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von 한용운
순영은 더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숙자 말이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꾸 대철을 못마땅하게 말하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가볼게요.”
막 방을 나서려는데—
“얘, 순영아.”
숙자가 다시 그녀를 불렀다.
순영이 돌아보자 숙자가 마당 쪽으로 몇 걸음 나와 물었다.
“그래서 남은 기간 값을 돈으로 낸다 치면…”
그녀는 순영 얼굴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 돈은 있니?”
“있어요.”
순영은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그럼…”
숙자의 눈빛이 달라졌다.
“그 사내가 내주는 거냐?”
순영은 순간 머뭇했다.
하지만 끝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럼?”
“제가 낼 거예요.”
숙자가 눈을 크게 떴다.
“네가?”
“네.”
“왜 네가 내?”
숙자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그 사내는 그런 돈도 없단 말이냐?”
순영은 차마 대철 형편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써 태연한 척 말했다.
“누가 내든 무슨 상관이에요.”
하지만 숙자는 이미 눈치챈 얼굴이었다.
“그럼 네 저금한 돈으로 내겠다는 거구나.”
“그것도 있고…”
순영은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 서울 가서 가져온 돈도 있잖아요.”
숙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
“그 돈까지 다 쓰면…”
그녀는 순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결혼하고 먹고사는 건 괜찮은 거냐?”
순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은 형편이 넉넉하진 않은 것 같아요.”
“그럼 어떻게 살려고?”
숙자는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순영은 작게 웃었다.
“어떻게든 살겠죠.”
그리고 담담하게 덧붙였다.
“설마 산 사람 입에 거미줄 치겠어요.”
숙자는 혀를 찼다.
“암, 사람 죽기야 하겠냐.”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근데 말이다…”
숙자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당장 먹을 게 없는 건 정말 서러운 일이야.”
그녀는 멀리 어딘가를 보는 눈빛이었다.
“너는 아직 겪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숙자는 천천히 말했다.
“목구멍에 풀칠해 가며 산다는 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순영은 가만히 듣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한테 가려고 하니.”
숙자는 끝내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이었다.
“은혜 갚겠다는 건 알겠다만…”
그녀는 한숨을 쉬었다.
“나중에 후회할 날이 올 거다.”
순영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마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숙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뭐…”
그녀는 피곤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다 작정한 일을 내가 말린다고 되겠니.”
숙자는 손을 내저었다.
“남은 기간 값은 돈이고 뭐고 됐다.”
순영이 눈을 크게 떴다.
“어머니…”
“내가 너 성혼시켜 같이 살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다.”
숙자의 눈가가 조금 붉어졌다.
“그렇게는 못하게 됐어도…”
그녀는 애써 웃었다.
“시집가는 애한테 돈까지 또박또박 받아낼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다.”
순영 눈에도 금세 눈물이 맺혔다.
숙자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돈 한 푼 낼 생각 말고…”
그녀는 담배를 비벼 끄며 말했다.
“가서 잘 살 궁리나 해라.”
그 순간—
숙자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순영 역시 결국 참지 못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함께 울었다.
그리고 잠시 뒤—
순영은 젖은 눈가를 훔치며 천천히 방을 나섰다.