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梅月)
von 최서해 · 2026-04-08
닭은 벌써 네 번이나 홰를 쳤다.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던 샛별도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는 듯 자취를 감췄다.
매월은 예전과 다름없이 미음을 쑤어 들고 박생의 방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기대 시축을 들여다보던 박생 앞에 선 그녀는,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하고, 마치 날아가듯 가볍게 절을 올렸다.
어젯밤 있었던 일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다시는 매월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을 것만 같아 속이 뒤집히던 박생의 마음도, 그녀의 그런 태도 앞에서는 조금 풀어졌다.
그러나 막상 그녀의 자태를 눈에 담는 순간, 가라앉았던 마음은 또다시 들끓기 시작했다.
매월은 그날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배부른 상전들은 계집종 하나가 굶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그날 매월이 머리도 빗지 않은 채 자기 방에 들어가 누워만 있는 것을 보고, 박생의 아내가 어디 아픈 것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매월은 그저 아픈 데가 없다고만 대답했다.
그날도 어느새 저물었다.
하지만 박생은 깊게 가라앉은 번민 속에 빠져 밤이 오는 줄도 몰랐다.
등불이 켜진 것을 보고서야 아, 밤이 되었구나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또 밤이 지나고 새벽이 왔다.
이튿날 새벽에도 매월은 미음을 달여 들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박생이 한층 점잖은 얼굴로 말했다.
“대장부의 한을 풀어 다오.”
그 말에도 매월은 응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조금도 이마를 찌푸리지 않았고, 얼굴을 붉히지도 않았다.
겉으로는 태연했다.
하지만 그 가슴속에서는 천 마리, 만 마리 원숭이가 날뛰듯 심장이 어지럽게 뛰고 있었다.
당장 그 자리에서 박생의 추태를 꾸짖고 싶었다.
하지만 기구한 팔자 끝에 이 집에 팔려 와, 태산 같은 은혜를 입고 산 몸이라 생각하니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송죽 같은 자신의 절개를 더럽힐 수도 없었다.
매월은 그렇게 괴로워했다.
끝없는 번민 끝에, 그녀는 한 가지 계책을 떠올렸다.
예전에 어떤 상전에게서 받은 패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을 팔면 적지 않은 돈이 될 터였다.
그 돈으로 자기 몸값을 치르고 스스로 자신을 속량하는 것.
그것이 가장 나은 길이라 여긴 것이다.
그래서 매월은 박생에게 조심스럽게 청했다.
“고향으로 돌아가 늙으신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시고 싶습니다.”
하지만 박생도, 그의 아내도 허락하지 않았다.
박생이 허락하지 않은 이유야 다른 욕심이 있어서였고,
그 아내가 허락하지 않은 이유는 매월을 충직한 시비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박생은 매월에게 말했다.
“몸만 허하면 속량 같은 건 애써 하지 않아도 되지.”
그 말을 듣고 매월은 결국 울고 말았다.
돈이 있어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그 억울함을, 도대체 어디에 가서 하소연할 수 있단 말인가.
상전을 업신여기면 목이 달아나는 세상이지 않은가.
하지만 매월이 상전을 거역하지 못한 것이 목숨이 아까워서만은 아니었다.
차마 함부로 업신여길 마음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어떻게든 상전의 명예도 해치지 않고, 자기 몸 또한 더럽히지 않으려 했을 뿐이다.
그렇게 매월의 저항이 거세질수록, 박생의 짝사랑은 오히려 더 깊고 짙게 가슴속에 내려앉았다.
보기도 전에 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던 박생이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그의 근심은 병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의원은 맥을 짚고 홧병이라고 진단했다.
집안 사람들도, 이웃 사람들도 박생의 병이 홧병이라는 사실 자체를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다만 그 화병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두들 이렇게 수군거릴 뿐이었다.
“아, 유경한 지가 벌써 육칠 년인데 벼슬 하나 얻지 못했고, 그 좋던 전답도 벌써 절반이나 줄었으니 홧병이 안 나고 배기겠소?”
그렇게들 제 나름대로 해석했다.
하지만 매월, 오직 그녀만은 박생의 병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병을 고칠 묘한 처방 역시 자기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도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 목숨처럼 여기는 꽃다운 ‘처녀’를 아무 의미 없이 내던지는 일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원통한 일이었다.
매월은 그저 상전이 마음을 돌리기만을, 진심으로 빌고 또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