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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부인전

von 장지연 · 2026-08-25

아리안 성 사람들이 약 원수를 위해 사흘 동안 잔치를 벌이고 군사를 쉬게 했다.

그때 약 원수가 말했다.

“지금 우리 대왕께서 아직 대관식을 올리지 못하셨다.”

“내 마땅히 강을 건너 영국군을 쓸어내고 리목 성을 되찾아, 대왕의 즉위식을 올리겠다.”

그러고는 곧 군사 수만을 이끌고 라아로 강을 건너 리목 성으로 향했다.

때는 칠월 보름 무렵이었다.

가을바람이 서늘하고 갈대꽃이 아득히 우거진 길이었다.

한곳에 이르자 남녀노소 수천 명이 수풀 아래 누워 울부짖고 있었다.

그 소리가 몹시 슬펐다.

원수가 까닭을 묻자 모두 통곡하며 아뢰었다.

“저희는 아무 고을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태수가 영국에 항복하여 영국 군사를 성안에 들이고, 백성의 양식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했습니다.”

“살아갈 길이 아주 막막하여 저희가 다 함께 짐을 지고 이고 나와 각자 살길을 찾아 아리안 성으로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굶주림과 목마름이 심하여 이곳에 쓰러져 누웠습니다.”

원수는 이 말을 듣고 가엾이 여겨 양식을 나누어 주어 굶주림을 면하게 했다.

그리고 군사에게 명하여 아리안 성까지 호송하게 했다.

그날 밤 삼경에 원수는 영국 진영으로 달려들어 들이쳤다.

스스로 선봉이 되어 뚫고 들어가니 영국군이 크게 패하여 사방으로 흩어졌다.

원수가 뒤를 쫓아 크게 무찌르고 영국 대장 대이박을 사로잡았다.

성에 들어가 백성을 위로하고 어루만졌으며, 항복했던 관원을 잡아 군문에 목을 매달아 보였다.

이튿날 다시 진군하여 리목 성을 깨뜨리고 영국 군사를 무수히 죽였다.

군사의 위엄이 크게 떨쳐 가는 곳마다 맞설 자가 없었다.

영국 군사를 모조리 몰아내자, 사방에서 소문을 듣고 돌아와 항복하는 자가 줄을 이었다.

잃었던 성을 다시 찾고 항복했던 고을을 도로 거두어, 강토를 거의 되찾았다.

이에 원수는 국왕을 모시고 리목에 이르러 대관식을 올리기로 했다.

날을 정하니 곧 그해 시월 팔일이었다.

원수는 각 도와 각 군과 각 성에 글을 내려 왕의 대관식을 알렸다.

그때까지 지방의 관원과 백성들은 영국이 있는 줄만 알고 그 명령에 따를 뿐, 프랑스 왕이 있는 줄을 몰랐다.

이제 공문이 퍼지자 비로소 국왕이 계신 줄을 알았다.

또한 원수의 위엄을 두려워하여 다투어 조회하러 왔다.

이때부터 그 근처의 성들이 프랑스의 명령을 받들어 비로소 길이 트였다.

왕은 대관식을 올리고 왕위에 나아갔다.

그리고 약안을 공작으로 봉하여 재상의 자리에 두고 귀족의 반열에 들게 했다.

약안이 군복을 입고 깃발을 잡은 채 왕의 곁에 엄연히 서니,

그 모습을 보는 프랑스 사람마다 눈물을 흘리며 서로 경사를 이야기했다.

하루는 약안이 부모를 생각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왕께 하직을 청했다.

“신은 본디 시골의 가난한 여자로, 나라의 깊은 원수를 갚고 백성의 재앙을 구하고자 나섰습니다.”

“그러나 늙은 부모께는 다른 자녀가 없고 오직 저 하나뿐입니다.”

“봉양할 사람도 없고, 천한 딸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밤낮으로 간절하실 터이니 어찌 절박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다행히 하늘이 도우시고 폐하의 넓으신 복으로 아리안 성을 구했습니다.”

“잃었던 강토를 태반이나 되찾고 영국의 장졸을 무수히 몰아내어 부끄러움을 조금이나마 씻었습니다.”

“리목 성을 되찾아 폐하께서 즉위하시고 대관식을 올리셨으니, 신의 오랜 바람도 조금은 이루었습니다.”

“오늘은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를 모시고자 하오니, 부디 굽어살펴 주십시오.”

말하는 동안 눈물이 조용히 흘러 옷소매를 적셨다.

왕이 간절히 만류했다.

“경이 아니었다면 짐이 어찌 오늘이 있겠는가.”

“경의 은혜가 바다와 같으나, 다만 경이 없으면 적병이 다시 들어와 노략질할 것이다.”

“게다가 아직 파리 성도 되찾지 못하였다.”

“청하노니 경은 짐을 위해 조금만 더 머물러 파리 성이나 되찾고 돌아가 주기를 간절히 바라노라.”

왕이 두 번 세 번 간청했다.

약안은 본디 충의로운 사람이라, 왕의 간청을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리고 부모께 글을 올려 사정을 아뢰었다.

공명은 한 시대에 빛날지라도,

충과 효를 함께 온전히 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