니면 아무도 추문으로 삼지 않는 법이지요. 철학자 마그도 말하지 않던가요. ‘너의 악은 너 스스로 말하라. 악은 저절로 소멸하리라.’ ……게다가 저는 이익 말고도 애국심에 불타고 있었으니까요.
마침 그때 이 클럽의 급사가 들어왔어요. 급사는 게엘에게 공손히 절을 한 뒤, 무슨 낭독이라도 하듯 이렇게 말했어요.
"댁 옆집에 불이 났습니다."
게엘: 부, 불이라고!
게엘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어요. 저도 일어난 건 물론이고요. 하지만 급사는 침착하게 다음 말을 덧붙였어요.
"하지만 이미 다 껐습니다."
게엘은 급사를 배웅하며 울음 반 웃음 반 같은 표정을 지었어요.
그 얼굴을 보고서야 저는 어느새 이 유리 회사 사장을 미워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지만 지금 게엘은 대자본가도 뭣도 아닌, 그저 한 마리 갓파가 되어 서 있었어요.
저는 꽃병에서 겨울 장미를 뽑아 게엘의 손에 건넸어요.
나: 불은 꺼졌다지만 부인께서 무척 놀라셨겠어요. 자, 이걸 들고 돌아가 보세요.
게엘: 고마워요.
게엘은 제 손을 잡았어요. 그러더니 갑자기 히죽 웃으며,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속삭였어요.
게엘: 옆집은 제 셋집이거든요. 화재 보험금만은 받을 수 있답니다.
저는 그때 게엘의 미소를, 경멸할 수도 없고 미워할 수도 없는 게엘의 미소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