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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結婚)

von 한용운

순영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대철을 찾아가야 하는데, 낮에는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찾아가도 약속이 없는 일이라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고, 밤에 가는 것이 마땅한데도 손님을 치르고 나면 너무 늦어질 것 같았다. 그때 무사히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어떤 핑계를 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결국, 군색하게 거짓말로 핑계를 대는 것보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심했다.

이튿날 저녁, 순영은 숙자에게 가서 대강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서울에 오던 길에 원산에서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해준 은인을 찾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숙자는 기꺼이 허락해 주었다.

순영은 대철의 여관을 찾아갔지만, 선뜻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대문턱에서 어정거리다가, 여관의 심부름꾼으로 보이는 아이가 나타나 물었다.

"여관을 정하려고 그러세요?"

순영은 놀라서 대답했다.

"아니에요, 여기 계신 손님을 찾아뵈러 왔어요."

"성함이 누구세요?"

"저요? 저는 장 순영이에요."

순영은 자기 이름을 묻는 줄 알고 대답했지만, 아이는 손님 이름을 물었다.

"아, 손님은 김 대철 씨예요."

순영은 조금 무색해져 고개를 숙였다.

"네, 김 대철 씨요? 저 칠호실에 계십니다. 이리 들어오세요."

아이의 안내를 받으며 순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 방에 다른 손님이 안 계신가요?"

"네, 아까 손님이 한 분 오셨다가 가셨고, 지금은 아무도 안 계십니다."

칠호실은 맨 끝에 있어 비교적 조용한 방이었다. 순영은 방문 앞에서 잠시 주저하다가, 방 안의 동정을 살피고 기침을 가볍게 했다. 그러나 아무 대답이 없었다.

"선생님 계세요?"

목소리는 가늘고 떨리는 듯했다.

"게 누구십니까?"

안에서 대철이 놀라며 문을 열어 보았다.

"아! 이게 웬일이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나는 약 팔러 다니는 여자인 줄 알았습니다. 약 팔러 다니는 여자가 이렇게 많아서 귀찮아서 문 밖에서 여자 소리만 나면 대답도 잘 안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대철은 순영을 방으로 안내하며 방석을 내놓고 앉으라고 청했다.

"어제는 실례를 많이 했습니다."

순영은 앉으면서 인사를 했다.

"천만에요, 어제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댁을 알았으면 먼저 찾아가서라도 뵐 텐데 이렇게 오셔서 찾아 주시니 너무 감사드립니다. 내일쯤 서군을 통해 정순 씨에게라도 순영 씨의 주소와 형편을 물어서 찾아가 뵐 계획이었는데, 이렇게 오셨으니 도리어 미안합니다."

대철의 태도는 상당히 친근했다.

"그런데 그 뒤로 서 선생님이나 정순이를 한 번도 못 만나셨어요?"

순영은 대철이 그 사이에 자신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다시 물어보았다.

"못 만났어요. 만일 만났다면 순영 씨의 사정을 물어보았을 텐데요."

대철은 찾아가지 못한 이유를 되풀이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저물게 찾아와서 선생님이 어찌 생각하시지 않으실지요?"

"천만에요, 언제 오시든지 무슨 관계가 있겠어요. 심방이라는 건 기회와 시간이 있는 대로 하는 것이니까요. 잘 오셨습니다."

"저는 어제 듣던 말이 재미있어서 마저 들으러 왔어요."

"어제 무슨 말을 했던가요?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는데요."

대철은 무엇을 생각하며 말했다.

"아, 어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주시던 이야기를 하시다 말지 않으셨어요? 그 얘기 말씀이에요."

"네, 그게 무슨 그렇게 재미있을 것이 있어요? 나는 무슨 말씀이라고."

대철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어쩐지 그런 얘기가 퍽 재미있어요. 집에 가서도 그 얘기 생각하느라 잠을 못 잤는데요."

"아! 그렇게까지 재미가 있어요? 그럴 줄 알았으면 어제 그 얘기를 마저 해 드릴 걸 그랬습니다. 어제 무슨 말까지 했던가요?"

대철은 눈을 깜짝이며 생각했다.

"두 가지는 하시고, 원산에서 생긴 일이라고 말씀하시다가 말았지요."

"오, 참 그랬습니다."

