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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結婚)

von 한용운 · 2026-03-20

그들은 남쪽으로 돌아서 해수욕장이 보이지 않는 곳에 도착했다.

“자, 우리는 실례하겠습니다. 구경하세요.”

정식이 순영과 정순에게 말하며 옷을 벗으려 할 때, 대철이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깐만, 저기 좀 다녀올게.”

하고는 달려가서 오던 길로 돌아가 여러 가지 실과 한 꾸러미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는 수영이나 하겠지만, 그냥 앉아서 구경하시면 심심하실 테니, 이것이나 드시면서 구경하세요.”

순영과 정순의 앞에 놓으며 말했다.

“어머, 이렇게 사오셨어요? 일부러 가셔서 감사해요.”

그들은 한꺼번에 일어나서 고마움을 표했다. 순영은 대철이 특별히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실과 꾸러미를 앞에 놓으면서도 특별히 자기 앞으로 놓는 것처럼 느껴졌다. 정순의 표정은 정식이 사온 것이 아니라 대철이 사온 것에 불쾌한 듯 보였다. 정순은 조금 샐쭉한 기색이었다.

“네가 먹어라.”

정순은 실과를 순영의 앞으로 밀어 놓았다.

“같이 먹자.”

순영은 다시 밀어 놓았다.

“나는 그런 거 좋아하지 않아.”

정순은 눈을 다른 데로 돌렸다.

사내들은 어느새 옷을 벗고 수영복만 입은 채 바다를 바라보고 섰다. 그들은 햇볕에 그을려 시꺼멓게 된 몸에 근육이 발달해 있었다. 순영은 정식이 키가 작아 보였지만 만족스러워 보였고, 대철은 적당한 키에 알맞은 체격이었다. 수영복을 입었지만 순영은 그 모습을 보기가 부끄러웠다. 그러나 드러내놓고 보는 것보다 더욱 자세히 보았다.

“저 서 선생님 체격이 작고 아담하게 잘 되었지?”

정순은 웃으며 순영을 돌아봤다.

“그렇지, 참 조선 사람은 작아야 쓴다는데, 작고도 야무지게 생겼구나.”

순영은 정순의 뜻을 알고 비위를 맞추었다.

“우리는 사내들 키 큰 게 좋잖아. 키 크고 호리호리한 사람은 없다는 말도 있지? 또 수수댕이처럼 몸집이 호리호리한 것도 사내답지 않지, 그렇지?”

순영은 대철의 체격이 알맞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정순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될까 봐 말끝을 웃음으로 흐려버렸다.

사내들은 바다를 향해 툼벙하고 거꾸로 뛰어들어가 한참 동안 보이지 않았다. 순영은 가슴이 두근거리며 놀랐다. 잠시 후, 그들은 물 위로 솟구치더니 헤엄을 쳐서 바다로 나갔다. 그들은 여러 가지로 헤엄을 쳤다.

엎드려서 치기도 하고, 젖혀져서 치고, 옆으로도 치고, 앉아서도 서서도, 온갖 짓을 다 하여 오리 같기도 하고 고기 같기도 하였으나, 만경창파에 마음대로 떠다니는 모습이 신선하게 보였다. 순영은 대철만을 바라보았다. 가끔 정식을 보는 것은 대철과 비교하기 위해서였다.

순영은 수영을 잘하는 것이 남자의 영예이자 미로 여겨졌다. 대철이 하늘 끝까지 갔다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아슬아슬하고 조심스러워서 빨리 나왔으면 했다.

“저희 같은 여자들도 헤엄치는 걸 배우면 될까요, 선생님?” 수영을 마치고 나온 뒤, 순영이 마음은 대철에게 향하고 눈으로는 정식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 물론이죠. 여자들이 남자보다 더 잘하는 경우도 많아요.”

대철이 순영을 돌아보며 대답했다.

“조선에는 아직 그런 예가 없지만, 서양에서는 수영을 잘하는 여자가 많다고 하더군요. 언젠가 신문에서 영국의 영물해협을 몇 시간에 횡단한 여자가 있다고 봤어요. 그런 여자는 남자 이상이죠?”

정식이 대철에게 말했다.

“그런 여자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할까요? 우리는 물에 들어가면 자꾸만 가라앉고 조금도 뜨지 않던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렇게 잘하세요? 저는 그렇게 잘하시는 걸 처음 봤어요.”

