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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von 한용운

“그럼…”

대철이 조용히 말했다.

“더 미룰 이유가 없겠군요.”

순영은 숨을 삼켰다.

“…….”

“우리.”

대철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결혼합시다.”

순영은 이미 수없이 기다려 온 말인데도—

막상 다시 들으니 심장이 떨렸다.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목소리가 아주 작게 흔들렸다.

방 안 공기는 이상할 만큼 따뜻했다.

두 사람은 그날 밤 늦게까지 결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 식을 올릴지.

어디서 살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광산 일은 아직 시작 단계였다.

돈도 부족했다.

대철은 앞으로도 이리저리 움직여야 할 가능성이 컸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순영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가난한 건 괜찮았다.

고생도 괜찮았다.

단 하나.

대철 곁에만 있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결국 두 사람은 날짜까지 정해 버렸다.

길일을 따질 것도 없었다.

“한 일주일 뒤면 어떻습니까?”

대철 말에 순영은 금세 웃었다.

“좋아요.”

그녀는 오히려 더 빨랐으면 좋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일주일 뒤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그 소문은 놀랄 만큼 빠르게 인천 바닥에 퍼져 나갔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 이야기를 신기해했다.

원산 바다에서 목숨을 구해 준 남자.

그 은혜를 잊지 못한 여자.

그리고 우연한 재회 끝에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된 인연.

마치 소설 같은 이야기였다.

“세상에 그런 인연도 있나.”

“순영이가 참 의리 있다.”

“은혜를 저렇게 갚는 여자가 어디 흔하냐.”

사람들은 순영을 칭찬했다.

대철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둘 사이 이야기는 술자리마다 안줏거리가 되었고, 사람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떠들어댔다.

심지어 순영에게 다니던 손님들 가운데는 축하라며 돈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비단이나 피륙.

화장품.

이것저것 보태 주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결혼 피로연만큼은 숙자가 직접 맡겠다고 나섰다.

겉으로는 퉁명스럽게 굴었지만—

누가 봐도 자기 딸 시집보내는 얼굴이었다.

결혼 날짜가 다가올수록 인천 분위기도 조금씩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결혼식 날이 찾아왔다.

결혼식은 건봉사 포교당에서 열리게 되었다.

시간은 오전 열한 시.

그날 포교당 안은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가득했다.

인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바다에서 시작된 인연.

은혜를 갚으려던 마음.

그리고 결국 이어진 결혼.

사람들은 진심 반, 구경 반으로 몰려들었다.

정각이 가까워지자—

절 안에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향 냄새가 천천히 공기 속으로 번졌다.

포교당 안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조용해졌다.

순영은 하얀 면사포 아래에서 가만히 숨을 골랐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정말… 결혼하는구나.’

아직도 꿈같았다.

곧이어 포교사가 앞으로 나와 조용하고 엄숙한 목소리로 법문을 시작했다.

향 연기가 부드럽게 흔들렸다.

사람들 웅성거림도 어느새 잦아들었다.

그리고—

부처님 앞에서 두 사람은 나란히 섰다.

대철과 순영.

한 쌍의 원앙처럼.

포교사의 주례 아래 두 사람은 서로의 인연을 맺겠다고 맹세했다.

그 순간—

구경꾼들 사이에서 누군가 꽃을 뿌렸다.

“만세!”

어디선가 웃음 섞인 외침도 터졌다.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하지만 순영은 그 속에서도 점점 눈앞이 흐려지는 걸 느꼈다.

처음에는 애써 참으려 했다.

오늘은 웃어야 하는 날이니까.

행복한 날이니까.

그런데도—

돌아가신 부모 생각이 문득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왔다.

‘아버지… 어머니…’

결국 눈물이 맺혔다.

맑은 눈물이 면사포 아래로 천천히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그걸 단순히 기쁨의 눈물쯤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순영 마음속 뜻을 정말 아는 건 아무도 없었다.

아마 부처님밖에는.

순영은 속으로 조용히 염불을 외웠다.

자기 행복을 빌고.

돌아가신 부모를 위해 빌고.

홍 숙자의 앞날까지 빌었다.

그리고 자기를 아껴 준 사람들 모두의 행복도 함께 빌었다.

식이 끝난 뒤에는 숙자 집에서 피로연이 열렸다.

집 안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순영을 칭찬했다.

“참 의리 있는 색시야.”

“요즘 세상에 저런 여자 없다.”

숙자 이야기도 빠지지 않았다.

“홍 숙자도 큰일 했다.”

“그래도 사람 노릇은 제대로 하네.”

숙자는 겉으로는 퉁명스러운 척했지만—

그날만큼은 유난히 말수가 적었다.

웃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섭섭한 얼굴이었다.

마치 정말 딸 하나 시집보내는 사람처럼.

그리고 그날 밤.

두 사람은 우선 대철이 따로 얻어 둔 집에 신방을 차리게 되었다.

밤공기는 조용했다.

하지만 순영 가슴속은—

지금까지 살아온 어느 날보다도 크게 뛰고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