순영은 잠시 생각하다가 심부름하는 아이를 불러 실과를 사러 보냈다.

"저 주시려고 하시면 고만두세요. 저는 밥을 갓 먹고 와서 아무것도 못 먹겠어요."

순영이 사양했지만 대철은 그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원산에서 생긴 일인데요. 그때 강원도를 갔다가 배를 타고 오는 길이었어요."

"네, 그런데요."

순영은 대철의 말을 끊으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날 풍랑이 조금 있었어요. 그래서 조그마한 종선의 출입은 좀 어려웠는데, 배에서 종선으로 내릴 때 종선이 출렁거려서 잘 내리지는 못하는데, 웬 열네 살 먹은 계집애 하나가 내리다가 발을 잘못 디뎌서 바다로 떨어졌지요. 그런 것을 들어가서 건져내었지요. 그것이 뭐 그렇게 재미있을 것 있어요?"

대철은 심상하게 웃었다.

"그러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그 애는 죽었겠지요?"

순영은 긴장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물론이지요, 건져 주지 않았으면 죽었지요."

"그게 어디 아이래요?"

"모르지요. 그때 강원도 어디 사는 아이라는데, 웬 늙수그레한 여자하고, 또 그보다 조금 큰 계집애하고 셋이 가나 보더군요."

"대강이라도요."

"대강? 대강 말하자면?"

순영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대강 말하자면 순영 씨 얼굴 비슷할까? 어쨌든 그 계집애는 촌에서 자란 아이라도 얌전스럽게 생겼더군요."

대철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는 듯 했다.

"저같이 생겼어요?"

순영은 눈가가 붉어지고 얼굴빛이 변하더니 눈물이 주르르 흐르기 시작했다. 뜻밖의 광경에 대철은 놀랐지만, 웬일인지 묻지도 못하고 한참 그대로 바라보았다. 순영은 이마를 바닥에 대고 두 손으로 양쪽 볼을 가리며 느끼고 있었다. 대철은 순영이 정신이 나간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왜 그러세요?"

대철이 물었다. 순영은 대답하지 않고 더욱 크게 느끼는 소리만 내었다.

"아, 웬일이세요?"

대철은 순영의 어깨를 가볍게 쳐주었다.

"제가 원산에서 선생님이 살려 주신 장 순영이에요."

순영은 비로소 머리를 들고 눈물도 씻지 않은 채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철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순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저는 선생님이 원산 바다에서 물에 빠진 계집애를 건져 주셨는데, 얼굴 모습이 저와 비슷하다고 하셨지요. 제가 바로 그 계집애예요."

순영은 말끝에 소리를 내어 울다가 수건으로 눈을 씻고 진정하며 대철을 바라보았다.

"아! 그러세요? 나는 진정 몰라보았는데요."

대철은 어색하면서도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시겠지요. 저는 그때 눈여겨보았으니까 짐작이라도 하겠지만, 선생님은 그렇게 눈여겨보시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때의 제 모습이 형편없이 되었을 테니, 자세히 보셨더라도 모르셨겠지요. 저는 그 이후로 한 날 한 시라도 선생님을 잊어본 일이 없습니다. 그때 철이 없어서 선생님의 주소나 성함을 물어보지 못했지만, 마음으로는 잠시라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한 번 만나 뵈었으면 하고 늘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부처님께 축원을 하였습니다. 부처님이 돌보셨는지 오늘 선생님을 이렇게 뵈옵게 되니, 인제는 죽어도 원이 없겠습니다."

순영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아, 그러세요?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나도 그 후로 순영 씨를 생각한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런 일은 잊을 수 없는 일이지만, 순영 씨에 대해서는 더욱 잊혀지지 않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때 순영 씨가 나이 과년했다든지 인물이 초월했다든지 그런 것 때문에 나의 마음을 끈 것은 아니지만, 그때 물에서 건져내서 갑판에 놓고 물을 빼고 정신이 난 뒤에 나를 보면서 '에이구, 이 은혜를 어떻게 갚나'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순영 씨는 그것을 기억하시는지 모르지만, 나는 확실히 그 말을 잊지 못합니다. 그때 순영 씨가 나를 보는 눈이 하도 이상하여서 나에게 여간한 인상을 주지 않았습니다. 순영 씨는 그때 경황이 없는 때라 나를 의식적으로 그렇게 보았는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보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나로서는 평생에 그렇게 심각한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에이구, 이 은혜를 어떻게 갚나' 하는 말이 심상한 듯하지만, 어린애로서 죽다 살아나서 정신이 없는 중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여간한 일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늘 순영 씨를 생각하게 되고 친구끼리 모여 앉으면 흔히 그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제 만났던 서 정식 씨에게도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한 번 했는데, 그 친구도 그 일을 알고 있습니다. 그 후로 한 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은 있었지만, 그보다도 어찌 되었는지 소식이나 알았으면 하고 늘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만나보게 되니 참으로 천만의 의외입니다."