순영은 점점 대철에게 가까워지며 말했다.

“아무나 물에 들어가면 가라앉죠. 차차 헤엄치는 걸 배워야 해요.”

“어떻게 배워요?” 순영은 수영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싶기보다, 대철에게 조금이라도 더 말을 붙여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물었다.

“어떻게요? 글쎄요. 실제로 배워야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요. 물에는 압력이라는 게 있어요. 그걸 이용해서 사람이 뜨게 되는 거죠. 헤엄칠 때 팔과 다리를 휘젓는 건 그 압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래서 뜨는 거죠.”

대철은 친절하게 설명하며 팔과 다리를 내젓는 시늉을 했다.

“네, 그래요? 그런데 어떤 때 보면 선생님은 팔과 다리를 가만두고도 잘 뜨시던데요. 그건 왜 그런가요?”

“그건 밖에서 보면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 놀리고 있어요. 익숙해지면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할 수 있으니까요.”

대철은 순영을 보다가 다시 정식을 보고 웃었다.

“너 수영 선수가 되고 싶어? 왜 그렇게 자세히 묻니? 그렇게 알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옷을 벗고 들어가서 배워보라고.”

정순은 공연히 기색이 날카로워지는 듯했다.

“누가 배운다니? 모르니까 여쭤보는 말이지.”

순영은 눈을 대철에게서 돌려 바다를 보며 다시 묻지 않았다.

“그런데 왜 실과들은 안 드셨어요? 그대로 있는 걸 보니 아직 안 드신 것 같군요.”

대철이 그대로 놓여 있는 실과 꾸러미를 보고 말했다.

“선생님네 수영하시는 것 보느라 먹을 새가 없었어요.”

순영은 손으로 실과 싼 것을 만지면서도 끄르지 않았다.

“그게 뭔가? 끄르게. 우리도 좀 같이 먹게.”

정식이 말을 하고 웃었다.

“선생님은 그런 것 하나도 사오시지 않으시고, 남이 사온 걸 왜 드시겠다고 그러세요? 그게 우리 먹으려고 사온 거지 왜 선생님 드시라고 사오셨나요?”

정순은 완연히 새침한 기색을 나타내고 정식에게 눈을 흘겼다.

“아니올시다. 제가 사오기는 했지만, 정식군이 사오라고 해서 사온 것이올시다. 같이 드세요.”

대철은 정순의 뜻을 안다는 듯이 웃으며 실과 꾸러미를 끌었다.

“아무가 사왔든지 먹으면 고만이지요.”

정식은 포도 한 송이를 들어서 먼저 먹었다.

“어서들 드세요.”

대철은 포도를 깨끗한 송이로 골라서,

“이것이 좀 괜찮군요. 드셔 보세요.”

하고 순영에게 주었다.

“어머, 먼저 드세요.”

순영은 공손히 받으며 만족한 듯이 웃었다. 대철은 다시 포도를 뒤적거려 보았으나 순영에게 준 것만큼 먹을 만한 송이가 없었다. 그 중에서 조금 나은 것을 골라서,

“포도가 아직 덜 익어서 그런가 변변치 않군요. 그대로 드세요.”

하고 정순에게 주었다. 정순은 뾰로통하여 선뜻 받지 않다가 부득이한 듯이 받으며,

“저에게는 이것도 과하지요. 그 중 좋은 놈은 서 선생님이 가져가시고, 서 선생님은 생전에 포도 한 번도 못 드셔 보셨나 봐요. 남에게 먹어 보란 말씀도 아니하시고 그 중 좋은 것을 얼른 집어 가시게.”

하면서 정식의 뒤에 눈을 흘겼다. 정순은 정식이 대철처럼 다정스럽게 무엇이든지 자기에게 권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꾸역꾸역 먹는 것이 밉살스럽기도 하였으나, 실은 대철이 좋은 포도를 먼저 순영에게 주고 그만 못한 것을 나중에 자기에게 주는 것이 공연히 새암이 났었다.

“아, 참 잊었습니다.”

정식은 자기가 가진 포도송이에서 먹던 부분을 떼어 남은 것을 부며,

“먹던 데는 떼었습니다. 드세요.”

하고 웃었다.

“나는 뭐 남 먹던 턱찌끼만 얻어먹는 사람인가요?”

정순은 발끈하여 얼굴빛이 변하면서 포도송이를 채뜨리니, 포도가 터지면서 물이 튀었다.

