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부인전
von 장지연
그 무렵
그때 약안의 나이는 열일곱이었다.
꽃처럼 고운 얼굴과 단정한 자태, 맑고도 빼어난 풍채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아름다움이었다.
마침 프랑스의 수도가 함락되고 국왕이 남쪽으로 피신했다는 소식이 사방에 퍼져, 아이와 부녀자들까지도 모르는 이가 없었다.
약안은 밤낮으로 탄식하며 말했다.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녀는 하루 종일 집 안에 앉아 나라를 되찾을 방도를 생각했다.
프랑스 지도를 펼쳐 놓고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피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문밖에서 천군만마가 몰려온 듯한 고함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마을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사방에서 뒤섞여 들려왔다.
약안은 깜짝 놀라 급히 밖으로 뛰어나갔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참혹한 광경이었다.
영국군이 질서도 없이 마을을 휩쓸며 재물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며, 사람들을 무참히 죽이고 있었다.
약안은 그 잔혹한 모습을 보고 치를 떨었다.
당장이라도 복수하고 싶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가 필요한 옷가지와 살림을 챙기고, 무기와 군사 훈련에 쓰던 물건들을 몸에 지녔다.
그리고 부모를 보호해 말에 태운 뒤, 뒤쪽 길로 급히 빠져나와 요고측이라는 마을로 피신했다.
며칠이 지나자 아리안성이 위태롭다는 소식이 날마다 들려왔다.
그 소식을 듣던 약안은 벌떡 일어나 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때가 왔다.
드디어 때가 왔다.
내가 나라를 구하지 않는다면, 다시 누구를 기다린단 말인가.”
그녀는 곧장 부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오늘 저는 아버님, 어머님께 작별을 고하고 집을 떠나고자 합니다.
밖으로 나아가 큰일을 이루고 싶습니다.
혹시라도 제가 나라의 환란을 막고 우리 백성을 구하며, 프랑스의 독립을 지킬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부모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고 노하여 말했다.
“네가 미쳤느냐.
너는 여자로 태어나 규방에서 자란 몸이다.
어찌 전장에 나가 칼과 총을 들겠다는 것이냐.
그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라면 세상의 수많은 사내들이 벌써 했을 것이다.
어찌 너 같은 어린 여자에게 그런 일을 맡길 수 있겠느냐.
우리 소원은 네가 이 집에 남아 늙은 부모를 섬기며 평안히 사는 것이다.
전장에 나가 공을 세우는 따위는 바라지 않는다.
혹여 잘못되기라도 하면 남의 조롱거리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집안의 맑은 명예마저 더럽히게 될 것이다.
게다가 우리에겐 다른 자식도 친족도 없다.
슬하에 오직 너 하나뿐인데, 네가 집을 떠나면 우리 늙은 부모는 누가 돌본단 말이냐.
너는 효도하는 딸이 되어라. 영웅이 되려 하지 말아라.”
그러자 약안은 눈물을 머금은 채 슬프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부모님, 제 마음은 이미 굳게 정해졌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만 있다면, 이 몸이 만 번 죽는다 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더구나 이 일은 한 집안의 사사로운 일이 아니라, 백성 모두의 일입니다.
제가 비록 여자라 하나 어찌 프랑스의 백성이 아니겠습니까.
백성으로 태어났다면 마땅히 그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나라가 위태로운데도 가만히 앉아 바라보기만 한다면, 어찌 백성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저는 이미 뜻을 돌이킬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가고야 말겠습니다.”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말 속에 끓어오르는 충정과 뜨거운 피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리 말려도 약안의 뜻을 꺾을 수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마침내 그는 깊은 한숨 끝에 말했다.
“네가 비록 여자이면서도 나라를 사랑하는 의리를 이토록 아는데,
사내로 태어난 자들이 어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겠느냐.
나는 이제 늙어 세상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그러니 네 뜻대로 하여라.”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약안은 흐르던 눈물을 닦았다.
그녀는 옷과 무기를 다시 한 번 갖추고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친 뒤, 부모 앞에 마지막으로 절을 올렸다.
두 눈에서는 구슬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가 이번 길을 떠나면, 다시 부모님을 뵐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저를 죽은 사람이라 여기시고 너무 오래 슬퍼하지 마십시오.
오직 두 분께서는 몸을 잘 돌보시고 오래 평안하시기만을 바랍니다.”
부모도 눈물을 삼키며 말했다.
“딸아, 우리 걱정은 하지 말고 네 앞길이나 잘 지켜라.”
그날 약안은 마침내 부모와 작별했다.
집 문을 나선 그녀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곧장 길을 떠났다.
그녀가 향한 곳은 보고유 지방, 그리고 포다리고 장군이 있는 곳이었다.
부모는 딸과 헤어진 뒤 길가에 서서 오래도록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줄기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마침내 약안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두 노인은 집으로 돌아와 서로 붙들고 슬피 통곡했다.
차마 바라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늙은 부모는 다만 집안의 평안만을 바랐건만,
어린 딸의 가슴에는 이미 나라의 원수를 갚겠다는 뜻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