대철은 말을 계속하려 했지만, 심부름하는 아이가 실과를 사 가지고 왔다.

"자, 이것을 좀 잡수시지요. 잡수시면서 천천히 말씀하시지요. 이제 마음 상하실 것 없어요?"

대철은 호주머니에서 작은 칼을 꺼내 배를 벗기려 했다.

"이리 주세요. 제가 벗길게요."

순영은 대철의 손에서 칼을 빼앗듯이 했다. 대철은 조금 사양하다가 그대로 주었다. 순영은 가능한 한 손이 배에 덜 닿도록 조심스럽게 벗겨서, 저민 것은 대철의 앞에 놓고 자기는 배속을 들고 꼭지 잡은 손을 회회 돌리며 말했다.

"선생님, 잡수세요. 저는 이제 원을 풀었어요. 죽어도 원이 없어요. 선생님을 뵈었으니까, 아무 원도 없어요. 저는 선생님을 뵈오려고 하는 것이 일구월심 원이었어요. 그러다가 선생님을 이렇게 뵈오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대도 관계없어요."

순영도 배속을 입에 대려다가,

"선생님, 이것을 잡수세요."

하고 배 저민 것을 손으로 들어 주려고 하다가 놀라는 듯이 손가락을 치마폭에 씻으면서 말했다.

"들어 드리려고 하였더니 손이 더러워서 못 들어 드리겠어요. 어서 잡수세요."

순영은 부지불식중에 웃었다.

"아닙니다, 이것을 잡수세요. 왜 배속을 들고 그러세요. 배속을 먹으면 귀먹는다던데."

대철은 배 저민 것을 순영의 앞으로 밀어놓으면서, 순영이 가진 것을 빼앗다시피 하여 자기가 가지더니,

"순영 씨는 손이 더럽다고 안 집어 주시지만, 나는 더러운 손으로라도 들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배 한 점을 집어서 순영에게 준다. 순영은 받아서 대철이 손잡았던 곳을 한 번 베어 물더니,

"그럼 저도 더러운 손이나마 집어 드리겠습니다."

하고 한 점을 집어 준다. 대철은 웃으면서 받아먹더니,

"그런데 어떻게 여기 와서 계시게 되었으며, 또 무얼 하고 계세요? 본래 댁이 여기시던가요?"

대철은 진정으로 물었다.

"아니에요, 제 고향은 강원도 인제 땅이에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 와 계세요? 그런데, 그때는 어딜 가시던 길이었으며, 그때 동행하던 이들은 다 누구래요?"

"네, 그것을 다 말씀해 드리지요. 선생님이 묻지 않으신 대도 저의 사정을 다 말씀하려고 하였습니다..."

순영은 먹던 배를 놓고 자리를 고쳐 앉더니, 자기가 성장하던 일부터 오늘날까지의 내력을 소상하게 말했다. 대철은 정신을 모아서 듣고 있었다. 순영은 말을 다 하고 나더니 다시 자리를 고쳐 앉으며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야! 사람의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파란이 많은 것입니다. 순영 씨도 불과 사오 년 간에 그러한 파란곡절이 있었습니다."

대철은 인생의 철학을 다시 인식하며 동시에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듯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저 같은 팔자도 있을까요?"

순영은 다시 눈물을 씻었다.

"이 세상에 그런 일이 얼마든지 있겠지요. 그보다도 몇 배나 기구한 일도 많겠지요. 초년 고생은 복이 된답니다. 언제 또 운이 돌아오는 날이 있겠지요. 조금도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순영 씨 못지않은 운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그것을 비관하지는 않습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세상과 싸우고 운명과 싸우고 그러자고 결심하였습니다. 흥진비태요,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으니까요."