“이게 웬일이세요? 그러실 것 뭐 있어요?”

정식은 불쾌한 기색을 지었다. 대철과 순영은 수건으로 옷에 튄 포도물을 씻었다.

“혼자 많이 드세요, 나는 갈 테니.”

정순은 일어나서 옷을 털더니 불문곡직하고 간다.

“이리 오세요.”

“그러지 말고 이리 오세요.”

“이리 오너라, 같이 가자.”

그들은 여러 번 만류하였으나 정순은 뒤도 안 돌아보고 해죽해죽 간다.

“그럼 저도 가겠어요.”

순영도 일어났다.

“가거나 말거나 내버려두고 우리는 더 놀다 갑시다.”

정식의 말에,

“그럴 수가 있어요? 둘이 왔다가 하나만 떨어져서 있으면 되겠어요? 더구나 불안해서 가는데.”

순영은 옷을 매만지더니,

“그럼 안녕히들 놀다 오세요, 동무가 가니깐 저는 먼저 가겠어요.”

하고 대철을 한 번 보더니 걸음을 옮겼다.

“자, 그럼 우리도 가세, 다들 가시는데 무슨 재미로 우리만 남아 있나?”

대철이 주섬주섬 걷어 가지고 일어섰다. 정식도 마지못하는 듯 일어섰다.

“얘, 정순아, 같이 가자.”

지금 달음질을 하던 순영은 그들이 뒤에 따라오는 것을 보고서 그럴 것이 없다는 듯이 천천히 걸었다. 순영은 정순의 행동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고소한 듯도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대철이 정식보다 나은 점이 있는 듯 하여 더욱 기뻤다. 순영은 앞에 가는 정순보다 뒤에 오는 대철을 자주 돌아보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아까 대철이 포도를 좋은 것으로 골라서 먼저 알았던 정순보다 자신에게 먼저 준 것은 확실히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여간 기쁘지 않았다.

“오늘 우리도 여러 날 만에 만나고, 또 좋은 손님도 두 분 계셔서 저녁이나 같이 먹었으면 좋겠는데, 정순씨가 저렇게 가셔서 재미가 적은데.”

대철이 정식을 보고 말했다.

“글세, 나도 그런 생각이 있는데, 정순은 내가 데려올 수 있으니.”

정식은 말을 하며 앞에 가는 정순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우리 저녁 먹으러 가세, 그런데 인천으로 들어가자면 만만한 데가 없고, 조탕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세.”

“그럼 그러지.”

정식은 다시 정순이 가는 곳을 바라보더니,

“정순이가 벌써 자동차를 타는 모양인데, 자동차를 탔자 한껏 해야 자기 집으로 가겠지. 그러면 내가 곧 가서 데리고 올 수 있으니까, 고만두고 식당으로 가세.”

정식이 앞을 선다.

“순영씨는 저녁을 잡수시고 간대도 관계없겠지요?”

대철이 묻자,

“글세, 오늘 노는 날은 노는 날이지마는, 너무 늦으면 안 될걸요. 또 동무도 먼저 가고 했는데.”

순영은 어려운 기색을 보이면서 단연코 못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럼 관계없습니다. 정순씨도 오실 것이니까 염려 마시지요.” 대철은 정답게 말했다.

“순영은 고개를 숙이고 가부간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자, 그러면 나는 가서 정순이를 데리고 올 터이니, 미안하지만 조금 기다려 주게.”

하고 정식은 다시 순영에게,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하고 나갔다.

지평선을 넘어가려는 저녁 빛은 엷은 커튼을 통해 그들의 좌석을 비춰주었다. 그들은 서로 보려고 하면서도 눈이 마주칠 것을 피하기 위해 다른 데를 보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계속되었다. 순영은 물어볼 말이 있으면서도 차마 먼저 말을 내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만 하고 입술을 달막거리기만 했다. 그 말이 대철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제 저녁때가 되니까 좀 시원하시지요?”

대철이 말머리를 꺼냈다.

“네, 아주 시원한데요. 더운 기운이 조금도 없는 것 같아요.” 순영도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아까 들으니까, 오늘이 노는 날이라고 하시니 노는 날이 따로 있어요?”

“네, 따로 있습니다.”

“뭘 하시는데요?”

순영은 말이 꽉 막혔다. 노는 날이 따로 있다는 말까지는 심상히 했지만, 급기야 무엇을 하느냐고 묻는 데는 차마 자기의 경우를 그 사람에게 선뜻 말할 수는 없었다. 순영은 얼굴이 붉어지고 등골에서 땀이 나다가,

“그것은 차차 아시겠지요.”

하고 겨우 말했다.

“아, 참 실례하였습니다. 졸구의 말로 말한다는 것이 그런 말씀을 다 물었습니다. 용서하세요.”

대철은 초면에 남의 처녀의 직업을 물은 것이 진정 실례로 생각되었다.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하실 것은 없어요. 저의 직업이 하도 이상해서 말씀하기가 부끄러워서 그래요. 묻지 않으셔도 차차 말씀드릴 때가 있겠지요.”

순영은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대철은 순영의 말과 태도를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였으나 더 추궁하지는 않았다.

그러자 차가 나왔다. 차를 마시고 앉았던 대철은 벌떡 일어나서 밖을 내다보더니,

“이 사람이 가서 정순이를 데리고 오려면 조금 시간이 걸릴 텐데, 그새 갑갑한데 밖에 나가서 산보나 하실까요?”

하고 순영을 돌아봤다.

“앉아서 예기나 하시지요, 앉으세요.”

순영은 정식이 오는 시간까지가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여 애고 있게 말했다.

“그럼 이야기를 하시지요.”

대철은 반가운 듯이 교의에 앉았다.

“선생님이 하시지요. 제가 얘기를 할 줄 아나요.”

“무슨 얘기를 할까요. 얘기라는 것은 일부러 하려면 잘 안 나오거든요.”

대철은 천장을 쳐다보며 무엇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헤엄을 어쩌면 그렇게 잘 치세요?”

순영은 대철이 다른 얘기를 끄집어내면 자기의 듣고 싶은 말을 못 듣겠으므로, 대철의 말이 나오기 전에 이렇게 허두를 내었다.

“잘이라니요? 잘하지도 못하지마는 무엇이든지 차차 배우면 되는 것이지요.”

“그 위에 어떻게 더 잘하세요? 아마 바다라도 건너가려면 건너가시겠어요?”

“허허허, 아닙니다. 바다를 어떻게 건너나요. 수영이라는 것은 그렇게 장거리로 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럴까요? 저는 보기에 바다라도 건너가실 것 같은데요. 아무튼 그렇게 헤엄을 치시면 물에 빠질 염려는 없으시겠지요?”

“그런 것도 아니겠지요. 옛말에도 헤엄 잘 치는 놈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런 일은 제가 잘 못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지, 저만 조심하면 빠질 리는 없겠지요.”

“그렇게 헤엄을 잘 치면 물에 빠질 리가 있나요. 오히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 줄 텐데, 그렇잖아요 선생님?”

말은 차차 본문제로 들어간다.

“그렇지요, 다른 사람을 더러 건져 주는 수도 있지요.”

“아, 그렇겠지요? 그럼 선생님도 물에 빠진 사람을 많이 건져 주셨겠지요?”

순영은 흥미를 가지고 대철을 쳐다본다.

“네, 더러 건져 준 일이 있지요.”

“몇이나 건져 주셨어요?”

순영은 앉은 채로 자기의 의자를 다가놓았다.

“서너 번 그런 일이 있었지요.”

“바다에서요?”

“바다에서 두 번, 강물에서 한 번, 그렇지요.”

“세 번이면 세 사람을 살린 것이 아니예요. 건져 주신 사람은 남자예요, 여자예요?”

“여자가 둘, 남자가 하나, 그렇지요.”

“어디서 어떻게 건져 주셨어요? 어디 얘기 좀 해보세요.”

“그까짓 것 얘기할 것 무어 있어요? 순영씨나 좋은 얘기 좀 하세요.”

대철이 순영을 보며 가늘게 웃었다.

“그까짓 것이 뭐예요? 그게 좀 좋은 이야기예요. 저는 그런 얘기가 재미있어요. 어서 해 주세요.”

순영은 모르는 결에 응석하듯이 말했다.