대철은 굳은 결심을 가진 듯이 주먹을 불끈 쥐고 다시 껄껄 웃었다.

"사내들은 그럴 수가 있지마는, 여자는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그거야 남녀가 다를 리가 있나요?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선생님!"

순영은 새로운 기색으로 대철을 바라보았다.

"네."

대철은 순영을 바라보았다.

"계집애가 색주가 노릇을 하면 사람은 버린 것이지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색주가 노릇을 한다고 사람을 버릴 리가 있나요?"

"일반 사회에서 색주가 노릇하는 계집을 사람으로 인정하겠어요?"

"천만에요, 영업이 다를 뿐이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색주가가 아니라 아무 노릇을 하더라도 저 되기에 있는 거지요."

"그럴까요?"

"그렇고 말고요, 정경부인이라도 제게 있는 것이요, 색주가가 아니라 기생이라도 제게 있는 거지요. 그전의 역사를 보면 기생 중에도 훌륭한 사람이 많습니다."

"기생은 오히려 색주가보다 다르지 않아요?"

"다르다니 얼마나 다르겠어요? 혹은 다른 점도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판에 박힌 것으로 보면 기생이 색주가만 못한 점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러나 통틀어 사람에게 있는 것이에요."

대철은 자시 있게 말했다.

"그거야 그렇겠지요. 황모꼬리 삼 년 두어도 흰 개꼬리 못 되는 것이요, 옥은 진토에 묻혀도 옥은 옥대로 있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기가 쉬워요?"

"그러니까 쉽지 못하다는 것은 딴 문제요. 모든 일이 사람에게 있으니까, 단지 색주가라고 해서 나쁘게 알 것은 아니다, 이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선생님만 하여도 색주가 노릇하는 계집애라면 재미없게 생각하시지 않겠어요? 우선 저만 해도 색주가 노릇을 한다니까 처음부터 정나미가 떨어지실 건데."

순영은 대철의 기색을 자세히 살폈다.

"아닙니다. 나도 세상의 쓴맛을 하도 맛보아서 그만한 사정은 잘 이해하지요. 순영 씨의 사정을 듣고 동정이 있었지만 달리 나쁘게 알 리야 있겠습니까? 순영 씨가 혹은 자격지심이 들어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는 모르지만, 저는 사실 그런 관념을 가지는 사람은 아닙니다."

대철은 차차 순영의 말하는 눈치를 아는 듯이 더욱 진실한 태도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은혜를 갚아야 하는데, 무엇으로 갚을 것이 있어야지요. 옛날 사람들은 은혜를 갚을 수 없으면 몸으로 대신 갚은 일도 있다고 하지만, 저는 몸도 색주가 노릇하는 더러운 몸이 되었으니 몸으로 갚을 수도 없고... 또 제 몸이 색주가가 안 되었더라도, 무엇이 투철하여서 선생님 같은 어른을 모실 수가 있겠어요. 그러니까 선생님 댁에 가서 종노릇이나 하였으면 모르지만, 선생님은 아마 색주가 노릇하던 년이라고 종노릇도 안 시키시겠지요?"

순영은 몸을 조금 틀며 웃으려는 태도로 대철을 바라보았다.

"원 이제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은혜가 무슨 은혜며 또 겸사도 분수가 있지, 왜 자꾸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저는 삼십이 다 되어 가지만 이때까지 순영 씨 만한 여성을 대해서 이만큼 정담을 해본 일도 별로 없습니다. 나는 아직 미혼입니다. 위인도 못났지만 여러 가지 사정도 있고, 그중에 안 고수비로 눈은 높아서 웬만한 여자는 눈에 차지도 않지요. 그래서 이때까지 장가를 못 들었는데, 그러자니까 자연히 여자가 있으면 주의해 본 것이 아니오. 하지만 정말 여자가 귀하더군요. 사람이 껍데기만 번지르르하면 뭘 해요. 속이 있어야지. 대면해서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순영 씨 같이 구비한 여성은 처음 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이라니요. 저로서는 실례의 말로 순영 씨를 사랑할 자격도 없는데 종이라는 말씀은 마십시오."

대철은 만족한 듯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