“한 번은 함경도 서호라는 데서 배타고 고기잡이 나 갔다가, 풍랑에 배가 파선해서 빠진 사람을 하나 건져 주고, 한번은 바로 서울 한강입니다. 달밤에 거기를 놀러 나갔다가 마침 자살하려고 철교에서 떨어진 여자를 하나 건져 주었는데, 아주 젊은 여자예요. 그 후에 신문에 났는데 그 여자는 서울 삼청동 사는 과부라서, 수절하는 중에 어떤 자가 밤중에 들어가서 겁탈을 했는데, 강약이 부동으로 당하기는 당하고도, 그것이 분하고 부끄러워서 자살을 하려 하고 빠진 것을, 어떤 사람이 건져 주어서 생명에는 관계가 없다고 났더군요.”

대철은 차를 마시더니,

“그런 일이 있었고, 또 한번은 원산에서 생긴 일인데…”

하고 말을 계속하려 할 때, 정식이 정순을 데리고 들어온다. 어느새 정순이가 들어왔다.

“이 사람 조금 늦었습니다. 오늘 미안합니다.”

하는 정식의 토거리 인사가 있자,

“저를 기다리시게 하여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정순이 미소를 띠고 인사한다. 대철은,

“뭐 그다지 오래지 않았습니다. 순영씨하고 이야기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몰라서 그런가 잠깐인 듯한데요.”

하고 웃어버린다.

“같이 와 가지고 나는 어떻게 하라고 너 혼자만 그러구 갔니?” 순영은 웃으면서도 불평하는 듯이 말했다.

“너는 뭐, 길을 몰라서 못 오니? 나는 잠깐 볼 일이 있어서 먼저 갔더니, 모두 미안하게 됐구나.”

정순은 말을 하고 조금 주저하더니,

“그런데 김 선생님 말씀에, 너하고 예기하시느라고 시간 가는 줄을 모르셨다는데, 얼마나 재미있는 예기를 했기에 그러냐? 그러면 내가 먼저 간 것이 잘 됐지 뭘 그래?”

하고 눈을 흘기는 듯이 웃는 입술을 삐죽였다.

“너는 그게 방패막이 하는 소리냐? 너 말 잘하는 줄 알았어, 얘 고만두어.”

순영은 웃지도 않고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순영은 그들이 일찍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마침 그때 들어온 것이 여간 불쾌하지 않았다. 순영은 대철이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준 이야기를 하다가, 끝으로 원산에서 건져 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반드시 자기의 일인 줄을 알면서도 어쩐지 철두철미 그 얘기를 자세히 듣고 싶었고, 그 얘기를 들은 다음에는 자기로서 표정으로나 말로라도 해포를 두고 가슴에 일이고, 다음에 말했던 회로를 때 말이라도 누설하려고 하였었는데, 그러한 말이 시작되다가 그들이 들어오므로 주단이 된 것이, 마치 바라고 바라던 행복의 실마리를 잡을 듯 잡을 듯 손끝에 가칫거리다가 고만 바람에 부려서 놓친 것처럼 애석하였다. 그것이 만일 심상한 이이라면, 그들이 있는 데서 말을 했자 아무 거리낄 것이 없는 것이어서 다시 재차 물을 수도 있는 일이지마는, 그 일만은 도저히 한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이 있는 데서는 들을 재미가 없을 뿐 아니라, 가령 고양이나 강아지가 옆에서 듣는다고 하더라도 순영은 긴장한 마음과 진정한 표시가 얼마나 걸릴 것 같았다. 그리하여 그 자리에서는 다시 묻고 싶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대철이 그 말을 계속할까 두려웠다. 만일 대철이 그 말을 계속한다면, 무슨 방법으로 그것을 중지시킬까 하는 생각을 하기에, 그렇지 않아도 끊어질 듯한 간장이 더욱 졸였다. 만일 조물주가 그것을 본다면 실로 가엾은 일이었다. 그러나 대철은 그들과 다른 말을 하기에 그 말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남은 문제는 어찌하여야 다시 대철을 조용히 만나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처에 자기의 처소를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처소를 가르쳐 준댔자 대철이 반드시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요, 그보다도 자기가 말하기 전에 대철이 자기의 경우를 알게 된다면, 그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왜 그러냐 하면, 자기가 말을 하는 때에는 아무쪼록 양해가 되도록 말을 하겠지만, 그러한 양해도 없이 무두무리(無頭無尾)에 자기가 색주가로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첫 인상이 나쁘게 되어 만사는 와해될까 두려운 까닭이었다. 그리하여, 그리고 다음에 대철의 주소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정식의 주소를 물었다. 그리고 다음에 대철의 주소를 알았다.

그들이 저녁을 먹고 집에 간 것은 오후 열 시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